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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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도널드와 함께한 사진(1988년)
표기: Frederick (Fred) Trump
생몰년도: 1905년 10월 11일 ~ 1999년 6월 25일
1. 개요
2. 생애
3. 자녀 교육
4. 논란
5. 여담


1. 개요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의 아버지이자 트럼프 기업의 설립자이다.
부친(프리드리히 트룸프→프레데릭 트럼프)과 이름이 같기 때문에 프레드 트럼프라는 애칭을 주로 사용했고, 그래도 헷갈리기 때문에 jr(주니어)라는 표기를 붙여 구분하기도 했다.

2. 생애


프레드 트럼프는 독일 출신 이민자 프리드릭 트럼프(미국 정착 전 프리드리히 트룸프(Friedrich Trump, 생몰년도는 1869년 ~ 1918년)와 엘리자베스 트럼프(결혼 전 엘리자베스 크리스트, 생몰년도는 1879년~1966년) 사이에서 출생했다.
프레드의 부친인 프레데릭은 1869년 독일 칼슈타트(Kallstadt)에서 작은 포도밭을 소유한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8살 때 아버지가 폐렴으로 사망하면서 치료비로 빚을 지게 되어 어머니가 작은 포도밭에 의지하여 여섯 형제를 키우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4살 때부터 이웃 마을 이발소에서 주7일씩 일한 후 다시 마을로 돌아와 자신의 이발소를 차렸다. 하지만 동네에서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있던 이발소에 밀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프레데릭은 16세 때인 1886년 고향을 떠나 이모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을 거쳐 1891년 시애틀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고 이발소, 식당, 숙박 사업으로 자수성가했다. 특히 1896년에 시작된 캐나다 유콘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때 캐나다에서 숙박업을 하여 어느정도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1899년~1900년경 유콘 골드러시가 완전히 끝나자 프레데릭은 미국과 캐나다 서부에서 숙박업을 완전히 정리했고 1901년 고향 칼슈타트로 귀향했다. 이때 이웃집에 살던 엘리자베스 크리스트와 만났고 그녀와 결혼하여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프리데릭 트럼프는 미국 뉴욕에서 이발소와 레스토랑, 숙박업을 시작했지만, 1904년 고향 칼슈타트에 재정착하기로 결심하고 갓 태어난 딸 엘리자베스를 포함한 가족과 함께 칼슈타트로 돌아왔다. 하지만 당시 칼슈타트를 새로 관할하게 된 바이에른주 당국은 프리데릭이 독일제국의 병역 의무를 기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고 판단하여 독일 영주권 갱신을 불허하고 추방 명령을 내렸다.[1] 프레데릭은 탄원서를 내는 등 수개월간 법적 공방을 이어갔으나 결국 1905년 프레데릭 부부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야 했다. 프레데릭은 뉴욕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만 했다.
프레드 트럼프는 부모가 칼슈타트에서 뉴욕으로 다시 돌아온지 5개월 후에 출생했다. 아들인 도널드 트럼프가 현직 대통령인 시절 몇 차례 자신의 아버지인 프레드 트럼프가 독일 출신, 독일 태생이라고 말하여 미국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프레드 트럼프의 부모(즉 도널드 트럼프의 조부모)가 칼슈타트를 떠나 미국행 여객선에 탑승했을 때 프레드의 어머니는 임신 3개월째였고 프레드 트럼프는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며 도널드는 아버지의 고향도 틀리게 말한 XX 자식이라는 것이 당시 미국 언론들의 입장이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어버지가 미국에서 태어난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겠지만 독일인 가정에서 독일어를 사용하며 성장하였기에 그런 의미에서 독일 출신이라 말한 것으로 보인다.
뉴욕 브롱스에서 태어난 프레드 트럼프는 어린시절 가정에서 부모 형제들과 독일어를 쓰면서 자랐다. 3살 때 가족이 뉴욕 퀸즈로 이사하여 그 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유년 시절을 보내며 성장했다. 10살 때부터 푸줏간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미국에서 반독일 정서가 생기자 프레데릭은 아들 프레드에게 "우리는 더이상 독일인으로서 미국에서 사업을 하기 힘들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스웨덴인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프레드 트럼프는 한동안 스웨덴 칼스타드(Karlstad) 출신 행세를 했다. 때문에 트럼프 가문은 1980년대 그의 아들 도널드 트럼프가 독일계 이민자 출신임을 밝힐 때까지 스웨덴계 집안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1918년 스페인독감 팬데믹 때 아버지 프레데릭이 폐렴으로 사망했다. 1918년 뉴욕 퀸즈에 있는 리치몬드 홀 고등학교에 들어간 프레드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시절 캐디, 페인트공, 배달원 등 다양한 일을 병행했다. 192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목공소를 세워 일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Pratt Institute에 등록해서 학업을 병행했다. 블루프린트(청사진)도 공부하였고 그러던 1925년에 프레드는 생전 처음 집을 지었다.
1926년 아버지의 부동산 사업을 이어가던 어머니와 함께 Elizabeth Trump & Son을 설립하여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다. 1933년에는 당시 뉴욕 롱아일랜드에 생긴 셀프 슈퍼마켓을 벤치마킹하여 뉴욕 퀸즈에 트럼프 마켓이라는 셀프 수퍼마켓을 창업했다. 1933년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취임하여 강력한 경기부양 정책(뉴딜 정책)이 시작되자 1934년 부동산 모기지 회사를 인수하여 본격적으로 부동산 사업을 확장했고 루즈벨트 대통령의 주택 정책에 편승하여 부동산 사업에서 크게 성공하기 시작했다. 193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미모의 여성 매리 앤 매클라우드와 결혼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나서 전쟁 기간 동안 뉴욕 복지주택건설 사업에 참여하여 여기서 엄청나게 큰 재산을 모았다.
1999년 6월 25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프레드의 형제로는 누나와 남동생이 있다. 프레드의 남동생이자 도널드 트럼프의 삼촌인 존 G 트럼프는 어린 시절부터 사업에 투신한 형과 달리 학업에 재능을 보여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명문 MIT 교수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레이더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3. 자녀 교육


