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웅
1. 소개
한국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생활 내내 대부분 한 팀에서 1년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팀을 상당히 자주 옮긴 저니맨이며, 그로 인해 상당히 저평가 받는 선수이다.[1]
2. 경력
2.1. 프로 데뷔 이전
만수중 재학 시절, 팀을 전국 대회 우승으로 이끌며 당시 주니어 국가대표을 총괄하던 아브라함 브람 감독의 부름을 받아 U-17 대표가 되었으며, 2000년 U-16 AFC 챔피언쉽에서도 활약하였으며, 당대 축구 명문 부평고등학교에 진학 후에는 프로팀 스카우터의 주목을 받게되었고, 2002년 이근호, 김태영 등과 함께 에이젼트 지쎈과 계약을 맺은 후 2002년 6월, 부산 아이콘스와 프로팀 입단 계약을 맺게 되었고 (계약기간 3년) 네덜란드 축구 유학도 구단의 지원으로 갔다오기도 하며, 미래를 밝게 했다.
U-20 세계 청소년 월드컵 대표로 일찌감치 발탁되었으나, 2002년 큰 부상을 당해 낙마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세계 청소년 월드컵이 2002년에서 2003년으로 한 해 연기됨에 따라, 한재웅 선수는 부상 회복후, 본선 대표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의 청소년 월드컵 조별 예선 3차전에서 오른쪽 윙 포워드로 선발 출장하였으나,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남궁웅과 교체당하고 말았다. 결국 미국전을 0:2로 패배한 한국 청소년 대표는 독일을 이기고도 1승 2패로 조별 예선 탈락하고 말았다.
2.2. 부산 아이파크
일찌감치 최전방 공격수로서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재능을 인정받던 한재웅은 2003년 부산 아이파크를 통해 프로무대에 입문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부산에서 간간히 교체 출장에 그치던 한재웅은 2005년 안효연 선수의 이적과 루시오등, 외국인 선수의 부진으로 주전 공격수로 도약할 기회를 얻게 되었으며, 2005년 부산의 중앙 공격수로 박성배의 서브로 나오거나, 투톱으로 루시아노와 서는 경우가 많았는데, 골 결정력은 어느 정도 있었으나, 드리블이나 몸싸움이 좋질 않아, 공격 찬스를 만들어내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살이란 어린 나이의 강점과 스피드와 득점 본능이 탁월하다는 점등에서 부산팬들의 기대를 모았던 한재웅은 2006시즌전 울산 현대와의 연습 경기에서 박동혁의 살인 태클로 인해 시즌 아웃을 당하게 되었으며, 끔찍한 부상 이후, 2006년 전부와 2007년 대부분의 시간을 2차례에 걸친 수술과 재활로 보냈으며, 회복한 이후에도 후유증 탓에 과거 보여줬던 스피드라는 강점도 사라진 상태였다.
결국 황선홍 감독은 한재웅을 주 포지션인 공격수가 아닌 수비수, 풀백으로 포지션 변경 훈련을 시키는데, 수비적 센스가 없었던 한재웅은 상당한 고생을 하게된다.
2.3. 대전 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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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재웅은 2008년 부산을 떠나 주승진과 트레이드로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였고, 대전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특히 주포지션인 윙어나 스트라이커 이외에 수비수로도 활약하였다. 비록 수비 능력은 떨어졌지만 공격적인 성향이 강했던 탓에 수비수로서 기용될 시에는 풀백으로 기용되었으며, 공격 능력으로 부족한 수비 능력을 커버하면서 좋은 활약을 이어가면서 자신의 진가를 톡톡히 드러냈었다.
2.4. 저니맨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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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시즌 종료 후 타 팀 이적설이 흘러 나오던 한재웅은 결국 2012년 대전을 떠나 황도연의 1년 임대와 김재훈의 완전이적의 조건 상대로 전남으로 트레이드 되었으며, 이에 대전팬들은 대전의 핵심 선수를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전남으로 내보냈다고 분노했다. 이후 전남에서는 주로 공격 자원으로 기용되었지만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시즌 끝까지 1도움에 그쳤으니...
전남에서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 한재웅은 결국 1년만에 전남을 떠나 안재준과 함께 박준태와 2:1 트레이드로 인천에 입단했지만 인천에 입단하자마자 태국 부리람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으며, 부리람에서 부진하면서 5개월만에 인천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인천에서도 후반기 세 경기 출전에 그치며 기대에 미치는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2014년 한재웅은 인천을 떠나 울산 현대에 입단하였지만, 이 해 조민국 체제의 울산은 상당한 부진을 겪었고 한재웅의 플레이도 별다른 변수가 되지 못했다. 울산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면서 2015년에는 경남 FC에 입단했지만 시즌 시작도 전에 입단 한 달만에 홍콩 레인저스 FC로 이적하며 홍콩 무대에 진출했다. 이 팀 소속으로는 반 년간 뛴 후 다시 홍콩의 다른 팀인 이스턴 SC로 이적했다.
2.5. 대구 FC
한재웅은 2016년 대구 FC로 이적하며 K리그에 복귀하였으며, 입단 첫해에는 주로 팀이 공격수를 4명을 기용할 때 오른쪽 윙어로 출장하였다. 한재웅은 리그에서 총 15경기에 출장하며 준수한 활약을 보였으며, 팀의 K리그 클래식 승격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대구 공격의 중심축인 브라질 트리오와 같이 기용될 때는 공격진에서 상당히 걷도는 느낌이였다.
승격한 후 2017시즌에는 리그에서 단 한경기도 출장하지 못하였으며, 결국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였다.
2018년 기사에 따르면 은퇴 후 진주동중학교에서 감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중등리그 공동 3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
3. 플레이 스타일
피지컬 조건이 준수하고 발도 상당히 빠르다. 그리고 이를 활용한 돌파력도 상당한 수준. 그러나 골 결정력과 크로스 능력이 부족하여 공격수로는 활약하기 힘든 점이 있었고, 공격수 출신이라서 수비수로 뛸 때는 수비력 면에서 아쉬움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단점을 커버해주는 동료들의 플레이만 있다면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지만, 하나씩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4. 여담
- 커리어에서 알 수 있듯이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동안 무려 7번이나 이적을 했으며, 이 시기에 대략 한팀에서 6개월 정도만 있었다.
[1]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한 팀에서 1년 이상을 버티지 못했다.[2] 특히 2005년 인도네시아 페르십 반둥과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수비진을 상대로도 한재웅 선수의 드리블이 먹히질 않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