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파이스티온

 

Ἡφαιστίων
(B.C. 356 ~ B.C. 324?)
1. 개요
2. 대중문화 속의 헤파이스티온


1. 개요


‘‘헤파이스티온의 허벅지가 알렉산더를 지배했다.’’ (Alexander was ruled by Hephaestion's thighs.)

- 시노페의 디오게네스

마케도니아 왕국의 인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성연인으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미에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부터 함께 했던 친구였는데, 알렉산드로스가 왕자 시절에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와 불화하여 마케도니아를 떠나 있을 때에도 덩달아 추방되었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다. 알렉산드로스와 관계에 대해 아킬레우스파트로클로스에 관계로 묘사한 자료도 있다. 알렉산드로스의 장군 중에는 페르디카스와 친했다고 한다. 동방원정 중에는 엘리트 친위기병대(헤타이로이)의 최선임 장군 자리와 알렉산드로스의 친위대(알렉산드로스의 최측근 장군 7명)의 수장을 맡았다.
사실 능력에 있어서는 특출나게 뛰어난 인물이라고는 보기 힘들었으나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오랜 친구였을 뿐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충성스러운 신하였기에 많은 총애를 받았다. 한마디로 딱히 유능해서 출세했다기 보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있어 수족과 같은 측근이자 충실한 이해자와 같은 사람이었기에 출세했던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헤파이스티온을 대신해 기병대의 대표자로서 전설적인 전공을 세운 사람은 페르디카스였다.
기원전 333년에 이소스 전투에서 승리해 여러 도시들이 항복하면서 알렉산드로스가 시돈의 왕을 선택하라고 하자 아브달로니모스를 선택해 그를 시돈의 왕으로 임명하게 했다.
이소스 전투 직후 마케도니아 측에서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 3세의 처자식들을 사로잡자, 알렉산드로스와 헤파이스티온이 이를 직접 영접하였다. 그런데 헤파이스티온이 알렉산드로스보다 키가 크고 외모가 잘생긴데다가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다리우스의 어머니인 시시감비스가 헤파이스티온을 알렉산드로스로 착각하고 그에게 절을 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1]
인도 원정 때에는 크라테로스와 다투다가 알렉산드로스에게 꾸짖음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하며, 기원전 324년에 알렉산드로스가 수사에서 합동 결혼식을 올릴 때 다리우스 3세의 딸인 드리페티스와 결혼하기도 하였다.
헤파이스티온은 그 해에 열병에 걸려서 심하게 앓아 눕고 말았다. 그의 건강을 진찰한 의사는 헤파이스티온에게 완쾌되기 전까지는 술을 마시는 행위를 삼가고 몸을 잘 추스릴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헤파이스티온은 열병 증세가 조금 호전되자 침상으로 포도주를 들여와 과음을 하였는데 그 것이 원인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곧 사망하고 말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헤파이스티온의 죽음을 접하고는 크게 절망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를 진찰한 의사를 가장 잔혹한 십자가형 사형에 처했으며 [2], 또한 헤파이스티온을 기리기 위한 온갖 거대한 기념물과 석조물들을 건설하도록 하였다. 역사학자인 폴 카트리지는 알렉산드로스가 헤파이스티온의 죽음을 이처럼 슬퍼한 것은, 그가 단순히 알렉산드로스의 심복이었을 뿐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신뢰할만한 친구이자 거의 유일한 이해자요, 영혼의 동반자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가 죽은 뒤 알렉산드로스는 헤파이스티온 외에는 누구도 헤타이로이의 최선임 대대장 자리를 가지지 못할 것이라 선포했지만, 군부 서열 1위 자리를 비워 둘 순 없었는지 결국 그의 헤타이로이 최선임 장교 지위와 친위대 대장 자리는 페르디카스에게 넘어갔다. 페르디카스가 지휘하던 대대는 왕궁 서기 에우메네스에게 넘어갔다.[3]
그가 죽은지 불과 이듬해인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죽고 말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헤파이스티온을 잃은 충격으로 건강이 극히 악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다만 현대에는 알렉산드로스의 주요 사인으로 과음으로 인해 얻은 병, 혹은 풍토병이나 말라리아 등이 유력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헤파이스티온의 죽음이 여기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쳤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절친한 친구이자 심복이자 연인이었기에 알렉산드로스가 등장하는 어지간한 대중 매체에는 소설, 영화, 만화, 드라마 등 종류를 막론하고 일종의 필수요소처럼 취급된다.

2. 대중문화 속의 헤파이스티온



2.1. 영화 알렉산더


콜린 파렐이 알렉산더로 나오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2004년 전기영화 알렉산더에서 자레드 레토가 헤파이스티온으로 나온다. 기록대로 어릴 적부터 알렉산더와 동문수학한 둘도 없는 친구이며 알렉산더를 동성애자로 해석한 영화답게 알렉산더와 그렇고 그런 사이로 묘사된다. 의외로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알렉산더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인물로 알렉산더도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정도의 관계이며 그가 역사대로 병으로 사망하자 알렉산더는 실의에 빠져 서서히 병들어가 죽고 만다. 최후의 순간에도 후계자를 선정해달라는 장군들의 압박에도 알렉산더 눈에 들어온 것은 헤파이스티온의 흉상이였으니 말 다했다. 생전 헤파이스티온이 이집트에서 구한 귀한 반지를 알렉산더에게 선물했고, 알렉산더 역시 그 반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으나 그 반지는 최후의 승리자라 부를만한 프톨레마이오스 손에 넘어간다.

2.2. 로드 엘멜로이 2세의 사건부


헤파이스티온(Fate 시리즈) 문서 참조.

2.3. 히스토리에


히스토리에에서는 알렉산드로 대왕의 제2의 인격으로 나온다. 서기관들에겐 헤파이스티온에 대한것은 기록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 헤파이스티온은 뱀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헤파이스티온 때는 화장으로 얼굴의 뱀자국 멍을 지우고다닌다.
알렉산드로스는 헤파이스티온의 인격이 몸을 지배했을 때의 기억이 전혀없지만, 헤파이스티온은 알렉산드로스가 몸을 지배햇을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애마인 부케팔로스는 헤파이스티온을 거부한다.

[1] 시시감비스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용서를 구하자 알렉산드로스는 오히려 시시감비스를 매우 정중하게 대접하였다.[2] 발레리오 마시모 만프레디의 소설 <알렉산드로스>에서는 헤파이스티온의 음주벽을 잘 아는 알렉산드로스가 완쾌될때까지 술을 마시지 못하게 의사에게 곁에 붙어 단단히 지키라고 했는데 방심한 의사가 마차 경기를 보기 위해 멋대로 자리를 비운 사이 헤파이스티온이 음주하고 사망했기 때문에 그 책임을 물어 의사를 죽였다고 묘사했다.[3] 헤파이스티온이 에우메네스에게 배정된 숙소를 양해도 구하지 않고 피리 연주자 에우이오스에게 양보한 일로 에우메네스와 크게 다툰 적 있다. 에우메네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찾아가 차라리 연주자가 되는 게 낫겠다고 불평했는데, 이를 들은 알렉산드로스는 헤파이스티온을 비난했으나 곧 마음을 바꿔 왕의 보호를 바란다며 에우메네스를 책망했다. 즉 왜 헤파이스티온에게 직접 가서 따지지 않고 나한테 와서 하소연하냐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