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모토 교타로

 




[image]
킥복싱 전적
23전 18승 5패

9KO, 14판정

5판정
생년월일
1986년 6월 23일
출생
일본 오사카
신장
183cm
체급
헤비급(95kg)
주요 타이틀
K-1 헤비급 챔피언(방어 1회)
복싱 전적
20전 19승 1패

11KO, 8판정

1KO
주요 타이틀
일본 헤비급 챔피언(방어 3회),
OPBF 헤비급 챔피언(방어 4회),
WBO 아시아 태평양 헤비급 챔피언(방어 3회)
링네임
교타로 레인저, 마에다 케이지로
1. 소개
2. 입식 격투
2.1. 아마추어
2.2. K-1
3. 프로레슬링
4. 복싱


1. 소개


사타케 마사아키, 무사시의 뒤를 이어 활약한 K-1의 마지막 일본인 에이스 킥복서.
극단적인 아웃 복싱을 구사하는 킥복서이다. 깔끔한 카운터 한방을 노리며 운영하는 사와야시키 준이치나 클린치를 이용한 더티복싱을 구사하는 무사시와는 달리, 트리키한 테크니션이다. K-1에서 활동하는 동안 단 한번도 KO로 패한 적이 없다.
하필이면 K-1 데뷔 시기에 무사시마사토로 대변되는 일본인 편파 판정 논란이 대단히 심할 때라 같은 아웃 복서인 준이치와 더불어 욕을 오지게 먹었다. 거기에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특유의 비호감 외모와 패션 테러리스트 급의 괴악한 패션 센스'''[1]가 더욱 어그로를 끌어 무사시마사토에 엮여 도매로 까였었다.
그러나 아웃 복서이긴 했어도 클린치 파이터 무사시마사토와 같은 편파 판정의 이점은 받지 못했다는 점에선 도매로 싸잡아 까인건 조금 억울하기도 할 듯하다. 오히려 타이론 스퐁 전에서는 로킥을 훨씬 많이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비매에 가까운 아웃파이팅 때문인지 판정단이 스퐁의 손을 들어주었다.
K-1이 도산한 이후로는 복싱으로 전향했다.
참고로 나가시마☆지엔오츠☆유이치로와도 친분이 있었다(...)

2. 입식 격투



2.1. 아마추어


07년 5월 3일 '제 18 회 전신 신 가라데 챔피언십 (K-2 GRAND PRIX) 헤비급 (+75 ㎏) 토너먼트 우승' 경력이 있다.

2.2. K-1


08년 후쿠오카 GP에 참여하여 일본 킥복싱의 에이스인 사토 타쿠미와 나가사코 츠요시, 무사시 등을 차례로 꺾고, 마이티 모라는 큰 산을 꺾었으나 모 전에서 등까지 돌려가며 도망가는 모습을 보여 야유를 받았다. 당시 교타로는 모의 사이즈와 파워를 의식한 듯 절대 성급하게 들어가지 않고, 짜증나는 스탭으로 붕붕훅을 유도하며 집요할 정도로 로우킥만 찼다. 거의 본야스키VS최홍만 전이 생각날 정도. 결국 연장 4라운드에서 모는 로킥 데미지 누적으로 다리의 힘이 풀리며 주저앉았고, 여기서 일어서지 못하며 KO패를 당한다. 결승전에선 당시 대박 신인 중 하나로 여겨지던 테세이라에게 판정패를 당했다. 모는 당시 5연패중이긴 했지만 본야스키와 최홍만 등을 이긴 강한 파이터였고, 테세이라 역시 밴너를 이긴 대박 공수도 신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 때 부터 교타로는 무사시를 잇는 차세대 강자로 인식되었다. 다만, 얍삽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어 안티들에게도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09년 요코하마 GP에서 멜빈 만호프에게 펀치 세례로 찜질을 당할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카운터 펀치로 KO 시키고, 결승에서 구간 사키와 접전을 펼친 끝에 판정승을 거두며 헤비급 타이틀을 획득한다. WGP 16강에서 신성 루슬란 카라예프에게 패했지만 교타로는 동양 선수 중 최강자임을 각인시킨다.
다음 년도인 10년에는 헤비급 타이틀 방어전에서 피터 아츠를 무려 KO로 이기는 이변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경기 내용을 보면 아츠는 치고 빠지는 로킥과 엇박자 투원투에 말려들어 안면 펀치를 계속 허용하다가 다운되는데 헤비급 타이틀 매치였기 때문에 체중 상한선이 존재했고, 늘 무체급으로 싸우던 아츠가 95Kg에 맞춰 감량한 것에 무리가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팬들도 많다. 그러나 세미 슐트무사시등의 파이터들로 인해 오픈웨이트는 결국 피지컬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격투기 팬들도 깨닫고 있던 시절이었고, 복싱같은 체급제를 도입한다면 교타로는 라이트 헤비급 세계 최강자가 될거라며 이 경기를 통해 고평가를 받게 된다. 실제로 구간 사키가 후에 글로리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이 된 이후에 교타로의 복싱 전향을 아쉬워하는 팬들도 많았다.
타이틀 보유자 자격으로 WGP에 진출하는데, 하필이면 첫 상대가 무관의 제왕 제롬 르 밴너였다. 2R 막바지에 KO 직전까지 몰리다가 공이 울려 겨우 살아나고, 3R에서 밴너가 교타로의 복싱 스킬에 말리며 엄청난 안면 축격을 받는 바람에 0-1로 연장이 선언된다. 연장이 선언되자 밴너는 링을 이탈하여 8강에 진출한다. 다만, 밴너는 링을 이탈 이 후 판정이 불공정했다는 의사를 표시했으며, 쿄타로 본인도 자신이 판정에서 질 것이라 예상했었다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산넘어 산이라고 제롬 르 밴너를 넘고 나니 세미 슐트가 그를 가로막는다(...). 대진표를 추첨할 때 세미 슐트가 자신의 상대로 결정되자 낙담하는 표정을 짓는 것이 카메라에 잡혔을 정도. 이 추첨식 때 교타로의 실시간 표정변화는 짬처리 혹은 폭탄돌리기라는 짤방으로 유행하기까지 했었다. 결국 여기서 판정패로 리타이어.
이후 K-1 다이너마이트에서 게가드 무사시와 경기한다. 놀랍게도 세미 슐트와 경기한지 단 20일밖에 되지않는 짧은 텀에 경기가 잡혔다. 전반적으로 무사시가 교타로에게 말려들어가는 듯한 전개로 무난한 판정승이 예상되었으나, 20일이라는 짧은 텀 탓에 제 컨디션이 아니었는지 집중력이 풀린 듯한 모습을 보이다 3라운드에 다운을 빼앗겨 판정패를 당하고 만다.
게가드 무사시에게 패한 것을 마지막으로 복싱으로 전향한다.

