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푸왕
'''Khufu'''
1. 개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기자의 대피라미드의 건설자.
대피라미드라는 거대한 유물을 남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쿠푸 자신의 유물은 7.6cm의 작은 상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심지어 이 작은 석상도 프랑스 고고학 팀이 고대 유적의 모래를 거르다가 발견한 것인데, 그 일화가 정말 재미있다. 발굴진이 처음 발견하였을 때는 머리가 없이 몸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고고학자들은 조그마한 석상이라 생각하고 무시하려고 했으나 석상 밑동에 떡하니 새겨진 '''쿠푸'''라는 글자를 엉겁결에 알아보고[1] 기절초풍해서 머리를 찾으라 지시하였고 주변의 모래를 약 3주 동안 거른 끝에 머리를 찾아 복원되었다. 그리고 완성된(...) 그 석상은 카이로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2]
쿠푸왕의 시대는 제2대 이집트의 평화의 시대라고 불렸다. 후대에 람세스 2세가 전쟁 전에 기자의 대피라미드 앞에 가서 "그대의 평화 시대는 끝났소."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반면 헤로도토스는 허영심 많고 잔학무도한 폭군으로 묘사했다. 그가 묘사한 쿠푸왕은 엄청난 자기도취에 빠진 인물로 자기 자신과 그 기록물에 대하여 국가경제적 안녕에는 전혀 관심없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헤로도토스는 쿠푸왕이 자신의 피라미드를 세우기 위해 노예 20만 명을 동원해 채찍 아래 노예 노동을 강제하고, 딸에게 매춘을 시켰다고 기록했다. 다만 헤로도토스 또한 쿠푸왕 시대로부터 2000년 이후의 인물이라서[3] 옛날 이야기만 듣고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참작해야겠지만 그 주장을 완벽하게 논파하는 각종 증거들이 쏟아진 현대에는 노예 노동을 시켰다는 잔학무도한 왕의 묘사가 빼도박도 못할 역사 왜곡이 되었다.
2013년 3월, 이집트 기자에서 200km 떨어진 홍해 연안의 와디 알 자르프의 항구유적에서 발견된 파피루스는 쿠푸왕의 피라미드 건설에서 돌을 움직이는 노동작업을 지휘하던 메러라는 남자의 일지였는데 쿠푸왕이 철권통치를 했음을 의미하는 부분이 곳곳에 남아있다.[4]
이름의 뜻은 "크눔으로부터 보호받다"이며, 그리스어로는 Χέωψ, 케오프스라고도 한다. 마네토의 연대기에는 수피스 1세로 되어있다.
2. 가족 관계
- 부모
스네프루,[5] 헤테프-헤레스 1세
- 아내
- 형제
형이 한 명 존재했지만 병으로 일찍 죽었다. 그리하여 둘째인 쿠푸가 왕이 되었다.
- 자녀
이들의 이름은 각종 동상이나 무덤 등에 기록된 경우도 있으나, 많은 수는 1823년에 영국인 헨리 웨스트카가 발견한 웨스트카 문서에 적혀있다. 아들로 카와브[7] , 제데프레, 카프레[8] , 제데프호르[9] , 바우프라[10] , 바베프, 쿠푸카프[11] , 민카프[12] , 호르베프가 있었다. 장남 카와브는 요절해 차남 제데프레가 쿠푸 다음 왕위를 계승했다. 이때 제데프레가 카와브를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오해도 있었는데, 이에 관해선 제데프레 문서 참조. 딸로는 네페르티아벳[13] , 헤테프-헤레스[14] , 메레샹크, 메레티테스[15] , 카메레네브티[16] 가 있었다. 이집트 왕실의 근친혼 전통에 따라 카와브는 헤테프-헤레스와 결혼했다. 이후 카와브가 죽자 제데프레가 헤테프-헤레스와 재혼했다. 호르베프는 메레샹크와 결혼했는데. 호르베프가 죽자 제데프레 또는 카프레가 메레샹크와 재혼했다. 카프레는 카메레네브티와도 결혼했다. 카프레의 제1왕비는 메레샹크로 보이나, 왕위는 카메레네브티의 아들 멘카우레가 잇게 된다.
[1] 보자마자 '''그''' 쿠푸 왕이라는 것은 고고학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알았을 테니까.[2] 설명 또한 카이로 박물관에서 발췌함.[3] 이게 정확히 어느 정도의 간격인지 체감이 나지 않는다면 '''예수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4] 주의할 점은 철권통치가 곧 폭군의 상징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앙집권제에서는 왕권을 확실히 잡아놔야 반역의 위험을 낮추고 국왕 중심의 국정 운영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성군이라 칭송받는 국왕들도 스스로 또는 그 전후시대에 왕권을 다져놨다. 당장 쿠푸왕 재위 시절이 평화의 시대라는 평을 받는데, 정말로 국가의 안녕에 관심이 없다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5] 재위 기간 동안 피라미드를 5채나 지었다.[6] 이시스 신전의 신상 목록을 기록한 인벤토리 스텔라라는 비석의 주인으로 알려졌지만, 해당 비석의 내용을 판독한 결과 후대의 이집트 사제들이 조작한 비석이라는 것이 판명났다. 이복남매라는 것이 분명한 첫째 아내 메레티테스와는 달리, 이복남매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지만 이복남매라고 기록한 유일한 기록이 조작된 인벤토리 스텔라라, 아니라는 쪽에 기울고 있다.[7] 왕의 장남으로, 메레티테스 소생이다. 요절했다. 사인은 오랫동안 제데프레에의 살해라 믿어졌으나, 최근의 연구결과는 병사 쪽으로 기울고 있다.[8] 제데프레 이후에 왕위에 오르는 인물. 어머니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헤누트센이라는 쪽이 좀 더 신빙성 있다. 또 아예 카프레는 쿠푸의 아들이 아니라 제데프레의 아들이란 주장도 있다. 이럴 경우 카프레는 쿠푸의 손자가 된다.[9] 어머니는 알려져있지 않으나 제데프레와 카프레의 이복동생이라고 한다. 실존인물이라는 고고학적 증거는 없고 여러 문서와 와디 하마트의 암각 낙서에 이름이 나타난다. 자신의 아들 아우이브라에게 한 조언을 기록했다는 제데프호르의 강의 문서로 유명하나, 실제로 제데프호르가 적은 글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지혜가 후대에도 유명해 5왕조에 제데프호르의 이름을 빌려 적은 문서로 추정된다고.[10] 형 제데프호르와 마찬가지로 문서나 암각 낙서에서만 발견된다. 광산 노동자들에게 추앙받았으며, 쿠푸 시대를 다룬 문학 작품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빈도가 잦다.[11] 카프레와 민카프의 친형제로 헤누트센 소생으로 추정된다. 쿠푸 치세 후기부터 카프레 치세까지 비지르로 일했다.[12] 카프레의 친형으로, 카프레에게 계승 순위가 밀렸던 것으로 추측된다. 쿠푸 치세에 비지르로 일했다.[13] 어머니는 알려져있지 않다. 그녀의 모습을 담은 슬랩 비석이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14] 왕세자 카와브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메레샹크를 동생 카프레에게 시집보내 카프레의 시대에도 왕의 시어머니로 군림했다. 무척 장수해 카프레의 손자 솁세스카프의 치세까지 생존했다.[15] 비왕족 고위 귀족이었던 아케트호텝과 결혼했다. 남편과 합장된 것을 보아 금슬이 좋았던 모양.[16] 그녀의 아들이 멘카우레 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