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태현
1. 소개
1982년부터 1999년까지 인천광역시+경기도+강원도+이북5도를 광역 연고지로 했던[3][4] 프로야구 팀인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를 합쳐 이르는 말.
현대는 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는 찬란한 전성기를 보냈지만, 현대를 제외하면 팀 모두 야구사에서 큰 업적을 이루지는 못했고 하위권을 전전했으며 중견급 대기업 구단인 태평양과 초대형 재벌 구단이던 현대를 빼면 구단의 운영 기반인 자금력마저도 심각하게 빈약한 구단들이었다.[5] 하지만 삼미 데이-태평양 데이 혹은 키움 히어로즈의 역사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단어이다. 그리고 일부 야구팬들은 삼청태의 후신인 현대 유니콘스가 연고이전을 했다는 이유로 배제하는 경우도 있어[6] 이 문서는 삼청태로도 리다이렉트된다.[7] 하지만, 집 버리고 서울로 현대가 빤스런을 했다는 이유로 역사에서 빼버리는것은 일부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고 수많은 종목에서 연고이전 이유 하나로 같은 팀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는 사실상 없다.[8] 당연히 KBO도 현대 유니콘스가 삼미, 청보, 태평양을 계승한 팀이라는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래서 이 항목은 '''삼청태현'''으로 한다.
비슷한 예로 프로농구의 나산 플라망스-골드뱅크 클리커스-코리아텐더 푸르미를 언급하는 단어인 '''나골코'''가 있다. 나골코 역시 모기업의 자금력이 약했고 성적이 대부분 하위권을 전전했다는 점마저도 삼청태와 매우 유사하다.[9]
2. 삼미 슈퍼스타즈 &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
삼청태현의 구단 역사는 시조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탄생부터 스토리가 꽤 스펙타클하다. 공통적인 것은 야구를 잘 한 적이 없는 전통의 약체팀이었던데다 팀의 모기업도 다른 재벌 기업에 비해 빈약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삼미와 청보는 구단의 매각 과정에 주채권은행이 개입했다는 점도 똑같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사실 KBO의 구상에 없던 팀이었다. 1981년 12월 대한민국에 프로야구가 탄생할 당시 연고지 배정의 기준은 구단주인 기업 총수나 구단의 모기업이 연고지와 연관이 깊은 기업에 맡기는 것이었는데 유독 인천직할시/경기도/강원도/이북5도 연고팀을 맡아줄 기업이 없었다. 원래는 강원도 출신이자 실향민인 정주영 회장이 있는 현대그룹에 야구단 창단을 제안했지만 1988 서울 올림픽의 유치와 개최 준비를 위해 힘써야 한다며 거부당했다.[10] 차선책으로 당시 실업야구의 강자였던 한국화장품 야구단을 운영했고 개성시 출신의 실향민 임광정 회장이 있던 한국화장품에 프로야구단 전환을 제안했지만 임광정 회장마저 프로야구단 창단을 거절했다.[11] 그러자 원래 대전 연고팀을 만들기로 돼 있던 두산그룹이 뜬금없이 "새 팀을 대전이 아닌 인천에 만들면 안되겠느냐"고 KBO에 요청했다. 연고지 기반이 부족한[12] 대전에 가느니 아예 서울 바로 옆 인천에 팀을 만드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리그 출범 작업을 총괄하던 이용일 당시 사무총장이 나서서 "이제 와서 대전이 아닌 인천을 달라고 하면 리그 준비 과정이 꼬이니 그냥 대전으로 가라"고 말렸다.[13]
그렇게 리그 출범을 위한 창립 총회 시한은 다가왔고 인천 연고지가 붕 뜨려고 할 즈음 갑자기 웬 30대 남자가 KBO에 찾아와 "우리가 인천 연고팀을 맡으면 안되겠느냐"고 나섰다. 이 30대 남자는 다름아닌 삼미그룹의 김현철 회장이었다. 이 당시에도 삼미그룹의 인지도는 높은 편이 아니었지만 청계천의 초고층빌딩이던 삼일빌딩의 주인이 이 회사였다는 점이 돋보였다고 한다. 김 회장은 미국 유학 시절 메이저리그에 심취할 정도로 야구를 좋아했고 프로야구단의 구단주가 되면 연고지 지역사회 내의 유력 인사가 돼 시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프로야구단 창단에 나섰다고 한다. 어쨌든 삼미그룹이 허공에 뜰 뻔했던 인천 연고팀을 맡아 창단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삼미 슈퍼스타즈가 하필이면 첫 해부터 맨정신에 눈 뜨고는 차마 보기 어려운 안습의 성적을 내면서(...) 인천지역 야구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삼미는 1983년 일본에서 온 너구리 덕분에 반짝 성적을 냈으나 이 해를 빼면 늘상 꼴찌를 전전해야 했고 1984년 이후에는 모그룹의 핵심 계열사였던 삼미해운의 경영난까지 겹치며 구단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이 당시 주채권은행이었던 한국산업은행은 야구단을 팔지 않으면 재정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엄포를 놨고 결국 김현철 회장은 울며 겨자먹기로 경기고등학교 선배 김정우 회장이 운영하던 풍한방직에 구단을 넘겼다. 여담으로 김현철 회장은 슈퍼스타즈 구단 매각에 도장을 찍은 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청보 핀토스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구단은 풍한방직이 인수했는데 청보식품의 이름이 야구단에 붙은 것은 전형적인 B2B 업체인 방직회사보다 B2C 업체인 식품회사의 인지도가 더 높고 새로 시작하는 라면 사업을 적극 홍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청보를 전면에 내세웠다.[14] 그러나 만년 꼴찌팀과 가난뱅이의 DNA를 바꾸지는 못한 터라 구단 운영기간 내내 최하위권을 맴돌았고[15] 역시나 1987년 후기리그부터 구단 매각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된다. 특히 전신팀 삼미와 똑같이 청보식품 역시 주채권은행이었던 한국외환은행으로부터 야구단을 팔지 않으면 재정 지원을 해주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결국 구단을 매물로 내놨다. 다행히 프로야구 참가 열의가 컸던 서성환 태평양화학 회장 덕분에 태평양 돌핀스라는 새 간판을 달 수 있었다. 그리고 김정우 회장 역시 삼미가 매각되던 당시 김현철 회장이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구단을 넘겨야 했던 사실을 매우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새 구단의 주인인 태평양은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기업이었다. 화장품 회사였기 때문에 당시 프로야구 팬덤의 핵심인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인지도가 높았고 비누, 샴푸, 치약 등 소비자들이 매일 사용하는 생활용품도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삼미나 청보처럼 "적어도 돈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겠다"는 우려는 덜 들게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태평양 역시 그 이전의 기업보다 조금 돈이 많을 뿐 여전히 돈에 대해 여유가 많은 기업은 아니었고[16] 전력 역시 약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1989년은 새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과 박정현, 최창호, 정명원 등 투수 3인방의 영향으로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고 1994년은 정동진 감독의 성공적인 리빌딩 덕분에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며 인천 연고팀 중에 가장 인상적인 기록을 남기게 된다.
태평양 돌핀스는 1995년 당시 태평양그룹이 단행한 선제적 구조조정 작업의 일환으로 구단 매각이 진행됐는데[17] 프로야구단 창단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당대 최고의 재벌 기업 현대그룹에 구단을 넘기는 조건으로 무려 470억원의 현금을 챙기면서[18] 어마어마한 시세차익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1990년대 중후반 야구판을 제대로 뒤흔든 현대 유니콘스가 탄생하게 된다.