프레드 트럼프의 호전적인 성격은 둘째아들인 도널드 트럼프에게도 계승되었다. 워커 홀릭인 프레드 트럼프는 독일계 가정의 가장들이 흔히 그렇듯 자녀들에게 무척 엄격한 아버지였다.[2] 용돈이나 선물도 조건을 만족해야지 내줬다.
둘째 아들 도널드 트럼프는 어릴 때부터 자가용(!!)으로 신문을 배달하면서 생활비를 모았다. 도널드는 13세 무렵 군사학교에 입학했는데 사실 프레드가 도널드를 강제로 넣은 것이였다. 알고 보니까 도널드는 주머니칼을 소지한 채로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아버지에게 발각되고 훈육 차원에서 내려진 조치였다. 그러나 도널드는 훈육은 커녕 군사학교를 너무나도 좋아해서(...)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프레드는 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를 자기 회사 신입으로 발탁했지만 여러모로 시원치가 않았다. 큰아들이 기록하는 실적, 그리고 업무에 임하는 태도를 비롯한 여럿이 그랬다는 얘기다. 형을 대신할 도널드에게도 사정은 비슷했다. 도널드는 칭찬에 인색했던 아버지를 극복하려고 사업에 매진했다고 밝혔다.

4. 논란


  • 1927년에 KKK단의 일원으로 체포된 적이 있었다는 논란이 있다.
  • 1973년에는 흑인에게 방을 내주지 않았다며 고발된 바 있다.

5. 여담


대부분이 장신인 트럼프의 가문답게 프레드도 장신이었는데 맨위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190cm가 넘는 아들 도널드와 많이 차이나지 않는 186cm의 장신이었다.

[1] 당시 이런 사례가 적지 않았고, 실제 프레데릭이 16세 때 미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 중에 병역 문제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2] 다만 이건 20세기 중반의 이야기고 그 이후에는 독일계 가정들도 그리 엄격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