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PUBLIUS LICINIUS CRASSUS
(기원전 ? ~ 기원전 53년)
고대 로마의 인물. 제1차 삼두정치를 이끌었던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의 아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휘하에서 갈리아 전쟁을 치렀던 군단장으로 카이사르에게 총애를 받은 인물이다.[1]
갈리아 전쟁에 아버지의 동맹자였던 카이사르의 휘하에서 종군, 아리오비스투스가 이끄는 게르만족의 한 부류인 수에비족과 싸운 워세구스 전투에서 기병 대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여, 총독 부관으로 임명되고 로마 군단을 이끌었다. 그리고 갈리아 전쟁에서 여러 전공을 세운 활약에 들은 카이사르는 푸블리우스를 총애하였다. 갈리아 전기에서 그를 '젊은 크라수스'라고 부르며 중요한 임무를 맡기고 카이사르가 속주 통치를 위해 갈리아를 비울 때나 전투 중에 티투스 라비에누스와 함께 카이사르가 믿고 뒷일을 부탁하는 부하 장군 중 한 사람이었다.
기원전 53년 아버지인 크라수스[2]와 함께 시리아 원정에 나섰다가, 수레나스가 이끄는 파르티아 군대와의 카르헤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1] 시리아 원정을 떠나는 아버지를 따라가자 카이사르가 자기 휘하 기병 1000명을 떼어다 줄 정도였다.[2] 크라수스는 폼페이우스와 함께 집정관의 임기가 종료되었으며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이 세 사람이 중심이 된 삼두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진압한 이후 거의 20년간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 않는 크라수스는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처럼 눈부신 전공을 세우고 싶다는 욕심에 원정을 생각하여 고른 상대가 시리아에 있는 파르티아였다. 원로원은 원정은 안된다고 설득하였으나,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는 찬성을 하여 승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