3. 후신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
재계 1위 현대그룹은 1995년 가을 무려 470억원에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여 1996년 현대 유니콘스로 새 출발한다. 당시 현대는 연고지 고졸우선지명 선수였던 박진만에게 당시 고졸 야수 최고 대우인 계약금+연봉 3억원을 쥐어주고[19] 해태 타이거즈의 지명을 받았던 박재홍을 빼오는 조건으로 계약금 4억3000만원을 부담하는 등 공격적 투자를 했다. 아울러 배수 시설과 잔디 관리 수준이 국내 최악이던 숭의야구장 그라운드를 인조잔디로 전면 보수했다. 심지어 숭의야구장에 설치되어 있던 기존의 구형 전광판을 수리하여 애니메이션이나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을 정도로 신식 못지않게 개조하는 등 전체적인 시설 개선 투자에 직접 나섰다.[20]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구단 출범 첫 해에 준우승을 하더니 2년 뒤인 1998년에는 '''인천 연고팀 사상 최초의 우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팀의 인기도는 모그룹의 기대만큼 높지 못했다. 1998년 우승 후 숭의야구장에서 열린 해태 타이거즈와의 1999년 정규시즌 개막전의 관객이 기대했던 것보다 적었던 것이[21] 현대의 연고지 이전 시도에 결정타였다고 금광옥 전 동산고 감독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인천은 서울, 경기와 마찬가지로 전라도+충청도 출신 이주민이 많은 도시이기에 다른 도시만큼의 충성적인 홈팬을 기대할 수 없었다. 여기에 1999년은 외환 위기 이후 경기가 가장 나빴던 한 해였고 프로야구의 열기도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던 1990년대 중반보다 떨어졌던 점을 감안해야 한다.
결국 현대그룹은 2000년 1월 그룹 차원의 주도로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를 '''인천에서 서울로 옮기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스포츠신문을 통해 현대의 연고지 이전 소식이 들려왔고 이 소식을 접한 인천의 현대 팬들은 강하게 분노한다.[22] 그러자 현대 구단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일간스포츠에 "제9구단을 추가로 창단해 기존의 유니콘스를 인천에 존치시키고 9구단을 서울 연고팀으로 키우겠다"는 거짓 해명 기사를 내면서 언론 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시점에 구단 공식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이런 글을 올리며 인천 팬들을 끝까지 우롱했다.
당시의 연고이전 강행에 대해 선수단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는데 자타공인 인천의 슈퍼스타인 김경기와 박재홍을[23] 비롯한 몇몇 선수들이[24] 눈물로 호소하면서까지 구단의 연고이전을 반대했었던 반면 정민태, 임선동, 박종호, 박진만[25] 등 몇몇 선수들은 연고이전 소식에 반색하며 환영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와 팬들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김용휘 전 사장이 훗날 2008년 스포츠 2.0에서 밝힌 것에 따르면, 연고지 이전은 야구단에서 추진한 것이 아닌 현대그룹 고위층 쪽에서 강행해서 밀어붙인 것이라고 한다. 프런트는 물론 선수단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모기업에서 '불도저'식으로 강행했던 것.새천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현대 유니콘스 프로야구단 홈페이지 관리자입니다.
연고지 문제와 관련한 구단의 공식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제기되었던 구단의 연고지역 이전에 대해 '''구단에서는 전혀 고려한 바가 없습니다.'''
현대가 태평양을 인수할 당시 인천·경기·강원 연고지 영입권으로 450억원을 주었습니다.
그러한 영입권을 포기하고 연고지를 이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또 2002년 완공 예정인 문학구장에 대한 장기 임대 등 구장의 활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구단에 확인 절차 없이 보도된 것입니다.
'''연고지는 쉽게 버리고 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드립니다.'''
'''저희 구단을 믿어주시고 계속 성원 부탁드립니다.'''
정상 새천년!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현대 유니콘스 프로야구단 드림
그렇게 현대는 '''선수단과 팬들의 동의를 일절 구하지 않고 그룹의 이익만을 좇기 위해 인천을 뛰쳐 나갔다.''' 그러나 2000년 시즌 중반에 터진 모기업의 부도와 2001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사후 소위 그룹 내부에서 터진 '왕자의 난#s-2.1'으로 인해 현대그룹이 분해 위기까지 갔고, 이로 인해 재정난 문제가 심각해져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26] 기존의 제2홈구장이었던 수원야구장을 임시 홈구장으로 하여[27][28][29] 이후 현대가 해체될 때까지 서울로 올라가지 못하고 수원에 눌러앉게 된다. 이러는 바람에 안 그래도 인기 구단이라고 보기 힘들었던 현대 유니콘스의 인기는 수원으로의 임시 연고 이전 이후 이런저런 사정이 겹치면서 바닥까지 떨어졌다. 당시의 수원은 전통적으로 축구가 인기가 많으며[30] 그 당시 시장이던 심재덕, 김용서 등도 축구에 더 관심이 많았다. 더구나 수원이 현대에게 있어 임시 연고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 수원시민들이 현대에 정을 줄 리가 없었다. 거기다 2000년대 초반은 IMF 여파와 2002 월드컵 등으로 인해 한창 야구의 암흑기라 불리던 시절이었다.
위에서 서술한 것과 같이 유니콘스가 연고지를 이전한 데에는 구단 안팎의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물론 이런 변명거리에도 불구하고 '''현대 유니콘스가 멀쩡한 팬덤 기반이 있음에도 이 팬덤을 무시한 채 뜬금없이 연고를 이전하여 인천광역시를 떠난 것은 분명히 잘못한 것이다.''' 일부 팬덤에서는 이같은 현대의 연고지 이전을 패륜 행위에 빗대기도 한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17년간 키워줬던 부모와 고향(인천 팬덤)을 버리고 자식에게 뒤통수를 맞은 부모의 허탈함과 집안의 멸망은 깡그리 무시한 채 오로지 자신만의 성공을 위해 서울특별시로 튀어버린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이냐는 것이 현대의 연고지 이전을 패륜으로 규정하는 논리의 비유다. 다만 K리그식 패륜논리를 공감하는 사람은 프로야구 암흑기인데다 팬수도 적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사라졌다.
한편 2000년 초 현대가 떠나면서 텅 비어버린 인천광역시에는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단을 이어받아 창단한 신생구단 SK 와이번스가 터를 잡게 되었다. SK는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를 직접 인수하지 않고, 선수단과 프런트를 흡수해서 공식적으로는 쌍방울 역사와 무관하면서 실질적으로 그들을 주축으로 창단하였다.[31] 당시 프로야구의 연고지 변경과 인수, 재창단에는 정치권의 압력이 있었다는 썰이 파다하게 퍼졌다. 실제로 당시 국민의 정부 최고 실세였던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SK그룹에 프로야구단 창단을 반(半)공개적으로 종용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또한 당초 SK는 구단 창단 시 그룹의 태생지인 수원시나 성남시를 연고로 희망했으나, 그룹 고위층에서는 서울 연고를 희망했고, 결국 타협 끝에 수도권 광역시면서도 현대가 떠나면서 비게 된 인천이 가장 적절하다는 분위기가 나왔다.
