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

 




'''진서
晉書
Book of Jin
'''
'''저자'''
방현령
'''시기'''
7세기
'''언어'''
상고한어
'''권 수'''
130권
'''분량'''
200년 ~ 420년 (220년)
한헌제 5년 ~ 진공제 2년
1. 개요
2. 구성
2.1. 제기(紀)
2.2. 지(志)
2.3. 열전(列傳)
2.4. 재기(戴記)


1. 개요


晉書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사마의 시절부터 동진 공제 때 동진이 멸망할 때까지 진나라 역사 기록을 담은 역사서. 24사 중의 하나다. 당나라 태종이 명하여 방현령 등 21명의 학자가 646년에 편찬을 시작하여 648년에 완성하였다. 〈제기(帝紀)〉 10권, 〈지(志)〉 20권, 〈열전(列傳)〉 70권, 〈재기(載記)[1]〉 30권으로 구성되었으며 총 130권이다. 〈서례(敍例; 서문)〉, 〈목록〉이 한 권씩 있었으나 소실되었다.
〈고조선제기(高祖宣帝紀)〉, 〈세조무제기(世祖武帝紀)〉, 〈육기육운전(陸機陸雲傳)〉, 〈왕희지전(王羲之傳)〉은 당태종이 직접 편찬에 관여하였기에 어찬(御撰)이라고도 부른다. 원래 중국에서 전 왕조의 역사서를 후대 왕조가 편찬하는 것이 관례지만 진나라 이후는 워낙에 계보가 막장이라 본래 진나라에 대한 기록은 여기저기서 쓴 18가지의 《진서》, 《진기》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사라졌고 《태평어람》, 《세설신어》, 《정사 삼국지》 주석에 다른 진나라에 대한 기록 몇몇만이 주석으로만 인용되어 남아있다. 이로서 《진서》는 유일하게 온전히 현존하는 진나라의 기록에 대한 역사서다.
진나라의 시조 사마의 시대부터 시작하니 정사 삼국지와 시대가 겹치는데, 열전이 겹치는 경우는 없지만 삼국지에서 조금밖에 나오지 않는 진나라 초기 인물에 대한 기록이 상세하게 나온 경우도 있으며, 진수의 삼국지에 지리지가 없기에 진서의 지리지를 참고하는 경우도 있다. 또 서진, 동진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까닭에 오호십육국시대, 남북조시대도 포함된다.
진서는 이미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사서로서 평가가 낮았으며 진서의 사료취사는 그다지 엄밀하고 세밀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사학자들의 고찰에 따르면 진서가 수찬(修撰)되던 시기엔 진대의 문헌이나 1차 사료가 수없이 많이 있었고 역대사 외에도 많은 량의 조령, 의주(儀注), 기거주(起居注), 문집 등이 있었다. 하지만 진서의 편찬자들은 대부분 제나라 학자 장영서(臧榮緖, 415~488)의 《진서晉書》[2]를 저본으로 삼아 의존하였고 동시에 필기소설들에 기재된 것을 하나로 합쳐 겉치레로만 잘 꾸며 더하는 데 그쳤다. 그 외 올바른 각 사가의 진나라 역사와 관련된 사료를 더하여 참고했지만 충분히 이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나라 대에 책이 나온 후, 즉시 당대 사람들의 구체적인 지적을 받았다. 당나라의 유지기(劉知幾)는 진서가 어림(語林), 세설신어(世說新語), 유명록(幽明錄), 수신기(搜神記)와 같은 책에 기록된 괴이한 내용까지 수록한 것을 지적하고, "분량만 많으면 무조건 좋은 자료고 수집이 넓고 좋다고 하는 태도다. (이런 건) 소인은 기쁘게 할 수 있겠지만, 군자가 비웃고 있다.", "사료의 선별취득을 중시하지 않고 문자의 화려함만 추구한다." 하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구당서》와 《신당서》의 〈방현령전〉에서도 "《진서》를 편찬한 사관은 문학인이 많았기 때문에, 괴이한 기록을 적고, 이상한 말을 모으는 것을 좋아했을 뿐, 그 기술 태도는 기발하고, 정확한 사실인지 판단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책부원구(冊府元龜)처럼 당대를 다루고 있는 다양한 사료와 잔존하는 기록을 망라하여 고증해 모은 것 자체는 칭찬한 평가도 있다.
21명이나 되는 학자들이 공동으로 총괄자 없이 제각각 집필한 탓인지 기존의 사서와 비교하면 개인이 집필하고 편찬한 사서와 달리 엄밀한 고증을 거치지 않아 전후 기록이나 전기간 기록들 사이에 모순된 서술도 있다. 진서는 후대에도 평가가 낮아서 청나라 시대 역사학자 장증은 저사 《독사거정(讀史擧正)》에서 진서의 오류, 틀린 것 450여 부분을 찾아내었고, 청나라 시대 《이십이사고이(二十二史攷異)》를 지은 전대흔은 "진서는 집필하고 편집한 것이 잘못되었다."라고 평가했다. 이 책을 보완한 것으로 《진서음의晉書音義》(3권), 중화민국 시대인 1928년 오사감(吳士鑑), 유승간(劉承幹)이 각종 자료를 주석으로 추가해 지은 《진서각주晉書斠注》(130권) 등이 있다.
이렇게 역사서로서 신뢰성이 낮은탓에 일각에선 아예 진나라 역사를 제대로 보고 싶으면 자치통감에서 위기 10권, 진기 40권 부분이 바로 진서가 다루는 부분인데 이 50권 분량으로 진서 대신 진나라 역사를 개략적으로 보고 진서 자체는 세부적인 내용을 참고하고자 할 때 정사 삼국지 같은 다른 사서들과 교차검증해 가면서 봐야 한다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당나라 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나라의 황제들의 이름을 피휘하였다. 예컨대 당고조 이연(李淵)의 이름을 피휘하느라 공손연을 공손문의(公孫文懿)로 표기하였다.

