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냉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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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미국과 소련의 냉전
3. 역사
3.1. 2차 대전 후 (1945~1947)
3.1.1. 주요 사건
3.2. 전반부 (1947~1969)
3.2.1. 주요 사건
3.3. 데탕트 (1969~1979)
3.3.1. 주요 사건
3.4. 후반부 (1979~1985)
3.4.1. 주요 사건
3.5. 냉전의 종식 (1985~1991)
3.5.1. 주요 사건
3.6. 탈냉전 (1992~)
3.6.1. 주요 사건
4.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vs WP(바르샤바 조약기구)
5. 기타
6. 관련 창작물
7. 관련 문서
8. 관련 둘러보기 틀


1. 개요


冷戰 / The Cold War / Холодная война[1]
'''냉전'''이란, 적성국 관계인 두 국가가 실제로는 직접적인 전면전을 하지 않지만 첩보전이나 군비경쟁, 대리전 등의 방법으로 간접적으로만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말한다.
쉽게 말해 '''총성이 없는 차가운 전쟁'''이라는 의미이며, 주로 20세기 중후반 양대 초강대국인 미국소련 사이에 있던 냉전이 유명한 탓에 이에 대한 고유명사로써 사용되고는 한다.
반대말로는 열전(熱戰)이 있다.

2. 미국과 소련의 냉전


'''앞으로의 국제혁명의 발전과정에서, 두 개의 세계중심이 형성될 것이오. 하나는 사회주의에 끌리는 모든 나라들을 끌어들이는 사회주의 중심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에 끌리는 모든 나라들을 끌어들이는 자본주의 중심이오. 이 두 중심이 세계경제의 정복을 두고 벌이는 싸움이 전 세계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오. 왜냐하면 세계자본주의의 마지막 패배는 세계경제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이지.'''

이오시프 스탈린, 프라우다 1927년 9월 15일호에 실린 제1차 미국 무역 조합 대표단과의 인터뷰 中에서.[2]

이 발언은 19년 후 케넌의 '긴 전문'에 인용되며 기나긴 전쟁의 시작을 고한다.

학계와 일반 대중을 가리지 않고 일반적으로 의미하는 냉전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8월 15일부터 1991년 12월 26일의 소련 해체까지 지속됐던 미국소련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을 지칭한다. 한국에서는 흔히 1945~1991년의 시기 자체를 '냉전 시기'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냉전 또한 이 시기 동안 일어났던 프레임 중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다. 냉전이라는 프레임이 지극히 미국 중심이라고 생각해서 나온 견해인데, 이 견해에 따르면 냉전은 당시 시대를 구성했던, 식민지 해방, 신식민주의, 근대화, 인권/민주화 등과 같은 시대의 한 축에 불과할 뿐이다.
이 기간 동안 우주 경쟁, 군비경쟁이 절정에 달했으며, 긍정적인 면으로는 인류의 과학기술 발전에 엄청난 디딤돌이 되었으나[3] 다른 면으로는 대량살상무기가 유례없이 불어나고 그 파괴력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전 인류가 상호확증파괴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계기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미국-소련 냉전의 시작 지점과 끝 지점에 대해서는 다소 견해 차가 있다. 미국의 소련 주재 외교관 조지 케넌"긴 전문(The Long Telegram)"[4]을 본국에 송신한 1946년을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1950년한국전쟁을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소련 붕괴 후 공개된 대량의 기밀 문서들이 증거가 되어 오늘날에는 전통주의적, 수정주의적, 후기 수정주의적 입장을 막론하고 대부분 마셜 플랜을 냉전의 계기로 본다. 본래 전통주의적 견해에서는 트루먼 독트린을 냉전의 시발점으로 보아왔으나, 스탈린이 트루먼 독트린을 비난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서방에 대해 유화적이었고, 오히려 한 발 물러서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사실이 기밀 해제된 소련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편 냉전 자체는 20세기 초에 이미 각국 정상들 사이에서 예견되어 있었다. 당시 사회주의자본주의는 둘 중 하나가 사라질 때까지 싸워야 할 운명이라 여겨졌고, 언싱커블 작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이미 양 진영은 서로의 눈치를 엄청 보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냉전이 1945~1991의 시대를 칭하는 단어였지만, 요즘 사학계에서 이를 부정하고 '시대를 바꾼 여러 큰 파도들 중의 하나'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냉전 자체가 1945~1991의 시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벤트 중 하나였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냉전은 기술의 급진적 진보, 비식민지화, 신식민주의, 인권 운동, 민주화 등과 같이 그 시대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 시대의 모습, 현재를 결정한 여러 큰 파도들 중 하나였다는 주장이다.

