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t Get No) Satisfaction
1. 소개
1965년 발표된 롤링 스톤즈의 싱글. 초기 롤링 스톤즈의 상징격인 곡이자 '''록 역사상 최고의 명곡'''으로 불린다. 또한 밴드 내 리듬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의 최고작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Out of Our Heads 앨범 미국반에 수록되었으며, 롤링 스톤즈의 '''첫 자작곡'''이다. 그 동안 영국에 비해 힘을 쓰지 못하던 미국에서 롤링 스톤즈가 성공할 수 있게 한 곡이다. 빌보드 1위를 4주간 석권하며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 곡이 록계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며 록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곡이기도 하다.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곡에서 '''2위'''에 랭크되었으며, VH1 선정 20세기 최고의 록 명곡 1위에 랭크되었다. 어클레임드 뮤직에서는 2017년까지 집계된 버전까지만 해도 5위였으나 2019년까지 집계된 버전인 현재 버전에서 10위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이 노래가 대단한 명곡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한 번만 들어도 기억되기 쉬울 정도로 중독성 있는 강렬한 리프'''가 특징인데, 이 곡에 대해 일화가 하나 있다. 키스 리처즈가 호텔에서 잠들기 전에 이 곡의 리프가 계속 머리에 맴돌았는데, 자다 깨서 믹 재거와 함께 이야기해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키스 리처즈의 머리 속에 하루 종일 맴돌 정도의 강렬한 멜로디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이로 인해 '''수능 금지곡의 시초'''로도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곡의 성공은 '''롤링 스톤즈의 방향성을 바꾸게 만드는 계기'''도 된다. 이 곡 이전까진 브라이언 존스의 영향력이 강해 기존 곡을 리메이크하는 커버 곡이 위주였던 롤링 스톤즈였지만, 이 곡의 성공과 그 성공에 고무되어 자작곡으로 채워 만든 앨범인 Aftermath(앨범)까지 성공하면서 밴드의 주도권이 재거-리처즈 작곡 콤비로 넘어가게 됐기 때문이다. 또한 밴드의 주요 스타일도 브라이언 존스가 추구하던 블루스 록에서 키스 리처즈가 추구한 로큰롤로 넘어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원곡보다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오프닝에 쓰인 비엔나 심포닉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이 유명하다.
아방가르드 성향이 매우 강한 뉴웨이브 밴드인 '디보'(Devo)의 리메이크 곡도 꽤 유명한 편인데. 이쪽은 '''가사와 몇 리듬을 제외하고는 다른 곡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느낌이 원곡과 완전히 딴판이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Oops! I did it again 앨범의 4번 트랙으로 커버한 적이 있다.[1]
롤링스톤즈의 라이브 공연에서는 'Jumpin Jack Flash'를 항상 오프닝곡으로 연주하고 이 곡은 항상 공연 마지막에 연주된다.
2. 가사
보면 알겠지만, 악동 그룹 롤링 스톤스 답게 '''욕구불만(...)'''을 암시한 노래를 냈다. 성적인 묘사를 담은 노래들이 많아진 지금 기준으로 보면 왜? 하겠지만 이 노래는 '''1965년''' 노래이다... 즉, 1960년대 중반에 성관계를 암시한 노래를 낸 것이다! 따라서 보수적이었던 1960년대 영국 사회에서 이 노래는 어느 정도 검열의 영향을 받았다.
3. 공연
1981년. [2]
1969년 하이드 파크 공연.
1965년, 발매 당시 라이브.[3][4]
[1] 그 당시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였다. 그만큼 이 노래가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노래임을 보여준다.[2] 인터뷰에서 기자가 이런행동을 한 이유를 묻자, 그 관객이 드럼키트를 부숴서 라이브를 망치지 않을까 해서 였다고...[3] 이 당시 말 그대로 이 노래는 '''미국을 휩쓸고 있었다.''' 기타 리프가 '''나오자마자 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난리를 피우는 모습'''을 감상하자.[4] 브라이언 존스, 믹 재거 등은 '''1965년'''이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상당히 세련된 패션 스타일을 자랑한다.''' 물론 원래 이 둘은 평상시에도 현대적이고 세련된 패션을 자랑하는 당대 최고의 패셔니스타들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