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애나폴리스 콜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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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
워드마크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Indianapolis Colts'''
'''창단'''
1953년 (71주년)
'''NFL 가입'''
1953년 (71주년)
'''연고지'''
인디애나인디애나폴리스
'''연고지 변천'''
볼티모어 (1953~1983)
인디애나폴리스 (1984~)[1]
'''구단명 변천'''
볼티모어 콜츠 (1953~1983)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1984~)
'''홈 구장'''
메모리얼 스타디움 (Memorial Stadium, 1953~1983)[2]
RCA 돔 (RCA Dome, 1983~2007)
'''루카스 오일 스타디움''' (Lucas Oil Stadium, 2008~)
'''구단주'''
짐 어세이 (Jim Irsay)
'''사장'''
'''단장'''
크리스 발라드 (Chris Ballard)
'''감독'''
프랭크 라이크 (Frank Reich)[3]
'''약칭'''
'''IND'''

우승: 4회
'''NFL(3회)'''
1958, 1959, 1968[4]
'''슈퍼볼 우승'''
'''(2회)'''
'''V'''(1970)[5], '''XLI'''(2006)
컨퍼런스 우승: 7회
'''NFL Western(4회)'''
1958, 1959, 1964, 1968
'''AFC(3회)'''
1970, 2006, 2009
디비전 우승: 15회
'''NFL Coastal(1회)'''
1968
'''AFC East(6회)'''
1970, 1975, 1976, 1977, 1987, 1999
'''AFC South(9회)'''
2003, 2004, 2005, 2006, 2007, 2009, 2010, 2013, 2014
플레이오프 진출: 29회
'''NFL'''
1958, 1959, 1964, 1965, 1968, 1970, 1971, 1975, 1976, 1977, 1987, 1995,
1996, 1999, 2000,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2, 2013, 2014, 2018, 2020
팀 컬러 /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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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컬러'''
로열블루 흰색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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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met'''
'''Home'''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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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볼 V 우승팀'''
IV
캔자스시티 치프스

'''볼티모어 콜츠'''

VI
댈러스 카우보이스
'''슈퍼볼 XLI 우승팀'''
XL
피츠버그 스틸러스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XLII
뉴욕 자이언츠

1. 개요
2. 역사
2.1. 볼티모어 시절
2.3. 인디애나폴리스 이전 초기
2.5.1. 2013년 시즌
2.5.2. 2014년 시즌
2.5.3. 2015년 시즌
2.5.4. 2016년 시즌
2.5.5. 2017년 시즌
2.5.6. 2018년 시즌
2.5.6.1. 플레이오프
2.6. 포스트 럭 시대
2.6.1. 2019년 시즌
2.6.1.1. 프리시즌
2.6.1.2. 시즌
2.6.2. 2020 시즌
2.6.3. 2021 시즌
3. 홈구장
4. 영구결번
5. 기타


1. 개요


NFL미식축구팀. AFC 남부지구 소속. 연고지는 인디애나폴리스.

2. 역사



2.1. 볼티모어 시절



역사상 NFL이 인정하는 콜츠의 창단은 1953년이나, 팀의 기원은 1944년 연예매니저 테드 콜린스(1900~1964)의 주도로 창단된 NFL 팀 '보스턴 양크스'에서 비롯된다. 1945년 브루클린 타이거스를 합병해 '양크스'로 활동했다가, 이듬해 본래 팀명으로 환원하고 1949년 '뉴욕 불독스'로 변경해 훗날 '2분 드릴'의 달인이 될 바비 레인 쿼터백을 배출했다. 1951년 '뉴욕 양크스'를 거쳐 1952년 텍사스 지역 사업가 자일스 밀러(1920~1989)에게 매각되어 댈러스 텍산스[6]로 변경했으나 1승 11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해체돼 1953년에 볼티모어 향토사업가 캐롤 로젠블룸이 이끄는 투자그룹이 텍산스 선수단을 인수해 '볼티모어 콜츠'로 새로 창단하였다. 팀명은 이 곳에 종마 시설이 있는 것에서 유래했으며, 한국어로 '종마'를 뜻한다.
창단 후 팀은 구 텍산스 시절 DT 아트 도노반과 DE 지노 마케티 등을 중심으로 선수단을 꾸려 리그 최초로 치어리더나 응원가 등을 적용했고, 1954년 위브 유뱅크가 감독으로 취임해 1956년에는 피츠버그 스틸러스에서 출전 기회를 못 잡고 버려진 쿼터백 조니 유나이타스를 샀다. 유나이타스가 중심이 된 팀은 패싱을 위주로 하여 러싱 위주의 풋볼계를 뒤흔들어 빠르게 강팀으로 성장했다. 1963년에 유뱅크 감독이 AFL 팀 뉴욕 제츠로 이적하자 전 디트로이트 라이언스 DC 돈 슐라가 감독직을 이어받아 1968 시즌에 NFL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슈퍼볼 3에서 조 네이머스를 앞세운 뉴욕 제츠에 일격을 당하기도 했지만, 1970년에 돈 슐라 감독이 마이애미 돌핀스로 이적하자 OC 돈 매카퍼티가 감독직을 이어받아 5회 슈퍼볼에서는 댈러스 카우보이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1972년에 유나이타스가 샌디에이고 차저스로 떠나자 팀은 펜스테이트 출신 RB 리델 미첼을 필두로 3년 간 리빌딩을 거쳐 전 워싱턴 레드스킨스 OC 테드 마치브로다가 감독으로 취임했고, 그의 지휘 하에 1975~77년까지 3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전부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그러는 동안 팀의 전력은 쭉 약체로 내려가 78년 이후로 6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고, 1983년 드래프트 때는 포텐 넘치는 QB 존 엘웨이(스탠포드대)를 전체 1번으로 지명했으나, 엘웨이 본인이 입단을 거부해 덴버 브롱코스로 트레이드시켰다. 한편 볼티모어 시와 맺었던 메모리얼 스타디움의 임대 계약만료가 다가오고 있었다.