이렇게 현대의 연고지 이전과 SK의 인천 연고팀 창단으로 2000년 초 큰 소용돌이가 일단락됐다. 그리고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으로 인천/경기 지역의 야구팬들은 엄청난 분노와 정신적 공황을 겪게 되었다. 그 결과, 기존 인천권 거주 팬들은 새로 창단된 인천팀 SK 와이번스를 응원하게 되었고, 비인천권 거주 혹은 일부 인천 팬들은 비록 연고지를 이전했지만 기존에 응원하넌 선수만큼은 온전히 있는 현대 유니콘스를 응원하였고,[32] 그리고 새로 온 SK의 이질감과 현대의 연고지 이전에 배신감을 느껴 야구 자체에 관심을 끊은 경우 이렇게 3등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특히 이런 팬덤이 분열된 양상은 2003년 한국시리즈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팬이 많지 않아 빈자리가 많았던 수원구장에서의 경기, SK팬 과 소수의 현대팬으로 어색하게 나눠져 응원전을 펼쳤던 문학구장에서의 경기, 그리고 잠실구장 중립경기의 결과는 KBO 한국시리즈 '''역대 최악의 흥행참패'''로 이어졌다.
4. 종말을 고한 현대 유니콘스, 그리고 그 이후
현대 유니콘스는 인천을 떠나 서울로 연고 이전을 시도하나 목동 야구장 리모델링 문제와 서울 연고 두 팀에게 줄 보상금 문제 때문에 바로 서울에 입성하지 못하고 임시 연고지로 수원시에 머물게 됐다. 한마디로 준비도 안되었으면서 억지로 추진만 하고 해결 못하는 꼴. 그러나 수원시는 1996년부터 프로축구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이 리그에 참가해 스타선수들을 영입해 첫해부터 좋은 성적을 내었고 1998년과 1999년 K리그 우승을 차지 하면서 축구의 도시가 되었다. 게다가 수원시민으로서도 언젠가는 서울로 떠날 현대 유니콘스에 큰 정을 붙일 이유도 없었다. 이렇듯 아무런 대책없이 불도저식의 무리한 연고이전을 강행한 현대 유니콘스는 크보에서 흥행 최악의 구단의 오명을 썼다. 거기에 현대 유니콘스 모기업인 현대전자의 계속되는 적자와 범 현대그룹 후계구도 싸움인 왕자의 난을 거치며 모기업마저 암운이 드리워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왕자의 난#s-2.1 이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과 현대전자(現 SK하이닉스)의 지원 중단으로 파산 위기에 처했던 현대는 KBO와 야구단 대주주였던 하이닉스 스스로의 뻘짓[33] 에 힘입어 종말을 고했고, STX, 농협, KT의 현대 유니콘스 인수 시도가 차례로 무산되었다. KBO가 최후의 수단으로 접촉한 이장석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스가 현대를 해체 후 선수단만 인수[34] 해서 재창단하는 형식으로 우리 히어로즈가 신생구단으로서 창단된다.
해체 후 재창단이라면서 계보가 단절된 신생구단이라는 '''모순'''이 발생했던 이유는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막장 상황'''에 기인하는데, 우선 하이닉스가 진작에 GG를 친 상황에서 근근히 이어지던 범현대가의 지원도 끊긴 2007년의 유니콘스는 순전히 KBO의 자금지원으로 운영되었다. 2001년과는 달리 하이닉스는 인수금을 내놓으라고 큰소리 칠 상황이 아니었던 것. 또한 자금력이 빈약했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는 재창단의 적절한 예와는 달리 KBO 가입비 120억 원의 분납을 조건으로 유니콘스의 인적 자산, 즉 선수단은 대부분 고용승계하는 대신, 물적 자산 은 포기하고 외형상 '''별개의 법인'''으로 신생구단을 탄생시키겠다는 제안을 걸었다. 밑에서도 언급되겠지만 당시 이장석은 현대의 승계보다는 신생구단의 창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결국 야구팬들이 바라던 대기업의 인수도 아니었고 재창단이라 부르기도 뭔가 미묘한 모습이 되긴 했지만 사실상 유니콘스의 명줄을 쥐고 있던, 그리고 아무도 야구단을 인수하지 않으려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8구단 운영의 파행은 막아야 했던 KBO가 센테니얼의 제안에 콜을 부르면서 유니콘스의 해체와 함께 히어로즈가 창단된 것. 어찌 되었든 이로 인해 히어로즈와 삼청태현의 연계성은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근데 사실은 이것이 단순히 자금력 부족 때문에 센테니얼에서 먼저 제안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다. KBO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은 팀만 해체되어서 8구단 리그가 7구단으로 바뀌게 되는것이다. 실질적으로 같은 팀이지만 공식적으로 역사와 빚을 인수하지 않는 상황이 생긴다고 해도 8구단 체제를 유지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게 답이다. 만약 청보-태평양 때나 MBC-LG 때처럼 넘긴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현대 유니콘스의 주주인 하이닉스가 운영권을 양도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법정관리에 들어갈 정도로 회사가 어려웠던 하이닉스 측에서 초기투자비용 운운하며 양도 비용을 요구하게 될 경우 법적으로는 권리가 있으므로 그 돈을 줘야 된다.[35]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안 팔리는데 인수 비용이 올라가게 되는 건 둘째치고, 현대가 저 지경이 될 때까지 쳐다보지도 않아서 KBO 기금으로 운영했건만, 구단 팔린 뒤에는 하이닉스가 인수 비용을 챙겨가는 꼴이 되는데, 이건 상식적으로 봐도 기존 구단들이나 KBO가 도저히 찬성할 수 없었다. 실제로 많은 유니콘스 팬들의 생각 과는 달리 '''2007년 kt는 고작 60억원대의 가입금에 해체 후 재창단 방식으로 KBO와 합의를 보았다.''' 금액으로 따지자면 센테니얼은 오히려 kt의 2배인 120억을[36] 가입금으로 지불했으니 센테니얼이 자금부족으로 승계실패 운운은 전혀 근거가 없는 소리다. 결국 센테니얼이 아니었어도 어찌 되었든 삼청태현 계보의 단절은 예정된 결말이었다는 소리다.
그리고 SK 와이번스는 2000년에 현대에서 '인천 야구의 적자'로서의 상징성을 갖고 있던 김경기를 데려오고,[37] 2002년 8월에는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이벤트성 유니폼 데이를 펼치면서 '''삼미 유니폼'''을 모티브로 한 이벤트 유니폼을 선보이는 등[38]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으로 야구 자체에 발길을 끊은 인천시민의 발길을 야구장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고생한 결과 SK표 스포테인먼트가 정착하고, 김성근 감독 체제 첫 해에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등에 업고 점점 인기를 높여가고 있었다.
4.1. SK의 태평양 데이 행사와 그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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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가 2008년 5월 4일 문학야구장에서 '''태평양 데이'''를 실시했다. 그것도 하필이면 '''우리 히어로즈'''를 상대로. 이 행사는 SK가 KBO에만 행사의 사전 협의를 하고 히어로즈 측에는 통보하지 않았던 일방적인 행사였다.[39]
이날 마침 히어로즈-SK 전의 MBC SPORTS+(당시 MBC ESPN)중계방송 해설로 나왔던 박동희는 SK의 행동을 '''동북공정 '''이라고 하며 크게 깠다. 안 그래도 미묘한 관계이던 히어로즈 팬들은 '태평양의 후신은 현대인데 이게 무슨 소리냐?'며 크게 반발, SK의 올드 데이 이벤트에 항의하는 성격의 걸개를 들고 온 히어로즈 팬들도 있었다. 반대로 SK 팬들은 '태평양 돌핀스는 인천야구 역사인데, 없어진 팀 추억하자는 뜻에서 한 이벤트에 서울 신생팀에서 뭔소리를 하냐?'고 맞대응했다.
