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1. 개요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상투적으로 쓰이는 문구이다. 하지만 이 문구에 담긴 의도는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 문서에서는 이를 유형에 따라 분류하고 그 타당성을 살핀다.
2. 한국어 문장에서 중요한 단어는 뒤에 있다
한국어의 문장에서 중요한 단어는 주로 뒤쪽에 포진되어 있으므로 앞 부분만 듣고 전체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주로 동사를 가지고 이를 설명한다. 여기에는 여러 전제가 작용하고 있다. 먼저 ''''문장의 핵심은 동사다''''라는 전제이다. 한국어는 SOV(주어-목적어-서술어) 어순을 취하고 있으므로 가장 핵심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동사가 맨 뒤에 있다. 그러므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주로 쓰는 것은 노엄 촘스키의 '''구 문법'''(Consistuent Grammar)으로, 문장의 각 구성 성분이 이루는 구(Phrase)와 절(Clause)들의 포함 관계에 따라 문장의 구조를 파악한다. (당장 고등학교 영어 문법 시간의 악몽을 되살려 보자!) 이 이론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뤼시앵 테니에르(Lucien Tesnière)가 고안한 '''의존 문법(Dependency Grammar)'''이다. 의존 문법에서는 문장의 각 구성 성분 간의 의존도를 기준으로 문장의 구조를 파악한다. '문장의 핵심은 동사다'라는 전제는 이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두 문법의 차이는 파스 트리(Parse Tree)로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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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의존 문법, 오른쪽이 구 문법에 따른 파스 트리이다. 보면 의존 문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동사임을 알 수 있다. '''모든 성분은 궁극적으로 동사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로써 문장의 핵심은 동사라는 전제가 정당화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형태론의 영역이다. 형태론적으로 동사가 문장의 핵심일지라도 의미론적으로는 아닐 수 있다. 물론 의존 문법의 '의존도'라는 개념 자체가 어느 정도 의미론적인 개념이기는 하다. 그러나 여전히 동사가 핵심적인 '''의미'''를 전달하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예를 들자면, 계사(copula)는 한 문장, 나아가 한 언어에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품사이다. 대부분의 언어에서 이는 동사의 하나로 취급된다. 한국어의 서술격 조사 '이다', 영어의 be동사, 중국어의 是(sh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렇게나 중요한 이 성분이, 일본어나 라틴어 등 몇몇 언어에서는 때에 따라 과감히 생략된다. 그 유명한 서울대의 모토가 하나의 예시이다.
이 문장은 '이다'를 뜻하는 'EST'가 생략되었고, 또한 번역에서도 '이다'가 사라졌으나 우리는 머릿속에서 눈치껏 이 빠진 부품들을 제자리에 끼워넣을 수 있고 의미 전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한 한국어나 일본어와 같은 고맥락 언어에서는 상황에 따라 관용구처럼 나오는 동사가 정해져 있다. "~라고들... (말한다)", '~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동사는 반드시 문장에서 핵심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VERITAS LUX MEA."'''
'''"진리는 나의 빛."'''
동사 외에 '수식'을 이유로 드는 사람도 있다. 한국어의 형용사는 명사 앞에서 명사를 수식하고, 마찬가지로 형용사구와 형용사절도 명사 앞에서 명사를 수식한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명사가 뒤에 온다는 것이다. 또한 부사의 경우에도 거의 대부분의 경우 수식하고자 하는 대상의 앞에 온다. 그러한 반면에 영어나 불어 등의 언어에서는 이 순서가 반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비단 동사뿐만 아니라 '''한국어 자체가 중요한 단어를 뒤로 보내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중요도 또한 의존 문법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미론에서 문장의 구성 성분에 중요도를 매길 때 가장 크게 고려하는 것은 화자의 '''초점'''이다. 같은 문장이라도 말하는 맥락과 주제가 다르고 화자의 의도가 다르다. 이에 따라 화자는 각 문장의 구성 요소의 중요도를 스스로 정하고 강세나 준언어적 요소를 통해서 이를 상대방에게 전달한다. 이는 문장의 구조만 가지고는 결코 설명 불가능한 부분이다.
비록 두번째 문장의 '짜장'이 의존 문법적으로는 '먹을래'라는 성분에 의존하고 있지만, 저 문장을 이해하고 머릿속에서 상황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들 중 그 누가 두번째 문장의 핵심이 '먹을래'에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이러한 의미론의 문제는 결코 문장의 구조로 설명할 수 없다."너는 짜장 먹을래 짬뽕 먹을래?"
"나는 짜장 먹을래."
3. 전체 문장의 의미가 변할 수 있다
사실 이 문구를 흔히 말하는 상황은 상대가 일부만 듣고 전체 문장의 의미를 성급하게 파악하려 할 때에 '내가 앞으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전체 문장의 의미를 바꾼다'는 것을 알릴 때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문구는 옳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서 말한 의존 문법 이론을 다시 조명하자면, 동사는 문장의 나머지 모든 성분이 의존하고 있는 품사이다. 따라서 '''동사가 바뀌면 문장 전체의 의미가 바뀐다.''' 이러한 이유에서라면 동사를 이용한 설명은 정당화될 수 있으며, 형용사나 부사의 수식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이다.정말 아름다운 날이야.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나고...
이런 날엔, 너 같은 꼬마들은...
'''지옥에서 불타고 있어야 하는데.'''
4. 말은 원래 끝까지 들어야 한다
당연한 소리(...), 꼭 한국말 말고도 어떤 언어에라도 적용되는 말이다.
아무리 중요한 키워드를 먼저 다 말하고 나머지를 말한다 한들 그 '나머지'도 엄연히 문장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따라서 문장의 의미를 100% 이해하기는 위해서 반드시 문장을 다 들어야 한다. 중요한 키워드를 먼저 말하냐 마냐는 어디까지나 문장의 대강의 의미, 이를테면 한 70% 정도를 전달하는 속도의 문제이다. 결국 나머지 30%까지 다 듣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똑같다.
그리고, 남의 말은 끝까지 경청하여 듣는 것이 예의이다. 상대방의 의사를 함부로 파악하여 말을 끊고 멋대로 대답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다. 잘못 해석하면, 특히 나쁜 방향으로 해석하면 상대방으로서는 '내가 그런 말을 할 사람이라 생각하는 건가?'라 생각하거나 불편함을 느껴 상호 간의 관계에 미묘한 금이 갈 수 있다. 맞게 해석해도 상대방으로서는 '그러면 내가 무엇하러 일일이 말하는 수고를 해야 한단 말인가?'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제발, 말은 끝까지 듣자.
5. 관련 문서
- 문맥을 무시한 인용 - 위 내용과 비슷하게 끝까지 안 듣거나 안 보고 인용하면 이처럼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