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제

 


<colbgcolor=#a11><colcolor=#ece5b6> '''한 제14대 황제'''
'''平皇帝 | 평황제'''
'''묘호'''
[1]
'''시호'''
효평황제(孝平皇帝)
'''연호'''
원시(元始, 기원후 1년 ~ 5년)
'''출생'''
기원전 9년
'''사망'''
기원후 6년 1월 2일[G]
'''재위'''
'''전한의 황제'''
기원전 1년 10월 15일[2] ~ 기원후 6년 1월 2일[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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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11><colcolor=#ece5b6> ''''''
유(劉)
''''''
간(衎)
'''부모'''
부친 중산왕 유흥, 모친 소의 풍씨
'''황후'''
효평황후 왕씨

1. 소개
2. 생애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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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전한의 제14대 황제. 묘호는 원종(元宗)이었으나 후한 때 폐지됐다. 시호는 효평황제(孝平皇帝). 원제의 손자이자 성제의 조카이자 애제의 사촌동생이다. 그의 아버지는 원제의 삼남 중산왕 유흥으로 소의 풍씨의 소생이다.

2. 생애


사촌형 애제가 일찍 죽자 왕실 최고 어른인 효원황후가 인망 높던 자신의 조카 왕망에게 권력을 맡겼고, 이 왕망이 중산왕 유간을 추대해 9살 나이로 즉위했다. 사실 성제, 애제가 모두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원제의 후손으로 당시 왕통에 가장 근접했던 이는 유간 밖에 없었다.
이후 기원후 4년에는 왕망의 장녀를 황후로 맞이했다. 이 사람이 효평황후 왕씨. 이 시절 권력은 왕망의 손에 있었으며, 선대 황제들처럼 그도 16살에 죽었다. 왕망이 애제 시절 애제의 외척들에게 밀려났던 경우를 생각해, 평제의 외가를 박해하고 수도에 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평제가 그것에 대해 원망하자 왕망이 두려워해 평제를 독살해 버렸다. 이렇게 유간이 죽으면서 원제의 후대는 끊어지게 되었다. 후에 전한의 마지막 황제인 유자영이 즉위하고, 얼마 안 있어 왕망이 선양을 빌미로 찬탈하며 황제가 되어 전한은 멸망한다.[3]

3. 둘러보기




[1] 후한 때 폐지[G] A B 나무위키의 규정에 따라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한 값이며, 당시의 달력으로는 원시 5년 11월 16일(병오일)이었다. 중문판 위키문헌에서 제공하는 한서 평제기에는 원시 5년 12월 병오일에 죽었다고 되어 있으나, 해당 달에는 병오일이 없으며 앞뒤로 11월 16일과 (이듬해) 1월 17일이 병오일이었다. 따라서 十一을 十二로 잘못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2] 나무위키의 규정에 따라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한 값이며, 당시의 달력으로는 원수 2년 9월 1일(신유일)이었다.[3] 평제가 독살당한 내막을 일컫어 납일초주(臘日椒酒)라는 말이 있다. 납일(臘日. 동지로부터 세 번째의 미일.)에 독을 넣은 초주(椒酒)로 왕망에게 독살당했다는 얘기다. 이 성어는 훗날 이인좌의 난 당시 이인좌 일당이 경종 독살설을 주장하면서 납일초주 시왕숙대라는 프로파간다를 퍼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