1994년 태평양 돌핀스를 무너트린 김재현[40] 이 태평양 유니폼을 입고 있고, 그러한 모습을 이숭용, 전준호[41] 등 태평양 시절부터 선수 생활을 해왔던 히어로즈의 선수들이 지켜보는 상황은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42]
어찌됐든 이 행사는 인천 연고지 팀으로써 SK를 응원했던 팬들에게는 좋은 평을 들었던 반면 히어로즈 팬들에게는 악담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양 팀 팬들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43] 결국 SK 입장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꼴이라 군소리 못하고 두 눈 뜨고 보고만 있어야 했다.
한편 이 사건 이후 히어로즈의 행보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창단 초기 히어로즈의 구단주 이장석은 히어로즈가 신생 서울팀으로 비춰지길 바라고 있었다.[44] 물론 히어로즈야 과거 유니콘스가 사용했던 KBO의 기금 채무를 탕감한다는 조건 하에 법적으로는 삼청태현의 기록을 이어받지 못하는 별개의 팀으로 창단되었다는 점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낯선 지역에 창단한 신생구단이 안고 가기에는 리그 최강팀으로 불렸던 유니콘스, 그리고 현대란 상징은 현실적으로 부담스러운 멍예인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삼청태현은 전통적인 인천 연고 구단으로 서울 신생팀으로 시작하려던 히어로즈 입장에서는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침몰하는 난파선인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현대 유니콘스에 남았던 김시진을 위시한 코칭스탭들을 대거 잘라버렸으며[45] , 전준호와 같이 연봉의 고하를 막론하고 현대색이 짙으면서 은퇴가 가까운 선수들을 푸대접하거나, 아예 그냥 방출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오히려 이러한 '현대색 지우기'는 히어로즈 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던 구 현대 팬들의 반발과 팬이탈을 불러왔었고[46] , 그런 구단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것이 위의 태평양데이 이벤트였다.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삼청태현 계보에 대한 논란 역시 재점화되었고, 이에 대한 히어로즈 구단의 태도 역시 이 시점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9년 조태룡 단장이 부임하면서 팬들의 입장을 수용하여 삼청태현 역사의 필요성을 주장, 구단주 이장석을 설득해 현대의 마지막 감독이었던 김시진을 다시 감독으로 선임하였고, 이후 목동구장 전광판을 통해 히어로즈가 삼청태현의 역사를 이어받았음을 알리는 한편, 2009년 9월 삼미-청보-태평양의 유니폼 모양의 LED 배지를 만들어 판매하고 구단 홈페이지에 삼청태현 히스토리를 실어놓았지만, 한편으로는 트레이드 절대 불가라던 황재균을 팔면서 뜬금없이 황재균은 히어로즈 고유 프랜차이즈가 아니라는 드립을 쳐서 팬들의 속을 태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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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당시 목동구장 전광판의 모습. 별도의 설명이 없기에 흔히들 조작된 사진이라는 말과 히어로즈가 문구만 적당히 바꿨다는 주장이 상반되어 나오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두 모습은 모두 실존했다. 정확히는 전광판에 '''번갈아서''' 나왔다.[47] 어떻게 보면, 구단측이 삼청태현의 계보 승계에 대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태도를 보였던 당시의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짤방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팬들의 반응은 차라리 아예 쳐낼거면 확실하게 쳐내던가 아니면 확실하게 후신이라고 얘기하던가 둘 중 하나만 하라는 평이 줄을 이었다.
이후에는 완전히 갈피를 잡은 듯, 태평양의 최후의 선수이자 현대의 상징이였던 이숭용을 한 팀에서만 2,000경기를 뛴 선수라고 소개하며 성대하게 은퇴식을 치러주었으며, 당시 스포츠 언론 역시 '최초로 한 팀에서만 선수 생활 하면서 2천 경기 출장'이란 타이틀을 붙여 이후 히어로즈 팬덤이 스포츠 언론계도 태평양-현대-히어로즈을 하나의 계보로 간주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하였다. KBO 역시 공식보도 자료로 저 내용을 돌렸는데, SK에서조차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정작 문제는 이후 인천야구의 계보에 대한 방송에서 당시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선수 본인이 이런 발언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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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써져있던 것과는 달리 선수 본인은 '''태평양 - 현대 - 히어로즈을 한 팀으로 여긴다.''' [48] 다만 자신의 팀이 태평양 - 현대 - 히어로즈로 바뀌는 과정에서 연고지가 각각 인천-수원-서울로 옮겨지는 바람에 이숭용 본인은 선수생활을 오직 한 팀에서만 보냈는데도 딱히 크게 소속되는 연고지(뿌리)가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낸 것이다. 원본 영상. 연고지에 대한 이숭용의 회한이 잘 나타나 있다.
2013년 시즌 이후에는 염경엽 감독을 선임하게 된 배경으로 염 감독이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출신이기에 선임했다고 이장석 사장이 직접 언급했다. 게다가 과거 현대 유니콘스의 고문이었던 현대해상의 정몽윤 회장은 후임 감독으로 박흥식 당시 타격코치를 원했다고. 현대해상의 정몽윤 회장은 현대 유니콘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현대가 해체된 이후에도 2010년부터 계속 넥센 히어로즈의 스폰서를 해왔다. 다만, 2017년에 손을 끊고 지금은 범 현대가인 KIA 타이거즈에 광고를 집행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은 너무 안타까운 비극'''이라고 볼 수 있다. 비유하자면 이렇게 갈라진 팬들은 한때 '''같은 한 지붕에 있던 사람들 사이'''였는데 말이다.[49] 최소한 히어로즈가 삼청태현의 계보를 이었다는 것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연고지 이전 직후 현대를 응원했고, 지금 히어로즈를 응원하고 있는 인천 야구팬들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키움이나 SK나 어느 쪽이라도 삼청태현과 공식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현대라는 구단이 해체된 이상 키움은 삼청태현의 후손일 수 없으며, SK는 현대의 과거 연고지에 있는 팀일 뿐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이 맞다. 굳이 따지자면 약 20년간 그들과 함께 했던 인천 야구 역사의 일부로 봐야 할 것이다. 해체 후 재창단이라는 방식으로 창단한 뒤 연고를 옮긴 구단이 어떻게 이전 연고지에 있던 팀의 역사를 계승할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이전 연고팀과 아무런 상관 없는 구단이 이전 주인이 떠난 연고에 들어왔다고 어떻게 이전 연고지 구단과의 추억을 기념할 수 있는가? 사람을 이었다고 해서 인천 야구의 역사를 통째로 다른 연고지로 가져갈 수 없는 일이며, 마찬가지로 연고지를 이었다고 해서 타 구단 선수들을 주축으로 신생 구단을 창단한 것인만큼 인천 야구 역사로써의 기념은 가능하더라도 엄연히 다른 팀일 뿐이다.
