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얏트 리젠시 호텔 고가 통로 붕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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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7월 17일 발생한 붕괴 사고. 미국에서 2번째로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붕괴 사고다.[1][2]
1. 사고 전
2. 사고 당시
3. 사고 조사
4. 사고 이후
5. 미디어
6. 관련 문서


1. 사고 전


1978년 미국 미주리캔자스시티는 상업 중심지로 등극하며 재개발 붐이 열렸다. 이에 힘입어 5,000만 달러의 하얏트 리젠시 호텔(Hyatt Regency Hotel)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과거의 기술보다 더 빨리 짓는 기법을 사용했고, 호텔 중앙부에는 너비 44m, 높이 15m의 유리 천장 장식 중앙 홀이 만들어졌고, 중앙 홀에 3개의 구름다리를 설치해 객실과 컨퍼런스 센터, 쇼핑몰을 연결했다.
문제는 건설을 대충 했다는 것이었다. 철골 구조의 설계 검토는 보통 14일이 걸리지만 호텔은 10일 만에 완료했고, 호텔 설계 총괄자 던컨은 최초 설계부터 강화 구조재를 설계에 포함하지 않았고, 작업 문건에는 붕괴 접합 부위의 하중 계산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17개월 때 중앙 홀에서 테니스 코트만 한 천장 유리가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엔지니어는 천장 패널을 고정하는 볼트가 잘못 연결됐지만 어쩌다 한 번 일어나고 말 사고라며 별거 아닌 걸로 여겼다.
이후 호텔은 1980년 7월 1일 개장했다.

2. 사고 당시


1981년 7월 17일 오후 6시, 개장 1주년을 기념해 호텔에서는 1940년대 티댄스 경연 대회가 열렸다. 중앙 홀에 150여 명의 손님이 모인 가운데, 저녁 7시 4분이 되자 밴드가 폭스트롯 음악을 연주하면서 경연 대회가 시작됐다. 사람들은 구름다리와 중앙 홀에 모여서 대회를 즐기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공짜 마티니를 마셨다.
그러던 저녁 7시 5분, 중앙 홀에서 날카로운 금속성 굉음(용접부위가 끊어지면서 일어난 굉음이었다)이 들렸다. 굉음과 동시에 2층의 구름다리가 20cm 정도 내려갔고, 사람들은 불안해서 구름다리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2층 구름다리와 4층 구름다리가 무너졌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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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다리에 깔린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숨졌고, 빠져나오다가 파편 등에 베인 사람들이 속출해 사람들은 911을 불렀고 12분 후 911이 도착했다. 로비에는 임시 시체 공시소가 급조되었고, 호텔 앞의 택시 정류장에 구급차들이 도착해 응급 환자를 실어서 병원으로 옮겼다. 한편 붕괴로 수도 파이프가 끊겨 분당 1,000리터의 물이 물탱크에서 쏟아지자 소방대장은 호텔 정문이 물이 못 빠져나가게 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정문을 불도저로 부숴서 물이 빠져나가 생존자들이 익사하지 않게 했다. 9시 30분이 되자 크레인까지 동원해서 잔해를 치워 가며 생존자를 구조했고, 다음날 새벽 4시 30분에는 착암기로 잔해를 부수던 도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마크 윌리엄스를 발견[4]해 구조했다.
'''이 사고로 114명이 사망하고 186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3. 사고 조사