3. 역사



3.1. 2차 대전 후 (1945~1947)


미국소련제2차 세계 대전의 연합국이었고, 동맹의 투탑으로 소련이 독소전쟁을 치룰 수 있도록 무기대여까지 해줄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었다. 허나 전쟁 끝에 소련이 나치 독일을 굴복시키고 동유럽 국가들을 영향권에 넣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영미권을 제외한 유럽이나 그들의 식민지배를 받던 주변부 국가들에게 공산주의는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기 때문에 2차대전 직후 독소전쟁으로 전례없는 피해를 봤음에도 여전히 강력한 국력과 기술력을 보유했던 소련은 '공산주의의 수장'이라는 이름아래 빠르게 세력을 확장해 나갔으며, 전후 얼마지나지 않아 미국과 대립각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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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세력 확장
실제로 공산주의 열풍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유럽이야 소련보다도 빠르게 공산주의 사상이 퍼졌던 공산주의의 본거지였는데, 지리적으로도 가까웠다보니 동유럽은 소련의 영향 및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빠르게 공산화되었다. 이 당시 불가리아 등 많은 나라들이 왕정을 폐지하고 공산주의 국가를 세웠다. 동아시아 역시 이미 20세기부터 공산당들이 나타난 상태로,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이 대립 중이었으며, 일본은 군국주의 하에서 탄압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내부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나타나고,[5] 조선은 말할 것도 없이 민족주의 우익과 함께 독립운동가의 쌍벽을 이룬 세력이 공산주의 좌익들이었다.

