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필친 케찰코아틀
1. 개요
'''Ce Acatl Topiltzin Quetzalcoatl'''
'''세 아카틀 토필친 케찰코아틀'''
전설 속에 등장하는 톨텍 문명의 위대한 사제 왕. 풀 네임은 세 아카틀 토필친 케찰코아틀이며, 간략하게 줄여서 '''토필친 케찰코아틀'''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아즈텍 제국을 포함한 메소아메리카 문명에서 널리 믿어지는 위대한 신 케찰코아틀로부터 따왔다.[1]
2. 설명
토필친 케찰코아틀은 실존인물로서, 기원후 10세기 경에 멕시코 테포츠틀란(현 이달고 주)에서 태어났다. 토테페우 왕의 아들이었던 토필친은 원래 케찰코아틀 신을 섬기는 제사장이었고, 나중엔 케찰코아틀이라는 이름을 그로부터 물려받았다. 토필친은 톨텍의 군주인 사제왕이 되었고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을 이끌고 톨텍 문명의 수도였던 톨란에 정착해 나라를 오랫동안 현명하게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토필친은 굉장히 자비로운 왕이어서 인간 제물을 바치는 것을 항상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래서 토필친 케찰코아틀은 톨텍 사람들을 인신공양하는 대신 마야의 군주들이 했던 것처럼 자신이 직접 자해를 하거나 동물을 제물로 바쳐서 신들을 달래고자 하였다. 토필친 케찰코아틀이 다스리는 톨텍 왕국은 번영을 구가했으며 갈수록 풍요로워지는 그의 나라에서 굶주리는 백성들은 아무도 없었다. 토필친은 지혜로웠고 온화했으며 유능한 군주였고 야금술과 석공술, 깃털 공예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그런데 토필친 케찰코아틀이 나이가 들자, 교활한 테스카틀리포카라는 이름의 사제가 왕 자리를 뺏고자 흉계를 꾸몄다. 그는 노쇠한 왕을 속여서 술에 잔뜩 취하게 한 다음 여동생과 함께 동침하게 만들었다. 근친상간을 저지른 부끄러움에 토필친은 왕 자리를 내놓고 동쪽으로 망명했다. 군주 자리는 테스카틀리포카가 차지하였고, 그는 톨란을 파괴해 버렸다. 토필친이 톨란을 떠나자 저절로 파괴되었다는 내용도 있고, 테스카틀리포카의 통치 아래에서 톨란이 옛 영광을 잃고 쇠락해갔다는 버전도 있다.
토필친 케찰코아틀은 트라팔란이란 곳에서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이고 신들에게 자신을 최후의 제물로 바쳤다. 다른 전설에 의하면 토필친은 죽는 대신 뗏목을 타고 머나먼 동쪽으로 떠나면서 언젠가 돌아와 자신의 왕국을 되찾을 것이란 말을 남겼다.
3. 마야의 왕 쿠쿨칸
전설에 의하면 토필친 케찰코아틀은 남쪽으로 가서 유카탄 반도 지역을 정복하고 쿠쿨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또다시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치첸 이트사에서 케찰코아틀이 마야의 쿠쿨칸과 동일시되는 것은 토필친 케찰코아틀의 행보와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는 관점도 있다.
물론 이것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전설을 끼워맞춘 것으로 실제 역사인지는 알 수 없고, 치첸 이트사는 전설 속의 이방인 왕 쿠쿨칸이 도래하기 이전부터 톨텍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야 왕 쿠쿨칸이 톨텍 근방에서 왔다는 구전 설화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므로 톨텍계 민족들이 떠돌아다니다 마야에 정착해 여러 기술을 전수해 주었을 가능성은 높다. 깃털달린 뱀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사제 왕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토필친이라는 추측이 많지만, 정말로 쿠쿨칸이 토필친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특정 인물이 아니라 톨텍 문화 전체를 의인화해서 표현한 마야의 전설일수도 있고, 토필친이 수백년에 걸친 톨텍 이민자의 대표격 인물로 기록된 것일수도 있다.
4. 해석
사제왕 토필친의 전설은 사실 아즈텍 사람들에게 의해 이용된 프로파간다였다.