호텔 주주 하얏트와 건물주 프라운 센터 재개발사가 자체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캔자스 시티 시장 리처드 버클리는 독립적인 수사를 원해 미 국립 표준국에 정식 수사를 요청했다. 지역 신문 캔자스 시티 스타즈도 구조공학자에게 비밀 전화로 수사를 의뢰했다. 지역 신문의 전화를 받은 구조공학자 웨인 G. 리시카(Wayne G. Lischka)는 호텔이 2년 반 만에 완성된 것을 알고 부실 공사를 의심했다. 사고 3일 후 건물주가 기자들의 출입을 허가했으나 잔해에서 30m 떨어진 곳에서만 촬영하게 했다. 다행히 리시카는 이럴 때를 대비해 망원 렌즈를 가져와서 아직 남은 구름다리 지지봉을 포함한 조사를 위해 필요한 잔해들을 촬영할 수가 있었다. 이후 리시카는 시청에 호텔의 청사진을 문의했지만 시청에서는 사서들이 자료를 정리 중이어서 보여 줄 수 없다 했다.
한편 국립 표준국 조사 팀이 도착했을 때는 사고 현장에서 건물주가 자체 분석을 하러 파편을 비롯한 자료들을 가져가 사고 현장에 자료가 없었다. 재판소에 파편들을 보게 해 달라 소장을 내고 사고 당시 생존자들과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조사를 시작했다. 호텔 회장이 주장했던 구름다리에서 춘 춤이 충격을 줬을 거란 설은 금방 폐기됐는데, 캔자스 시티 건축 규정상 공공 건물은 평당 488kg을 버틸 수 있어야 했고 따라서 구름다리에 1,280명이 있어도 문제가 없어야 했고, 사고 당시 촬영한 영상을 분석한 결과 2층 구름다리에는 40명, 4층에는 23명이 있어서 총 하중은 평방미터당 83kg으로 구름다리에 과부하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공진으로 인해 무너졌을 가능성 또한 제기되었으나 붕괴 직전 음악과 구름다리의 주파수가 달라 이 설 역시 폐기되었다. 그러던 도중 리시카는 시청에서 호텔 청사진을 받고 '''호텔의 설계도와 실제 호텔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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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도의 지지봉은 14m였으나 실제로는 더 짧았고, 위쪽 지지봉이 아래까지 지지하면서 아래 구름다리의 하중까지 담당하는 상황이었다. 원래 설계에는 각 지지점마다 천장의 긴 버팀대가 고가 통로를 받쳐 주는 빔을 관통하고, 2층으로 된 2개의 고가 통로를 받쳐 주는 빔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 상태에서 2층으로 된 2개의 고가 통로는 볼트와 와셔로 각각의 플로어 빔에 고정되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천장에서 뻗어나온 버팀대가 위층 고가 통로의 빔을 관통한 뒤 와셔와 너트로 고정되고, 위쪽 고가 통로의 바닥 밑에 다시 구멍을 뚫고 거기에 다시 다른 버팀대가 연결되어 아래쪽 고가 통로를 매달고 끝을 다시 통로의 바닥에 와셔와 너트로 고정한 상태였다.
원래 설계대로라면 15m의 버팀대를 고정하기 위해 지지봉 전체에 나사산을 내거나 위쪽 고가 통로를 와셔와 너트로 받쳐 주기 위해 지지봉 중간 부분에 나사산을 내야 했으나, 새 방법은 각 지지봉 끝부분에만 나사산을 만들면 됐다. 이는 매우 간편했지만 위쪽 고가 통로의 마루를 지탱해 주는 와셔에 2배의 부담을 주는 약한 설계였다.

해당 설계도를 토대로 한 실험. 원래 설계도 대로 하면 벽돌 16장을 거뜬히 견디지만 바꾼 설계대로 하면 10장도 못 버티고 무너진다.
거기다 ㄷ자 형태의 빔 2개를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용접해서 ㅁ자 형태로 만들어 구름다리의 기본 골격으로 사용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원래는 이러한 ㄷ자 빔 2개를 연결할 때는 서로 등을 맞댄 상태에서 용접해 ][자 형태를 만든 뒤 가운데에 빔을 연결해야 하는데, ㅁ자 형태로 만들 경우 용접된 부분이 매우 약해진다. 리시카는 이 사실을 알아내고는 캔자스 시티 신문에 보고했다. 건축 규정에서 규정된 내하력의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무게밖에 못 견디는 상태로 건설되었다.
또한 미국 토목공학협회의 조사 결과 건축 당시 ㅁ자 형태로 만들면 플라스터 보드로 쉽게 가릴 수 있다는 이유로 그렇게 용접했고, 시공 1년 전 회사 GCE가 설계도를 제작자 헤이븐 스틸사에게 보냈을 때 단일 지지봉으로는 힘드니 2개의 지지봉을 제안했고, 1달 후 새 설계도에 합격 도장을 줬는데 딜런은 구름다리의 연결 부위 강도를 단 한 명도 계산하지 않았다고 자백했다. 더군다나 유리가 떨어졌을 때 구름다리의 연결 부위도 확인 안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이 사고는 인재였던 것이다.

4. 사고 이후


1981년 7월 20일 희생자 장례식이 열렸다. 호텔의 구름다리는 철거되었고, 미주리 주 내에서 GCE는 영업을 하지 못하게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캔자스 시티 신문은 비밀 조사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캔자스 시티에서 하중을 받는 부분의 계산을 시에서 지정한 엔지니어가 하도록 정했다. 구름다리는 이후 철거되었다.
사고가 난 호텔은 사고 수습 후 계속 영업하다가, 2011년 12월 1일 쉐라톤 캔자스 시티 호텔로 이름을 변경했다. 철거된 구름다리 자리에는 2층에 튼튼한 기둥으로 지탱되는 고가통로가 새로 설치되어 있고, 3,4층은 고가통로가 없다.

5. 미디어


  • NGC의 다큐멘터리인 삼풍백화점, 예고된 붕괴[5]에서 이 사고가 잠시 언급되었다.
  • 이 붕괴 사고는 같은 NGC의 다큐멘터리인 사상 최악의 참사 시즌 3에서 다루었다.

6. 관련 문서


[1] 더 자세히 말하자면 부실 공사로 인한 붕괴 사고. 인위적인 요인에 의한 붕괴 사고는 9.11 테러가 1위다.[2] (9.11 테러를 제외하고) 부실공사로 인한 붕괴 1위는 1911년 트라이앵글 의류공장 화재사고. 146명이 사망했다. [3] 3층에도 구름다리가 있었는데 1개만 엇갈려서 따로 매달려 있는 구조라 무너지지 않았다.[4] 붕괴로 허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양쪽 발이 머리에 닿은 채로 발견되었다. 다행히 이후 완쾌하고 물리 치료도 성공적으로 끝나 현재는 멀쩡히 걸어다닌다.[5] 원제 DEADLY DESIG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