3.1.1. 주요 사건



3.2. 전반부 (1947~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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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권의 팽창이 절정에 다다랐던 1960년 즈음의 세계. 진한 푸른색은 북대서양 조약기구, 푸른색은 제1세계 미국의 동맹국들, 진한 붉은색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붉은색은 제2세계 소련의 동맹국들, 회색은 비동맹중립 노선의 중립국, 녹색은 식민지 상태의 현 국가들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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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베를린 위기 때 체크 포인트 찰리에서 대치 중인 미군과 소련군의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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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1982년, 냉전시기 유럽에서 NATOWTO의 군사적 세력 지도
이후 국공내전 끝에 중국이 공산화되고 베트남 전쟁으로 베트남까지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와 함께 세계를 양분하게 된다.
냉전 동안 사람들은 핵전쟁의 위협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으며, 소련과 미국은 서로에게 수없이 많은 ICBM을 겨냥해놓고 있었다. 군비경쟁은 레이건 시절 때 절정에 달해, 소련은 그 당시 45,000발 정도의 핵무기를, 미국도 25,000발 정도를 갖고 있었다. MAD전략에 기초해 '공포에 의한 평화'라는 모토 아래 아슬아슬하게 핵전쟁을 피했다. 더불어 잠수함전도 치열했다. 냉전 당시 소련과 미국은 북극해에 항상 전략핵잠수함을 순찰시키고 있었고, 가끔 소련 잠수함과 미국 잠수함이 교전 직전까지 간 경우도 더러 있었다.
유럽에서는 WTO와 NATO가 각각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을 대표해 대치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서독에는 미국의 핵 발사기지가 있었다. 현재 미사일방어체계(MD)의 전신인 SDI가 발표된 것도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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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1980년대 냉전 말기까지 유럽 연합(유럽동맹, EC, EFTA)의 경제적 세력 확장
서유럽 국가들은 서독-영국-프랑스-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아서 철의 장막 너머의 위협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서독은 2차대전의 흑역사 때문에 정치활동을 주도적으로 펼치지는 못했으며 미국의 핵심 동맹으로서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공산권과의 최전선을 담당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의 동맹이긴 했지만 잃어버린 패권을 되찾으려고 중간마다 시도한 정황들이 있었다. 또 프랑스는 이탈리아와 함께 공산당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국가이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국내의 정치문제와 지리적 위치 덕에 경제발전에 주력투자했으며 그 결과, 일본에 이어서 냉전기간동안 가장 크게 발전한 국가가 되었다. 북유럽 국가들(NATO나 중립국)은 안정된 정치와 발전된 경제로 이 시기를 비교적 평화롭게 보냈다. 반면 남유럽 국가들은 군사독재에 시달리다가 70년대 말을 기점으로 대부분 민주화 되었다.
동유럽 국가들은 서유럽과 반대로 공산권 영향에 놓여 소련의 동맹이 되었다. 대부분 국가가 독재이긴 했으나 국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서 동독, 체코슬로바키아가 철통같은 공산독재를 유지했다면 폴란드나 헝가리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발칸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거의 예외없이 1인독재 국가들이었다. 거의 모든 나라가 철저하게 소련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았으나 여기도 서방과도 동방과도 친하게 지내느냐, 정반대로 둘 모두와 사이가 좋지 않느냐, 모스크바의 동맹이긴 하지만 좀 떨어져 있는가 아니면 거의 자치령 수준으로 친한가의 차이를 보인적은 있다.
'냉전'이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은 미국과 소련, 양국이 확실한 적성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서로 간에 직접적인 전쟁이나 무력충돌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가리켜 차가운 전쟁이라고 부르게 된 것에 뿌리를 둔다. 미국과 소련은 서로 직접적 교전은 없었으나 각자가 지원하는 세력들에 의해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등 세계 각지에서 대리전이 벌어졌다. 이 냉전기의 긴 평화(The Long Peace)[7]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월츠는 '양극체제의 안정성'에 근거를 두고 설명한다.
한편 아프리카의 탈식민지화가 가속되면서 새롭게 태어난 신생국가들을 자본주의 세력으로 넣으려고 하는 시도와 공산주의 세력으로 넣으려는 시도가 치열하게 이뤄젔다. 이러한 갈등은 대리전으로 촉발됐으며 대표적으로 콩고 내전이 있다.

3.2.1. 주요 사건



3.3. 데탕트 (1969~1979)


그러나 냉전 시대 전체에 걸쳐서 모든 점에서 경쟁만 한 것은 아니다. 미국과 소련에도 국력의 한계는 있었고 함께 멸망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흐루쇼프 시대부터 경쟁은 하면서도 공존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브레즈네프의 시대에는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체결하는 등 서로 군비경쟁을 제한하고 관계 개선을 도모하기도 했다.

3.3.1. 주요 사건


  • 닉슨 독트린
  • 미중 관계정상화[8]
  • 핵확산금지조약
  • 제4차 중동전쟁
  • 앙골라 내전
  • 키프로스 전쟁
  • 베트남 통일
  • 이란 혁명
  • 중월전쟁

3.4. 후반부 (1979~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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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후반부의 1980년의 세계, 진한 푸른색은 북대서양 조약기구, 푸른색은 제1세계 국가들, 진한 붉은색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붉은색은 제2세계 국가들, 노란색은 중국과 친중 국가, 연한 붉은색은 친소 성향의 중립국, 연한 푸른색은 친서방 성향의 중립국, 회색은 비동맹중립 노선의 중립국이다.[9]
  • 냉전의 후반부를 신냉전 혹은 제2차 냉전이라고 불렀다. 21세기가 도래한 이후 미국과 중러 간의 새로운 냉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런 용법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