4.2. 넥센 히어로즈 때문에 산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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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양측의 갈등은 2014년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2014년 9월 '넥센 히어로즈 때문에 산다'라는 책[50] 이 출판되었고 히어로즈 구단의 입장에 동조하여 '넥센의 역사는 삼청태현을 계승한다'라고 나오는 바람에 양측에서 각각 '서울 신생구단인 히어로즈가 인천야구의 역사인 삼청태를 지들거라고 겆북공정을 시도한다','니들은 삼청태 자격없는데 웬 참견이냐?' 등으로 논쟁이 일어나는 중이다. 사실 히어로즈 팬덤에서도 좀 억울한 게, 김은식 작가가 쓴 다른 팀의 'XX 때문에 산다' 시리즈와 달리 '넥센 히어로즈 때문에 산다'만 고유라 기자가 저술했고, 책의 저자인 고유라 기자는 이 시기 한창 '코유라'[51] 로 불리며 혀갤에서 까이고 있던 판이었기 때문. 당장 저 책이 나오자마자 혀갤에서는 삼청태현 부분을 포함해 이 책을 냄비받침 취급했고 고유라 기자에 대한 평가가 조금은 회복된 2015년 현재도 해당 책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 게 없다.
5. 그럼 후계자는 누구인가?
히어로즈 팬덤의 경우 현대가 망한 뒤 인적 자원을 물려받았으니 히어로즈가 삼청태현의 적통자라는 주장을 하며, 실질적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꽤 많은 편이다.“정확히 10년 전인 2006년 사업을 하기로 결의하고 2007년 회사를 설립해 2008년 서울 히어로즈를 창단하게 됐다. '''우리 구단의 역사의 효시가 10년이라 생각한다.'''
SK 와이번스 팬덤은 현대와 한국시리즈까지 치러 본 마당에 SK가 현대를 계승했다고까지는 못하고 어중간하게 '인천에 있었던 팀이라면 모두 인천 야구의 역사'라 하며, 수원으로 이전하기 직전까지의 삼청태현 역사에 대해 최소한 인천의 야구팬들이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잘라 말하자면 삼청태현은 현대 유니콘스를 마지막으로 사라진 구단으로, 어느 구단도 계승할 수 없다.'''
히어로즈가 인적 승계를 근거로 삼청태현 족보의 계승자라는 논리는 구단이 해체한 뒤 새로 창단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정식으로 인수했다면 애초에 이런 논란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프로 스포츠 팀은 당연히 팀의 연속성이 우선이며, 실제로 기존 구단을 해체한 후 재창단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팀과 연고를 이전하며 역사를 이어온 스포츠팀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이 논쟁에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은 두 팀 모두 과거 팀들을 해체한 뒤 창단했다는 것이다.[52]
같은 이유로, SK 와이번스는 인천 야구의 계보는 이을 수 있지만 삼청태현의 후계자는 될 수 없으며, 삼청태현이 인천에 머무를 동안 활약했던 선수들 역시 SK와는 별개로 취급되어야 한다. SK 와이번스는 쌍방울 선수들을 주축으로 창단했지만 스스로 신생팀 창단을 선택했기에 삼청태현과는 무관하며, 그들에게 삼청태현은 그저 현재 연고지에 있었던 사라진 팀이자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같은 리그에서 뛰었던 팀일 뿐이다. '연고지가 우선이다' 라는 주장은 팀의 연속성이라는 요건에서 본다면 전혀 설득력이 없다. 프로 스포츠 구단에게 연고지 이전은 지금도 종종 있는 일이고, 연고지를 기준으로 팀의 족보를 정의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연고지를 따지기 이전에 이 팀들의 역사는 공식 해체로 끝났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키움 히어로즈는 현대 유니콘스 선수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구단을 만든 것이니, 현대 유니콘스와 연관성을 강조하는 수준까지만 가능하고 팀 역사나 그 역사 소유권까지 주장할 수는 없다. SK 와이번스는 쌍방울 레이더스 출신 선수들을 기반으로 만든 신생 구단이며, 삼청태현이 경기를 했던 지역에 자리를 잡고 야구를 한다는 사실 외에는 삼청태현과 연관성이 없다. 이 논쟁은 삼청태현의 계승자라는 키움 히어로즈 일부팬덤과 삼청태현을 왜 너희들이 가져가냐는 인천 야구 팬덤 사이의 우기기 논쟁이다. 이 문단의 역사 역시 객관적인 사실만 남기려는 사람들과 그 사실 기록조차 조금이라도 자신들 유리한 쪽으로 왜곡하려는 양 팬덤의 누더기 싸움이었다.
삼청태현은 '''삼청태현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추억'''으로 남겨두고, 신생 구단들은 과거는 잊고 '''신생 구단만의 역사를 써나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2019시즌 기준으로 SK는 창단 '''20년차'''가 되었으며, 2017년 18년차가 된 이후 이미 인천야구 역사의 '''절반 이상'''이 되는 시간이다.[53] , 키움 역시 창단 '''12년차'''가 되었다. 이 기간동안 '''삼청태현을 응원하던 기존 팬들의 이탈'''[54] 및 '''삼청태현의 추억이 없는 신규 팬덤의 유입'''[55] 등으로 팬층이 물갈이되면서 양 구단 모두 굳이 삼청태현을 이용한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 SK는 인천 연고지를 강조하는 마케팅에 집중할 뿐 삼청태현에 대한 마케팅은 태평양 데이 이벤트 이후 더이상 관심이 없다. 키움 역시 넥센 시절 2017 시즌 캐치프레이즈[56] 에서 볼 수 있듯이 굳이 삼청태현에 대한 추억팔이 없이 자신들의 역사만으로도 충분히 마케팅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MBC 청룡을 인수한 LG 트윈스나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한 KIA 타이거즈처럼 키움이 현대를 인수해서 창단했다면 삼청태현의 역사는 당연히 히어로즈의 것이다. 이장석이 그 때 판단을 잘못했다고 후회하고 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며, 당시엔 해체 후 신생 창단이라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애초에 현대가 인천을 떠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일부 팬들은 해외의 특이한 사례를 들고 오기도 한다. NBA팀인 샬럿 호네츠의 연고지 이전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샬럿 호네츠가 2002-03 시즌을 앞두고 뉴올리언스로 연고지를 이전을 한 뒤, 샬럿의 시민은 NBA팀을 돌려달라고 사무국에 매달렸고 결국 2004년에 NBA의 30번째 팀인 샬럿 밥캣츠를 이 지역에 새로 창단하게 되었다. 이 팀의 현재 구단주는 마이클 조던. 뉴올리언스로 간 호네츠는 2013-14 시즌을 앞두고 팀 이름을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로 개명했고, 이 때를 놓칠세라 샬럿 밥캣츠는 예전 이름인 호네츠를 되찾았다. 이 때 펠리컨스와 밥캣츠 사이에 삼청태현 논란과 비슷한 족보 문제가 발생했는데, 밥캣츠는 샬럿 시절의 호네츠 역사(1988~2002)를, 펠리컨스는 뉴올리언스 시절의 호네츠 역사(2002~2013)를 가져가는 방향으로 족보를 정리했다.
