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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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새한상사(재미나)에서 MSX용으로 발매한 '''최초의 MSX용 국산 게임'''. MSX용을 제하고 '최초의 국산게임'으로 꼽히는 작품은 이보다 몇 개월 앞서 나온 아프로만의 애플 II용 게임인 신검의 전설(남인환 제작)이다. 훗날 열림기획을 창업한 김을석, 구은중의 2인 개발작이자 첫 작품이기도 하다. 영문 타이틀은 '''Brother Adventure'''. Brother'''s\'''' Adventure가 아니다!
조작감 면에서도 원작에 크게 못미치는 쿠소게를 면치 못하는 완성도를 보여주어 당대에도 악평이 엄청났다. 같은 제작자가 만든 슈퍼보이가 좀 부족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제법 인기를 끌었던 것과 비교하면 좀 의아할 수도 있겠으나 본작에 비하면 슈퍼보이는 '''명작'''. 그 정도로 심각하게 못만들었다. 일단 게임 감각이 완전 망가져있어서 '''정상적으로 게임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정도다.
모두가 알고있듯 원작인 마리오 브라더스에서 1P는 마리오, 2P는 루이지였지만 형제의 모험에서는 이름이 '타이탄'(Titan)과 '감마'(Gamma)로 개명되었다. 2인 플레이시 게임오버되었을 때나 보너스 스테이지에서 이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초기 버전의 경우에는 대놓고 '''마리오'''와 '''루이지'''로 나온다. 위 동영상에 나오는 것이 바로 그 마리오/루이지 버전이다. 구분하는 방법은 게임 플레이시에 위 영상처럼 오른쪽 하단에 CREDIT: 이라는 문자가 있으면 마리오/루이지가 나오는 초기 버전, 없으면 타이탄/감마가 나오는 후기버전이다. 애초에 생긴 것도 마리오 형제처럼 안생겼는데 주인공 캐릭터의 스프라이트는 뜬금없이 남코의 패미컴 게임인 바벨의 탑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나마 그대로 뜯어온 게 아니라 보고 스프라이트를 찍은 것인지 비슷해보이면서도 좀 많이 다르다. 그러면서 또 타이틀 화면에서는 "골프 JAPAN 코스"의 마리오 일러스트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그야말로 카오스의 현장.
그밖에도 이 게임의 쿠소스러움은 여러 군데서 찾아볼 수 있는데,
BGM은 아무래도 제작자 두 사람이 음악에 소양이 없어서인지 여기저기서 뜯어왔는데[1] 그런 것 치고도 악보를 잘 못찍어서 음이 삐꾸날 때가 많다. 참고삼아 대강의 BGM 목록은 다음과 같다.
작품 자체만 놓고 보면 말 그대로 엉망진창인 쿠소게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당시의 열악한 개발환경을 감안하면 이것도 상당히 분발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 개인용 컴퓨터라는 것이 일반에게 보급된 것은 1983년 5공화국 정부가 '정보산업의 해'를 선언하며 각급 학교에 8비트 컴퓨터를 보급한 것이 그 시초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대의 컴퓨터란 사회에 그 모습을 드러낸지 몇 년 안되는 신문물에 가까웠다. 게다가 이 게임이 나왔던 1987년의 국민소득(GNI)은 4천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던 터라 컴퓨터는 그야말로 아예 부유층이거나 중산층이 업무나 교육을 위해 좀 무리해서 구매하는 극소수의 전유물에 불과했으니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인력은 매우 적었고 게임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인력은 더더욱 적었다.[2] 거기에 비디오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역시 최악이었던 시절이라 게임 개발에 필요한 자본 자체를 투입하는 것이 어려웠다. 당시의 게임 퍼블리싱을 구멍가게보다 조금 나은 규모의 소프트하우스(재미나, 아프로만, 토피아 등등)들이 담당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잠깐만 생각해보면 자명해진다. 말하자면 인력도 없는 상태에서 극도의 저예산으로 맨땅에 헤딩해서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이야기. [3]
따라서 지금의 관점으로 "왜 저런 것 밖에 만들지 못했는가"하고 비난하는 것은 그리 옳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어쩌면 4년이나 지난 1987년에서야 표절이 됐건 뭐가 됐건 스스로의 손으로 뭔가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이미 87년에는 수많은 미국/일본의 명작으로 게이머들의 눈이 높아져있었기 때문에[4] 열심히 맨땅에 헤딩하며 만든 본작은 '''제대로 팔리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안습.