3.4.1. 주요 사건



3.5. 냉전의 종식 (1985~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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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맥도날드모스크바에 들어서다.
맥도날드의 소련 입성은 냉전의 종결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장면으로서 당시 서방 국가들 뿐 아니라 러시아 국민들에게도 엄청난 쇼크로 다가왔던 사건이기도 하다. 평양 시내에 이마트 평양점이 들어섰다고 생각해 보자. 그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이 소련(러시아) 최초 맥도날드에서 자본주의의 맛을 맛보기 위해 수많은 소련 국민들이 밤낮을 줄을 서 가며 햄버거를 주문했다. 자본주의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프랜차이즈가 공산주의의 심장에 들어섰다는 것은 '''공산주의진영이 완전히 패배'''하였음을 의미했으며 개방과 개혁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많은 공산국가들에게 일깨워 주었다.
1989년 동구 공산권 붕괴의 주인공은 바웬사하벨이 아닌 미하일 고르바초프다. 고르바초프는 막장으로 치닫는 소련 경제를 개선하고자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를 추진, 돈만 먹는 군비 경쟁을 줄이고 미국의 지원을 얻고자 평화 외교ㆍ군축 협상을 실시해 서구권에서 엄청난 외교적 인기를 구가하며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한 것이 동구 공산권 붕괴로 이어졌다. 고르바초프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버려도 동유럽이 친소파로 남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한편 냉전 말엽, 소련의 경제가 막장으로 치달으면서 소련이 히틀러제3제국처럼 살아남으려 마지막 발악을 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지만, 다행히 소련은 미국과 NATO를 향해 발악하지 않고 스스로 붕괴되었으며[10] 세계멸망의 위기는 조금 사라졌다.
세계를 양분했던 두 거대 세력의 대결치고는 마무리가 허전한 감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소련이 사라지면서 냉전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이후 개혁과 개방의 바람이 종주국이었던 소련 쪽은 물론이고 다른 공산권 국가들 사이에서도 크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중국베트남 같이 공산국가이긴 했지만 소련의 영향 아래 있지는 않았던 공산국가들도 차차 덩샤오핑흑묘백묘론이나 베트남의 도이모이 운동과 같은 개방 정책으로 선회하였으며 동유럽의 수많은 공산국가들도 소련의 영향력을 벗어나 하나의 유럽 체제로 뭉쳐 나갔다. 물론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북한처럼 사회주의마르크스-레닌주의를 막장으로 개조시킨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문을 닫아건 나라도 있다.
사실 미국이 냉전 말기에 냉전을 이기기 위해 큰 공작을 한 것도 아니고 냉전 승리를 주워먹은 것이 맞다. 소련에 강경하던 레이건 정권도 고르바초프 집권 직후 대소 강경 정책에서 유화 정책으로 돌아섰다.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르며 강경책을 펼치던 레이건도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고 개혁적인 모습을 보이자 소련을 비난하여 자극하지 않고 유화 정책을 펼쳤다. 비록 레이건이 상호확증파괴 개념을 극단적으로 싫어해 SDI에 집착해서 SDI 포기를 요구하는 고르바초프와 정상회담에서 갈등이 있었지만 레이건은 SDI 기술을 소련과 공유하겠다며 미국과 소련이 SDI를 공유하면 핵무기가 무력화되어 결국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게 될 거라는 이상론을 주장했다. 사실 2차 집권기의 레이건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모든 핵무기를 폐기해야 된다고 수시로 주장했고 화성인이 침공하면 미국과 소련이 힘을 합쳐야 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11]
비록 SDI 문제로 갈등이 있었지만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INF 협정을 체결했고 레이건은 소련을 방문해서 더 이상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베를린에서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장벽을 허무시오!''라는 명연설을 하기는 했지만 립서비스였고 레이건은 2차 집권기에 냉전 승리를 위해 특별히 큰 공작을 하지는 않았다.
이후 부시 집권기에도 미국은 소련에 유화 정책을 펼쳤다.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위성국들이 민주화되자 미국은 환영했지만 동유럽 공산 정권 붕괴를 위해 큰 공작을 하지는 않았고 소련의 브레즈네프 독트린 폐기로 위성국들의 공산 정권이 무너졌다. 미국은 동유럽 민주화와 독일 통일에 만족하고 나토를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후 소련이 소수민족들의 독립운동으로 흔들렸지만 미국은 독립운동 지원은 커녕 소련 붕괴 직전까지도 소련의 내전을 우려하며 오히려 독립 요구를 말리려 했다. 1991년 7월에는 양국이 전략무기를 감축하는 제1차 전략무기감축협정을 맺었다. 8월 쿠데타 전에는 공산당의 권력이 살아 있었고 소련이 평화적으로 붕괴될 거라고 예상하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1991년 8월 쿠데타 직전에는 고르바초프의 요청으로 부시는 우크라이나에서 독립 반대 연설을 했다. 콘돌리자 라이스가 쓴 이 연설에서 부시는 미국은 독립운동을 지원하지 않을 거라며 독립운동을 자기파괴적인 민족주의라고 발언해 미국 보수파들에게 비판받기도 했다. 이후 2000년대 아버지 부시는 당시 독립운동을 노골적으로 미국이 지원해서 독립운동이 과격해졌다면 전쟁이 날 수 있었다고 해명하였다.

