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원소의 부씨

 


孝元昭儀 傅氏
전한 원제의 후궁으로, 애제의 할머니이다. 본적은 하내(河內) 온(溫).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는 위군(魏郡) 사람 정옹(鄭翁)에게 재가하였고, 이복동생인 정운(鄭惲)을 낳았다.
입궁하여 태황태후인 효소황후 상관씨의 궁인으로 있다가 황태자였던 원제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이윽고 원제가 즉위하자 첩여(倢伃)가 되었으며 총애가 더욱 극진해졌다. 그녀의 사람됨은 재략을 갖추었고 다른 사람을 잘 섬기어 아래로 좌우의 궁인들에 이르기까지 음식을 베풀었다. 자녀로 평도공주(平都公主)와 정도공왕(定陶恭王)[1]을 두었다. 정도공왕도 재예가 있어 원제에게 아낌을 받았다. 하지만 효원황후 왕씨가 정궁으로서 인덕을 갖추고 버티고 있었고, 그 소생인 성제가 적장자로서 태자가 되었기에 황후의 지위를 얻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원제는 부소의와 정도공왕을 아꼈고, 다른 후궁인 풍첩여(馮倢伃)과 그 소생인 중산효왕(中山孝王)도 각별하게 여겼기에 두 아들을 제후왕으로 봉함과 동시에 소의(昭儀)로 칭호를 바꾸고 인수를 내리며 지위를 첩여보다 위에 두었다. 그래서 부소의라고도 불린다.
이윽고 원제가 붕어하자 아들과 함께 봉국인 정도국으로 갔고 정도왕의 어머니라서 정도태후(定陶太后)라 칭하였다. 그래서 부태후라고도 불린다. 10년이 지나고 아들이 사망하고 손자가 정도왕으로 즉위하니 이후의 애제이다. 부태후는 손자를 몸소 돌보고 양육했었는데, 성제가 후사를 두지 못한지 오래되자 효성황후 조씨외척보정이었던 황제의 외숙부 왕근(王根)에게 뇌물을 써서 황태자로 삼도록 책동을 일으켜서 성취하기에 이른다.
애제가 황제로 즉위하자 손자와 자신을 지지하는 관료를 움직여서 태황태후인 효원황후 왕씨에게 맞먹으려 들었다. 결국 황제의 친할머니로서 제태태후(帝太太后)라는 존호를 받았는데, 이 존호가 황태태후(皇太太后)로 바뀐 뒤에는 그 궁관(宮官)도 태황태후궁과 동일하게 설치하여 거의 대등한 위치까지 올랐다. 또한 기존에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왕씨 일족을 일선에서 밀어내고 자신의 일족을 외척보정으로 들여서 정권을 장악함으로서 거리낄 것이 없게 되자, 후궁이었던 자신의 처지를 잊고는 효원황후에게 할망구[嫗]라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또한 연회 자리에서 효원황후와 같은 자리에 앉으려다가 왕망에 의해 후궁이었음을 상기되는 모욕을 당하자 그를 일시 실각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같은 후궁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중산태후 풍씨를 옛 원한을 들어 자살시키는 등 패악을 부리기도 하였다.
원수(元壽) 원년(元年)에 사망하니 위릉(渭陵)에 합장되었고 효원부황후(孝元傅皇后)라 칭하였으나, 애제 사후 태황태후로서 평제를 세운 효원황후와 왕망에 의해 황후로서의 칭호와 태후로서의 존호가 박탈당한다. 또한 부씨 일족도 제거되었다.

[1] 애제의 아버지로 그의 즉위 이후 정도공황으로 추존되었다가 봉국명인 정도를 떼고 공황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