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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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홍종흠은 1879년 4월 30일 경상도 의흥현 부남면 서원리(현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서원마을)의 양반 가정에서 아버지 홍만하(洪晩河)와 어머니 전주 이씨 이현구(李鉉九)의 딸 사이의 1남 6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경상북도 상주군 화북면 장암동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전국 각지에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그해 4월 홍종흠은 화북면 장암동의 구장(區長) 이성범 등과 전국적인 추세에 호응하여 거사를 단행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4월 4일부터 만세운동 권유문과 태극기를 만들며 만세운동을 준비하는 한편, 이웃 마을에도 거사 계획을 알렸다. 특히 마을 청년들을 모아 놓고, "조국을 다시 찾는 일은 우리 청년들이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단결하여 왜놈들을 우리 땅에서 몰아내자!"고 외치면서 청년들을 참여시키는데 힘썼다.
4월 8일 오후 2시 마을에 군중 70여 명이 모이자, 이들과 함께 문장산(文藏山)에 올라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급보를 받은 상주 주재 일본 헌병대장 이하 헌병들이 탄압에 나섰다. 잠시 청년들과 투석전이 벌어졌으나 얼마 가지 않아 홍종흠을 비롯한 주도 인물 4명과 그 외 5명이 검거되고, 시위 군중은 흩어졌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5월 15일[4]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3개월을 받고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인 1920년 4월 26일 특별 사면을 받아 감형되어 출옥하였다. 그후 1936년 10월 29일 별세하였다.
201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