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복사

 

'''흥복사(興福寺)'''
조선시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에 있었던 월산대군의 원찰(願刹)[1]이다.
1488년(성종19) 세조의 장손이자 성종의 친형이었던 월산대군이 35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평소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정실 승평부대부인 박씨[2]가 1490년(성종21) 남편의 묘 근처에 흥복사라는 원찰을 창건했다.
당시 성종인수대비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규모가 매우 큰 절이었으며 박씨 부인은 월산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흥복사에서 자주 불사를 일으켰다. 여기에서 법회를 개최할 때면 사대부가의 부녀자와 승려들이 대규모로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재 흥복사는 사라져서 터만 남은 상태이며 대신 그 자리에 월산대군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흥복사가 왜 없어지게 되었는지는 기록에 자세히 남아 있지 않다.
일본나라시에 한자까지 완전히 똑같은 사찰이 존재한다.

[1] 죽은 사람의 화상이나 위패를 모시고 그 원주(願主)의 명복을 빌던 법당[2] 1455년(세조1)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순천(順天)이다. 평양군 박중선의 장녀이자 중종반정 1등 공신 박원종의 큰누님이며 성종의 형수로 연산군과 중종의 큰어머니이기도 하고 중종의 계비인 장경왕후 윤씨의 이모다. 월산대군이 요절하자 묘 근처에 원찰인 흥복사를 창건하고 불사를 자주 일으켜 남편의 명복을 빌면서 지내다가 1506년(연산군12)에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