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

 


何攀
(244? ~ 301)
삼국시대 촉나라, 서진의 인물. 자는 효흥(惠興). 촉군 비현 사람.
그의 다섯 형제는 모두 유명했으며, 젊어서 성숙하고 괄목할 만한 외모를 가졌으며[1], 촉나라를 섬겼고 약관에 군의 주부, 상계리 등을 역임하다가 주의 초청을 받아 종사가 되었다.
황보안이 하반에 대해 왕좌지재라 평가하면서 하반을 불러 주부로 삼았으며, 272년에 장홍이 익주자사 황보안을 살해하면서 대역죄를 저질렀다고 모함했다. 이 때 하반은 모친상을 당하고 있던 때로 하반은 양주로 나아가 황보안의 무고함과 원통함을 알렸으며, 왕준이 익주자사가 되자 하반은 부름을 받아 별가에 임명되었다.
왕준이 오나라의 정벌을 꾀하면서 하반은 왕준의 지시로 조정으로 가서 오나라를 토벌할 시기에 대해 헤아리게 했으며, 하반은 왕준의 지시로 양호에게 가서 오나라를 토벌할 계책을 알리고 무제가 하반이 명령을 전달하는 것이 훌륭하면서 뛰어나다고 여겨 하반에게 왕준의 군사 일에 참여하게 했다.
280년에 진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해 손호가 항복했는데, 왕혼은 왕준이 자신보다 먼저 가서 손호를 항복시킨 것에 분노해 왕준을 공격하자고 했다. 이에 하반이 왕준에게 손호를 왕혼에게 보낼 것을 권해 일을 해결했으며, 하반은 왕준의 보국사마가 되면서 관내후에 봉했다.
이어서 형양 현령이 되어 모든 일을 쉽게 처리해 명성을 얻었다가 정위평이 되었으며, 당시 제갈충이 촉의 선비라는 이유로 하반을 가볍게 여겼다가 의심되는 사건을 함께 처리한 일로 탄복하게 되었다. 선성태수에 임명되었지만 가지 않았고 산기시랑이 되었으며, 양준이 정권을 잡고 많은 사람들을 친족으로 세워 이전에 봉한 작위들을 떼어낸 것이 심해 은혜로 이를 지키려 하자 석숭과 함께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양준을 주살한 공으로 서성후에 봉하고 읍 1만 호, 비단 1만 필 등을 하사받았으며, 동생 하봉, 조카 하규도 후로 봉했다. 하반은 봉호, 비단 등 반 정도 사양하면서 남은 것은 종친 등에게 나눠서 거의 자신에게 들어온 것이 없었다.
익군교위, 동강교위 등을 지냈고 양주자사를 3년간 지내다가 대사농이 되었으며, 연주자사로 옮겨 응양장군을 더하자 하반은 이를 사양했다. 성찬, 변수 등이 직책에 임하라고 권하고 조서에서 하반에게 직책에 임하라고 했지만 하반은 병을 칭해 가지 않았으며, 사마륜이 노해 주살하려고 하자 하반은 하는 수 없이 병 중에도 부름에 응했다가 낙양에서 58세에 사망했다.
양주, 익주를 다스리는 것에 올곧아 방치된 자들을 불러들였으며, 진수, 염예, 비립 등 촉 지방의 이름난 선비들이 마을에서 비방을 당한 것이 10여 년이었고 하반은 자세한 정황을 밝혀 그들의 원통함이 퍼지는 것을 모면했다.
하반은 현직에 있으면서 가문이 매우 가난해 첩이나 음악이 없었으며, 오직 빈궁한 사람을 구제하는 일에 힘썼다.
사관은 하반에 대해 사마륜의 명을 좇아 군자된 사람으로 일에 임한 자라 볼 수 있다고 했으며, 공정해서 원통함이 퍼진 것을 많이 돌렸다고 평가했다.

[1] 이 부분은 진서가 아닌 화양국지에 있는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