2.2. 원조 야반도주


1972년 시카고 출신 사업가 로버트 어세이는 댄 리브스 가문으로부터 로스앤젤레스 램스를 매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볼티모어의 구단주였던 캐롤 로젠블룸에게 1900만 달러와 램스의 소유권을 주고 볼티모어 콜츠의 소유권을 가져오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캐롤 로젠블룸은 메모리얼 스타디움의 임대연장시 임대료를 올려 받으려는 볼티모어 시측과 대립이 있었고, 이 때문에 로젠블룸은 자기 부인이 서부로 가고싶다는 요청에 따라 램스를 소유한 로버트 어세이와 구단 소유권을 트레이드했다.
볼티모어 시 역시 볼티모어의 오래된 풋볼구장이자 콜츠와 임대계약 만료를 앞두고있던 메모리얼 스타디움 대신 볼토돔이라는 7만석 규모의 돔경기장을 조성하여 팀을 크게 키워볼 생각이었다. 여기에는 당연히 시장을 비롯한 정치가들과 구단주들간의 대화가 있었고 당시 메모리얼 스타디움을 같이 쓰고 있던 야구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구단주와 같이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이너 하버, 그러니까 현재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홈구장 캠든 야드 터에 건설할 생각이었고 그를 위해 자금을 모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7만석 규모의 돔경기장이라는게 미국에서도 그렇게 간단하게 뚝딱 지어지는게 아니라서 구장 건설계획은 누가 돈 더내라, 돈이 얼마가 더든다 같은 문제로 인해 최종협의가 연기되고 있었고, 그동안 볼티모어 콜츠의 팀 성적은 떨어지고 있었으며 메모리얼 스타디움 역시 노후화되고 있었다. 그렇게 협의가 늘어지는 동안 1979년 오리올스의 구단주는 팀을 워싱턴 D.C 출신 변호사 에드워드 베넷 윌리엄스[7]에게 매각하고 결국 볼토돔 건설건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로버트 어세이는 이런 결정에 실망하고 차선책으로 메모리얼 스타디움을 리모델링이라도 하게 리모델링 비용 2500만 달러를 책정하여 메릴랜드 주 정부에 요구하였으나, 메릴랜드 측은 리모델링 비용을 삭감한 걸로 모잘라서 리모델링 조건으로 다년간의 장기계약을 요구해 콜츠를 영원히 볼티모어에 묶어놓으려 했다. 이에 반발한 어세이는 그때부터 볼티모어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팀을 싱싱한 새 구장이 생기는 지역으로 팔아버릴 계획을 세웠다. 자신이 잠깐 소유했던 램스의 연고지인 LA나 대도시인 뉴욕, 풋볼팀에 관심이 많던 남부지역 도시들인 멤피스, 잭슨빌, 버밍엄 등이 후보에 올랐는데, 최종적으로 NFL팀 연고 이전의 떡밥을 문 도시는 애리조나 주의 주도 피닉스와 농구로 유명한 인디애나 주의 대도시 인디애나폴리스였다.
처음에 어세이는 피닉스 연고 이전을 염두에 두고 피닉스 측과 비밀리에 회동을 하였으나 슈퍼볼 직전에 어세이와 피닉스의 회동 소식이 언론에 노출이 되는 바람에 피닉스 이전 계획은 파토가 났다. 그리고 인디애나폴리스의 경우 당시 인디애나폴리스 시장인 윌리엄 허드넛이 1979년부터 풋볼 팀 유치를 위해 6만석 규모의 돔 경기장 건설을 추진하여 1982년 후시어 돔(Hoosier Dome) 착공에 들어갔다. 콜츠의 메모리얼 스타디움 임대 계약이 끝나는 1984년에 후시어 돔이 완공된다는 소식을 입수한 로버트 어세이는, 기회는 이때다 하고 인디애나폴리스 시와 협의를 논하여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1984년 3월 2일 NFL 사무국이 콜츠의 연고 이전을 승인한다고 발표하면서 콜츠의 연고이전이 기정사실화되었고 분노에 찬 볼티모어 팬들은 콜츠의 이사트럭 앞에 드러누워서라도 못 가게 하겠다라고 협박을 했고, 급기야 1984년 3월 27일 메릴랜드주 상원은 '''볼티모어 시에게 콜츠의 소유권을 압류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의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연고이전 후 어세이의 해명에 따르면 이 법안 통과가 연고이전 결정을 내리게 된 결정타가 되었다고 한다.
다음날인 3월 28일 피닉스는 메릴랜드주 상원이 통과시킨 위 법률을 언급하며 콜츠의 유치를 포기했다. 하지만 이미 볼티모어를 빠져나가기로 결심한 어세이는 그날 오후 허드넛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콜츠의 인디애나폴리스로의 연고 이전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다음날인 3월 29일에 상원을 통과한 법률이 메릴랜드주 하원을 통과하고 주지사가 거기에 서명해 법안이 완전히 통과가 되면 그길로 콜츠는 볼티모어 소유가 되어 볼티모어 탈출이 물거품이 될 것이었다. 이에 어세이와 허드넛은 007작전을 방불케하는 비밀 작전를 통해 최대한 빨리, 아무도 모르게 인디애나 주로 탈출할 계획을 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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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세이와의 전화 통화가 끝나자마자 허드넛은 운송 회사 간부였던 자신의 친구에게 콜츠의 연고 이전을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그 친구는 자신의 회사 소유의 컨테이너 트럭 15대를 볼티모어로 급파했다. 그리고 그날 밤 10시 허드슨이 보낸 트럭이 구단 사무실 앞에 도착하자 구단 측은 구단 사무실의 모든 집기를 트럭에 실은 후 바로 인디애나 주로 도망을 갔다. 그것도 메릴랜드 주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트럭들의 진로를 각각 다른 루트로 통하게 하는 꼼수까지 썼다(...). 한술 더 떠서 각각의 트럭들이 인디애나 주 경계선에 진입할 때 인디애나 주 경찰이 경계선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목적지인 인디애나폴리스까지 호송하는 등 말 그대로 첩보영화를 찍었다. 그렇게 탈출용 트럭이 구단 사무실에 도착한지 8시간만에 콜츠는 인디애나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29일 아침, 어세이와 허드넛의 예상대로 법안이 하원과 주지사 승인까지 통과하면서 메릴랜드주와 볼티모어 시 당국은 콜츠의 도망을 저지하려 했으나 이미 트럭은 메릴랜드를 빠져나간 뒤였다. 그리고 그 시각 허드넛은 기자회견을 열고 어세이 구단주와의 협의를 이뤘음을 공표하며, 볼티모어 콜츠 시대의 종말에 마지막 도장을 찍었다. 인디애나폴리스 시민들은 환호했고 볼티모어 시 당국은 진작에 어세이의 요구를 들어줬어야 했다며 땅을 치면서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결국 1984년 9월 정식으로 콜츠는 인디애나폴리스 콜츠가 된다. 당연히 볼티모어 콜츠팬들은 멘탈붕괴에 빠져서 콜츠의 이전을 무효화하려 했지만 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집단고소를 했으나 패소했다.
이 사건은 미국 프로팀의 연고지 이전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회자되는 사건으로 당시 콜츠의 구단주였던 로버트 어세이는 볼티모어 주민들에게 거의 을사오적급 취급을 받는다. 일부 옛날 팬들은 "죽어도 용서못한다"고 이를 득득가는 정도(...).
어쨌든 그렇게 한동안 볼티모어에는 풋볼팀이 없다가 12년 뒤 슬픔을 제조하는 모 팀이 이 때와 똑같이 야반도주해(...) 볼티모어로 오면서 볼티모어 레이븐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2.3. 인디애나폴리스 이전 초기



그렇게 새로운 프랜차이즈에서 출발한 콜츠는 볼티모어 시절 망가진 전력 복구하느라 몇년을 리빌딩에 들어갔다. 그리고 LA 램스의 스타 러닝백이자 지금도 단일시즌 최고 러싱야드 기록(12,000 야드)을 보유중인 에릭 디커슨을 영입해 전력 상승을 노렸지만,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정도는 되지 않고 5할 승률의 중간급 팀으로 남았다. 1991년 디커슨이 LA 레이더스로 간 후 1994년 전체 2위로 입단한 샌디에이고 주립대 출신 러닝백 마셜 포크와 시카고 베어스에서 이적한 쿼터백 짐 하버[8]를 중심으로 전력을 재편했다. 이 둘을 중심으로 1995~1996 시즌에 2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두번 모두 피츠버그 스틸러스에게 패해서 탈락했다.
이렇게 아쉬운 플레이오프 탈락을 뒤로하고 팀의 스타 러닝백 마셜 포크는 FA가 되어 더 큰 몸값을 요구하고 있었고, 1997년 구단주 로버트 어세이는 2년 전부터 앓아 온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이에 차남 짐이 양모와 법정 투쟁 끝에 구단을 상속받아 슈퍼볼 4연속 진출에 빛나는 86~93년 최전성기 버팔로 빌스를 만들어내고, 신생팀 캐롤라이나 팬서스를 거친 명단장 빌 폴리안을 영전했다.

