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리처즈

 

'''키스 리처즈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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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Richards '''
'''본명'''
키스 리처즈
Keith Rechards
'''출생'''
1943년 12월 18일 (80세)
잉글랜드 켄트 주 다트퍼드
'''국적'''
영국 [image]
'''직업'''
기타리스트, 가수, 작곡가
'''신체'''
173cm
'''소속'''
[image] 롤링 스톤스
'''서명'''
[image]
1. 개요
2. 상세
3. 평가
4. 여담


1. 개요


'''키스 리처즈'''(Keith Richards)는 영국의 기타리스트, 가수, 작곡가 그리고 전설적인 록 밴드 롤링 스톤스의 창립 멤버이다. 기타리스트들 중 거의 시조격 인물이다. '''악마의 재능'''의 상징이자 '''리프의 끝판왕'''으로 불린다.
그야말로 기타리스트들의 기타리스트로 그가 연주한 전설적인 리듬 연주와 리프들은 록의 모든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봐도 무방하다. 화려한 솔로보다는 리듬 기타리스트계의 전설로 추앙받는 기타리스트이다. 역사상 최고 기타리스트 top 5 안에는 꼭 들어간다.
또한 록 스타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구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엄청난 일탈과 성깔로 유명했다. 70년대에 마약을 정말 많이, 미친듯이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순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 정정한 생존왕이다. 1981년에 무대에 난입한 관중을 기타로 두들겨 팬 일이 있는데 그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장면일 것이다. 영상 이때 왜 두들겨 팼는 지에 대해 나중에 인터뷰한 내용은 그 관객이 드럼 키트를 부술까봐 그걸 막기 위해서였다고.[1]

2. 상세


1943년 12월 18일 영국 켄트 주 다트포드에서 태어났다. 친구이자 음악적 파트너인 믹 재거가 순탄한 성장기를 보낸 것에 비해 그의 성장기는 꽤나 암울했는데, 태생부터가 노동자 계급이였으며,[2] 그 시절 사람들이 다 그렇듯 공장을 다니던 키스의 아버지는 일이 끝나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돌아와 아들과 제대로 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키스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 친했지만 다행히 외가 쪽 식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가족관계 면에선 아버지와 약간의 갈등을 겪는 것을 제외하면 별 문제가 없었다.
다만 태어난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그 역시 전쟁의 화마에서 자유롭지 못해 신생아 시절엔 살던 동네가 독일군의 공습으로 쑥대밭이 되었고,[3] 유치원에 다닐 무렵 훗날 그와 평생을 함께 할 음악적 파트너인 믹 재거를 만나게 되지만 성장하면서 키스는 원래 살던 곳보다 가난한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곳에서 키스는 또래보다 작은 키와 커다란 귀때문에 따돌림의 대상이 되었고,[4] 불량배들에게 매일 구타를 당해 얼굴과 무릎에 멍을 달고 살았을 정도로 괴롭힘에 시달렸다. 학교가 끝나면 불량배들의 괴롭힘을 피해 자전거 페달을 필사적으로 밟았다고.[5] 교우 관계도 최악이였지만 진로도 불안했는데, 뭐라도 배울 수 있을까 싶어 테크니컬 스쿨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공부를 놓아버렸고, 결국 학교에서 퇴학까지 당한다.[6] 그나마 그림에 소질이 있어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그가 다니던 예술 고등학교는 동네에 하나쯤은 있는 그저 그런 학교였다. 그야말로 가난과 외로움으로 점철된 침울한 성장기를 보낸 것. 그러나 될 놈은 어떻게든 된다고, 18살이 되던 해인 1961년 다트포드 역 등굣길에서 어릴 적 친구였던 믹과 재회하게 된다. 그때 키스는 기타를 들고 있었고, 믹은 머디 워터스(Muddy Waters)의 앨범을 들고 있었는데, 키스는 믹의 두꺼운 입술을 보고, 믹은 키스의 커다란 귀를 보고 서로를 알아봤다고 한다.

믹 재거와의 재거-리처즈 콤비는 레논-매카트니에 버금갈 정도로 유명하다[7] .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유치원 동창이었던 둘은 대학생 시절 기차역에서 다시 만나 친해지게 되었다.

