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뤼그베 리

 



Trygve Halvdan Lie
1896~1968
1. 개요
2. 개인사


1. 개요


노르웨이 출신의 외교관, 정치인.
초대 유엔 사무총장(1946. 2. -1953. 4.)이다. 찬성 46 반대 3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
이름만으로는 잘 모르는 이들이 많겠지만, 사실 한국에게는 대단한 은인이다. 6.25 전쟁 당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유엔군 파견을 강력히 주장해서 한국을 구하는 데 공헌했기 때문. 6.25 전쟁을 예측하지는 않았지만 냉전이 심각해진다는 판단 하에 1948년 유엔군 창설을 제안하고 물자 지원과 운송 체제를 만들게 한 것이 이 사람이다.
단순히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자기 직무 범위 내에서만 수행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침공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노르웨이군을 파병시키는 등 개인적으로 한국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했다. 노르웨이가 한국에 병원시설과 위생병을 파견한 것도 이 사람이 노르웨이 정부에 요청하여 얻어진 공로이다.
한국을 열심히 도운 결과, 그는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공산권 국가들이 그가 무슨 결정만 하면 거부권을 행사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사임하였다. 그는 자서전에서 6.25 전쟁의 한국을 도운 것이 1940년 나치 독일이 모국 노르웨이를 침공에 대처한 것과 비슷하게 느꼈다고 하였다.

2. 개인사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한부모 가정에서 불우한 성장과정을 거쳤다. 노르웨이는 1960년대 북해 유전이 터지기 전에는 유럽 내에서도 굉장히 가난한 국가였다. 아버지가 1902년 미국으로 이민 간다고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 어머니는 하숙집을 운영하며 그와 여동생을 키웠다. 1919년 대학을 졸업하고 노르웨이 노동당의 사무원 자리를 얻었다.
1921년 Hjørdis Jørgensen(1898~1960)와 결혼해 3명의 딸을 두었다.
40대 중반까지 정치를 해서 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군대가 노르웨이를 침공하여 영국으로 망명할 때 350만 톤의 수송선을 구출하기도 했다.[1]
1968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