초기에는 일본이나 미국의 게임 제작환경도 열악하긴 마찬가지였고 저런 수준미달작은 외국에서도 숱하게 나왔다. 이후에 일본이나 미국처럼 빠르게 자생적인 생태계가 갖추어지지 못해 좋은 국산 게임이 나오고 게임개발 생태계가 자리잡는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려버렸고 그 사이를 형제의 모험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수준미달의 표절작들이 메우게 된 점은 아쉬운 일이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시도를 했던 선구자들을 굳이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1. 개요
1987년에 새한상사(재미나)에서 MSX용으로 발매한 '''최초의 MSX용 국산 게임'''. MSX용을 제하고 '최초의 국산게임'으로 꼽히는 작품은 이보다 몇 개월 앞서 나온 아프로만의 애플 II용 게임인 신검의 전설(남인환 제작)이다. 훗날 열림기획을 창업한 김을석, 구은중의 2인 개발작이자 첫 작품이기도 하다. 영문 타이틀은 '''Brother Adventure'''. Brother'''s\'''' Adventure가 아니다!
2. 상세
조작감 면에서도 원작에 크게 못미치는 쿠소게를 면치 못하는 완성도를 보여주어 당대에도 악평이 엄청났다. 같은 제작자가 만든 슈퍼보이가 좀 부족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제법 인기를 끌었던 것과 비교하면 좀 의아할 수도 있겠으나 본작에 비하면 슈퍼보이는 '''명작'''. 그 정도로 심각하게 못만들었다. 일단 게임 감각이 완전 망가져있어서 '''정상적으로 게임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정도다.
모두가 알고있듯 원작인 마리오 브라더스에서 1P는 마리오, 2P는 루이지였지만 형제의 모험에서는 이름이 '타이탄'(Titan)과 '감마'(Gamma)로 개명되었다. 2인 플레이시 게임오버되었을 때나 보너스 스테이지에서 이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초기 버전의 경우에는 대놓고 '''마리오'''와 '''루이지'''로 나온다. 위 동영상에 나오는 것이 바로 그 마리오/루이지 버전이다. 구분하는 방법은 게임 플레이시에 위 영상처럼 오른쪽 하단에 CREDIT: 이라는 문자가 있으면 마리오/루이지가 나오는 초기 버전, 없으면 타이탄/감마가 나오는 후기버전이다. 애초에 생긴 것도 마리오 형제처럼 안생겼는데 주인공 캐릭터의 스프라이트는 뜬금없이 남코의 패미컴 게임인 바벨의 탑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나마 그대로 뜯어온 게 아니라 보고 스프라이트를 찍은 것인지 비슷해보이면서도 좀 많이 다르다. 그러면서 또 타이틀 화면에서는 "골프 JAPAN 코스"의 마리오 일러스트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그야말로 카오스의 현장.
그밖에도 이 게임의 쿠소스러움은 여러 군데서 찾아볼 수 있는데,
- 타이틀에서 왠지 1PLAYER와 2PLAYERS를 선택할 때 굉장히 선택하기 어렵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겠지만 직접 해보면 안다. 커서가 제맘대로 움직였다 안움직였다 하는 것이 압권.
- 점프 궤도 자체가 이상하다. 마리오 브라더스와 같은 감각으로 절대 플레이할 수 없다.
- 걸어다니는 모션 없이 스프라이트 하나로 움직이는 호버링(...) 스러운 움직임을 보인다. 문제는 원래 이렇게 만든 것도 아니라 걷는 동작이 멀쩡하게 있는데 버그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
- 미스 후 리젠될 때 공중에서 떨어지는데 이때 무적시간이 없다. 재수없게 발 밑에 적이 있는 경우엔 리젠되자마자 또 사망.
2.1. BGM
BGM은 아무래도 제작자 두 사람이 음악에 소양이 없어서인지 여기저기서 뜯어왔는데[1] 그런 것 치고도 악보를 잘 못찍어서 음이 삐꾸날 때가 많다. 참고삼아 대강의 BGM 목록은 다음과 같다.
- 타이틀 : 영화 Hatari의 OST인 Baby Elephant Walk.(헨리 맨시니 작곡) 흔히 '아기코끼리 걸음마'로 알려진 그 곡이다. #
- 페이즈 인트로 : 디그 더그의 인트로 부분을 그대로 가져왔다. #
- 메인 스테이지 BGM : 요제프 하이든의 장난감 교향곡 #
- 페이즈 피날레 : 아케이드 게임 '메트로 크로스'의 인트로 부분을 그대로 가져왔다. #
- 보너스 스테이지 BGM : 스티븐 포스터의 캠프타운 경마(Camptown Races) #
3. 변명(?)
