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존

 

1. 追尊
1.1. 추존 왕, 추존 황제 목록
1.1.1. 한국
1.1.2. 중국
1.1.3. 일본
1.1.4. 서양
1.1.5. 번외: 추존 공작
2. 추신수에게 적용되는 불리한 스트라이크 존

관련 단어
추숭(追崇) / 추존(追尊)
사후 생전의 지위보다 높은 지위를 주는 것.
추폐(追廢) / 추탈(追奪)
사후 전(前) 지위에서 강등시키는 것. 추후 삭탈이라고도 한다.

1. 追尊


일반적으로는 동양에서 사용된 개념으로 어떤 인물이 죽은 뒤에 생전의 직위보다 높은 직위를 올려주는 것이다. 반대 개념은 추탈(追奪).[1]
관료가 사후 관직이 높아져 추존되는 것은 '''추증(追贈)''', 생전에 이나 황제가 아니었던 인물을 왕이나 황제로 추존하는 행위는 '''추숭(追崇)'''이라고 하나, 왕정이 사라진 현대에는 따로 구별하지 않고 대부분 추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아주 드물지만 서양에도 추존왕이 있다. 현대에도 존재하며, 계급 특진 문서 참조.
신라 때 인물인 설총이나 최치원고려 현종 때 각각 홍유후와 문창후, 즉 후작으로 추증한 것처럼 후대에 재평가가 된다면 추증은 시대를 막론하고 가능했다. 그러나 왕과 왕족을 대상으로 하는 추존은 왕조국가였던 전근대에는 주로 그 왕조 안에서만 이루어졌다.
방계 혈통에서 왕위나 제위를 계승한 군주가 자신의 정통성을 높이기 위해 생전에는 군주가 아니었던 아버지를 군주로 추존하기도 한다. 고구려고대양, 신라김용춘 등이 아들 덕에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경우다. 그리고 한 나라를 건국할 때는 건국군주의 4대 즉 고조부까지 군주로 추존하는게 당나라 이후의 관습이다. 한국사에서는 고려, 조선, 대한제국이 건국군주의 4대조를 추존했다.[2] 이 경우 당연히 어머니도 자동으로 황후로 추존되지만 간혹 어머니만 별도로 추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사람이 후궁 소생인 경우이다.
또한 건국군주가 아니라도 먼 방계로서 보위에 올랐다면 역시 4대조를 추존해 자신의 정통성을 다지기도 한다. 신라의 원성왕,[3] 아직 조선왕조의 국왕일 때의 고종이 이렇게 했다. 고려의 공양왕도 방계였기 때문에 4대조를 추존했으나 왕이 아닌 공(公)으로 한단계 낮춰 추존했다.
중국 전한후한에선 추존 군주에게는 '제(帝)'를 빼고 '황(皇)'이라고만 해(ex. 효덕황, 효인황) 차등을 두었으나,[4] 한나라 이후부터는 추존 군주에게도 실제 재위한 군주와 동일하게 황제라 칭했다.
조선의경세자를 추존할 때 '의경대왕'이 아니라 '의경왕'이라 해서 한나라처럼 글자를 달리 해 차등을 두고자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추존 군주에게도 실재 재위한 군주와 동일하게 대왕이라 칭했다. 추존 문제와 관련해서 벌어진 사달은 가정제인조 문서를 참조.
추숭은 보통 추숭되는 해당 인물의 후손이 하지만, 특이하게도 부모자식을 추숭한 사례도 간혹 있다. 당고종측천무후황태자 이홍을 추숭한 예라든가.
예외적인 사례로 국성이 아닌 사람을 후대에 군주의 격으로 추숭한 사례도 있다. 이 경우는 사후 몇백년이 지나도 이만큼 해줘도 당시 사람들이 이의가 없었을만큼 명성이 엄청나게 높았던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례는 한국사에서는 김유신[5], 중국사에서는 공자관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1.1. 추존 왕, 추존 황제 목록



1.1.1. 한국



1.1.2. 중국


왕조가 자주 개창됐던 중국에는 추존된 인물도 엄청나게 많다.