족보 정리 방법에 관한 의견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1번안은 그냥 이대로 두는 방안이다. 또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고. 현재도 이렇게 지내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 SK는 그들만의 역사를, 히어로즈도 그들의 역사를 쌓아가기 때문에 점점 과거팀은 추억에 남고 논쟁은 사그라 들것이다. 애초에 SK는 자신들의 연고지에 있던 과거팀 역사를 이어받을 자격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사실 방안이랄 것도 없는데, 이미 공식적으로 인수를 하지 않아서 끝난일이다. 팬들만큼 팬심이 보이지 않는 구단들이 굳이 논란에 끼어들 생각을 하진 않는다.1. '''지금 이대로 두 팀 모두 공식적으로 삼청태현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포기한다.'''
1. SK가 쌍방울 역사를 잇고 싶으면, 키움이 삼청태현을 잇고 싶으면 각자 사무국이나 타구단에게 지금이라도 당시 역사를 잇기 위해 줬어야 하는 액수 정도를 내고 인정을 받아낸다.
1. SK 와이번스는 삼청태와 현대 유니콘스 인천 연고 시절의 역사(1982~1999)를 가져간다. 키움 히어로즈는 인천을 떠난 2000년 시즌 부터의 현대 유니콘스 역사(2000~2007)를 가져간다.
1. SK 와이번스는 삼청태 역사(1982~1995)를 가져가고, 키움 히어로즈는 현대 유니콘스 역사(1996~2007)를 가져간다.
2번안은 늦었지만 역사를 정식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당시 돈을 주고 인수 할 수 있었지만 돈이 없거나 쓰고 싶지 않아서 역사를 잇지 않고 포기했던걸 지금 사무국에 돈을 내고라도 공인받는 방법인데, 두 구단 모두 공짜면 모를까 최소 수십억의 비용을 들이면서 역사를 얻으려고 할리가 없다는게 중론 of 중론.
3번안은 샬럿 호네츠의 사례와 비슷하게, 연고 역사를 기준으로 족보를 정리하는 방안이다. 결론을 말하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두팀이 삼청태현을 욕심낸다고 가정을 해도 돈을 주지 않는 이상 역사를 서로 쪼개먹는것은 리그나 타팀이 인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자기들끼리 주장해봐야 비웃음만 산다. 해외사례의 존재가 인정해줄 근거가 되는것도 아니다. 게다가 현대 유니콘스의 연속적인 역사를 연고지에 따라 마음대로 자르고, 선수구성등 실질적인 연속성을 무시하는 기계적인 방안이라 공감받지도 못한다.
4번안 또한 억지라서 불가능하다. 현대는 신생팀 창단이 아니라 정식으로 비용 들여가면서 삼청태를 인수하였다. 이후에 SK가 같은 지역에 들어온 신생팀이 마음대로 가져갈수도 없는 일이다. 삼청태현은 하나의 팀이었다. 지금 사라진 팀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필요한만큼만 잘라간다는것을 인정해줄리가 없다.
현실적인 방안은 1,2번 뿐이고 나머지는 지역이 같으면 과거 역사를 가져올수 있다는 발상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과거 자신의 지역에 있던 사라진 팀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수준이면 모를까 억지로 가져오는것은 공감 받지 못한다.
그리고 각 구단 고위층이나 KBO에서는 이런것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으며, 두 팀 다 역사를 얻기 위해 지금이라도 돈을 쓰는 행위는 상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팬들만 난리인 셈이다.
5.1. 히어로즈 팬덤 관점
히어로즈의 경우 현대가 망한 후 현대의 기존 선수를 승계하였으므로 적통자라는 주장이다. 히어로즈의 입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삼청태현이라는 계보의 마지막 현대 유니콘스를 요상한 형태일지라도 계승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으며, 현대 선수단이 히어로즈로 이어진 것이 그 근거이다. 키움 히어로즈 팬덤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연고지라는 지역 밀착적인 형태가 존재한다고 해도 연고지 이전이라는 요소를 무시하고 태평양 지역적 요소를 이유로 남의 팀을 기념한다고 하는 점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
만약 지역을 바꾸었다고 해서 족보가 끊어진다고 하면 지금 현대 유니콘스 항목은 '현대 유니콘스/인천', '현대 유니콘스/수원'과 같은 식으로 나뉘어야만 할 것이다. 현대가 연고지 이전을 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의 애정을 저버린 것은 맞다. 하지만 스포츠의 역사는 결국 팀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이전 팀에 있었던 인적 구성을 계승했다는 명목이 있는 히어로즈는 적어도 계보에 대한 구색은 갖춘 셈이다.
5.2. SK 와이번스 팬덤 관점
SK 와이번스 팬덤의 경우 삼청태현의 역사 자체를 이어받는다는 주장은 일절 하지 않고 있으며,[57] 그 대신 인천 연고지 야구팀으로써 삼청태현과의 추억을 공유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태평양 데이 같은 행사의 경우에는 단순히 '인천 연고지 야구팀' 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한 행사이며, 이러한 전 연고지 팀의 유니폼을 입고 하는 행사는 메이저리그에도 많이 존재하기에 역사 왜곡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SK는 선수단의 인적 구성이 쌍방울이라는 비인천 출신을 주축으로 시작했지만, 이후에도 팀 구호, 인천 출신 선수나 인천 연고팀 프랜차이즈 영입과 같은 여러 방법을 통해 인천 연고로 뿌리내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58] 특히 삼청태의 전성기 시절 지도자인 김성근 감독이 SK의 감독에 재임하면서 3회 우승, 1회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SK의 전성기를 이끌면서 인천 야구팬들 대다수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분명히 현재의 인천 연고구단은 SK이며, 삼청태 등 인천 연고구단의 역사를 포함한 인천지역 야구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키움 히어로즈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삼청태현을 이어받을 수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관점이며 삼청태까지는 인천 야구의 역사라는 관점도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프로 야구는 다른 프로 스포츠와 달리 지역 연고가 매우 잘 정착되었고 각 팀의 팬층이 지역 정서와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합당하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천 야구 팬덤은 현대를 이미 공중분해된 팀으로 여기며 그 역사에 관심도 없다. 구단 입장에서도 인천 브랜드를 입히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야반도주한 현대에 관심을 가질리도 없고.
5.3. 총평
사실 저 두 팀 팬들이 어떻게 싸우든 간에 이 사정을 아는 야구 팬들은 '''냉정하게 잘라 말하자면 삼청태현의 계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고 두 팀 팬들이 어떻게 싸우건 간에 당연히 이게 가장 맞는 말이며 이게 히어로즈 구단의 창단 연도를 2008년으로 표기하고 있는 '''KBO의 공식적인 해석'''이다.
"현대 기아니깐 기아가 현대 후신이다"라는 농담도 있을 정도로[59] '''삼청태현의 역사는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하며 끝났고''', 키움 히어로즈는 '''현대 유니콘스의 인적자원'''만을 인수했을 뿐이며, SK 와이번스는 현대가 떠난 인천의 빈 자리를 이어 '''인천'''야구의 역사를 이었을 뿐이지 삼청태현이라는 구단의 역사를 이어간 것은 아니다. 이미 삼청태현은 족보와 땅문서, 핏줄까지 다 찢어져 사라진 멸문한 가문이고, 빈 땅에서 서로 사후 소유권을 주장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것. 이라고 적혀 있는 기존 내용은 사실과 다르고, SK는 현대가 수원으로 연고지를 이전하던 당시 현대로부터 인천 연고권을 연고권 배상금 54억원을 주고 샀다. 즉 SK는 별문한 집의 빈땅에 들어와 소유권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현대로부터 정식으로 시세대로 집값을 주고 집을 구매한 것이다.