2.4. 페이튼 매닝 시대


1998년 폴리안 단장이 사장을 겸한 후 임기 첫 드래프트에 임했는데, 버팔로 빌스가 짐 켈리를 지명했던 것처럼 뛰어난 쿼터백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마침 그의 구미에 딱 맞는 최고의 쿼터백 유망주가 나왔는데, 바로 테네시 대학교의 우수 쿼터백이자 아치 매닝의 차남인 '''페이튼 매닝이다.''' 콜츠는 그를 전체 1순위로 지명하고, 감독직에 전 뉴올리언스 세인츠 감독이자 수비의 귀재 짐 모라를 모셔왔다. 그리고 페이튼 매닝은 데뷔와 동시에 주전 쿼터백으로 1998년 시즌을 시작한다.
그리고 폴리안 단장은 젊은 유망주를 뽑아 팀의 체질을 개선하는데 주력했다. 1999년에 팀의 스타 러닝백이지만 고액연봉을 요구하던 마셜 포크를 세인트루이스 램스[9]에 트레이드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러닝백 에저린 제임스를 지명해 젊은 피를 수혈하고, 2001년에는 와이드 리시버 레지 웨인, 2003년에 타이트엔드 댈러스 클락을 뽑아내고 수비에는 수비엔드 드와이트 프리니, 세이프티 밥 샌더스등 젊고 능력있는 선수들을 뽑았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빌 벨리칙과 톰 브래디를 앞세워 슈퍼볼 3회 우승을 거둘동안 콜츠 역시 매닝을 중심으로 전력을 상승시켜 AFC의 치열한 상위권 경쟁에 끼어들었다.
2002년 시즌부터는 1990년대 후반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를 강팀으로 만들었다가 무관으로 해임된[10] 흑인 감독 토니 던지를 영입하여 팀을 완전히 페이튼 매닝과 토니 던지의 팀으로 바꾸고 끊임없이 전력 보강에 힘쓴 끝에, 브래디가 이끄는 강력한 우승후보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AFC 챔피언십에서 꺾고 슈퍼볼 41(XLI, 2006-07)에 진출해 NFC 우승팀인 시카고 베어스를 대파하고 인디애나폴리스 이전 후 첫 슈퍼볼 우승을 거머쥔다. 버펄로 빌스에서 끝내 우승에 실패한 폴리안이나 항상 톰 브래디에 비교당하던 페이튼 매닝이나 모두에게 의미있는 첫 우승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2.5. 앤드류 럭 시대


페이튼 매닝이 리그에 들어온 이래 콜츠는 98년과 2001년 딱 두시즌만 빼면 매년 10승 이상을 거두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며 2002년부터 2010년까지 9년 연속 10승+플레이오프가 포함되어있었다. 그야말로 AFC 최강팀의 면모. 하지만 주축선수들의 연장계약을 위해 많은 돈을 뿌린 콜츠는 샐러리캡 문제에 봉착했고 샌디에이고 차저스를 포함한 라이벌들의 등장으로 점차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이를 페이튼 매닝의 뛰어난 리더쉽과 실력으로 막아내던 상황에 2009년 페이튼 매닝의 맹활약으로 44회 슈퍼볼에 진출했지만 드류 브리스를 앞세운 뉴올리언스 세인츠에 통한의 패배를 당하면서 이제 리빌딩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2006년 우승 이후 페이튼 매닝은 팀과 연장계약을 하여 NFL 최고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지만, 2008년 무릎부상이 악화되어 수술을 한 이후 점차 몸상태가 나빠지더니, 2009년 아쉽게 두번째 슈퍼볼 도전에 실패하고, 2011년 오프시즌 목부상으로 경추 수술을 받으며 2011년 시즌을 완전히 결장했다. 게다가 2009년에 단장으로 부임한 빌 폴리안 사장의 아들 크리스는 아버지만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2011 시즌에는 리그 최하위 2승 팀으로 전락했고 꼴찌로 전체 1위 드래프트지명권을 받았고, 폴리안 부자가 사장과 단장직에서 각각 물러났다.
2012 오프시즌에는 단장에 라이언 그릭슨, 감독에 척 파가노를 임명해 새 출발을 위한 초석을 다졌고, 드래프트에선 전체 1번으로 신인시절 페이튼 매닝에 비견되던 스탠퍼드 대학교쿼터백 앤드류 럭이 등장했다. 그리고 큰 수술을 두번이나 한 페이튼 매닝은 30대 후반의 노장으로 점점 기량이 쇠퇴할 것이 눈에 보이는 상황. 거기다가 이미 맺어놓은 5년 9천만달러의 거액 계약에 달린 로스터 보너스가 수천만달러에 달해서 럭과 페이튼은 공존이 불가능했다.
이 리그 최고의 노장 쿼터백 vs 리그 최고의 유망주 쿼터백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고민에 빠진 콜츠는 수많은 이슈거리와 막말을 남기며[11]결국 팀의 미래와 페이튼에게 지불할 거액의 로스터 보너스를 지불할수 없다는 이유로 페이튼 매닝을 포기하고 앤드류 럭을 1순위로 지명하고 98년도처럼 그를 중심으로 리빌딩의 길에 들어갔다.
럭이 데뷔한 12-13시즌 11승 5패로 반등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그는 리그 7위인 4374야드를 던지면서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인터셉션이 18개로 공동 3위에 오른것이 흠.[12] 플레이오프에서는 와일드카드전에서 볼티모어 레이븐스를 만나 9-24로 탈락.

2.5.1. 2013년 시즌


지난시즌 플레이오프에 깜짝 진출하더니 올 시즌은 그게 플루크가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이고 있다. 앤드류 럭은 프로 2년차에 이미 리그 정상급이란 소리 들어도 좋을 만큼 큰 선수로 성장했고, 데뷔 이후 20경기가 조금 넘는 시점에서 10번이 넘는 역전승을 일궈내 베테랑급 경기운영 능력을 선보이고 있다. 게다가 빈약했던 러싱공격을 책임져줄 드래프트 동기 러닝백 트렌트 리차드슨 까지 브라운스에서 얻어왔으니 이제는 여러모로 되는 집안의 모습을 착착 갖춰 나가고 있는 셈. 페이튼 매닝이 떠난지 단 2년만에 리빌딩을 완성시켜버렸다. 8주차까지 5승 2패로 지구 선두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지구 라이벌 텍산스가 자멸하고 있는 걸 보면 올해도 플레이오프 진출은 무난할 듯.
하지만 팀의 넘버원 타겟이자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인 리시버 레지 웨인이 무릎부상으로 시즌아웃되면서 공격진에 빨간불이 켜졌다. 거기다 기껏 1라운드 지명권까지 내주고 데려온 트렌트 리차드슨은 먹튀의 모습을 보이며 팀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다행히 첫해 적응에 실패했던 2라운더 타이트엔드 코비 플리너(쿼터백 럭과 스탠포드 동기)가 자기 기량을 회복했고 수비진이 선전하면서 11승 5패로 남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와일드카드 플레이오프에서는 캔자스시티 칩스를 맞아 인터셉트 3개에 펌블 1개를 범하면서 28점차까지 점수가 벌어지면서 패배하는 듯 했으나... 칩스 선수들이 부상으로 줄줄이 빠졌고 후반들어 럭이 맹활약하면서 45 대 44 극적인 대역전승을 거두면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다.
그러나 디비전 플레이오프에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상대로 앤드류 럭이 4개의 인터셉션을 기록하고 후반전에 수비도 무너지면서 대량실점, 22-43으로 대패하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패트리어츠는 쿼터백 톰 브래디가 단 하나의 터치다운 패스도 기록하지 못 했으나 러닝만으로 콜츠를 박살을 냈다.