1.1.3. 일본



1.1.4. 서양


후안 3세 - 생전의 작위는 바르셀로나 백작이며 사후 아들 후안 카를로스 1세가 후안 3세라는 이름으로 엘 에스코리알의 왕실묘지에 그의 시신을 안장하며 추존했다. 여담으로 아들이 왕이 되기 전, 프랑코 정권에 맞서 왕위를 요구할 때 자칭하던 왕호 역시 후안 3세였다.
프톨레마이오스 7세 - 단독으로 재위한 적은 없고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6세의 공통 통치자였지만 사실상 왕세자 취급받았다. 아버지 사후 잠시 왕위에 올랐다가 곧 삼촌 프톨레마이오스 8세에게 왕위를 뺏기고 피살되었지만 나중에 왕으로 인정해 주었다. 단종과 비슷한 경우.

1.1.5. 번외: 추존 공작


  • 변한국 영헌공(卞韓國 英憲公) 왕영
  • 진한국 인숙공(辰韓國 仁肅公) 왕분
  • 마한국 인혜공(馬韓國 仁惠公) 왕유
  • 삼한국 인효대공(三韓國 仁孝大公) 왕균
고려 공양왕은 방계로서 왕위에 올랐기에 성리학적 명분론에 따라 자신의 4대조를 추존해 정통성을 가지고자 했다. 하지만 그를 옹립한 이성계, 정도전, 조준 등 세력은 당연히 허수아비 왕이 정통성을 가지게 할 수 없었다. 결국 공양왕은 자신의 4대조를 군주가 아닌 봉국(변한, 진한, 마한, 삼한국)의 공작[7]으로 추존했다. 이는 한 세조 광무제의 사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2. 추신수에게 적용되는 불리한 스트라이크 존


Choo Zone.
2014년부터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게 된 추신수에게 불리한 스트라이크 존이 계속 적용되자 나온 말이다. 주로 엠엘비파크의 추신수 팬덤을 중심으로 사용되며, 현지 중계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보통 좌타자 기준으로 바깥쪽 높은 공을 스트라이크로 잡아준다.
2014년 5월까지만 해도 추신수는 출루 행진을 이어가며 굉장한 성적을 낼 기세였지만 본인의 부진, 부상에다가 심판들의 이해할 수 없는 스트라이크 콜들이 늘어나면서 성적이 급락하게 된다. 이에 추신수의 팬덤에서 성적의 하락 원인으로 가장 크게 지적하면서 나온 것이 추존이다.
다만 이게 과격해져서 "추신수가 동양인이라서 무시한다", "백인 꼰대 심판의 인종차별이다!"라는 극단적 주장으로까지 비약되는 경우가 있으나 그런 건 없다. 2010년대 들어서 좌타자들의 스트라이크 존 자체가 넓어지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추신수를 비롯해 맷 카펜터, 브렛 가드너, 조 마우어, 조이 보토 등 선구안형 좌타자들이 크게 손해를 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카펜터나 가드너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추신수보다 더한 피해를 받는 선수이다. 칼럼

[1] 생전의 지위나 추서된 지위를 없었던 걸로 함.[2] 고려는 3대조만 추존. 그 이유는 태조의 4대조부턴 추적이 불가능했기 때문.[3] 사실 원성왕부터는 유럽 같았으면 이전 신라와 별개 왕조로 쳐야 할 만큼 촌수 거리가 수십촌이나 나는 방계였다.[4] 태상황이란 용어에도 나타나듯, 황제 두 글자 중 황(皇) 자보단 제(帝) 글자 쪽에 실권을 가지고 통치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5] 김유신은 금관가야김해 김씨로 신라 왕족 경주 김씨와 성이 다르다. 김유신의 외가가 진흥왕계라고하는 하지만 모계이며, 게다가 김유신을 추숭한 흥덕왕은 진흥왕 직계도 아닌 내물왕계라 다른 흔한 직계 추존과는 상당히 다른 케이스기는 하다.[6] 한국사에서 유일하게 왕가 출신이 아닌 추존 왕.[7] 아버지는 대공으로 추존했다. 여담으로 동아시아에서 작위가 대공인 인물은 공양왕의 아버지인 인효대공, 왕균이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