3. 평가


그가 만든 리프와 리듬 연주는 락 기타에 전반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그가 최고의 기타리스트라고 불리는 이유는 대부분 솔로 파트가 아닌 리듬, 리프 연주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테크니션과는 거리가 멀며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도 않지만 리듬 기타리스트 중에서 순위를 꼽으라고 하면 항상 최상단에 위치하는 기타리스트이다. 'Sastifaction' 등의 교과서격 리프들도 그에게서 나왔다.

4. 여담


  • 서양권에선 락스타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구축한 것으로 유명하다.[8] 마약은 나이를 먹어가며 끊었지만 아직도 담배는 무대 위에서도 엄청 피워댄다. 그런데 2020년 들어 금연에 성공한 듯. 2019년 10월 달부터 금연을 시도했는데, 그의 말로는 마약보다도 끊기 어려웠다고 한다. 결국 젊은 시절에 엄청난 일탈&마약을 한 탓에 20대 시절에는 괜찮은 미남이었지만 30대인 70년대부터 폐인 이미지로 변했고 40대인 80년대부턴 노안이 되었다. 실제로 키스 리처즈의 젊은 시절(1960년대 초반) 사진을 보면,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나이가 들면서 외모가 많이 변했다.[9] 음악적 파트너이자 절친인 믹 재거가 팔순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세련된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과는 대비되게 본인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도 있고...
  • 또한, 엄청난 독설가로 유명한데, 이 양반이 당최 좋아하는 뮤지션이 있기는 한가 싶을 정도로 다른 뮤지션, 장르들에 대해 그야말로 악다구니를 퍼붓는다. 그가 인터뷰 등에서 공식적으로 깠던 뮤지션들만 해도 데이비드 보위, 오아시스, 프린스, 메탈리카, 블랙 사바스 심지어 자기네 보컬까지[10] 등 후덜덜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그렇다고 유아독존은 아닌지 'Wicked As It Seems'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화장을 받으면서 "X에다 백날 광칠해봤자 쓰잘 데 없다"고 자기디스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롤링스톤즈 멤버 중 키스의 독설을 피한 사람은 드러머 찰리 와츠밖에 없다. 그도 그럴게 찰리는 사생활이 문란하지도, 음악적으로 갈등을 겪지도, 성격이 맞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 오히려 개그 코드가 잘 맞는 절친이며 찰리가 후두암에 걸려 투병할 당시 '우리 밴드는 찰리가 드럼을 쳐줄 때 까지 간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를 존중하는 편이다.물론, 키프가 칭찬을 해주는 후배 뮤지션들도 많지는 않지만 있다. 대표적으로, AC/DC
  • 캐리비안의 해적의 주인공 잭 스패로우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으며 3편4편에서 그의 아버지 역으로 우정출연 하기도 했다. 잭 스패로우의 배우인 조니 뎁과도 친한 사이인데, 처음엔 아들의 소개로 만났지만 뎁이 키스의 팬이였고, 그가 키스의 집에 자주 들락날락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이때 키스는 뎁이 누군지 몰라 처음엔 마약상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 뎁이 정확히 뭘 하는 사람인지는 묻지 않았다고. 그리고 2년 뒤에야 그가 가위손에 출연한 배우인걸 알았다고 한다.
  • 한창때는 아버지의 유골과 함께 코카인을 흡입한 적이 있다고 한다...라는 건 루머. 키스 역시 잘 알고 있는 루머이기에 자서전에서 해명했다. 그의 아버지의 장례식은 유골을 오크나무 위에 뿌리는 식으로 치뤄졌는데, 유골함을 열었을때 가루가 바람에 흩날려 테이블 위로 떨어졌고, 그것을 손으로 훑어 살짝 들이마셔본 것이 앞서 말한 루머로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활동한지 워낙 오래된 음악인인데다 록 뮤지션에 대한 편견 탓인지 말도 안되는 루머가 많다. 헤로인 중독 치료를 위해 온몸의 피를 새 피로 갈아치웠단 루머도 유명하다.
  • 1969년부터 1980년까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한 모델이자 배우 아니타 팔렌버그(Anita Pallenberg)[11]와의 사이에서 2남 1녀를, 1983년 결혼한 모델 패티 헨슨(Patti Hansen) 사이에서 2녀를 두었다. 아니타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번째 아이는 생후 10주만에 사망했는데, 슬프게도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에 부고를 접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무대에 올라야했는데, 어찌보면 매정해 보일 수도 있으나 그 당시에 롤링 스톤즈는 사흘간의 연일 공연 일정이 잡혀있었고, 갑자기 공연을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였기에 그가 자리를 뜨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거기다 키스 본인이 훗날 말하길, 당장 무대에 오르지 않으면 총으로 자살해 버릴 것 같이 괴로웠다고...
  • 어렸을 적엔 여리고 수줍음 많은 성격이였다고 한다. 통학버스를 놓치면 어쩔 줄 몰라하면서 어머니부터 찾았다고. 본래 내성적인 성격이였던 모양. 다만 위에서 서술했던 험난한 성장기를 거치며 거칠고 냉소적인 성향이 생긴 듯 하다.
  • 염색약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굳게 믿는 듯 하다. 흰 머리를 감추는 용으로 꾸준히 염색을 하는 믹과 로니에게 염색약의 위험성을 열심히 설파한다고. 그런데 본인도 결국 2019년 5월 경 염색을 했다.
  • 치즈를 싫어한다. 치즈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당당히 말할 정도로 싫어하는데, 이 인터뷰를 하면서 치즈를 먹은 사람들은 얼굴이 둥글어졌다는 식의 손짓을 하는 것으로 보아 치즈를 비만의 원인 쯤으로 여기고 싫어하는 모양.
  • 자서전에 레시피를 실어놓을 정도로 셰퍼드 파이를 좋아한다. 이와 관련해 1989년 경 멤버들이 자신의 몫을 남기지 않고 셰퍼드 파이를 다 먹었다는 이유로 무대에 오르지 않겠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는 일화와, 롤링 스톤즈의 서포트 밴드를 했던 스테레오포닉스의 드러머 스튜어트 케이블이 그의 셰퍼드 파이를 먹었다가 키스의 분노를 불러올 뻔했다는 일화가 있다. 후자의 경우 요리사가 파이를 원상복구 시키는 것에 성공해 아무 일 없이 넘어갔지만, 롤링 스톤즈 멤버들과 스테레오포닉스 멤버들이 당구를 치던 날 키스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스튜어트에게 "네가 내 파이를 먹었지? 그렇지?" 라고 물었다고.