작품 자체만 놓고 보면 말 그대로 엉망진창인 쿠소게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당시의 열악한 개발환경을 감안하면 이것도 상당히 분발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 개인용 컴퓨터라는 것이 일반에게 보급된 것은 1983년 5공화국 정부가 '정보산업의 해'를 선언하며 각급 학교에 8비트 컴퓨터를 보급한 것이 그 시초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대의 컴퓨터란 사회에 그 모습을 드러낸지 몇 년 안되는 신문물에 가까웠다. 게다가 이 게임이 나왔던 1987년의 국민소득(GNI)은 4천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던 터라 컴퓨터는 그야말로 아예 부유층이거나 중산층이 업무나 교육을 위해 좀 무리해서 구매하는 극소수의 전유물에 불과했으니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인력은 매우 적었고 게임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인력은 더더욱 적었다.[2] 거기에 비디오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역시 최악이었던 시절이라 게임 개발에 필요한 자본 자체를 투입하는 것이 어려웠다. 당시의 게임 퍼블리싱을 구멍가게보다 조금 나은 규모의 소프트하우스(재미나, 아프로만, 토피아 등등)들이 담당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잠깐만 생각해보면 자명해진다. 말하자면 인력도 없는 상태에서 극도의 저예산으로 맨땅에 헤딩해서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이야기. [3]
따라서 지금의 관점으로 "왜 저런 것 밖에 만들지 못했는가"하고 비난하는 것은 그리 옳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어쩌면 4년이나 지난 1987년에서야 표절이 됐건 뭐가 됐건 스스로의 손으로 뭔가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이미 87년에는 수많은 미국/일본의 명작으로 게이머들의 눈이 높아져있었기 때문에[4] 열심히 맨땅에 헤딩하며 만든 본작은 '''제대로 팔리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안습.
초기에는 일본이나 미국의 게임 제작환경도 열악하긴 마찬가지였고 저런 수준미달작은 외국에서도 숱하게 나왔다. 이후에 일본이나 미국처럼 빠르게 자생적인 생태계가 갖추어지지 못해 좋은 국산 게임이 나오고 게임개발 생태계가 자리잡는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려버렸고 그 사이를 형제의 모험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수준미달의 표절작들이 메우게 된 점은 아쉬운 일이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시도를 했던 선구자들을 굳이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4. 관련 문서
[1] 초창기 게임에서는 흔하게 있었던 일이기는 하다. 아무래도 개발진이고 자본이고 소규모다보니 작곡을 할만큼 음악에 소양이 있는 스탭이 없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 예를 들면 클래식이나 민요 악곡을 BGM에 사용했던 요술나무나 결국 남극대모험 같은 코나미 초창기 MSX게임을 들 수 있다. '게임 음악'이라는 독립된 장르는 게임의 역사가 시작되고 나서 한참 후에나 정착되었다. 물론 본작이 나온 1987년은 게임 음악이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고나서도 한참 뒤의 일이긴 하지만 당시 한국 게임업계의 여건은 일본, 미국 등의 선진국에 한참은 뒤져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2] 덤으로 8비트 시절에 게임 개발을 위해 사용한 언어는 기본적으로 '''어셈블리어'''다. C나 파스칼 같은 고급언어가 있기는 했으나 하드웨어 성능이 열악하여 고급언어로는 원하는 퍼포먼스를 뽑아내기 힘들었기 때문.[3] "일본게임인 마리오브로스에서 게임의 아이디어를 얻어 MSX1용으로 제작하였읍니다. 게임 전문 툴이 없는데다 어떤 장비를 어떻게 개발해야할 지도 몰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수준은 수준대로 떨어진 것 같습니다. 노하우가 축적되지 않는 상태이고, 배울만한 사람도 없어 구먹구구식으로 짰읍니다." / 컴퓨터학습 1989년 3월호 <국산게임 S/W의 현주소> 인터뷰에서 발췌한 개발자 김을석씨의 코멘트. 맞춤법이 틀린 부분이 보이겠으나 1989년 3월 1일부터 시행된 현행 한글 맞춤법 시행 이전에 작성된 문서이며 원문의 오타(구먹구구)와 잘못된 띄어쓰기까지 그대로 인용하였음을 참고 바란다.[4] 쉽게 설명하면 같은 MSX로 같은 해에 나온 작품이 그라디우스 2, 메탈기어, 이스 1, 제나두(원작은 1985년작이지만 MSX판은 87년에 나왔다) 등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