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낭 자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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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2]
1.1. 선수 생활
1.1.1. 클럽
고향 라쇼드퐁(La Chaux-de-Fonds)을 연고로 하는 에투알스포르팅(Étoile-Sporting)에서 축구를 시작한 자카르는 1924년부터 2시즌간 1군 무대를 누볐다.
1926년부터 하위 리그 소속인 CS 라투르 데펠리즈(CS La Tour de Peilz)로 팀을 옮긴 자카르는 8시즌을 그 곳에서 보냈고 이 시기에 나티에도 선발되었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나고 소속팀에 돌아왔을 때 그도 모르게 그의 자리가 사라졌고 FC 몽루스포르트(Montreux-Sports)에서 1시즌을 보내야 했다.
몽루스포르트를 떠난 자카르는 FC 바젤에 새둥지를 틀었고 1935년 12월 22일, 바젤 소속으로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다 1936-37 시즌에 팀의 감독이던 하인츠 쾨르너(Heinz Körner)가 갑자기 팀을 떠나게 되자 자카르는 바젤의 선수 겸 감독이 되었고 그가 첫 바젤의 자국 출신 감독이 되었다. 자카르는 팀을 추스려 4연승을 거둬 한숨 돌리는 듯했지만 바젤은 마지막 2게임을 내리 지며 결국 13개 팀 중 공동 11위로 라쇼드퐁과 강등 플레이오프를 펼쳐야 했다. 여기에서 바젤은 재경기까지 치른 끝에 라쇼드퐁을 밀어내고 나티오날 리그에서 살아남았다.
다음 해의 바젤은 나티오날 리그에서 4위를 기록했지만 그 다음 시즌에 결국 꼴찌로 강등을 당했고 자카르는 강등의 책임을 진 채 바젤의 감독직에서 사퇴했다.
이후 자카르는 FC 로카르노(Locarno)를 거쳐 세르베트 FC에서 1945년까지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했다.
1.1.2. 국가대표
자카르의 국가대표팀 데뷔전은 무려 월드컵 본선이었다. 자카르는 뮐러 감독에 의해 스위스의 역사적인 FIFA 월드컵 첫경기에 센터 하프로 출전했고 스위스는 예상을 뒤엎고 네덜란드를 물리치며 8강에 진출했다.
뒤이은 8강전에서도 자카르는 센터 하프로 출전했지만 스위스는 대회 준우승팀이 될 체코슬로바키아에 2대3으로 역전패하며 월드컵을 마무리했다.
자카르는 1936년까지 대표팀에서 총 12경기에 출전했다.
1.2. 감독
세르베트에서 자카르는 1946년 그의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다.
자카르는 1948년까지 세르베트의 감독직에 있다가 하위 리그 소속의 캉토날 뇌샤텔(Cantonal Neuchatel)로 자리를 옮겼다. 자카르는 1949-50 시즌에 나티오날 리가 A로 팀을 승격시켰지만 한 시즌만에 다시 강등의 쓴잔을 들이켜야했다. 그럼에도 자카르는 캉토날의 감독직을 지켰지만 다음 해인 1952년, 치아소(Chiasso)의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1955년, 로잔스포르트와의 2년 인연을 끝으로 자카르는 축구계에서 은퇴했다.
1.3. 이후
자카르는 라투르 데펠리즈에서 선수 생활을 할 무렵, 신발 가게 점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세르베트 FC의 감독 시절에는 그의 신발 가게를 차렸고 축구계 은퇴 후에도 신발 가게를 경영하며 여생을 보냈다.
자카르는 100살이 되던 2008년에 천수를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