2.5.2. 2014년 시즌


오프시즌 때부터 마가 낀 모습을 보였는데, 구단주 짐 어세이가 운전 중 만취 상태로 경찰에 검거되어 수사 중 그동안 부정한 약물 및 음주 남용을 인정해 파장이 일었고, 구단주는 집행유예 1년 및 벌금 50만 불 등을 선고받았다. 개막전에서 페이튼 매닝이 이끄는 브롱코스를 상대로 패했지만 막판 7점차까지 추격하는 모습으로 끈질김을 보였고 이후 앤드류 럭이 이끄는 공격진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작년 망가졌던 수비진 세컨더리가 살아나면서 무난하게 지구 1위를 순항중이다. 앤드류 럭은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AFC 탑 쿼터백으로 성장했고, T.Y 힐튼이라는 확실한 타겟 리시버가 이끄는 패싱 공격진과의 호흡도 잘 맞고 있다.
하지만 너무 쉬운 스케줄때문인지 방심해서인지 현시대 고득점 경기에 맞지 않는 보수적인 운영으로 후반에 괜히 추격을 허용하는 등 척 파가노의 게임 운영능력은 영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지구에 소속된 팀 중에서 이 리그의 승점자판기 노릇을 하며 일찌감치 디비전 레이스에서 탈락하고, 남은 한 팀도 지난 해의 충격적인 몰락에서 반등은 했지만 승률 5할 언저리의 지지부진한 성적에 머물러서 비교적 손쉽게 15주차에 2년 연속으로 AFC 남부지구 우승을 확정지었다.
플레이오프 1회전은 신시내티 벵골스를 가볍게 이기면서 2회전으로 진출하고 2회전은 바로 이전의 팀 레전드가 있는 팀인 덴버 브롱코스였지만 이번에도 이기면서 앤드류 럭은 청출어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AFC 챔피언십 라운드에서 만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톰 브래디에게 럭은 힘 한번 제대로 못써보고 7-45로 탈락하는 좌절을 맛보게 된다. 럭은 이날경기 40%(12/33)에도 못미치는 패스 성공률에 패싱야드도 고작 126야드, 터치다운 패스 하나없이 인터셉션만 두개를 기록하며, QB 레이팅 28.0이라는 최악의 부진을 보이며 슈퍼볼 문턱 앞에서 무너졌다. 2012년 럭의 데뷔 이후 콜츠는 패트리어츠와 네 번 맞붙어서 모두 20점차 이상의 대패를 당하며, [13] 팀이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패츠와의 이러한 천적 관계를 청산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참고로 경기후에야 공이 바람이 규정보다 낮게 채워져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디플레이트 게이트라는 큰 스캔들이 일어났었다. 경기중간에 콜츠의 선수가 친하게 지내던 구단 직원에게 경기에 쓰인 공 한개를 선물해줬는데, 이 직원이 공이나 여러 물품을 다루던 사람이라서 공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처음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하프타임에 공이 규정보다 낮게 바람이 채워졌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지만 경기는 속행되었다. 그리고 슈퍼볼 이후에 조사 결과 패트리어츠의 톰 브래디가 구단 직원에게 자신의 입맛에 맞게 공에 바람을 채워달라고 부탁한게 밝혀졌고 아마도 공에 바람이 낮게 주입된 것은 의도적이었을 것이란 분석 결과가 나오면서 패트리어츠는 매우 많이 까였다. 파가노 감독은 사실 원했다면 정말 끝까지 질질 물어잡고 있을 수 있었지만 "공이 아니라 비누로 경기했어도 패트리어츠가 우리를 가지고 놀았을 것이다."라고 평가하면서 준비를 제대로 못한 자신과 팀의 잘못이라고 밝히면서 대인배가 되었다.

2.5.3. 2015년 시즌


'''막장 드라마'''
파가노는 암투병 중에도 팀을 이끌며 앤드류 럭과 함께 성과를 냈지만, GM 라이언 그릭슨의 생각은 달랐다. 파가노는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서 수비진을 보강해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그릭슨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와이드리시버에 드래프트 픽을 던지거나 휴스턴 텍산스의 안드레 존슨을 영입하는 등 공격진 보강에 열을 올렸으며, 팀의 왕고참 레지 웨인을 방출시키고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서 베테랑 RB 프랭크 고어를 사들였다. 계약기간 마지막 1년 남은 파가노는 자신의 요구가 정반대로 돌아오자 팀에 연장계약 거부를 선언하고 반쯤 태업을 하고 있고, 팀의 갈팡질팡하는 행보에 흔들린 앤드류 럭이 뒤늦게 소포모어 징크스가 찾아오듯 커리어 최악의 부진을 겪어 뛰지 못하는 날이 점차 늘었으나, 다행히 백업 쿼터백인 노장 맷 해슬벡이 팀을 잘 이끌었다. [14]
그럼에도 지구가 워낙 널널한 AFC 남부지구라 14주차 현재 6승 7패를 거두고 있음에도 지구 1위를 지키고 있는 중. 단지 2위 텍산스가 6승 7패로 동률로 따라붙은 것이 불안 요인이다. 결국 15주차에 있는 휴스턴 텍산스와의 홈 경기에서 패하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먹구름이 끼었다. 다행히 16주차에서 신시내티 벵갈스가 패하며 간신히 플레이오프 탈락은 면했지만 [15], 여전히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서는 기적이 필요하다. [16]
결국 테네시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AFC 남부지구를 놓고 경쟁하던 휴스턴 텍산스의 승리로 4년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나마 4년 전에는 페이튼 매닝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고 가망이 없는 상황에서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따서 앤드류 럭을 지명하기 위하여 거의 고의로 시즌을 포기한 결과라 실질적으로는 2001년 이후 14년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된 것이나 마찬가지.

2.5.4. 2016년 시즌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 못 간 것, 그건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AFC 남부지구의 절대강자로서의 콜츠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걸 보여준 시즌'''

QB 앤드류 럭, WR T. Y. 힐튼을 제외하면 제대로 수준급 활약을 한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는, 완전히 망한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는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이는 1997-1998시즌 이래 팀이 처음으로 겪는 일[17]. 역시 앤드류 럭은 페이튼 매닝에 비하면 한끝 부족한 건지...
시즌이 끝난 후,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의 책임을 모두 GM 라이언 그릭슨에 돌리고 그를 짤랐다. 다만 감독 척 파가노는 유임하기로 결정했는데, 과거의 성공에 안주한 맥빠진 전술을 선보이는 파가노가 계속 있는데 팀의 성적이 개선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은 미심쩍어하고 있다.

