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누트 크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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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2]
1.1. 선수 생활
1.1.1. 클럽
크룬은 19세가 되던 1925년에 스타테나 IF(Stattena)를 떠나 헬싱보리 IF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는 이적 첫 시즌 만에 IFK 말뫼를 상대로 6골을 넣기도 했고[3] 크룬은 또한 1928-29 시즌에 알스벤스칸 역사상 가장 빠른 해트 트릭을 기록했는데 IFK 에스킬스투나(Eskilstuna)를 상대로 2분 57초만에 3골을 넣었고 크룬의 활약에 힘입어 헬싱보리는 13대1로 에스킬스투나를 난도질했다.
헬싱보리는 크룬과 함께 알스벤스칸 5회 우승을 차지하는 전성기를 누렸고 1941년에는 스웨덴 축구 역사상 최초의 더블#s-7을 기록했다.
크룬은 헬싱보리에서 141골을 넣어 현재도 헬싱보리 프랜차이즈 사상 최다 득점자로 남아있다.
1.1.2. 국가대표
1925년 11월 1일에 열린 폴란드와의 시합이 크룬의 A매치 데뷔전이었고 스웨덴은 6대2로 크게 승리했다.
이탈리아 월드컵에 스웨덴 대표로 출전한 크룬은 1라운드 아르헨티나전에서 후반 34분, 결승골을 넣어 스웨덴의 3대2 승리를 이끌었다.
크룬은 1936년 올림픽에도 참가했지만 경기를 뛰진 않았고 스웨덴은 일본에 2대3으로 패하는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크룬은 빠르진 않았지만 기술적이고 센스 있는 선수였다.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크룬은 아르헨티나 선수들과 기술적으로 대등하며 골 스코어러로도 밀리미터 정확도의 패스도 뿌릴 줄 아는 선수라 평했다.
하리 룬달(Harry Lundahl)과 푸테 코크(Putte Kock)는 크룬을 스웨덴 역대 최고의 레프트 윙어로, 에리크 뵈르예손(Erik Börjesson)은 그를 역대 최고의 윙어로 평가하기도 했다. 헬싱보리 구단 역시 그를 팀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 윙어로 대접하고 있다.
3. 수상
3.1. 클럽
- 알스벤스칸 우승 5회: 1928–29, 1929–30, 1932–33, 1933–34, 1940–41(헬싱보리 IF)
- 스벤스카 쿠펜 우승 1회: 1941(헬싱보리 IF)
- 알스벤스칸 준우승 1회: 1927–28(헬싱보리 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