3. 프로레슬링


2011년 K-1의 경영난이 심화되고자 교타로는 프로레슬링 전향을 선언한다. 원래부터 프로레슬링에 관심이 있었던 것인지 2010년, 나카무라 신스케와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이벤트 경기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게 인연이 되었는지 2011년 동년 6월, 후나키 마사카즈를 상대로 프로레슬링 데뷔를 하였다.

4. 복싱


  • 주요 승리 : 마이클 오도넬, 김재찬, 아파 타투푸, 클라렌스 틸만, 차운시 웰리버, 파브리스 오렝, 피터 오켈로, 타케하라 코타츠(2), 이시다 노부히로(2), 데이비드 라데프, 데이비드 토레스 가르시아, 나단 맥케이, 아담 러브록, 윌리 나시오, 헤르만 에네페셀, 렌달 레이먼트, 아론 러셀, 수탓 칼라렉(2)
  • 주요 패배 : 솔로몬 하모노 , 다니엘 듀보이스
타니카와PD가 이후 K-1 경기 일정에 대해 상의하나 교타로는 타니카와라는 자는 누구인고? 나는 그런 사람은 알지 못한다네."라며 그를 무시했고, 복싱으로 전향한다.[2] 이 때 K-1 측에서 파이트머니 미지불이 있었음을 폭로하였고, 20일 밖에 안되는 텀을 두고 게가드 무사시와 경기를 시킨 것에 대해 좋지 않은 듯 한 감정을 가진 듯 한 발언을 했다.
K-1 시절 성적좋은 아웃복서들이 대개 그러하듯 호불호가 확 갈려서 복싱 전향을 했을 때 국내 팬들에게도 좋은 의미/안좋은 의미 둘 다로 주목받았었다.
주로 안티들에게 복서로써의 복싱 실력이 검증이 안됐다고 까였었다. 이시다 노부히로와의 2차전에서 발생한 판정승 논란도 그렇지만, 동태평양 헤비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솔로몬 하모노에게 KO패를 했을 때 국내의 안티들은 교타로의 복싱 실력은 킥 견제가 전제되는 킥복싱에서나 먹히는 수준일 뿐이라며 격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image]
그런데 이후 단 1패도 하지 않고, 14연승이라는 흠좀무한 전적을 쌓는 중.
솔로몬 하모노와 리매치를 갖지는 못했지만 이후 윌리 나시오를 이겨 동태평양 타이틀을 획득하고, 3차례의 방어에 성공했다.
2019년 2월의 인터뷰에선 앤서니 조슈아를 상대로 타이틀에 도전하고 싶다고 밝혔으나 큰 반향은 없었던 듯... 그리고 조슈아의 근황은 알다시피...
그러나 교타로의 입장에선 다행히도 12월 21일에 다니엘 듀보이스를 상대로 WBC 타이틀 전의 기회를 얻었다.[3] 아시아인 사상 최초로 헤비급 세계 타이틀에 도전하게 되었으나 듀보이스의 벽돌같은 잽에 농락당하며 커리어 사상 두번째 KO패를 당하고 만다.
[1] 본 사람은 알겠지만 수시로 바꾸는 헤어스타일과 헤어칼라는 한번도 정상인 적이 없었으며, 경기용 트렁크도 당나귀 꼬리가 달린 것을 입는 등 평범하지 않은 것만 고수했다.[2] 미스터 샤크 김민수와 심판 와다 료카쿠 사이의 트러블 건도 그렇지만 일본 격투계는 프로레슬링과 긴밀한 접점이 있고, 이는 입식단체인 K-1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타니카와는 이 때 본래 자기네 단체에서 활동하는 킥복서였던 교타로를 섭외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복싱으로 다시 전향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영향을 주었을 지도 모른다.[3] 다만, 알리나 타이슨 등이 보유했던 그 헤비급 타이틀은 아니고 WBC 실버 챔피언쉽이라고 하는 중간급 타이틀이다. 잠정 챔피언과 유사한 느낌이긴 하나, WBA가 잠정 챔피언 타이틀을 정규 챔피언의 존재 유무랑 상관없이 수여하고, 타이틀전도 정규 챔피언쉽과 별개로 치르게 하면서 WBC 역시 이와 비슷한 타이틀을 만들어낸게 실버 챔피언쉽이다. 하지만 잠정 챔피언처럼 정규 챔피언이 공석일 때 타이틀을 수여받거나 챔피언 복귀시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있진 않아 급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 하지만 마이너한 복싱단체의 월드 챔피언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