2.5.5. 2017년 시즌


'''추락, 그리고 또 추락'''
'''대단한 쿼터백을 갖고 있으면서도 관리를 못해서 망한 막장 드라마를 보여주다'''
주전 쿼터백 앤드류 럭이 2016시즌에 심각한 어깨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계속 경기를 하는 바람에 성적은 성적대로 안 나왔을 뿐만 아니라 럭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시즌이 시작하기 전부터 사방팔방에서 있는대로 욕을 얻어먹었다. 결국 럭은 끔찍한 상태가 된 어깨를 치료하기 위해 대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 때문에 2017시즌은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시즌아웃이 되고 말았다.
결국 쿼터백 일은 럭의 백업인 스캇 톨진이 맡게 되었는데,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WR 필립 도셋을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로 보내고, 그 대가로 패츠의 3순위 쿼터백인 재커비 브리셋을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감행했다. 그런데 시즌 개막전인 로스앤젤레스 램스전에서 톨진은 pick-6를 연발하는 등 OME급 플레이를 보여, 결국 3쿼터가 끝난 후 브리셋으로 교체되었다. 이후 브리셋은 콜츠의 모든 경기에서 주전 QB로 선발 출전했다. 그러나 2016년에 처음 프로에 입문한 브리셋에게는 패트리어츠도 아닌 콜츠의 공격을 이끄는 건 워낙 버거운 일이었고, 결국 램스전을 시작으로 팀은 패배에 패배를 거듭, 4승 12패라는 참혹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긴 상대팀은 전패 신화를 쓴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지미 가로폴로 영입 전까지 끝없이 추락하던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그리고 J.J. 왓, 휘트니 머실러스, 드션 왓슨 등 주축 선수들이 전부 부상으로 시즌아웃된 뒤 끝없이 추락을 거듭한 휴스턴 텍산스를 상대한 두 경기 뿐이다.
앤드류 럭이라는 엘리트 쿼터백을 가진 행운이 있으면서도 전 시즌에 부상당한 중에 출전을 강행시킨 후유증이 드디어 폭발한 시즌이었다. 그 치료를 위해 한 시즌을 통째로 쉬었지만 다음 시즌에 럭이 예전의 기량대로 경기를 할 수 있을는지 보장도 없고... 부상자들만 없으면 강팀의 모습이 엿보이는 텍산스, 이번 시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재규어스타이탄스 등 지구 라이벌들과 비교되어 너무나 초라하게 보인다. 벌써 일각에서는 콜츠라는 막장 팀에게 럭은 너무 과분한 쿼터백이니, 럭을 당장 다른 팀으로 보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GM 라이언 그릭슨을 해고했던 것처럼, 이번 시즌이 끝난 뒤에는 감독 척 파가노를 짤랐다. 그런다고 분위기가 쇄신될지는 알 수 없지만...[18]
그리고 결국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공격 코디네이터인 조쉬 맥대니엘을 감독으로 선임'''했으나'''... 신임 감독 기자회견을 하루 앞두고 맥대니얼이 '''콜츠 감독직을 거부'''하고 패트리어츠 공격 코디네이터로 남기로 결정했다. 콜츠가 패트리어츠와 맥대니얼에게 제대로 통수를 맞은 셈.
그러나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오펜시브 코디네이터였던 프랭크 라이크를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일단 막장 드라마를 일단락시켰다.

2.5.6. 2018년 시즌


'''앤드류 럭의 귀환.'''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공격 라인맨 최대어로 꼽히는 노트르담 대학교의 쿠엔틴 넬슨을 지명했다. 특히 단장인 크리스 발라드가 직접 넬슨에게 전화를 걸어 "부모님께 이주할 필요 없으시다 전해주게"라는 말과 함께[19] 수화기 건너편에서 넬슨이 "콜츠다! 콜츠에 걸렸어요!!"라고 외침과 동시에 가족들의 환호성이(BGM으로) 터져 나오는 장면은 덤[20].
정작 콜츠의 드래프트는 혹평을 받았는데, 팀의 가장 큰 약점인 패스러셔 보강에 실패했기 때문, 전체 3픽을 제츠와 딜해서 쏠쏠하게 얻어온건 좋은데 안일하게 기다리다가 앞순위의 덴버 브롱코스에게 이번 드래프트 최고의 수비수중 1명인 패스러셔 브래들리 첩을 뺏겼다. NFL의 수비에 있어 가장 중요한 패스러셔 자원 부족으로 올해도 수비는 불안불안한 상태로 출발하고, 결국 돌아온 럭이 열심히 던지면서 공격으로 만회하는 지난 몇년간의 모습이 반복될 까 팬들은 걱정하는 중.
시즌의 첫 여섯 경기에서 1승 5패를 기록하며, 역시 앤드류 럭의 엘리트 시절은 끝났다는 혹평을 들어야만 했다. 패배 중 4번이 34점 이상 실점한 경기들인 등 수비 역시 매우 나쁜 경기력을 보였다.
하지만 이대로 시즌이 조기에 종료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이후 콜츠는 연승을 달리기 시작하면서 11월 중순 현재 5승 5패로 승점 .500을 찍으면서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다. 럭이 초창기 시절 모습 그대로 공격진을 이끌어감과 동시에 팀의 수비력도 시즌이 진행되며 차츰 나아지면서[21] 다시 부활을 노리고 있는 상황.
12주차까지 5연승을 달리며 신바람, 덕분에 지구 라이벌들에게 2연패를 하며 주춤거리는 테네시 타이탄스를 추월하고 지구 2등에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세를 몰아 지구 우승을 노리기에는 역대 최고의 시즌 중 하나를 구가하고 있는 휴스턴 텍산스를 따라잡기가 버겁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시즌 반짝했다가 다시 지구 밑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는 약팀인 지구 라이벌 잭슨빌 재규어스를 상대로 한 13주차 경기에서 지독하게 눈이 썩는 경기 끝에 '''0-6'''이라는 저질 스코어로 영패하고 말았다. 이로써 럭의 귀환으로 팀이 완전 막장에서 헤어나오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슈퍼볼 우승은 커녕 플레이오프 진출조차 함부로 자신있게 단정하기는 힘든 상황임을 입증했다. 앞으로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일단 콜츠로서는 당장은 지구 2위 자리를 놓고 테네시를 따돌려야 와일드카드든 뭐든 노릴 수 있을 게재다. 그도 그럴 것이, AFC 서부 지구의 로스앤젤레스 차저스가 9승 3패씩이나 되면서도 지구 2위일 뿐이라 노릴 수 있는 건 6번 시드 뿐인데, 여기도 테네시 뿐만 아니라 피츠버그 스틸러스, 볼티모어 레이븐스, 마이애미 돌핀스, 덴버 브롱코스 등 경쟁이 매우 치열한 양상으로 전개될 태세다. 14주차의 휴스턴 원정은 와일드카드 진출 희망의 불씨를 살리느냐, 꺼뜨리느냐를 결정할 엄청나게 중요한 경기가 되었다.
그리고 휴스턴과의 접전 끝에 24-21로 승리를 따내고, 15주차의 댈러스를 상대로 한 홈경기에서 13주차의 그 팀이 맞나 싶을 정도의 탄탄한 경기를 선보이며 '''23-0'''이라는 놀라운 스코어로 카우보이스를 분쇄해버렸다.
16주차의 뉴욕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서 28-27로 이기면서 9승 6패를 기록하면서, 타이탄스와 와일드카드 자리를 걸고 운명의 마지막 경기만 남은 상황. 그리고, 이 단두대 매치선데이 나잇 풋볼로 편성되었다.
그리고 결국 테네시 타이탄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앤드류 럭의 활약과 후반 타이탄스가 5연속 반칙으로 자멸하면서 결국 33-17로 승리해 플레이오프 막차를 타게되었다.