육조시대를 다루는 송서, 남제서, 양서, 진서, 남사엔 유독 중국의 여느 정사에 비해서 여자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정사 삼국지후한서 같은 비슷한 시대를 다룬 다른 기록 같으면 성씨와 아버지가 누군지만 기록에 남았을 황후들 이름이 진서에서는 본명으로 많이 남기도 했다는 것이다. 당나라 시기에 쓰여진 진서도 이런 전철을 그대로 밟은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삼국지 관련 컨텐츠에 종종 나오는 장춘화, 왕원희, 양휘유, 양염 등. 흔히 창작물에서 위촉오 여인들의 이름으로 쓰이는 장성채, 견희 등은 실제로는 성씨만 기록에 남아있고 이름은 후대에 임의로 붙인 것인 반면, 위와 같이 진서에 실린 여인들은 전원 본명이 맞다. 당장 나무위키 문서들만 봐도 삼국시대(중국) 황제들의 황후들은 성씨만 남아있는 게 많은 반면 남조시대 황제들의 문서들을 찾아보면 황후들의 휘가 기록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을 완성한 직후인 648년 신라김춘추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3] 김춘추가 국자감 견학을 요청하자 김춘추의 관심사를 안 태종은 본인이 직접 지은 비문들과 함께 이 책을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2. 구성




2.1. 제기(紀)


진서(晉書) 제기 구성
권1
제기제1
帝紀第1
선제기
宣帝紀
사마의(司馬懿)
권2
제기제2
帝紀第2
경제문제기
景帝文帝紀
사마사(司馬師), 사마소(司馬昭)
권3
제기제3
帝紀第3
무제기
武帝紀
사마염(司馬炎)
권4
제기제4
帝紀第4
혜제기
惠帝紀
사마충(司馬衷)
권5
제기제5
帝紀第5
회제민제기
懷帝愍帝紀
사마치(司馬熾), 사마업(司馬鄴)
권6
제기제6
帝紀第6
원제명제기
元帝明帝紀
사마예(司馬睿), 사마소(司馬紹)
권7
제기제7
帝紀第7
성제강제기
成帝康帝紀
사마연(司馬衍), 사마악(司馬岳)
권8
제기제8
帝紀第8
목제애제폐제기
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司馬聃), 사마비(司馬丕) , 사마혁(司馬奕)
권9
제기제9
帝紀第9
간문제효무제기
簡文帝孝武帝紀
사마욱(司馬旭), 사마요(司馬曜)
권10
제기제10
帝紀第10
안제공제기
安帝恭帝紀
사마덕종(司馬德宗), 사마덕문(司馬德文)

2.2. 지(志)


