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라지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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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대 비질리오

'''제60대 펠라지오 1세'''

제61대 요한 3세
  • 생몰년: ? ~ 561년 3월 4일
  • 재위기간: 556년 4월 16일 ~ 561년 3월 4일
교황으로 선출되기 이전 553년 열린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교황과 함께 황제에 의견을 반대하여 파문 및 감옥 크리를 맞았다.[1] [2] 555년에 교황 비질리오가 사망하자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펠라지오 1세와 화해하고, 그를 차기 교황으로 지지하였다. 교황이 된 후 교회의 여러 분파를 통합하는데 노력하였으며, 기존에 반대했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로 인해 그의 기존 정책을 지지하던 주교들로부터 반감을 사게 된다. 이러한 우유부단한 처세는 교황권을 약화시켰고, 동시에 동로마 황제에 의존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서 이후 오랫동안 교황 선출 후 동로마 황제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교황의 위상이 많이 실추되었다.
[1] 당시 동로마 제국이 단성론이 크게 호응을 얻고 있었고, 이에 교회의 분열을 우려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정통 신앙과 단성론 사이에 접점을 찾고자 열은 것이 콘스탄티노플공의회였다.[2] 유스티니아누스 1세단성론자가 아니었으나 황후 테오도라가 단성론자였다. 문제는 황제가 공처가.... 교회의 분열로 혼란이 야기되는 것을 막고자 공의회를 개최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