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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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
2.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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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경희대학교 2학년 재학 중 세기상사에서 춘향전 공모가 열렸다. 목과 어깨 선이 품위 있게 흘렀고 한복이 무척 잘 어울린 홍세미는 춘향전의 주연으로 선발되어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예명은 도홍숙의 본명에서 가운데 글자인 '홍(鴻)'을 따고 '세기상사가 뽑은 미녀'이라는 뜻에서 '세미'를 따서 만들어졌다. 이 이름을 짓는데는 홍세미의 어머니가 관여했는데, '홍'자를 넣은 이유는 홍세미를 낳을 때의 태몽에서 기러기가 나와서 그랬다고 한다.[1] 이 영화에서 신성일과 함께 열연하여 1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성공의 기세를 타서 TBC에 특채로 선발되어 조선총독부의 주연으로 출연하였으나, 여기서 문제가 터졌다. 24회 촬영 때 남자 배우 김성옥과의 키스신을 거부하면서 구설수에 오른 것. 홍세미는 아버지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이유로 키스신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키스신을 안하겠다면 처음부터 안하겠다고 해야됐지만, 이미 촬영은 시작되어 이를 되돌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당시 PD인 정일성은 ''''하는 척이라도 해 달라''''며 간곡히 부탁하여 촬영을 시작했는데 그 '척'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상대방인 김성옥에서 그냥 키스신 찍지 말자고 정PD를 쪼았지만[2] 제발 정일성은 척이라도 해달라며 애걸하며 촬영에 들어갔다. 그러나 홍세미는 결국 키스신을 찍지 않았으며 드라마는 그대로 파토가 나 버린다. 당시 홍세미가 맡았던 윤정덕 역은 드라마에서 죽는걸로 급하게 종결을 맞게 된다. 여기에 빡친 TBC는 홍세미에게 방송 출연 금지조치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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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미 신성일과도 키스신을 찍었는데 왜 신성일은 되고 김성옥과는 안되냐는 이유로 대중의 비난을 받았다. 당시 TBC에 낙하산으로 들어간 게 아니냐는 소문과 함께 홍세미는 TBC의 높은 분들과 이런저런 관계에 있었을 거라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4] 그러나 여기에 키스마저도 상대 배우의 유명도에 따라 해 준다는 오만한 이미지까지 더해졌다.[5] 이렇게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홍세미는 잠시 은퇴하나, 다시 복귀하여 수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찍었다.
그러나 소속사였던 세기상사와의 불화로 1970년에 영화에서 떠난 이후 드라마에 출연하였다. 1975년 별당아씨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978년에 미국으로 결혼과 함께 이민을 가며 배우 생활을 접고 음식점 덕수장을 운영하다가 1990년에 다시 복귀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후 1994년에 한명회의 윤씨부인 역에 출연하였다. 그러나 다시 또 미국행...
2019년 2월에는 미국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병원의 광고에 출연하여 근황을 알렸다.
3. 여담
코가 복스럽게 생겼기 때문에 '코세미'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외모가 예뻤기 때문에 화장품 광고에도 여러 차례 출연하였다.
[1] 여담으로 춘향전 감독인 김수용은 홍세미가 '''"연령에 비해 성숙한 여성으로서의 인상이 다분히 육감적인 얼굴에서 우러나오고 있으며 얼굴 모양보다도 균형 잡힌 체구와 윤기 있는 음색이 더욱 개성미를 뚜렷하게 하고 있다"'''라며 그녀를 공모에서 채택했다고.[2] 김성옥은 정일성의 연극계 선배였다. 당시 연극계의 엄한 분위기를 생각하면 정일성 PD는 진짜 속이 탔을 듯. 배우 김성옥은 손숙의 남편으로, 대하사극 용의 눈물의 최영, 태조 왕건의 강장자로 유명하다.[3] 영화 백면검귀의 한 장면이다.[4] 실제 홍세미가 당시 동료나 후배 여배우들을 방송가 고위급이나 정제계 여기저기에 연결시켜 주는 마담뚜라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5] 거기다가 김성옥은 고려대 연영과 출신으로 23세부터 10년동안 연기를 해온 당시로서는 짬밥 좀 먹은 배우였다. 이런 배우에게 유명도를 이유로 키스를 안해줬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