2.5.6.1. 플레이오프

2019년 와일드카드 경기에서 지구 라이벌 휴스턴 텍산스와의 경기에서 21-7로 깔끔한 승리를 거두면서, 디비전 라운드에서 이번 시즌 AFC의 강팀 캔자스시티 치프스와의 원정경기에 나서게 된다.
비록 디비전 라운드에서 치프스에게 31-13으로 패했지만, 앤드류 럭이 2018 Comeback Player of the Year를 수상하고 팀의 진영을 갖추며 다음시즌의 우승후보로 거론되는 기초를 드디어 갖추기 시작했다.

2.6. 포스트 럭 시대



2.6.1. 2019년 시즌



2.6.1.1. 프리시즌

1라운드 지명권이 없었기에 2019 드래프트에서 무난하게 선수들을 지명하고 팀을 보강해나갔다.
하지만 주전 쿼터백 앤드류 럭이 트레이닝 캠프 때부터 부상으로 연습을 하지 못하고 프리시즌 경기에도 나타나지 않아 팬들의 걱정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런데...'''
8월 24일, '''앤드류 럭이 구단주인 짐 어세이를 만나서 잇따른 부상때문에 멘탈이 완전히 나갔다며, 리그를 떠나겠다고 은퇴를 선언했다.''' 현재 럭은 아직 30세를 앞두고 있고 커리어의 최정점에 다가가는 상황이었다. 콜츠는 팀의 수십년을 이끌어갈 쿼터백이 '''개막 불과 2주전'''에 순식간이 은퇴하게 되면서 그야말로 초비상. 게다가 이번 시즌을 넘어 팀의 미래까지 불투명해지는 은퇴 선언이기에 NFL 전체에 엄청난 파장을 낳고있다.
이에 따라 이번 시즌에는 새로운 주전 쿼터백을 얻기위한 탱킹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아마 목표는 2020 드래프트에 나올 앨라배마 크림슨 타이드의 투아 타고바일로아나 2021년의 클렘슨 대학교의 트레버 로렌스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2.6.1.2. 시즌

일단 7주차인 현재 4승 2패를 기록하며 선전하고 있다.
2017년 팀의 주전으로 뛴 경험이 있던 자코비 브리셋이 생각보다 잘해주고 있고, 페이튼 매닝 시절부터 따라다니던 고질병(...)이었던 러싱어택과 수비가 선전을 하며 의외의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22] 특히 5주차에서 AFC의 최강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캔자스시티 치프스와의 원정경기에서 19-13으로 승리를 거두며 치프스에게 시즌 첫 패배를 안겼다.
6주차에 AFC 남부지구에서 휴스턴 텍산스(4승 2패) 다음으로 2위인데, 앞으로의 경기 결과에 따라 플레이오프 진출도 아주 불가능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7주에 휴스턴과의 결전에서 30-23의 승리를 거둔다.
12주차 휴스턴과의 원정에서는 17:20으로 패배하며 남부지구 2위로 밀려나게 되었고, 이후에 4연패를 찍으며 플레이오프 진출이 매우 힘들어졌다. 2019시즌 7승 9패로 끝내면서 럭의 부재를 어느정도 극복하기는 했지만, 당연히 브리셋이 럭의 빈자리를 완벽히 채울순 없었고 이로 인한 수비진의 과부하가 걸리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진 못했다. 그래도 예상외로 선전한 시즌이라고 봐도 좋을듯.
리그 최고의 키커로 손꼽히는 애덤 비나티에리가 갑작스런 경기력 저하로 사실상 은퇴 직전이라는 것을 제외하면,[23] 브리셋의 예상외의 선전과 준수한 수비력으로 이후의 팀 리빌딩에 있어서도 전망이 밝다.

2.6.2. 2020 시즌


한국 시간으로 3월 18일, 로스앤젤레스 차저스쿼터백이었던 필립 리버스를 1년 25M의 FA 계약으로 데려왔다. 지금까지 콜츠를 이끌었던 쿼터백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인물인지라[24] 팀컬러가 변화되는게 아니냐는 기대와 우려(?)가 팬들 사이에서 나오는 중.
같은 날 샌프란시스코 49ers로부터 2020년 드래프트 13번픽을 넘겨주고 디펜시브 태클 드포레스트 버크너를 트레이드 영입했다. #
2020년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USC 와이드 리시버 마이클 피트맨[25] , 위스콘신 대학교 러닝백 조나단 테일러를 뽑으며 리버스를 위한 공격진을 보강했고, 후에 세이프티 줄리안 블랙먼과 쿼터백 제이콥 이슨을 드래프트해 수비와 쿼터백 자리의 구멍을 메웠다.
안경 + 콧수염 이라는 너드같은 독특한 외모를 가진 키커 로드리고 블랑켄십의 활약이 화제가 되고 있다. 또한 39살이 된 노장 리버스의 공격진과 견고한 수비가 팀을 이끌면서, 12월 현재 9승 4패로 순항 중. 이어 1승을 하여 10승 4패가 되었다. 천적이었던 스틸러스전에는 심판 콜 논란으로 역전패해 10승 5패가 되었다. 원래 이 성적이면 포스트 시즌 진출이 확정적이어야 하는데...
같은 리그에 Tank for Trevor를 시전한 제츠, 재규어스와 그냥 못해서(...) 꼴아박은 텍산스 때문에 '''11승 5패를 하고도 포스트시즌 탈락을 걱정해야 될 처지에 놓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지막 상대가 리그 최하위인 재규어스라는 점. 왜냐하면 콜츠가 경쟁팀들 중 타이브레이커에서 가장 밀리기 때문이다. [26]
하지만 먼저 벌어진 나머지 세 경쟁팀 간 경기에서 돌핀스가 패하여, 마지막 재규어스전을 이겨서 7번시드를 획득했다. 휴스턴 텍산스가 아쉽게 타이탄스한테 패해 지구우승에는 실패했다.
그렇게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루게 됐는데, 경기는 3점 차로 패하여 탈락했다. 하지만 빌스를 상대로 의외로 선방했는데, 필립 리버스는 경기 후 화상 기자회견에서 "내년 시즌에도 현역으로 뛰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콜츠가 리버스를 위해 움직여줄 지는 미지수.

2.6.3. 2021 시즌


현지시간 1월 20일, 한 시즌을 콜츠와 함께했던 필립 리버스가 17년간의 선수생활을 마친다는 발표를 했다. 당장 콜츠는 21시즌 주전 쿼터백을 결정해야 하는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27] 자코비 브리셋으로 밀고 나가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 일단은 외부 영입을 통한 시즌 준비를 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
또한 리버스를 지휘하며 콜츠의 오펜스를 설계한 OC 닉 시리아니가 필라델피아 이글스 헤드코치로 떠났다. 유능한 DC 맷 에버플루스도 계속 헤드코치 오퍼를 받고 있어서 코치 대체자 구하는 일도 시급하다.
2월 18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이글스에 2021년 드래프트 3라운드 픽과 2022년 드래프트 2라운드 픽을 넘기고 카슨 웬츠를 데려왔다. 2022년 2라운드 픽은 카슨 웬츠의 공격 스냅이 최소한 70% 이상을 기록하고 콜츠가 플레이오프에 가거나, 공격 스냅을 75% 이상 기록하면 1라운드 픽으로 바뀐다.