3.5.1. 주요 사건


  •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소련)
  • 개혁/개방(중국)
  • 천안문 6.4 항쟁
  • 베를린 장벽 붕괴
  • 1988년 서울 올림픽[12]
  • 1989년 동유럽 혁명[13]
  • 예멘 통일
  • 동서독 통일
  • 몰타 회담 [14]
  • 걸프전쟁
  • 8월 쿠데타
  • 소련 해체 [15]

3.6. 탈냉전 (1992~)


소련의 붕괴로 독립한 12개 공화국 중 조지아를 제외한 11개국은 독립국가연합(CIS)을 결성했다. 이미 1991년 9월 6일에 독립을 승인받은 발트 3국과 조지아는 독립국가연합에 참여를 거부했다. 이후에 조지아는 러시아의 압력으로 1993년 12월에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했다.
2008년 8월 8일 중국이 강국으로 부상했음을 알리는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과 동시에 터진 남오세티야 전쟁의 시작으로 신냉전이 시작되었으며 전쟁이 끝난 후 조지아는 독립국가연합 회원국에서 제명되었다.
2014년 유로마이단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위기는 돈바스 전쟁까지 이어졌고 러시아크림 반도 병합에 반발한 러시아를 제외한 G72014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러시아를 제명하는 결의안을 선언하면서 G8은 G7이 되었다. 본격적인 제2차 냉전의 시작을 여기서부터로 보기도 한다.
2016년 미국중국남중국해 분쟁을 겪었고 이러한 갈등은 한국에서 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한국은 주한미군 THAAD 배치 논란에서 주권국가의 입장에서 중국의 부당한 내정간섭을 받았고 사드보복으로 이어졌다. 이때부터 보수진영에서는 확연히 반중감정, 중국 공산당에게 반감을 가지는 반공주의 성향이 강해졌다.
결국 물밑에서 지속적으로 대결을 벌이던 미국과 유럽 중심의 서구 진영과 중러 중심의 반서구 진영의 대결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트럼프이 당선되고 2017년 시진핑이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선언하면서 탈냉전이 완전히 종식되었고 제2차 냉전은 본격화되었다.

