켄 그리피 시니어
1. 소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했던 외야수로, 켄 그리피 주니어의 아버지이다.
어린 시절 미식축구, 농구, 육상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특히 고등학생 때 지역 내 최고의 와이드 리시버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9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여자친구가 임신을 하면서 흥미를 덜 가졌던 야구로 진로를 정하게 됐다. 그리하여 1969년 6월 드래프트 29라운드로 신시내티 레즈에 지명되어 프로야구선수로서 첫발을 내딛였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여자친구가 아들을 출산했으니, 그가 바로 켄 그리피 주니어다.(아들과의 나이차이가 겨우 19살에 불과하다.)[1]
1976년 내셔널리그 타격 순위 2위에 오르고 통산 3차례나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MLB에서 충분히 두각을 나타낸 선수였다. 특히나 신시내티 레즈 시절에는 '''빅 레드머신'''의 주축으로 활약했고[2] 그 덕에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게 된다. 통산 2143안타와 .296의 타율을 기록하였다. 1980년 올스타게임 MVP이기도 하다.
말년에는 레즈에서 방출된 후 아들이 있던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뛰었는데, '''아들과 함께 연속타자 홈런'''을 기록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만 40세에도 메이저에서 뛸 정도의 좋은 타자였고, 아들은 시대를 풍미한 재능으로 19세부터 메이저 풀타임 주전으로 뛰었기에 가능했던 초유의 진기록. 물론 상술했듯 시니어가 주니어를 너무도 일찍 낳은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3]
현역 통산 기록은 타-출-장 .296-.359-.431, 152홈런, 200도루를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콜로라도 로키스, 친정팀인 신시내티 레즈에서 타격코치를 지냈다. 그리고 LG 트윈스의 타격 인스트럭터를 맡기도 했으며 정의윤을 호세 칸세코와 비교하면서 좋은 타자감이라 칭찬한 일화가 있다. 현재는 신시내티의 싱글A팀 감독을 맡고 있다.
2. 가족관계
현역시절 한 시대를 풍미한 강타자로 이름이 나 있지만, 한편으로 켄 그리피 주니어라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을 낳은 아버지로도 유명하다. 아들과 함께 현역 선수로 뛰었던 것 역시 보기 드문 케이스. 시니어가 워낙 일찍 주니어를 얻은 것[4] 도 중요한 요인이지만, 시니어가 빅 리그에서 오랫동안 활약할 정도의 기량을 갖추고 동시에 주니어가 시니어의 은퇴 이전에 일찌감치 빅 리그에 콜업될 만큼 뛰어난 실력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어야 했는데, 이게 기가막히게도 전부 맞물리면서 부자가 동시에 현역으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니어의 큰아들 '트레이' 켄 그리피 3세가 2016년 드래프트에서 24라운드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지명되어 3대가 메이저리그에 지명되기도 했다. 다만 트레이는 시애틀로 가지 않고 프리에이전트로 NFL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에 입단했다.
한편 켄 그리피 시니어의 아버지 조셉 그리피는 스탠 뮤지얼의 고등학교 친구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조셉 그리피는 켄 그리피 시니어가 2살일 때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고 한다.
3. 관련 문서
[1] 공교롭게도 아들인 주니어마저 사고쳐서 19살에 딸을 출산했다...쉽게 말해 은퇴도 하기 전에 할아버지가 됐다. 현재는 무려 '''증조할아버지'''다. 그나마도 주니어의 딸과 아들은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서(라고 썼지만 주니어의 아들 트레이도 26세에 결혼했다.) 결혼을 했기 때문.[2] 1990 시즌을 레즈에서 시작하다 시즌 중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했다. 만약 매리너스로 이적하지 않았다면 빅 레드머신 시절을 경험한 유일한 우승멤버였을 뻔 했다. 어쨌든 포스트시즌 경력은 아들보다 더 화려한 셈.[3] 심지어 주니어도 딸을 너무도 일찍 낳아서 이 때는 무려 손녀가 있었다!![4] 주니어와 시니어의 나이 차이는 19살(...)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