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1994년/신인드래프트
1. 개요
1994년 KBO 신인 드래프트 (공식 명칭: '''1994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되었다.
2. 1차 지명
1차 지명은 1993년 11월 5일까지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1명을 뽑았다.
'''볼드체'''는 통산 WAR이 스탯티즈 기준 2 이상 되는 선수.
3. 2차 지명
1993년 11월 22일 서울특별시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개최되었다.
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 예정자, 실업팀 및 상무 소속 선수들 250명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2]
3.1. 지명방식
지명방식은 매 라운드마다 1993 시즌 성적 역순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라운드에 제한은 없지만,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꼴찌팀은 1라운드에서 2명을 지명한다.
3.2. 지명 결과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볼드체'''는 통산 WAR이 스탯티즈 기준 2 이상 되는 선수.
4. 드래프트 평가
- 전년도 신인 지명에서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던 것에 비해 지명 전부터 흉작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고, 예상대로 2차 지명에서 불과 42명밖에 지명되지 않았다. 1차 지명이 1장으로 준 후 역대 최소 지명.
- 롯데 자이언츠 : 1차 지명자인 강상수와 2차 지명에서 임수혁을 얻는 수확을 올렸다. 김종훈도 있긴 한데, 정작 김종훈은 1997년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고 나서야 포텐이 터졌다. 하지만 이해 신인 중 가장 큰 활약을 했던 선수는 고졸로 입단한 주형광. 참고로 강상수는 지명 당시에는 타자로 입단했으나, 당시 롯데 주전선수들의 상당수가 방위복무를 하는바람에 투수진의 공백을 메우고자 투수로 전업하였다.]
- 빙그레 이글스 : 망했어요. OB는 타 팀으로 이적하고 나서야 빛을 발한 선수라도 있었지, 빙그레는 이마저도 없었다. 그나마 이 때 3순위였던 전형도를 OB에 내주고 전설의 명 포수를 데리고 온 것이 위안이라고 해야할까?
- 삼성 라이온즈 : 1차 지명자인 감병훈은 폭망했지만(...) 2차 1순위로 소리없이 강한 남자를 얻었다는 점에서 다소 위안이 될 만한 드래프트라 할 수 있다. 그 외에 1990년대 말 1루수 이승엽, 2루수 정경배, 3루수 김한수와 함께 철벽 내야진을 이룬 유격수 김태균도 나름대로 활약을 했지만 2002년 롯데에 트레이드되었다.
- 쌍방울 레이더스 : 1차 지명은 별 재미를 못 보았으나, 5순위에서 외야 수비의 달인으로 유명한 그 분을 지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 외엔 2차 2라운드에서 지명되었던 유현승이 초기 2년동안 롱릴리프로 어느정도 역할을 잘 해주고 쌍방울이 해체될때까지 선수생활을 하다가, SK로 팀이 넘어간 이후에는 LG로 트레이드 되면서 안재만을 영입하게 된다. 아울러 이 해에 신고선수로 입단한 장재중과 고형욱도 그런대로 커리어를 남기게 된다.
- 태평양 돌핀스 : 향후 태평양-현대-히어로즈의 프랜차이즈 선수가 되는 분을 얻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1차 지명자인 최상덕은 2년만 뛰고 박재홍의 신인 지명권+현금과 맞트레이드되어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하였다. 그 외에 고졸 연고 자유계약으로 입단한 전준호가 포수에서 투수로 전향해 쏠쏠한 활약을 했다.
- 해태 타이거즈 : 망했지만, 빙그레나 OB보다 나은 편. 허문회는 해태 유니폼을 입고 1군에 뛰기도 전에 한대화와 함께 김상훈, 이병훈과 맞트레이드되어 LG 트윈스로 이적하였고, 그나마 박재용이 인간승리 신화를 쓰며 지명타자로서 해태의 V8과 V9를 경험해 보는 등 어느 정도 활약했다.
- LG 트윈스 :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1차 지명자인 유지현과 2차 지명 막차를 탄 서용빈, 그리고 고졸 신분으로 입단한 김재현 셋이 한꺼번에 터지면서[9] 1994년 정규리그 우승,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태평양을 스윕하며 V2를 달성한다. 그 외에 인현배는 선동열을 상대로 완봉승을 따내는 등 선발 10승 투수가 되었고, 박철홍은 필승조와 바람잡이 선발을 오가며 2000년대 초반까지 쏠쏠하게 활약한다. 최동수는 2000년대에 들어서 김성근의 손을 거치며 뒤늦게 빛을 발한다.
- OB 베어스 : 망했어요. 홍우태가 첫 해에 포크볼로 재미를 보아 3 52의 평균자책점에 7승을 기록하면서 가능성을 보였으나 결국에는 용두사미였고, 나머지들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차 지명자인 류택현은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되고 나서야 LG의 핵심 좌완 중간계투로 거듭나 버렸다. 그렇지만, 고졸 우선지명으로 선택된 심정수는 1995년 OB에서 21홈런, 1999년 31홈런, 2000년 29홈런을 기록해서 우동수 트리오를 이루었고, 현대로 이적해서는 무시무시한 활약을 해서 이승엽과 함께 2000년대를 대표하는 홈런타자로 자리매김 했다.
5. 이모저모
-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 뛰어나다고 평가받았던 선수들이 없다보니, 눈치싸움이 치열한 예년과 달리 속전속결로 지명절차가 진행되었고 불과 시작한지 1시간도 안 되어 2차 지명이 끝났다.
- 해태에 지명된 허문회와 김봉재는 지명된지 한 달도 되지 않은 12월 1일, 4대2 트레이드(해태 한대화, 신동수, 허문회, 김봉재↔LG 김상훈, 이병훈)로 LG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 서울권 1차지명 후보였던 경희대 투수 김도완은 부상 의혹 때문에 지명을 받지 못했고 뒤늦게 LG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 롯데에 4라운드 지명된 한성곤은 이미 고교를 졸업한 상태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면서 1년을 쉬었다. 1년 전에도 롯데에서 스카우트하려 했지만 대학 진학 때문에 지명하지 않았다.
- 롯데에 5라운드 지명된 한상재는 부산고에서 중퇴한 후 1년간 롯데에서 연습생으로 지내다 정식지명받았다.
- 삼성에 5라운드 지명된 이태준은 1991년 부산공고에서 중퇴한 후, 구미공단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2차 지명이 있기 1달 전에 삼성의 신인 공개테스트에서 합격하면서 정식지명되었다. 그러나 2년 동안 2군 경기에 1경기 조차 등판하지 못하며 방출되었다.
[1] 지명 시에는 타자로 입단했으나 팀 사정상 프로 입단 후 투수로 전업하였다. 당시 아마추어 야수 가운데 최대어로 꼽힌 선수였다.[2]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3] 현 NC 다이노스 전력분석관[4]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5] 현 롯데 자이언츠 감독.[6] 은퇴 이후 현재 영화배우.[7] 경남대 시절 국가대표[8] 현 원광대학교 감독[9] 이들은 이른바 '신인 트로이카'라 불리며, LG 신바람 야구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