  • 척 베리에게 얼굴을 맞은 적이 있다. 공연전 대기실에서 리처즈가 케이스에 놓인 베리의 기타를 보고 잠깐만 만져보겠다고 부탁했는데 베리가 걸어오더니 '아무도 내 기타에 손 못대' 라면서 냅다 면상에 주먹을 날렸다고. 다만 얼굴 맞았던 일을 웃으면서 얘기한걸 보면 이 일로 둘의 사이가 나빠진건 아니고 일종의 해프닝으로 넘긴듯. 사실 이것 외에도 베리가 키스를 무대 밖으로 밀치는 등 여러 일화가 존재한다.[12] 하지만 198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척 베리를 헌액할 때 키스 리처즈가 사회를 봤을 정도로 정도로 그들의 사이는 각별했다.[13] 키스 리처즈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니... 그리고 그들에게 기타는 전쟁터에 나가는 무기나 다름없기 때문에 분신과도 같은 기타에 타인이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기도 했다. 반대로 키스의 후배가 본인의 기타를 만져보게 해달라고 했더라도 빌려주거나 하기 어려웠을테니 이해하고 넘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 베이시스트 빌 와이먼이 탈퇴했을때 그의 암살 계획을 짰다고 한다. 물론 농담. 2016년 성탄절에 향초를 보내는 등 여전히 교류하며 잘 지낸다고 한다.

