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득인

 

'''이름'''
하득인
'''생년월일'''
1966년 10월 9일 (58세)
'''출신지'''
인천광역시
'''학력'''
충암고 - 원광대
'''포지션'''
2루수, 3루수, 1루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
1994년 2차 4라운드 26번 (태평양)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1994~1997)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23번'''
김홍기(1991~1993)

'''하득인(1994~1995)'''

팀 해체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3번'''
팀 창단

'''하득인(1996~1997)'''

신철인(2000~2007)
1. 개요
2. 선수시절
2.1. 아마추어 시절
2.2. 프로 시절
3. 은퇴 후
4. 여담


1. 개요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었던 타자이며, 원조 대타 전문 타자.

2. 선수시절



2.1. 아마추어 시절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버지도 육상선수 출신이고 형은 레슬링과 씨름을 했다 하니 그야말로 스포츠 집안인셈.
원광대를 졸업하고 OB에 지명까지 받았지만 실업팀인 포항제철에 입단했다. 그러던 중 원광대 동기인 정명원의 권유로 1994년 드래프트에 참가, 태평양에 지명을 받는다.

2.2. 프로 시절


그렇게 입단한 태평양에서는 주로 대타로 나와 활약했다. 특히 좌완투수, 그중에서도 구대성, 이상훈의 공을 잘쳐 그들에게는 공포의 존재가 따로 없었다. 본인도 구대성, 이상훈의 공을 치는 건 자신있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니.[3]
하지만 좌상신이라는 장점 이외에는 타격은 평범했고, 수비는 어깨가 좋지 않아서 절망적이다 못해 그냥 안 보는게 나을 수준의 수비를 보여 하득인은 대타만을 전전하다 1998년 초, 어깨부상이 악화되어 프로입단 겨우 4년만에 은퇴를 하고 만다.
어깨가 안 좋았던 이유는 실업에서 뛰다 프로에 오니 갑자기 연습량이 확 늘어난 게 원인. 그래서 늘 어깨가 안 좋았다고.
이렇게 현역 시절엔 별 볼일 없던 타자지만 좌상신이라는 임팩트가 컸던 나머지 박재홍, 김경기 등 한시대를 풍미한 대타자들이 종종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 링크 김경기 曰, 대타로 나가서 친 타격만 친다면 7할은 족히 될 거라고.

3. 은퇴 후


은퇴 후 미국에서 코치연수를 하고싶었으나 구단에서 코치연수를 보내주는 시스템은 자신을 묶어놓는다고 생각해 자유롭게 자기 생각대로 하고 싶었던 하득인은 그냥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현재는 보스턴에서 세탁관련 사업을 하며 한인 야구팀의 코치 겸 고문으로 있다고한다.

4. 여담


야구를 시작한 계기가 좀 황당한데, 어릴적 하득인은 닭이나 오리를 때리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그걸 본 아버지는 '이놈이 빠따질에 재능이 있구나' 라고 생각해 하득인에게 야구를 시켰다고 한다.
현역 시절 그만의 독특한 배트 손질법이 있었다고 한다. 다른 선수들은 사포나 칼로 배트를 손질했지만,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주로 깨진 콜라병을 이용했다 한다.
[1] 컴투스프로야구2021에는 1997년에 1루수를 보았다고 표기되어 있다.[2] 지명을 거부하고 실업팀인 포항제철에 입단했다.[3]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이상훈을 상대로 동점타를 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