3. 홈구장



[image]

4. 영구결번




5. 기타


  • 분명 인디애나폴리스 위치는 북부이나 어째서인지 남부 지구다.[28] 게다가 휴스턴 텍산스 창단 전 3개의 지구 시절에도 여긴 중부 지구가 아니라 동부 지구였다. 이는 NFL이 리그 확장을 하면서 그냥 팀 수가 부족한 지구마다 끼워넣기를 해서 그런데 여긴 볼티모어 시절부터 동부 지구였다가 인디애나폴리스로 이전데도 계속 동부 지구였고 그 사이 재규어스, 레이븐스 등 인디애나보다 동쪽에 위치한 팀들이 전부 중부 지구로 가는데도 여기는 여전히 동부 지구.(...) 이후 텍산스가 창단되면서 4개의 지구로 분할되었는데 원래 같은 지구였던 벵갈스, 스틸러스는 그렇다 치는데 슬픔을 제조하는 모 팀야반도주해서 창단한 모 팀을 같은 지구로 편성하다가 북부로 들어가버려 콜츠만 붕 떠버렸다.(...)[29] 게다가 남부에는 NFC팀들이 대다수라 AFC팀 수가 부족한 상황. 그렇다고 AFC 팀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마이애미 돌핀스를 남부로 보내자니 여기도 라이벌리 때문에 동부 지구에서 못 벗어난다. 결국 콜츠는 남아있는 남부 지구로 들어가게 되었다.[30]
  • 여러모로 리그 최초인 것이 많은 팀. 미식축구 최초로 치어리더를 도입하기도 했으며, 1958년 뉴욕 자이언츠와의 리그 챔피언쉽 경기는 NFL 역사상 최초로 TV중계가 되었다 .
  • 아직도 볼티모어 시절의 역사를 놓고 레이븐스와 갈등이 있다. 특히 조니 유나이타스를 놓고 갈등과 대립이 심한데 콜츠 측은 콜츠를 대표하는 레전드이므로 자기들이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레이븐스 측은 볼티모어를 대표하는 레전드이므로 자기들이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유나이타스 본인은 1984년 연고이전 후 프로풋볼 명예의 전당 측에 자신과 관련된 기념물은 '볼티모어 콜츠'로 표기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고 현역 시절부터 간직해 온 트로피 등 기념품 전반을 옛 친정팀이 아닌 볼티모어 베이브 루스 박물관에 기증했으며, 2005년 '캠든 야드 스포츠 레전드 박물관' 개장 후 그리로 옮겼다. 원래대로라면 당연히 구단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고 볼티모어 시절의 역사를 계승하는 콜츠에게 유나이타스를 자기 팀의 레전드로 기념해야할 권리가 있지만 위에서 콜츠가 볼티모어에게 저지른 짓 때문에 볼티모어 팬덤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정작 인디애나폴리스의 팬들은 볼티모어 시절의 스타라서 그다지 감흥이 없는 것도 콜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도 뭐가 되었건 조니 유나이타스는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레전드이다. 콜츠를 편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레이븐스 때문에 팀이 해체된 바 있는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팬들이다(...)
  • 1983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위 지명권을 얻었지만[31] 그 지명권을 "서부지역 팀이 아닌 다른 팀을 가느니 차라리 뉴욕 양키스에 가서 야구를 하겠다"[32]고 엄포를 놓은 존 엘웨이를 강행지명하는 데에 썼다. 존 엘웨이는 끝끝내 콜츠 입단을 거부했고, 할 수 없이 콜츠는 덴버 브롱코스와 3대1 트레이드로 애써 행사한 드래프트 전체 1번 픽을 놓아줄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존 엘웨이의 활약에 대해서는 본인의 항목을 참조. 어쨌거나 이 일로 존 엘웨이는 한동안 풋볼 팬들에게 까임의 대상이 되었으나 그 까임을 본인의 실력으로 극복해서 마침내 레전드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존 엘웨이와 트레이드 된 3명의 선수는 쿼터백 마크 허만과 공격라인맨 크리스 힌튼, 다음해 1라운드 지명권이었는데, 마크 허만은 볼티모어에서 주전 획득에 실패하고나서 2년 뒤에 트레이드 되었다. 크리스 힌튼은 프로볼에 7번 출전할 정도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으며, 1라운드로 지명한 공격 라인맨 론 솔트는 프로볼 1번 선발된 가드였다. 완전히 손해를 본 트레이드는 아니었지만 전체 1번 픽을 날리고 그 쿼터백으로 덴버의 거의 15년 이상을 책임졌다는 걸 감안하면 왜 쿼터백이 미식축구를 대표하는 포지션인지 상징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는 이미 팀 레전드로 취급받는 페이튼 매닝의 동생 일라이 매닝이 있다. 거기에 대해서는 일라이 매닝 항목을 참조. 그리고 15년 뒤, 콜츠는 똑같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 1998년에 전체 1위로 페이튼 매닝을 지명할 때도, 혹시나 페이튼이 콜츠를 맘에 안 들어해서 존 엘웨이와 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33] 염려하여 차라리 라이언 리프[34]를 선택할까 고민도 할 정도였다. [35] 하지만 성실한 페이튼은 순순히 자신의 진로를 받아들였고, 콜츠를 강팀으로 이끌었고 슈퍼볼 우승까지 안겨주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밀려 콜츠를 나올 수 밖에 없었던 페이튼의 진로는 또다시 덴버 브롱코스였고, 페이튼이 덴버로의 이적을 결정하게 한 건, 콜츠를 버린 덴버 브롱코스 단장 존 엘웨이였다. 뭔가 기묘한 인연으로 얽히고 섥힌 관계.
  • 2012년 11월에 당시 감독이었던 척 파가노가 암에 걸려서 투병 중일 때, 치어리더인 크리스탈 앤과 매간 M이 버팔로 빌스와의 경기에서 하프타임 때 마스코트인 블루의 도움을 받고 삭발(!)받았다. 인디애나 치어리더 팀은 지난 12일 구단 홈페이지에 "26일까지 백혈병 치료와 연구기금 1만 달러가 모이면 버팔로전에서 치어리더 메간이 삭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이미 선수들은 삭발한 채로 경기를 뛰고 있는 상태. 약속을 정한 날까지 목표 기금의 2배가 넘는 2만 2천달러가 모이자 메간과 크리스탈은 약속대로 머리를 밀었는데 이들은 삭발을 하면서도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 노력 덕분인지 파가노는 완쾌 가능성이 높다는 희망적인 진단이 나왔다.

