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목(조선)

 



洪淳穆
1816 ~ 1884
조선 후기의 문신. 호는 분계, 자는 희세이며 갑신정변의 주역 중 한 사람인 홍영식의 아버지이다. 1884년 아들인 영식이 김옥균, 박영효 등과 함께 개화파에 가담하다가 정변의 실패로 참수되자 역적의 아비라는 이유로 자살하였다.
1844년(헌종 10년) 문과에 응시하여 급제하고 24대 왕 헌종의 휘하에 관직에 입문한다. 이후 지평, 수찬과 초계문신을 지냈고 1849년 헌종이 승하하면서 빈전도감 도청, 부사과, 이조참의를 거쳐서 1863년 26대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이 섭정하면서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대사헌으로 임명받아 수행하였다.
그 후에는 황해도로 파견되어서 황해감영 관찰사를 지냈고 흥선대원군의 부름을 받아 이조판서, 한성판윤, 예조판서를 역임하고 우의정이 되었다.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갈등면에서는 흥선대원군을 지지하였으며 전통적인 수구파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지지하고 척화비 설립에도 지지를 표하였다. 이후 영의정에 재수되었으나 대원군이 실각되고 민씨 척족이 세력을 잡으면서 흥선대원군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민씨 척족으로부터 실각되어 관직을 사임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으로 민씨 척족이 쫓겨나고 흥선대원군의 재집권으로 흥선대원군의 부름을 받아 영의정에 재수되었으나 1884년 대원군이 청으로 납치가 되어서 재실각되자 흥선대원군의 지지파라는 이유로 민씨 척족에 의해서 다시 실각되었다.
그 해 갑신정변 때 아들인 영식이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등과 함께 개화파에 가담하여 정변의 주역으로 활동하다가 정변이 실패하고 김옥균, 박영효 등이 일본으로 망명하고 아들 영식이 역적죄를 이유로 참수되면서 역적의 아버지라는 오명으로 인해서 자택에 지내던 중 며느리인 홍영식의 처, 손자인 홍영식의 아들과 함께 자살하였다.
한때 개화파로부터 수구파의 거두라는 이유로 참살 대상에 오른 적도 있었으나 홍영식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제외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894년 갑오개혁 실시에 따라 복관되어졌다.
드라마 찬란한 여명에서 김흥기가, 조선왕조 오백년 대원군 편에서는 변희봉이 연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