그저 어제의 유니콘스의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팬들이 오늘의 히어로즈를 응원하고, 인천의 야구단을 사랑했던 인천 야구 팬들이 연고지를 떠난 어제의 유니콘스 대신 오늘의 와이번스를 응원하는 것일 뿐이다. '''삼청태의 수난 가득한 역사와 현대 유니콘스의 영광의 V4를 비롯한 수많은 기록은 공식적으로 모두 단절되었고 이젠 사라진 팀이다.''' 단지 옛 인천야구 혹은 삼청태현을 응원하던 팬들의 가슴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지 공식적인 계승, 족보, 계보 따위를 따지는 건 이미 팀이 해체되고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소용없는 일이다.
히어로즈 구단이 삼청태현의 역사를 자칭 구단의 역사의 일부분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히어로즈가 우승했을 때 유니콘스의 기존 4회 우승을 포함한 n번째 우승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며, 구단의 공식적인 역사는 2008년에 시작하는 것이 자명하고, 그저 삼청태현의 정신적 후신이라는 명분을 글자가 아닌 마음속으로만이라도 가진다 해도 팬들과 구단에게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SK 와이번스 역시 인천에 있었던 삼청태현의 존재 자체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팀들의 성적과 역사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데 이미 SK 구단은 본인들의 우승 경력을 '''4회'''[60] 로 이야기하고 있다. 인천의 SK 팬들 역시 비록 성적은 거의 늘 하위권이었으나 인천에서 본인들이 열정적으로 응원했던 옛날 그 팀들에 대한 향수를 지금처럼 가끔 그 시절 유니폼들을 통해 느끼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것이다.
현장 야구인들의 경우엔 히어로즈를 현대 유니콘스의 실질적인 후신으로 여기고 있는 편이다.[61] 주로 인터뷰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지금은 은퇴한 (히어로즈가 아닌 타 팀 소속의) 모 유명 야구선수의 경우엔 현역 시절 넥센 유니폼에 사인해달라는 히어로즈 팬의 사인요청에 자기는 현대를 싫어한다며(....) 거절한 일화도 있다.[62] 현대를 대신하여 제8구단으로 들어온 것과 무엇보다 선수단을 계승받은 것이 히어로즈가 현대의 후신 구단으로 여겨지는데 큰 요소가 된 듯 하다. 재창단 방식이긴 해도 형태는 인수랑 별 차이없기도 하고. 야구인들이 까칠하게 인수니 재창단이니 일일이 따지진 않을 것이고. 그에 반해 삼미, 청보, 태평양의 경우엔 히어로즈와 연관되어 언급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사실 히어로즈 창단에 밑바탕이 된 현대 유니콘스가 연고이전을 하면서 인천야구의 명맥을 박살낸 장본인이 됐으니 언급하기 껄끄러운 면이 있고, 히어로즈와 삼청태랑 직접적인 연관이 그리 크지 않기도 하다. 태평양에서 데뷔한 원클럽맨 이숭용[63] 과 그 시절부터 선수들 따라 지금의 히어로즈까지 응원하게 된 올드팬들 정도.
5.4. 타 구단의 경우
쌍방울 레이더스의 경우 삼청태현과 직접적은 관련은 없고 여기에 부합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없으나 선수단 대부분이 SK 와이번스로 흡수되었다는 점이 언급되기도 한다.[64]
kt wiz의 경우 삼청태현, 'SK, 키움과는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으나, kt가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인수 우선 협상자였고, 6년 후에 유니콘스의 임시 연고였던 수원시를 연고로 팀을 창단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65] 사실 kt로 갈아타거나 신규 유입된 팬들은 현대와 수원의 연관점 자체를 부정하고 kt가 최초이자 유일한 수원의 야구 구단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수원 시절의 현대가 정착 의지가 별로 없었던 것도 한 몫 한다. 수원에서 야구하던 8년 동안 우리는 서울로 뜰거니 그 동안 1차 지명도 안하겠다며 대놓고 배째라는데 누가 응원할까? 덕분에 현대의 전성기부터 황혼기까지 수원구장은 항상 텅텅 비어 있었다. 게다가 현대가 수원에서 경기를 했을 때는 축구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전성기였으니 아무리 현대가 한국시리즈 3회 우승을 해도 수원은 축구에만 열광했다. 시대적으로 봐도 한일월드컵으로 인한 자국 대한민국이 4강 진출 신화를 썼던 시대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kt가 현대의 후신이다(...)라는 드립이 흥하고 있지만 이것은 당연히 드립이다.[66]
현대자동차그룹의 야구단인 KIA 타이거즈의 경우 일단 이름이 KIA라서 직접적으로 잘 언급되지는 않으나 사실 범 현대그룹의 계열사라서 농담삼아 ''''현 현대그룹 야구단 = KIA 타이거즈''''인 것이 언급되며 또 삼청태현 역사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면 한때 모그룹인 현대자동차그룹도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려 했다는 점도 언급된다.[67] 하지만 현기차그룹의 경우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면서 광주광역시 연고의 옛 아시아자동차의 공장도 인수했고,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건립 지원이 사실상 광주에 완전히 정착하는 의미였기 때문에 현기차그룹이 삼청태현 논쟁의 핵심 논점인 '인천야구'의 계승에 끼어드는 것은 전혀 거리가 멀다.[68] 거기다 애초에 현대 유니콘스의 모기업은 현대 기아 자동차가 아니라 하이닉스였고 이 하이닉스는 현재 SK그룹에 인수되어있다.[69]
타 종목의 예가 있다면 FC 안양이 있다. 서울 연고의 LG 치타스가 서울 공동화 정책으로 안양으로 연고를 이전해 안양 LG 치타스로 활동을 하다가 서울로 돌아가 현재의 FC 서울이 되었는데, 그 이후 안양지역에 FC 안양 팀이 새로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해체를 한 고양 KB 선수들을 승계했다는 점이 와이번스와 히어로즈가 기존팀의 해체 후 인적승계를하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거기에 대해 구단과 팬의 생각은 "치타스는 FC 안양의 전신이 아니다", "고양 KB와 FC 안양은 남남"이다. 즉, 안양 LG 치타스는 우리 지역에 몇 년 있다가 떠난 팀일뿐이고, 고양 KB 선수들을 주축으로 창단했지만 어쨌건 우리는 안양 지역에 생긴 신생팀이고 자신들의 역사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어느 관점에서 보면 뭐 이런 소리를 하냐지만, 와이번스와 히어로즈 간 갈등에서 보면 아주 깨끗하게 해결한 예 중 하나이다. 물론 FC 서울과 험악한 관계지만, 족보 가지고 싸우지는 않는다.
6. 기타
- 문학야구장 : 완공되면 현대 유니콘스가 홈구장으로 쓰려고 계획했으나 결국 현대그룹 차원으로 연고지 이전을 결정하면서 2002년에 SK 와이번스가 사용하게 된다. 참고로 현대건설이 시공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문학야구장을 비롯한 인천문학경기장 건설 공사에는 ㈜한양과 성지건설, 한진중공업 건설부문이 참여했다. 현대건설은 이 경기장의 건립 과정에 관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이 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려던 현대 유니콘스가 설계 과정에 직접 관여한 적은 있다. 현대 유니콘스가 설계에 관여했다는 것이 현대건설 시공사 참여설로 와전된 셈.