실제로 토필친 케찰코아틀이란 왕이 존재했을 것이란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 사악한 사제 테스카틀리포카와 사제왕 토필친 케찰코아틀의 대립은, 당시 톨텍 문명에 실재했던 두 집단 간의 분쟁을 의미하며, 토필친이 쫓겨나는 결말은 최종적으론 테스카틀리포카 진영이 이 전투에서 승리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 훗날 톨텍의 후손들을 정복한 아즈텍 제국은 이 신화를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이용했다. 토필친 케찰코아틀이 왕권을 자신들에게 맡기고 떠났으니 자신들이 그들을 다스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사제왕 토필친의 전설은 아즈텍에 의해 그렇게 합리화되고 믿어져 왔다.
5. 에르난 코르테스의 멕시코 정복
그러다가 에르난 코르테스가 멕시코에 도착했을 때, 아즈텍 황제는 정말로 기겁해 버렸다. '''전설 속의 케찰코아틀이 정말 왕국을 되찾으러 돌아온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플로렌스 고문서 속에는 토필친의 전설을 믿고 당황하며 두려움에 떠는 몬테수마 2세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몬테수마 2세는 코르테스를 오래 전에 이 땅을 떠난 케찰코아틀 왕으로 여기고 환대하며 그에게 바칠 금은보화를 보냈고, 그를 만난 자리에서 아즈텍의 역대 틀라토아니의 이름을 나열하며 자신들은 당신(토필친)을 위해 이 땅을 다스리고 있다고 연설을 하며, 당신의 궁전에서 편히 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몬테수마가 실제로 이들을 어떻게 생각했건 간에, 대외적으로 토필친의 전설을 코르테스와 연관지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가 진심으로 코르테스를 토필친이라고 믿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몬테수마가 코르테스의 입성을 거부할지 말지에 대해서 동생과 조카, 귀족들을 불러서 심사숙고하고 토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 자리에서 그의 조카는 몬테수마에게 "폐하의 왕위와 궁궐을 빼앗을지도 모르는 침략자들을 들여선 안 된다"고 말하면서 경고했다. 하지만 원래 토필친 전설에서도 토필친을 끝까지 따른 4명의 톨텍인은 화려한 갑옷을 입었다는 신화가 전해지며, 쫒겨난 왕이 자신의 왕위를 되찾겠다고 말을 한데다가, 그 왕이 병사들까지 이끌고 있다면 당연히 그 신화 속의 왕이 다시 왕위를 찬탈할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약간 애매한 부분. 게다가 전근대인들은 신화와 현실이 매우 심하게 혼용된 세계관을 가진 것이 일반적이었다. 당장에 콜롬버스조차 항해일지에서 인어가 지나갔다는 썰을 써 놓았던 시대다. 몬테수마가 신화 속의 왕이 되돌아왔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추정하는 것이 특별히 이상하진 않다.
흔히 '아즈텍인들은 에르난 코르테스를 케찰코아틀 신으로 여기고 숭배하고 환대하느라 그들이 침략자인 것을 알지 못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일부 역사학자들은 본 항목에서 다룬 토필친 케찰코아틀 신화와 케찰코아틀 신이 혼동되어서 퍼진 결과로 본다.
토필친 신화 자체도 케찰코아틀 신의 신화와 혼동된 흔적이 보인다. 토필친 전설은 5개의 판본을 통해 전해지는데, 전부 테스카틀리포카 사제단 혹은 신의 반발로 인해 추방되었다는 식의 전개가 나오며, 메소아메리카 신화에서는 케찰코아틀 신과 테스카틀리포카 신은 원래 대립관계인 신으로 나타나기 때문.
나중에 몬테수마는 코르테스가 토필친 케찰코아틀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때는 상황이 너무 늦어 있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그는 전설이 맞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코르테스를 시험하느라 침략자들에게 대응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아즈텍 사람들은 자신의 꾀에 자신이 넘어간 꼴이 되었다.
물론 이 전설이 아즈텍의 멸망에 큰 영향을 끼치진 못했겠지만, 최소한 황제를 두려움과 공포에 빠뜨린 것은 사실이다.
6. 대중 문화에서
Fate 시리즈에서 깃털달린 뱀 케찰코아틀과 전설 속의 사제왕 토필친은 동일인물이다. 케찰코아틀이 신화 속에서 대놓고 인신공양을 집행한 사제 신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긴 하다.[2] 스페인 역사가들의 프로파간다를 곧이곧대로 믿은게(...) 아니라면, 케찰코아틀이 선역으로 등장하는 만큼 테스카틀리포카와의 명확한 대비를 위해서 토필친과 융합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