진서(晉書) 지 구성
권11
지제1
志第1
천문(天文)
권12
지제2
志第2
권13
지제3
志第2
권14
지제4
志第4
지리(地理)
권15
지제5
志第5
권16
지제6
志第6
율력(律歷)
권17
지제7
志第7
권18
지제8
志第8
권19
지제9
志第9
예(禮)
권20
지제10
志第10
권21
지제11
志第11
권22
지제12
志第12
악(樂)
권23
지제13
志第13
권24
지제14
志第14
직관(職官)
권25
지제15
志第15
여복(輿服)
권26
지제16
志第16
식화(食貨)
권27
지제17
志第17
오행(吳行)
권28
지제18
志第18
권29
지제19
志第19
권30
지제20
志第20
형법(刑法)

2.3. 열전(列傳)


권31 列傳第1 后妃上 선목장황후(宣穆張皇后), 경회하후황후(景懐夏侯皇后), 경헌양황후(景獻羊皇后), 문명왕황후(文明王皇后), 무원양황후(武元楊皇后), 무도양황후(武悼楊皇后), 좌귀빈(左貴嬪), 호귀빈(胡貴嬪), 제갈부인(諸葛夫人), 혜가황후(惠賈皇后), 혜양황후(惠羊皇后), 사부인(謝夫人), 회왕황태후(懷王皇太后), 원하후태비(元夏侯太妃)
권32 列傳第2 后妃下 원경우황후(元敬虞皇后), 명목유황후(明穆庾皇后), 성공두황후(成恭杜皇后), 강헌저황후(康獻褚皇后), 목장하황후(穆章何皇后), 애정왕황후(哀靖王皇后), 폐제효유황후(廢帝孝庾皇后), 간문선정태후(簡文宣鄭太后), 간문순왕황후(簡文順王皇后), 효무문이태후(孝武文李太后), 효무정왕황후(孝武定王皇后), 안덕진태후(安德陳太后), 안희왕황후(安僖王皇后), 공사저황후(恭思褚皇后)
권33 列傳第3 왕상(王祥), 정충(鄭沖), 하증(何曾), 석포(石苞)
권34 列傳第4 양호(羊祜), 두예(杜預)
권35 列傳第5 진건(陳騫), 배수(裴秀)
권36 列傳第6 위관(衛瓘), 장화(張華)
권37 列傳第7 宗室 안평헌왕 부(安平獻王孚), 팽성목왕 권(彭城穆王權), 고밀문헌왕 태(高密文獻王泰), 범양강왕 수(范陽康王綏), 제남혜왕 수(濟南惠王遂), 초강왕 손(譙剛王遜), 고양왕 목(高陽王睦), 임성경왕 능(任城景王陵)
권38 列傳第8 宣五王, 文六王 평원왕 간(平原王榦), 낭야왕 주(琅邪王伷), 쳥혜정후 경(清惠亭侯京), 부풍왕 준(扶風王駿), 양왕 융(梁王肜), 제왕 유(齊王攸), 성양왕 조(城陽王兆), 요동왕 정국(遼東王定國), 광한왕 광덕(廣漢王廣徳), 악안왕 감(樂安王鑒), 악평왕 연조(樂平王延祚)
권39 列傳第9 왕침(王沈), 순의(荀顗), 순욱(荀勗), 풍담(馮紞)
권40 列傳第10 가충(賈充), 양준(楊駿)
권41 列傳第11 위서(魏舒), 이희(李憙), 유식(劉寔), 고광(高光)
권42 列傳第12 왕혼(王渾), 왕준(王濬), 당빈(唐彬)
권43 列傳第13 산도(山濤), 왕융(王戎), 악광(樂廣)
권44 列傳第14 정무(鄭袤), 이윤(李胤), 노흠(盧欽), 화표(華表), 석감(石鑒), 온선(溫羨)
권45 列傳第15 유의(劉毅), 화교(和嶠), 무해(武陔), 임개(任愷), 최홍(崔洪), 곽혁(郭奕), 후사광(侯史光), 하반(何攀)
권46 列傳第16 유송(劉頌), 이중(李重)
권47 列傳第17 부현(傅玄)
권48 列傳第18 상웅(向雄), 단표(段灼), 염찬(閻纘)
권49 列傳第19 완적(阮籍), 혜강(嵇康), 상수(向秀), 유령(劉伶), 사곤(謝鯤), 호무보지(胡毋輔之), 필탁(畢卓), 왕니(王尼), 양만(羊曼), 광일(光逸)
권50 列傳第20 조지(曹志), 유준(庾峻), 곽상(郭象), 유순(庾純), 진수(秦秀)
권51 列傳第21 황보밀(皇甫謐), 집우(摯虞), 속석(束皙), 왕접(王接)
권52 列傳第22 극선(郤詵), 완충(阮种), 화담(華譚)
권53 列傳第23 민회태자(愍懷太子)
권54 列傳第24 육기(陸機), 육운(陸雲)
권55 列傳第25 하후담(夏侯湛), 반악(潘岳), 장재(張載)
권56 列傳第26 강통(江統), 손초(孫楚)
권57 列傳第27 나헌(羅憲), 등수(滕脩), 마륭(馬隆), 호분(胡奮), 도황(陶璜), 오언(吾彦), 장광(張光), 조수(趙誘)
권58 列傳第28 주처(周處), 주방(周訪)
권59 列傳第29 여남왕 량(汝南王亮), 초왕 위(楚王瑋), 조왕 윤(趙王倫), 제왕 경(齊王冏), 장사왕 예(長沙王乂), 성도왕 영(成都王潁), 하간왕 옹(河間王顒), 동해왕 월(東海王越)
