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황후 조씨
孝成皇后 趙氏
전한 성제의 두 번째 황후로, 본래 장안의 궁인이었다. 본명은 조의주(趙宜主)고, 흔히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비연(飛燕)[1] 은 '나는 제비'라는 뜻으로, 그녀의 체구가 가볍고 가무에 능했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다. 얼마나 몸이 가벼웠느냐면 성제와 같이 뱃놀이를 즐기다가 배가 흔들렸는데, 춤을 추던 조비연이 빠지려 하자 성제가 팔을 뻗어 조비연의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춤을 멈추지 않고 성제의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었다고 한다.[2]
본래 조씨 자매의 어머니는 고조 유방의 아들 연령왕 유건의 손녀로 강도용왕의 군주였는데 관원 조만에게 시집갔다. 하지만 조만은 풍류를 즐기는 군주를 만족시켜줄 수 없었고 결국 군주는 정력좋은 풍만금과 정을 통해 조씨 자매를 낳는다. 하지만 얼마후 조만이 죽자 군주는 풍만금에게 딸들을 맡기고 집을 나간다. 하지만 풍만금 마저 죽어서 조씨 자매는 성제의 누이인 양아공주(陽阿公主)를 모시는 궁인으로 있었는데, 미행을 나온 성제가 공주의 집에 들렸다가 황후를 보고는 미색에 반하여 궁으로 불러 대단히 총애하였다. 뒤이어 여동생도 불러들여 모두 첩여(倢伃)로 삼기에 이른다.
이후 조비연은 성제의 본처인 황후 허씨[3] 를 '성제를 저주한다'는 명목으로 참소했다. 허황후가 폐위되고 사사되자 조비연을 황후로 삼고자 하였는데, 왕태후는 출신이 미천함을 들어 반대하자 태후의 조카인 순우장(淳于長)을 통하여 태후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하고, 조비연의 양아버지인 조림을 성양후에 책봉해 귀족으로 승급시켰다. 그후 조비연은 마침내 황후가 되었고 동생인 조합덕도 다음 직급인 소의로 승급되었다. 이후 조비연은 전 황후인 허씨처럼 되지 않기 위해 아이를 가지려고 애쓰나 끝내 갖지 못했고 심지어 다른 남자들과 정을 통하고, 아이를 사들이는 등 갖은 시도를 하지만 끝내 실패하자 성제의 아이를 낳은 후궁 및 그 소생들을 누명씌워 죽여버려서 당대에 적지 않은 악명을 얻었다. 이 때문에 결국 성제는 제위를 계승할 아들이 없어 조카인 애제가 제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게다가 조비연에게는 합덕(合德)이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성제는 합덕도 총애하여 후궁으로 삼았다. 기록으로는 합덕은 조비연을 능가하는 미모의 소유자로서, 조비연은 자신이 황후가 된 이유가 외모가 아닌 춤과 노래였기 때문에 자신보다 더 아름다운 합덕을 추천했다고 한다.[4]
성제는 조씨 자매에게 빠져 매일 같이 즐겼는데[5] 결국 마흔이라는 빠른 나이에 코와 입이 비뚤어지고 백약이 무효할정도로 몸이 망가지지만 죽기 직전까지 춘약을 동원해 합덕과 동침했다. 이후 합덕의 침실에서 옷을 갈아입다 쓰러져 붕어하게 된다.[6] 성제는 생전 몸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음에도 매일같이 조합덕과 동침했으니 몸이 축나는 것도 당연한 것.
애제 때에 조비연을 탄핵하는 여론이 있었으나 '태후(조비연)가 성제의 서자들을 죽인 것은 바로 어지신 폐하(애제)를 제위에 모시기 위해서였다'는 아첨을 애제가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여전히 권세를 누릴 수 있었다. 그녀는 결국 평제 때 탄핵되어 서인으로 강등, 빈곤하게 살다가 자살했다. 동생 합덕은 애제 시절에 행해진 탄핵 때 미리 겁먹고 자결했다.
[1] 성씨와 합치면 조비연(趙飛燕).[2] 덕분에 양귀비가 풍만한 중국 미인상의 대표주자라면 조비연은 날씬한 중국 미인상의 대표주자로 꼽히기도 한다. 현대엔 조비연 같은 날씬한 타입의 여성이 미녀로 여겨지는 걸 보면 성제의 취향이 의외로 미래식이었던듯(?)[3] 선제의 아내인 공애황후 허씨의 조카. 그러니까 성제의 아버지인 원제랑 같은 항렬이다.[4] 조비연이 가무에 능했다면 조합덕은 화장술에 능했다고 한다. 그녀의 화장술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원산대(遠山黛)라는 눈썹화장인데 먼 산을 그리듯 가늘고 길게 그리는 기법을 썼으며 꽤나 유명했다고.[5] 정작 조비연과 조합덕 모두 황제의 아이를 가지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후궁들 중 아이 가진 후궁들을 상대로 암투가 꽤나 있었던 모양이다.[6] 고대의 두리뭉실한 표현이라는 것을 유념하자. 복상사를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