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준플레이오프/1992년
1. 개요
1.1. 1차전 : 햇병아리 염종석, PS 데뷔 첫 등판을 완봉승으로 이끌다.
승리 투수 : 염종석
패전 투수 : 성준
경향 동아
9월 24일 목요일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비로 인해 하루 뒤인 25일로 미뤄졌다. 삼성은 데이터를 신봉하는 김성근답게 예상대로 롯데의 좌타자 라인을 상대하기 위해 로나쌩이기도 한 좌투수 성준을 선발투수로 올렸고, 롯데는 당초 베테랑 윤학길이 등판할 것으로 보였으나 강병철 감독의 선택은 신인왕을 차지한 만 19세의 염종석이었다.
1회말 선두타자 전준호는 좌익선상 2루타를 친 뒤 박정태의 좌중간 적시타로 홈팀 롯데가 0:1로 앞서나갔다. 이는 이 경기의 결승타가 되었다.
1회 1점 후 8회까지 0:1의 살얼음판 경기가 계속되다가 8회말 2사 후 안타가 없었던 공필성이 성준으로부터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했고 다음 타석에 들어선 이는 신인 박계원이었다. 박계원은 성준의 초구를 자신있게 공략하여 우측 펜스를 맞추는 타구로 적시 3루타로 만들어내며 귀중한 추가점을 만들어냈다. 이어 김선일도 성준의 초구를 공략하여 적시 2루타로 롯데는 0:3으로 여유있게 달아났다.
삼성은 2회 1사 1루, 6회 무사 1루의 기회가 있었으나 병살타와 번트 작전 실패로 그 기회를 무산시켰다. 삼성은 2루조차 밟은 주자가 없었다.
이날 경기의 주인공은 '''만 19세의 고졸투수 염종석'''이었다. 그는 시속 145km를 넘는 속구와 예리한 슬라이더로 삼성의 강타선을 피안타 5개 무사사구 삼진 5개로 잠재웠다. 신인투수가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완봉승한 것은 1989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태평양 박정현 이후 두 번째이며[1] 무사사구 기록은 염종석이 처음이다.
허구연 위원은 김성근 감독이 허를 찔린 것 같다고 평가했다.[2] 롯데 선발투수로 윤학길이 나올 것으로 보고 젊은 선수 대신 노련한 노장급 선수들을 대거 출장시켰으나 이들이 염종석의 빠른 볼에 거의 손을 대지 못한 것이 패인이라고 분석했다. [3]#
1.2. 2차전 : 에이스 박동희의 역투, 손쉽게 광주행 티켓을 잡아내다
중계방송사는 KBS 1TV.
승리 투수 : 박동희
패전 투수 : 김상엽
홈런 : 박계원(4회 1점), 한영준(6회 1점)
동아 경향
1차전 염종석에 이어 2차전도 박동희가 완봉승을 기록, 롯데는 투수 단 두 명만 쓰고 무실점으로 플레이오프를 확정지었다. 삼성은 포스트시즌 23이닝 연속 무득점의 빈공으로 무기력하게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했다.
2회초 롯데는 한영준이 선두타자 볼넷으로 출루한 뒤, 공필성의 번트로 진루했고, 9번 김선일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2회말 삼성은 롯데의 실책과 폭투, 볼넷으로 무사2루와 무사 1,2루의 찬스를 맞았으나 이를 살리지 못했다.[4]
롯데는 4회초 1차전에서 중요한 3루타를 쳤던 박계원이 김상엽을 상대로 좌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홈런을 치며 2:0으로 달아났다. 6회초에는 베테랑 한영준이 류명선으로부터 도망가는 좌중월 1점 홈런을 기록하며 3:0이 되었다. 8회초엔 1사만루에서 공필성의 희생플라이로 4:0이 되었다.
롯데는 9회까지 박동희가 1점도 주지 않고 완봉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서 해태와 대결하게 되었다.
삼성은 김상엽, 류명선 이외에 이태일, 김태한, 오봉옥을 모두 투입했지만 타선 지원이 없어 무위에 그쳤다. 홈런 타자가 없다는 평가를 들었던 롯데는 결정적인 홈런 두 방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반면 장타력이 있다고 평가받았던 삼성은 단 1점도 뽑지 못하는 빈타에 허덕였다.
강병철 감독이 이끈 롯데는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만나 단 2명의 투수(염종석, 박동희)가 2연속 완봉승을 거두며 김성근이 이끄는 삼성을 3:0, 4:0으로 완파하였다. [5] 김성근 감독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얼마 뒤 총감독으로 이동하여 사실상 경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