권60 列傳第30 해계(解系), 손기(孫旂), 맹관(孟觀), 견수(牽秀), 무반(繆播), 황보중(皇甫重), 장보(張輔), 이함(李含), 장방(張方), 염정(閻鼎), 삭정(索靖), 가필(賈疋)
권61 列傳第31 주준(周浚), 성공간(成公簡), 구희(苟晞), 화질(華軼), 유교(劉喬)
권62 列傳第32 유곤(劉琨), 조적(祖逖)
권63 列傳第33 소적(邵續), 이구(李矩), 단필제(段匹磾), 위준(魏浚), 곽묵(郭默)
권64 列傳第34 武十三王, 元四王, 簡文三子
권65 列傳第35 왕도(王導)
권66 列傳第36 유홍(劉弘), 도간(陶侃)
권67 列傳第37 온교(溫嶠), 치감(郗鑒)
권68 列傳第38 고영(顧榮), 기첨(紀瞻), 하순(賀循), 설겸(薛兼)
권69 列傳第39 유외(劉隗), 조협(刁協), 대약사(戴若思), 주의(周顗)
권70 列傳第40 응첨(應詹), 감탁(甘卓), 변곤(卞壼), 유초(劉超), 종아(鍾雅)
권71 列傳第41 손혜(孫惠), 웅원(熊遠), 왕감(王鑒), 진군(陳頵), 고송(高崧)
권72 列傳第42 곽박(郭璞), 갈홍(葛洪)
권73 列傳第43 유량(庾亮)
권74 列傳第44 환이(桓彝)
권75 列傳第45 왕담(王湛), 순송(荀崧), 범왕(范汪), 유담(劉惔), 장빙(張憑), 한백(韓伯)
권76 列傳第46 왕서(王舒), 왕이(王廙), 우담(虞潭), 고중(顧衆), 장개(張闓)
권77 列傳第47 육엽(陸曄), 하충(何充), (褚翜), 채모(蔡謨), 제갈회(諸葛恢), 은호(殷浩)
권78 列傳第48 공유(孔愉), 정담(丁潭), 도회(陶回)
권79 列傳第49 사상(謝尙), 사안(謝安)
권80 列傳第50 왕희지(王羲之)
권81 列傳第51 왕순(王遜), 채표(蔡豹), 양감(羊鑒), 유윤(劉胤), 환선(桓宣), 주사(朱伺), 모보(毛寶), 유하(劉遐), 등옥(鄧嶽), 주서(朱序)
권82 列傳第52 진수(陳壽), 왕장문(王長文), (虞溥), 사마표(司馬彪), 왕은(王隠), 우예(虞預), 손성(孫盛), 간보(干寶), 등찬(鄧粲), 사침(謝沈), 습착치(習鑿齒), 서광(徐廣)
권83 列傳第53 고화(顧和), 원괴(袁瑰), 강유(江逌), 차윤(車胤), 은의(殷顗), 왕아(王雅)
권84 列傳第54 왕공(王恭), 유해(庾楷), 유뢰지(劉牢之), 은중감(殷仲堪), 양전기(楊佺期)
권85 列傳第55 유의(劉毅), 제갈장민(諸葛長民), 하무기(何無忌), 단빙지(檀憑之), 위영지(魏詠之)
권86 列傳第56 장궤(張軌)
권87 列傳第57 양무소왕이현성(涼武昭王李玄盛)
권88 列傳第58 孝友 이밀(李密), 성언(盛彥), 하방(夏方), (王裒), (許孜), 유곤(庾袞), 손구(孫晷), 안함(顏含), 유은(劉殷), 왕연(王延), 왕담(王談), 상우(桑虞), 하기(何琦), 오규(吳逵)
권89 列傳第59 忠義
권90 列傳第60 良吏
권91 列傳第61 儒林
권92 列傳第62 文苑 응정(應貞), 성공수(成公綏), 좌사(左思), 조지(趙至), 추담(鄒湛), 조거(棗據), 저도(褚陶), 왕침(王沈), 장한(張翰), 유천(庾闡), 조비(曹毗), 이충(李充), 원굉(袁宏), 복도(伏滔), 나함(羅含), 고개지(顧愷之), 곽징지(郭澄之)
권93 列傳第63 外戚 양수(羊琇), 왕순(王恂), 양문종(楊文宗), 양현지(羊玄之), 우예(虞豫), 유침(庾琛), 두예(杜乂), (褚裒), 하준(何準), 왕몽(王濛), 왕하(王遐), 왕온(王蘊), 저상(褚爽)
권94 列傳第64 隠逸
권95 列傳第65 藝術
권96 列傳第66 列女 (荀灌)他
권97 列傳第67 四夷 부여(夫餘国), 마한(馬韓), 진한(辰韓), 숙신(肅慎氏), 왜인(倭人), 토욕혼(吐谷渾), 카라샤르(焉耆国), 쿠처(亀茲国), 대완국(大宛国), 강거국(康居国), 대진국(大秦国), 참파(林邑国), 부남국(扶南国), 흉노(匈奴)
권98 列傳第68 왕돈(王敦), 환온(桓溫), 환희(桓熙), 환제(桓濟), 환흠(桓歆), 환위(桓褘), 환위(桓偉)
권99 列傳第69 환현(桓玄), 변범지(卞範之), 은중문(殷仲文)
권100 列傳第70 왕미(王彌), 장창(張昌), 진민(陳敏), 왕여(王如), 두회(杜曾), (杜弢), 왕기(王機), 조약(祖約), 소준(蘇峻), 손은(孫恩), 노순(盧循), 초종(譙縱)

