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춤
1. 개요
조선시대에 성행했던 탈을 쓰고 하는 연극.
만들어질 당시에는 주로 양반들이나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하는 성격이 강했으나 점차 다른 영역으로도 발전해 나갔다.
대부분의 경우 12개의 탈(말뚝이탈, 양반탈 등) 중 필요한 탈을 선택해서 쓰고 연기했으며 과장이 바뀌면서 하나의 탈로 여러 개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으며 극중 상황에 직접 개입하는 악공이나 승려 역과 같은 특정 역은 탈을 쓰지 않기도 한다.
2. 역사
탈춤의 발전 양상은 조동일 교수의 논의를 비롯하여 학계에서도 아래와 같이 크게 세 가지의 흐름으로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흐름은 농촌탈춤으로 농촌 자체에서 오랫동안 이어온 행사이다. 농촌탈춤은 향촌 사회의 동제나 농악대굿 등에서 마을신을 즐겁게 하여 역병을 몰아내고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행해졌다. 대표적인 농촌탈춤은 고려시대부터 행해진 안동 하회 별신굿 탈놀이다. 지배 계층에 대해 노골적이고 통렬한 풍자를 담고 있는 이 탈놀이는 향촌 양반의 묵인과 지원까지 받아가며 행해진 것이 주목할 만한데 백성들이 가진 양반에 대한 반감을 일정부분 해소시켜줌으로써 궁극적으로 향촌 사회의 안정을 꾀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 하회 별신굿 탈놀이는 1930년대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1970년대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두 번째 흐름은 떠돌이탈춤(본산대놀이)로 농촌탈춤에서 파생되었다. 조선 후기 경제의 발전으로 도시가 형성되면서 농촌에서 살 수 없어 떠돌이놀이패로 나선 가난한 유랑민 무리들과 궁중 산대희나 나례희와 같은 국중 대회에서 공연했던 놀이패들이 탈춤을 흥밋거리로 만들어 서울 근교의 여러 도시를 떠돌아다니며 상업적으로 행한 탈춤이다.
세 번째 흐름은 도시탈춤(별산대놀이)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조선 후기 경제의 발전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떠돌이놀이패들이 도시를 전전하며 탈놀이를 행했는데 도시의 유지와 상인들은 이들을 초청하여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떠돌이놀이패들이 약속을 어기는 일이 잦아지자 도시의 유지와 상인들은 자체적으로 놀이패들을 만들고 이들을 경제적으로 후원하게 되었는데 본산대놀이와 다르다고 하여 별산대놀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농촌과 달리 양반에게 직접적으로 예속되지 않아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발달하였기 때문에 양반을 풍자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으며 대사의 분량과 내용이 풍부해졌다. 대표적인 도시탈춤은 봉산탈춤, 양주 별산대놀이, 송파 산대놀이, 동래야류, 통영오광대 등이 있다.
3. 특징
탈춤의 등장인물로는 지역별로 다르지만 대체로 주동인물과 반동인물이 대립하는 이인 대립극이다. 양반으로 대표되는 반동인물은 나사가 하나 빠진듯한(...) 비정상적 인물로 등장하는 반면 주동인물은 평범하지만 활발하고 기력이 왕성하다. 이러한 주동인물들이 자유분방한 말과 몸짓으로 반동인물을 공격하며 이 과정에서 반동인물은 스스로의 무식함을 드러내는데 여기에서 웃음을 유발하고 풍자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탈춤의 대사에는 말과 노래가 섞여있는데 양반 다수가 향유했던 판소리와는 달리 관용적인 한문투가 비교적 적으며 이는 평민 문화의 발랄함을 보여주고 있다. 양반을 풍자하는 과정에서 비속어와 재담, 언어유희, 음담패설 등을 거리낌없이 구사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음담패설이라서 당황할 수도 있는데, 탈춤 공연은 일반적으로 낮의 지신밟기에 가까운 행사와, 저녁의 춤판에 이어져서 '''야밤에 불피워놓고'''했다. 그래서 공연자와 관람자도 이걸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갖춘 성인 남자들이 대부분이고, 이 판에 관심없는 양반들이 혹시라도 올 일도 없었다. 위에 양반들이 '''알면서도 모른척''' 할 수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공연시간이다.
탈춤에 삽입되는 춤과 음악은 흥을 돋우고 인물 간의 갈등을 해소함과 동시에 새로운 갈등 국면으로 접어들게 하는 효과가 있다.
흔한 착각과 달리 탈춤은 그냥 농민 A가 했던 것이 아니라, 저 탈춤만 계속 했던 전문적인 공연자가 있다. 본산대 놀이가 아니라도, 해당 내용의 대사를 외우고, 동작을 외우고, 복장을 준비하는 등의 행위는 모내기 하면서 노동요 부르는 것과는 격이 다른 문제이다. 안동 하회 별신굿이나 봉산탈춤만 해도 성문화되었건 아니건 대본이 존재하고, 그 대본에는 양반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한자표현이 적다 뿐이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1] 막춤이 아니라 꽤 정해져 있는 형태의 춤을 춘다. 결국 이 내용을 모두 외우고 전수하는 다수의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이 주체들은 꽤 많은 경우에는 향리이고, 가끔은 양반들중에서 한량들[2] 이다. 이 사람들은 농민보다는 지배층이지만 그렇다고 진짜 주류 양반은 아니라서, 농민들의 불만도 풀어주고, 자기들 불평불만도 탈춤을 통해서 했다. 양반과장에서 등장하는 말뚝이만 해도, 일반적인 농민으로 보기 보다는 향리나 한량, 몰락 양반, 적어도 유력 부농으로 이해해야 납득 가능한 경우가 많다. 일부 탈춤에서는 말뚝이가 양반 여성들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하거나, 양반재산을 말뚝이가 물려 받거나, 심지어 양반들의 말을 수차례 무시하는 것은 당연하고 말뚝이고 양반들을 채찍으로 위협하기까지 하는데, 아무리 양반들의 권위가 급락했다고 해도 이걸 일반 농민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또한 탈춤은 서양극과 비교해서 그 특징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양극이 특정한 무대 장치를 필요로 하며 관객석과 무대가 엄격히 구분되어 관객의 극중 개입이 불가능한 반면에 탈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관객이 능동적으로 참여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관객이 막 서사의 흐름을 차단할 정도로 개입하는 것은 아니고 관객과 등장인물 간의 다양한 대화와 추임새를 넣어주는 등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서양극은 극중 시공간과 공연 현장의 시공간이 구분되는데 탈춤에서는 그것이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등장인물들도 탈춤 구경하러 여기에 왔다는 상황이 설정되기도 한다.
4. 가면극과의 관계
탈춤은 탈(가면)을 쓰고 공연하기 때문에 가면극의 일종이다. 가면은 익명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특징으로 가면극은 풍자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탈춤도 포함된다.
5. 여담
그룹 활주로의 노래 탈춤이 이것을 소재로 한 작품. 가사는 다음과 같다.
작사 : 김종태 작곡 : 지덕엽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