[1] 사실 관객이 무대에 난입하는 것은 관객의 잘못도 있지만, 그것을 막지 못한 경호팀의 잘못도 크다. 만약 키스가 그 관객을 쫓기 위해 기타로 두들펴 팰 때 기타가 망가졌으면 어떻게 되었을까?[2] 흔히 비틀즈롤링 스톤즈를 대비시키며 비틀즈는 얌전한 척 하는 노동자 계급, 롤링 스톤즈는 양아치인 척 하는 중산층 계급이라는 식으로 말하곤 하는데, 사실 롤링스톤즈에서 중산층 출신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역대 멤버 중 브라이언 존스믹 재거 두 사람밖에 없다. 믹 테일러나 찰리 와츠, 빌 와이먼은 노동자 계급 출신이였고, 로니 우드는 부모 세대부터 영국에 정착한 집시 가정 출신이기 때문에 그 역시도 중산층은 아니였을 것이다.[3] 이때 키스는 어머니가 그를 데리고 자리를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이웃집은 폭탄을 맞았다고한다. 말 그대로 태어남과 동시에 생사를 오간 격. 여담이지만 롤링스톤즈의 대표곡 중 하나인 Jumpin' Jack Flash엔 'I was born in a cross-fire hurricane'(나는 격전지의 폭풍 속에서 태어나-) 라는 가사가 있는데, 키스가 언제 독일군의 폭탄이 떨어질지 모를 상황에서 태어난걸 생각하면 이보다 절묘할 수가 없다.[4] 실제 키스의 키는 약 173cm. 젊은 시절에는 175cm였다는 말도 있다. 연예인들 중에서는 작은 키이고, 현재 영국 남성들의 평균 신장(약 175cm)엔 살짝 못미치지만, 그 당시엔 평범한 영국인 남성 평균 정도 되는 키였다. 현재 대한민국 남성 키 기준 173cm 정도라고 보면 된다. 오히려 동료 브라이언 존스가 168cm로 더 단신이다. 그러나 귀는 실제로도 큰 편.[5] 그가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도서관엔 자길 괴롭히는 불량배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린 키스의 장래희망은 사서였다.[6] 퇴학 사유는 교내 흡연. 키스는 10대때부터 흡연자였다.[7] 다만, 레논-메카트니는 각자가 모두 작곡과 작사를 했지만, 재거-리처즈 콤비는 각 곡마다 역할을 분담해서 믹 재거가 주로 작사를 하고 키스 리차드가 주로 작곡을 하는 형식이었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참고로 레논-매카트니는 비틀즈 초창기엔 각 곡을 공동작곡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1965년경부터는 각 곡들을 둘 중에 한 명이 작곡하고 크레딧만 레논-매카트니라고 공동으로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8] 이를 반영하듯 고릴라즈머독 니칼즈의 외형적 모티브는 젊었을 적의 키스 리처즈이다. 머독의 성격 역시 음악계를 휩쓸었던 전설적인 락스타들을 모티브로 삼고 있는데, 키스 역시 그 중 하나.[9] 당장 1964년 모습1974년 모습의 차이를 보자... 마약이 10년만에 사람을 이렇게 만든다.[10] 대표적으로 80년대 들어 믹이 솔로 활동을 시작했을때와 기사작위를 받았을 때. 물론 80년대 재거-리처즈의 관계는 1970년대 초반의 레논-매카트니급으로 매우 험악했으니 서로 으르렁대는건 당연했다. 기사작위의 경우 청년기부터 높으신 분들을 싫어하며 공권력과 갈등을 겪었던 키스였기에 같이 갈등을 겪던 믹이 왕실(심지어 정작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믹을 싫어했다)이 주는 기사작위를 받자 배신감이 들었던 모양. 그래놓고는 인터뷰에선 믹을 사랑한다, 밴드 활동을 결혼 생활로 비유하며 자기는 남편이고 믹은 아내이며 우리는 이혼할 수 없단 말도 많이 했다. [11] 롤링 스톤즈 전직 리더 브라이언 존스의 전 여친이다. 브라이언 존스 항목을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원래는 브라이언의 약혼녀였으나 1967년 키스가 NTR했고 브라이언 존스는 결국 69년에 스톤즈에서 방출당한 후 자택의 풀장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사고사였는지 자살이었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12] 척 베리로큰롤의 대부격인 인물이기 때문에 생전에 키스 리처즈를 포함한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의 존경을 받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만약 척 베리가 음악적 영향력만 지대하고 그의 인품이 개차반이었다면 리처즈가 저 당시 에피소드를 언급하면서 기분 나쁜 태도를 보였거나 웃으면서 회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