- 자신과의 싸움으로 유명한 2003년 한국시리즈는 SK팬들이 인천야구의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 현대를 족보로 언급할 때 키움 팬들이 이를 반박하기 위해 자주 쓰는 예시이며 그 어떤 SK팬도 반박할 수 없는 마법의 말. SK가 현대를 이어받은 거면 SK와 현대의 한국시리즈는 자기자신과의 싸움, 혹은 청백전이냐는 이야기. 다만 모기업이 결국에는 같은 SK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결국에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되고 만다.
- 마스코트가 슈퍼히어로 → 조랑말 → 돌고래 → 말(유니콘) 순서로 바뀌었다. 이것 때문에 역대 마스코트들을 전부 합성하면 굉장히 웃긴 마스코트가 나온다. 슈퍼 히어로가 말을 타고 한 손에 어항을 들고 있는데 그 어항 속에서 돌고래가 헤엄치는 모습이 된다.
- 넷 다 마스코트에 야구배트를 들고 있는 캐리커처가 있다.
- 결과적으로는 현대의 모기업이었던 하이닉스는 2012년에 SK그룹에 인수되었으나, 삼청태현의 복잡한 실타래를 풀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였다. 애초에 그러기 위한 기업 인수도 아니었고.
- 팀 특성상 아주 재미있는 장난성 시합을 할 수 있다. 키움 히어로즈나 SK 와이번스에서 (또는 둘을 합친 후 한쪽에 치우쳐짐 없이 골고루 나눈 다음) 선수들을 4개 조로 나눠서 각자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로 나눠서 조별리그 형식의 경기를 하는 게 가능하다.
- 공식적으로 KBO 리그에서 팀명을 가장 많이 변경한 두 팀 중 하나이다. 나머지 한 팀은 키움 히어로즈.[73] 태평양으로 구단명을 변경한 1988년부터 독보적인 횟수를 자랑했지만 2019년 넥센이 키움으로 이름을 바꾸며 공동 1위가 되었다.
- 명목상이나마 연고지에 이북 5도가 있었기 때문인지 유달리 실향민 출신 기업인들이 이 계보와 연관이 깊다. 삼미 슈퍼스타즈를 넘겨받아 청보 핀토스로 바꾼 청보식품의 김정우 회장은 부친인 김영귀 창업주가 평안남도 평양시(이북 5도 행정구역 기준) 출신인 실향민이었고, 후에 태평양 돌핀스로 이 팀을 넘겨받은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주 서성환 회장과 이 계보의 끝을 장식한 현대 유니콘스의 초대 구단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역시 각각 고향이 황해도 평산군, 미수복 강원도 통천군이었다.
7. 같이보기
- 현대 유니콘스/연고이전
- 인천 도원구장 연고팀의 사건사고
- 흥행참패동맹 - 흥참동 중 NC 다이노스를 제외한 세 팀이 삼청태현과 연관이 있다. 삼청태의 연고지를 이어받은 SK 와이번스, 선수단을 이어받은 키움 히어로즈, 연고 이전한 현대 유니콘스의 임시 연고지(수원시)를 이어받은 kt wiz. 사실, NC도 접점은 있는데, 구단주인 김택진이 과거 현대를 인수 하고자 협상을 하러 하일성 사무총장과 대화를 나눴으나 이 당시 NC의 잠재력을 무시한 KBO 수뇌부에 의해 수포로 돌아간 적이 있다.[74]
7.1. 키움 히어로즈
- 삼청태현에 관한 올드팬의 추억
- 가수 김광진은 삼미 슈퍼스타즈 때부터 삼청태현을 응원해오던 대표적인 팬이며, 지금은 SK 와이번스보다 후신격인 넥센 히어로즈를 좋아한다고 하며, 스스로를 "히어로즈 지킴이"로 자청하고 있다... 가끔 트위터에 삼청태현과 넥센 히어로즈에 대한 얘기를 올리기도 한다.(히어로즈가 넥센 스폰서를 받던 시절의 내용)
- 2008년 재창단 당시의 현대 선수단 중에선 현재 코치 2명, 선수 2명[75] 이 키움에 남아있다.[76] 심지어 장정석 전 감독도 KIA 타이거즈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후, 현대에서 기록원으로 일했으며, 역대 감독 중 김시진, 염경엽 모두 현대 유니콘스의 선수단 출신이기도 했다. 그나마 초대 감독인 이광환과 현재 감독인 손혁은 LG 트윈스 소속이였고 둘 다 삼청태현 팬들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77] 인물들이였다.
- 2017년 이장석의 재판 도중 엠스플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장석이 자신이 프로야구에 공로했음을 주장하자 검찰이 반박했는데, 그 내용이 “(이 대표가) 인수하기 전에 서울 히어로즈는 정규시즌 우승 4회를 차지한 명문 구단이었다. 그러나 (이 대표가) 트레이드를 하며 전력이 약화되며, 직원들은 광고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재미삼아 검찰이 삼청태현+히어로즈를 인정했다는 소리가 나왔지만, 사실 인수라는 단어를 해체 후 재창단으로 바꾸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인지라, 검찰이 단어 선택을 잘못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78] 물론 진지하게 검찰이 인정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 현대왕조 블로그. 글쓴이는 구 현대팬이며, 인적자원을 계승한 히어로즈를 응원하고 있다.블로그[79]
7.1.1. 공식 홈페이지 논란
과거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에 있었던 삼청태현 히스토리[80]
예전부터 여러 차례 지적받았지만, 2019년까지 홈페이지에 히어로즈 전신이라는 이름으로 삼청태현의 역사를 그대로 놔두었다. 결국 오마이뉴스와 KBReport의 기사가 올라왔고 타팀 팬들의 날선 반발이 이어지자 2019년 1월 17일 홈페이지에서 삭제되었다. 현재 연결은 되지만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삭제되었다.
현대가 키움 전신? 관계자 "제작 과정 실수…페이지 삭제할 것" 이 사건에 대한 관계자의 입장도 올라왔는데, 요약하자면 외주 업체에게 홈페이지 제작을 맡겨서 넥센 히어로즈 시절 홈페이지 구단 소개란이 그대로 넘어왔다는 소리다. 다만 해당 히스토리는 넥센 히어로즈 시절에도 있었다. 키움으로 넘어와서 해당 히스토리가 새로 적힌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 외에도 구단 소개에 '히어로즈의 역사는 20년 전 프로야구 원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적힌 구절이 있었으나 이것도 2019년 1월 17일 삭제되었고, 그 뒤에는 삼청태현의 홈구장이었던 도원구장과 수원구장이 언급된 구절이 논란이 되자 결국 구단 인사말을 새로 올렸다. 새로운 글에는 '''2008년 서울을 연고로 창단한 히어로즈 프로야구단'''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7.2. SK 와이번스
- 개그맨 지상렬, 염경환, 이혁재는 인천 토박이들로, SK의 광팬들이기도 하다. 지상렬은 인천야구 관련 다큐에 당시 팬으로 몇번 얼굴을 비춘 적이 있다. 특히 이혁재는 인천야구를 다룬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금광옥 역을 맡기도 했고 종종 SK의 시구자로 나오기도 했다. 연고 이전 당시 엄청 화냈다고 하며, 인터뷰에서 대놓고 "현대 개새끼"라고 욕을 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