3.6.1. 주요 사건


  • 유고슬라비아 내전
  • 9.11 테러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이라크 전쟁
  • 남오세티야 전쟁[16]

4.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vs WP(바르샤바 조약기구)


미군 vs 소련군, NATO, 바르샤바 조약기구 문서 참고.

5. 기타


In Europe and America, there's a growing feeling of hysteria

Conditioned to respond to all the threats

유럽과 미국에서 모든 위협에 응하게 하는 광란의 감정들이 자라고 있네.

In the rhetorical speeches of the Soviets

Mr. Khrushchev said we will bury you

소비에트의 수사적인 연설에서 흐루쇼프 씨는 우리가 너희를 묻어버리겠다고 말했지.

I don't subscribe to this point of view

난 이런 관점에 찬성하진 않겠어.

It would be such an ignorant thing to do

그것은 실행하기엔 무지한 일이 돼버릴 테니.

If the Russians love their children too

만약 러시아인들도 그들의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말이야.

How can I save my '''little boy''' from Oppenheimer's deadly toy

내가 어떻게 하면 내 '''작은 소년'''을 오펜하이머의 '''끔찍한 장난감'''[17]

으로부터 구할 수 있을까?

There is no monopoly in common sense

상식적으로 거기엔 어떤 독점도 없어.

On either side of the political fence

정치적인 담장의 다른 저 편에서

We share the same biology

우리는 같은 생활을 공유하지.

Regardless of ideology

이데올로기(이념)에 상관없이 말이야.

Believe me when I say to you

내가 네게 말할 땐 내 말을 믿어줘.

I hope the Russians love their children too

나는 러시아인들 역시 그들의 아이들을 사랑하길 바라.

There is no historical precedent

To put the words in the mouth of the President

대통령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거기엔 역사적인 전례가 없어.

There's no such thing as a winnable war

거기엔 이길 수 있는 전쟁같은 건 없다고.

It's a lie that we don't believe anymore

우리가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야.

Mr. Reagan says we will protect you

레이건은 '우리가 당신을 지켜주겠다'고 말하지만,

I don't subscribe to this point of view

난 이런 관점에 찬성하지 않아.

Believe me when I say to you

내가 네게 말할 땐 내 말을 믿어줘.

I hope the Russians love their children too

나는 러시아인들 역시 그들의 아이들을 사랑하길 바라.

We share the same biology

우리는 같은 생활을 공유하지.

Regardless of ideology

이데올로기(이념)에 상관없이 말이야.

What might save us, me, and you

우리를, 나를, 그리고 너를 구원하는 것은,

Is that the Russians love their children too

아마 러시아인들도 역시 그들의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일 거야.

영국 가수 스팅의 'Russians'

가수 스팅은 냉전을 주제로 노래를 내기도 했다. 참고로 이 곡은 1985년 발표 당시 한국에서는 금지곡이었다. 당시 적성국가였던 소련을 소재로 했다는 이유 및 레이건 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다는 이유였다. 또한, 이 곡에는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가 작곡한 교향조곡 "키제 중위"의 멜로디 일부가 삽입되었다.
냉전은 소련, 즉 러시아의 패배로 끝나 버렸기 때문에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이기지 못한 러시아의 추위를 미국은 이겼다는 우스갯소리가 존재한다. 러시아의 겨울(폴란드볼) 다만 러시아인들 앞에서 "냉전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내지는 "러시아가 패배했다"라고 말하면 분위기가 상당히 어색해질 수도 있다. 러시아인들은 냉전의 끝이 '자신들의 패배'가 아니라 '소련이 무너진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둘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6. 관련 창작물