[1] 밑의 내용들을 보면 알겠지만, '''조금 불편하게''' 연고이전이 이루어졌다.[2] 54년부터 MLB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공용[3]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오펜시브 코디네이터였던 조쉬 맥대니얼스가 내정되었었으나 잔류로 마음을 바꿔서 이글스의 코치진이었던 프랭크 라이크로 대체. 참고로 이 사람은 버팔로 빌스의 4번째 준우승 당시 슈퍼볼에서 선발출장했다.[4] 슈퍼볼 III에서 뉴욕 제츠에 패배[5] 공교롭게도 뉴욕 제츠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고 2년뒤에 차지한 우승이였다. 당시의 멤버들은 이 슈퍼볼 우승에도 제츠에게 당한 치욕적인 패배의 기억은 씻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상대는 댈러스 카우보이스.[6]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전신이었던 그 팀과 무관하다.[7] 1969~1974년까지 워싱턴 레드스킨스 대주주도 지냈다.[8] 은퇴 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와 미시간 대학교 감독을 역임했다.[9] 램스로 간 마셜 포크는 쿼터백 커트 워너, 와이드 리시버 토리 홀트, 아이작 브루스, 공격태클 올랜도 페이스 등 역대 최고의 공격진의 축이 되어 맹활약하고 1999 시즌에는 제34회 슈퍼볼에서 테네시 타이탄스를 '''The Longest Yard''' 끝에 꺾고 우승한다.[10] 공교롭게도 던지가 떠난 해에 탬파베이 버캐니어스는 존 그루덴을 감독으로 영입한 뒤, 전 소속팀이던 오클랜드 레이더스를 37회 슈퍼볼에서 대파하고 첫 우승을 거둔다.[11] 특히 구단주 짐 어세이가 트위터에서 무리수를 많이 넣어서 욕을 엄청 먹었다.[12] 뉴욕 제츠의 쿼터백 마크 산체스와 같은 수치이고 공동 1위인 드류 브리스 - 토니 로모와 한개차이다. 근데 마크 산체스 말고 나머지 셋은 패싱 야드 순위권이고 특히 드류 브리스는 5천야드를 넘기면서 전체 1위이니 어쩔 수 없는 면이라고 봐도 뭐...4600야드를 던지면서 11개밖에 안 뺏긴 페이튼 매닝 같은 양반이 괴물인거다. 그리고 신인인 걸 감안하면 앤드류 럭은 인터셉션이 많다고 할 수는 없다. 그 페이튼 매닝조차 신인 때 28개의 인터셉트를 당했다.[13] 24-59(2012년 정규 시즌), 22-43(2013-14 플레이오프 디비저널 라운드), 20-42(2014년 정규 시즌), 7-45(2014-15 플레이오프 챔피언십 라운드).. 직전 2경기까지 합하면 패츠를 상대로 2010년 이후 6연패를 기록하고 있는 중.[14] 2006년 하인스 워드가 MVP를 따낸 제40회 슈퍼볼(Super Bowl XL) 당시 상대팀인 시애틀 시호크스의 주전 쿼터백이었다.[15] Stength-of-victory(쉽게 얘기하면 팀이 얼마나 어려운 상대와 붙었느냐를 따지는 상황. 시즌 동안 상대했던 팀들의 총합승률이 높을수록 같은 성적이라도 어려운 팀들을 상대로 했다는 얘기가 되므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문제 때문에 관련 없어 보이는 경기가 관련이 있게 된 상황[16] 콜츠가 진출하는 경우의 수는 딱 한 가지이다. 17주차에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승+휴스턴 텍산스 패+뉴올리언스 세인츠 패+신시내티 벵갈스 패+뉴욕 제츠 패+애틀랜타 팰컨스 승+마이애미 돌핀스 승+덴버 브롱코스 승+피츠버그 스틸러스 승. 저 중 한 경기만 어긋나도 텍산스가 플레이오프 올라가고, 콜츠가 플레이오프 탈락한다. 이는 정말로 일어나면 기적같은 일로 간단하게 각 결과가 나올 확률을 2분의 1이라고 가정해도 512분의 1이다... [17] 그러니까, 1998년에 드래프트한 페이튼 매닝의 루키 시즌 후 처음으로 겪은 일이다.[18] NFL의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현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수비 코디네이터인 맷 패트리샤가 헤드코치직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콜츠 단장인 크리스 발라드와 패트리샤의 친분관계 때문에 패트리어츠의 시즌 종료 후 영전해 갈 확률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디트로이트 라이온즈가 패트리샤를 감독으로 내정했다.[19] 출신 학교인 노트르담 대학이 인디애나 주에 있으므로.[20] nfl.com의 동영상 섹션에서 볼수있다.[21] 페이튼 시절부터 자동문 수비(...)로 악명높은 콜츠였기에 실제 콜츠 팬들의 수비진에 대한 기대는 본래 그렇게 높지 않다. 공격은 역대급 레전드그 뒤를 이은 신성때문에 눈이 너무 높다는게 문제지만...[22] 이러면 브리셋의 경기력이 저조한 날이라도 저 둘로 존버를 해서 이길수는 있다. 현 감독 프랭크 라이히(Frank Reich)가 콜츠의 지난 20년을 이끌었던 페이튼 매닝-앤드류 럭 시대를 벗어나, 쿼터백 하나로 좌지우지되는 팀의 구조를 공수가 밸런스가 갖춰진 강자로 천천히 바꾸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23] 2019년 현재 '''46세'''라 세월의 무게(...)를 어떻게 할수가 없다. 미식축구에서 40대 중후반까지 현역으로 뛰는 경우는 손에 꼽을만큼 드물다.[24] 무던하고 경기 중에 별 다른 소동을 일으킨 적이 없는 매닝, 럭과 다르게 리버스는 NFL 최고의 다혈질 중 하나로 항상 꼽힌다.[25] 연인과 함께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도 있으며 구독자도 30만으로 NFL팬들에게 잘 알려져있다.[26] 자세한 내용은 2020-21 NFL 플레이오프 문서 참조[27] 그래도 리버스는 나이가 40을 찍는 노장이라 어느 정도 예상을 했다는 반응도 많다. [28] 오대호를 끼고 있는 시카고까지 차로 3시간이면 간다.[29] 참고로 신시내티인디애나폴리스보다 남쪽에 위치한 도시다.[30] 사실 모든 미국 스포츠들이 다 그렇지만 동부 편중이 심해 이렇게 위치와 소속 지구가 다른 경우가 몇몇 있다. 캔자스시티 치프스는 분명 미국 정중앙인데 AFC 서부 팀이 너무 없어 서부 지구로 들어간다던지, 댈러스 카우보이스는 분명 미국 남부인데 라이벌리 때문에 NFC 동부 지구로 들어간다던지. 같은 지구 테네시 타이탄스도 동부 정중앙에 위치했지만 역시 콜츠와 똑같은 이유로 남부 지구다.[31] 즉 전년도 시즌에 리그 전체에서 최하위를 차지했다[32] 존 엘웨이는 야구선수로서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우익수 겸 투수로 활동했다. 고등학교때도 야구실력을 인정받아서 1979년 드래프트 18라운드에 캔자스시티 로열즈에 지명받았고, 대학 진학후인 1981년 드래프트에서는 뉴욕 양키스에 2라운드 지명되었다.[33] 일라이 매닝 항목에 있지만, 이들 형제의 배후에는 과거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명쿼터백이었던 아버지 아치 매닝이 있었고 아치 매닝은 자신의 아들들이 진로를 정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둘째아들인 페이튼에게는 그다지 관심도가 덜 했는지 대학부터 프로까지 진로선택에 큰 간섭을 하지 않은 반면 막내인 일라이의 진로에 대해서는 상당수준으로 간섭을 했다.[34] 미식축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미국 스포츠에서 손꼽히는 먹튀 오브 먹튀다. 깽판까지 치고 나갔다는 점에서 질이 가장 나쁜 먹튀로 미국에선 먹튀/스포츠에 나와있는 송은범, 에스마일린 카리대 뭐 이정도 취급받는다. 게다가 리프는 잘리고 나서 범죄자까지 된 점을 생각하면 그 선수들보다도 더 질이 나쁜 먹튀이다.[35] 그러나 뚜껑열어 보니 정작 콜츠에서 뛰기 싫다고 깽판놓은 것은 라이언 리프였다. 하지만 리프는 자신이 주전으로 뛴 차저스를 파멸 직전까지 끌고가버렸고, 차저스는 2001년 드래프트에서 라데니안 톰린슨과 드류 브리스를 드래프트해 겨우 팀을 재건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