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모라 리 시몬스

 

[image]
'''이름'''
키모라 리 시몬스 (Kimora Lee Simmons)
'''국적'''
미국
'''출생'''
1975년 5월 4일, 미주리세인트루이스
'''신장'''
183cm

1. 소개


패션모델 겸 사업가.
외모가 선탠 진하게 한 아시안으로도 보이고, 좀 흰 편인 흑인으로도 보이는데, 바로 아시안-흑인 혼혈이라 그런 것. 혈통이 모계쪽으로 교코라는 일본여자의 한국태생 아기가 6.25미국으로 입양되었는데, 그게 키모라의 어머니란다.[1] 나이가 들수록 얼굴은 점점 아시아화.
어릴 적엔 동네, 학교 왕따였다. 만 10세에 이미 178의 키로 또래보다 무려 25센티나 큰데다가, 흑인도 아시안도 아닌 잡종이라고... 보다못한 어머니가 자신감을 키울 겸 모델학교에 등록해서 모델계에 데뷔.[2] 샤넬 모델로 활동하면서 전성기를 누리다 20세에 힙합 대부이자 사업가인 러셀 시몬스와 결혼하고 모델계에서 은퇴한다. 하이 패션 모델은 그만뒀지만 남편의 회사에 디자이너로 자기만의 브랜드 베이비팻을 세운다. 자기가 직접 브랜드 모델이 되어 광고에 나왔다.
[image]
어릴때 모델활동 당시.
이름의 시몬스는 전남편 러셀의 성이지만 이혼후에도 이미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성을 그대로 사용한다. 원래 성은 퍼킨스. 이혼 후 딸 밍과 아오키의 양육권을 가졌다.
미국 도전수퍼모델 1기 패널로 활동.14기에 복귀예정이었으나, 스케쥴문제로 불발. 타이라 뱅크스와는 사적으로도 아주 친하다고.
'''흑간지의 표본''' 자이먼 혼수와 2007년부터 동거, 혼인신고만 안하고 훈수의 고향인 베냉과 미국에서 두번 혼인식을 올렸다. 둘 사이에 아들 겐조를 낳았다. 2012년에 결국 결별을 발표.
[image]
에보니 잡지는 이름 그대로 흑인여성잡지이다.
흑인 여성들을 위한 패션 브랜드 베이비팻[3]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사업수완도 인정받았다. 지금은 베이비팻에서는 손을 뗀 상태이고, JustFab이라는 브랜드에서 일한다고. 베이비팻은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로 넘어갔다.

[1] 실제 해방 당시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일본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한국에 남게 된 일본인들도 꽤 있었다. 해방 후 재빨리 귀국하지 못한 일본인들의 경우 1965년 한일 수교가 되어서야 귀국을 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해방이 되어 완전히 한국인화된 일본인의 경우 일본으로 귀국했다가 적응을 못해 도로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버섯농장으로 유명한 망절일랑씨도 그런 경우. 이러한 미귀국 일본인들이 한국에 억류된 상태에서 일본인끼리 순혈로, 혹은 한국인이나 주한미군과의 혼혈로 아기를 낳은 경우가 실제로 다수 있었고, 키모라의 어머니도 그러한 경우이다. 키모라의 어머니가 순수 일본계인지 아니면 한국인과의 혼혈인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다. 위키백과 영어판에 따르면 키모라의 어머니 조앤 교코 퍼킨스는 6.25 당시 재한 일본인 어머니와 주한미군 복무중이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휴전 후 입양된 것이 아니라 친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자란 혼혈이라고 하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키모라는 일부의 추측과 달리 한국 혈통이 1%도 섞이지 않은 셈이다. 다만 이 기록의 정확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2] 이렇게 남들과 다른 신체조건으로 천덕꾸러기 취급이나 받다가 모델계에서 상황 역전시킨 경우 많다. 특히 유난히 키가 크고 마른 여성 모델들.나디아 아우어만의 어릴 적 별명은 외계인, 캔디스 스와네폴도 크고 마른 몸으로 구박을 받았고, 미소녀의 대명사였던 위노나 라이더도 독특한 외모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3] baby phat, 여기서 팻은 뚱뚱한이 아닌 멋진을 뜻한다. 한국에서는 1호 매장 사장이 서인영... 국내에서 인기있는 스타일이 아니라 런칭된지 1년도 안 돼 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