첩보전의 시대이기 때문에 스파이가 나오는 작품이라면 대부분 이 시대가 배경이거나 이 시대에 대한 언급이 나오며 둘이 정말로 전쟁을 벌이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추측하는 대체역사물도 많이 나온다. 그런 이야기가 정말 대체현실로 끝난 것에 감사하자. 미국과 소련이 아닌 다른 주체들이 냉전을 벌이는 경우도 등장한다. 자주 등장하는 형태는 2차 세계대전의 결과가 바뀌어서 미국 vs 독일(당신들의 조국), 독일 vs 일본(높은 성의 사나이), 독일 vs 소련(케르베로스 사가), 미국 vs 영국(메뚜기는 짐이 될 것이다) 등의 냉전이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 또한 미국 vs 남부(딕시-1)처럼 다른 이유로 냉전 주체가 바뀌거나 미vs영vs독vs소vs일(라이히-2)이나 일vs브라질vs프랑스vs스웨덴(시카쿠몬) 등 다극 냉전 체제도 나온다.
그런데 정작 소련이나 중국이 냉전에서 승리한 세계를 보여주는 인지도 높은 작품은 적다. 이는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아닌 추축국이 승리한 대체역사물이 상당히 많은 것과 대조된다. 예시(지도)
RTS#s-1첩보물의 단골 소재로 나온다. 대한민국 또한 냉전시대 때의 최전선이었던 만큼 가끔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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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음은 홀라드나야 바이나(Kholodnaya Voyna). 해석하면 '차가운 전쟁'으로 영어의 'Cold War'와 완전히 의미가 같다.[2] 해당 프라우다 기사의 영어 전문[3] 특히 항공우주공학 방면에서는 매우 비대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보잉 747, 콩코드, SR-71, 우주왕복선, 미르, 아폴로 11호, 이 모두가 냉전의 산물이다. 그 외에 에너지공학 분야의 원자력 발전소와 전자공학 분야의 개인용 컴퓨터 역시 냉전기에 발명, 상용화된 냉전의 결과물들이다.[4] 이후 케넌이 이 전문을 기반으로 작성한 논문을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발표하며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 논문은 X라는 가명으로 발표되어 'X 논문(X-article)'로 불린다.[5] 일본은 본토 모두가 미국의 지배에 놓여 공산당이 득세하지 못했지만, 냉전기간 내내 그 억눌린 댓가로 폭력적인 전공투, 적군파 등의 극좌 세력들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6] 지도와는 달리 파키스탄이 아니라 오히려 아프가니스탄이 제1세계에 더 가까웠고 녹색 국가들은 대부분 제1세계 소속으로 분리될 때도 많다.[7] 의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냉전기에는 '''강대국 사이의 전쟁이 없었다.'''[8] 키신저-저우언라이 회담, 닉슨-마오쩌둥 회담, 흑묘백묘론[9] X표시는 그 나라 내부에서 활동하는 반군 세력이다. 붉은색 X는 공산주의 반군, 푸른색 X는 친서방 반군, 녹색 X는 민족주의 반군이다. 지도와는 다르게 스위스/오스트리아/스웨덴/핀란드/유고슬라비아는 친서방 성향의 중립국이라고 보기 어려웠고 알바니아 역시 친 공산권이 아니었다.[10] 정확히는 소비에트 건국의 주요자들이 퇴직하며 등장한 기술관료들(테크노크라트)이 특권을 누리기 시작하면서 생긴 공산귀족, 노멘클라투라들에 의해 강제로 소비에트를 해체하고 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러시아를 건국함으로써 냉전 또한 막을 내렸다.[11] 그래서 극단적인 강경파도 아니었던 닉슨도 2차 집권기의 레이건이 지나치게 소련에 유화적이라고 레이건을 비판하기도 했다.[12] 이 올림픽을 기점으로 화해의 무드가 급속히 퍼져나갔다. 마침 서울 올림픽의 슬로건도 '손에 손 잡고'.[13]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 혁명을 시작으로 하여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의 공산독재를 무너뜨렸다.[14] 공식적인 냉전의 종결[15] 사실상 냉전의 종결을 맺은 사건[16] 제2차 냉전의 시초[17] '작은 소년'을 뜻하는 little boy와 실제 핵무기인 리틀 보이를 활용한 말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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