2.4. 재기(戴記)


권101 載記第1 유원해(劉元海)
권102 載記第2 유총(劉聰)
권103 載記第3 유요(劉曜)
권104 載記第4 석륵(石勒)上
권105 載記第5 석륵(石勒)下
권106 載記第6 석계룡(石季龍)上
권107 載記第7 석계룡(石季龍)下
권108 載記第8 모용외(慕容廆)
권109 載記第9 모용황(慕容皝)
권110 載記第10 모용준(慕容儁)
권111 載記第11 모용위(慕容暐)
권112 載記第12 부홍(苻洪), 부건(苻健), 부생(苻生)
권113 載記第13 부견(苻堅) 상
권114 載記第14 부견(苻堅) 하
권115 載記第15 부비(苻丕), 부등(苻登)
권116 載記第16 요익중(姚弋仲), 요양(姚襄), 요장(姚萇)
권117 載記第17 요흥(姚興) 상
권118 載記第18 요흥(姚興) 하
권119 載記第19 요홍(姚泓)
권120 載記第20 이특(李特), 이류(李流)
권121 載記第21 이웅(李雄), 이반 (성한)(李班), 이기(李期), 이수(李壽), 이세(李勢)
권122 載記第22 여광(呂光), 여찬(呂纂), 여륭(呂隆)
권123 載記第23 모용수(慕容垂)
권124 載記第24 모용보(慕容宝), 모용성(慕容盛), 모용희(慕容熙), 모용운(慕容雲)
권125 載記第25 걸복국인(乞伏國仁), 걸복건귀(乞伏乾歸), 걸복치반(乞伏熾磐), 풍발(馮跋)
권126 載記第26 독발오고(禿髪烏孤), 독발이녹고(禿髪利鹿孤), 독발녹단(禿髪檀)
권127 載記第27 모용덕(慕容徳)
권128 載記第28 모용초(慕容超)
권129 載記第29 저거몽손(沮渠蒙遜)
권130 載記第30 혁련발발(赫連勃勃)

[1] 여러 나라의 사정을 기록한 것. 《진서》에서는 오호십육국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2] 수서 경적지에 따르면 '진서 110권이 있는데 (齊)의 서주주부(徐州主薄) 장영서가 사찬했다'고 하였다.[3] 김춘추는 진덕여왕이 승하한 654년에 왕으로 추대되며 이때는 신라왕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