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지벽
1. 뜻
화씨가 발견한 구슬로 천하의 보물을 뜻하는 고사성어. 줄여서 화씨벽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화씨지벽은 값을 매길 수도 없는 진귀한 보물-무가지보(無價之寶)의 대명사처럼 쓴다.
전설에 따르면 화씨지벽에는 벌레가 앉지 않았으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다고 한다.
2. 유래
출전은 <한비자> 화씨(和氏)편.
2.1. 두 발과 바꾼 천하의 보물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초나라 산중[1] 에서 옥(玉)의 원석을 구해 초여왕(厲王)에게 바쳤다.[2] 그런데 원래 옥은 다듬기 전에는 보통의 돌과 비슷해 보석으로서 가치 있는지 감정하기 어려운 물건이고, 변화가 바친 돌은 옥을 세공하는 사람으로부터 쓸모없는 돌 판정을 받고 만다. 이에 분노한 여왕은 변화에게 월형(刖刑)[3] 을 내렸으며 일설에는 무릎 아래의 다리를 그냥 잘라내버렸다고도 한다. 여왕이 세상을 떠나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다시 한 번 돌을 바쳤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똑같았다.
무왕이 세상을 떠나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재차 돌을 바치려 했지만 양발 뒤꿈치가 잘려 걸을 수 없게 된 변화는 돌을 안고 사흘 밤낮을 울다가 마침내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기에 이르렀다. 이 이야기를 들은 문왕은 변화를 불러 '천하에 월형을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왜 그리 슬퍼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변화는 '발을 잘려서 우는 게 아니다. 보옥이 돌이 되고 정직한 사람이 거짓말쟁이 취급받는 것이 슬퍼서 운다.'고 고했다. 문왕이 장인에게 돌을 다듬으라 명했더니 과연 눈부신 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변화의 정성에 감동한 문왕은 그에게 대부에 준하는 봉록을 내려 여생을 편히 살 수 있도록 해줬다.
2.2. 흠 없는 옥, 완벽(完璧)
이후 조나라 혜문왕(惠文王)이 화씨지벽을 손에 넣었는데, 이 소문을 들은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이 15개의 성과 바꾸자면서 협상을 빙자한 협박을 했다. 혜문왕은 이 위기를 넘길 인재를 찾았고 이에 인상여가 나서게 된다. 인상여는 진나라로 떠나기 전에 말하길, '신이 옥을 보전하여 돌아오겠나이다'(臣請'''完璧'''歸趙) 라고 장담하였고 실제로 옥을 보전해 왔다. 그리하여 현대에도 쓰이는 '완벽' 이라는 단어가 2300년 전의 바로 이 고사에서 유래했다.[5] 참고로 옥에 티를 뜻하는 하자(瑕疵)라는 단어는 인상여가 진왕에게 한 말에서 유래한 것. 자세한 이야기는 해당 항목으로.
2.3. 전국옥새로 탈바꿈하다
진시황은 화씨지벽을 깎아 그 유명한 전국옥새(傳國玉璽)를 새겼다고 한다. 이 전국옥새는 대대로 황제의 위엄을 상징하게 되었다. 후한 시절에 관련한 사건으로 삼국지 동탁 토벌전에 관련한 사건이 있다.
삼국지 시리즈에서 전국옥새가 화씨벽이 아니라 남전옥으로 만들어졌다는 전승을 취하였는지 전국옥새가 있음에도 화씨지벽이 별도로 존재한다. 특기가 있거나, 장식용 아이템으로 나온다. 삼국지 12의 고대무장 인상여가 들고있는 물건이 화씨벽이다.
3. 같이보기
[1] 초산(楚山) 혹은 형산(荊山).[2] 이 시기의 민간에 전해지는 사람들의 이름은 마을의 이름과 사람의 씨를 같이 적는게 일반적이었다. 즉, 이 변화란 이름은 '변 마을에 살던 화씨' 정도의 의미. 변화의 정확한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3] 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4] 동그란 도넛 모양의 옥을 옥벽이라고 한다. '벽(璧)' 자는 요즘은 구슬이라는 뜻으로 새기지만 춘추전국시대의 실제 유물을 보면 구슬이 아니라 이렇게 납작한 도넛 형상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는 실제로 오래된 옥의 가공형태로, 본래 옥을 봉처럼 가공하고 그안에 원모양으로 구멍을 내서 파이프 같은 모양이 되면 채 썰듯이 잘라서 만든 보석이다. 이러한 디자인은 현대에는 단순해보이지만,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당시에 이것을 깔끔하게 만들어낸다는 것은 엄청난 공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아주 귀한 보석이었다.[5] 빌린 물건을 정중히 돌려 보낸다는 의미의 '완벽귀조'라는 고사성어도 있는데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