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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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야구선수. 삼성 라이온즈와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활동했다.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삼성 투수진을 지켰던 투수.
버들 류(柳)자를 쓰다보니, 현역 시절에는 '''유명선'''으로 등록됐고 마찬가지로 KBO에서 유명선으로 검색해야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류씨 성을 제대로 표기하기 시작한 것이 2007년부터고, 류명선이 은퇴한 건 그보다 한참 이전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삼성 라이온즈 소속 투수 중에서는 최초로 데뷔전에서 선발승을 기록한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계명대 재학 중인 1988 신인지명 때 삼성에 1차 지명을 받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 참가 때문에 대학 졸업 후 실업팀인 세일통상 야구단에 입단해 1989년에 삼성에 입단했다.
프로 첫해인 1989년 4월 12일에는 첫 완투승을, 5월 24일에는 첫 완봉승을 거두는 등 14승 8패 1세이브의 성적을 기록하며 당시 김시진의 이적으로 자칫 약화될 수도 있었던 삼성 투수진을 김성길과 함께 같이 지켰다. 타격 2위를 차지한 강기웅과 함께 그해 삼성의 대표적인 유력 신인이었지만, 신인왕은 19승을 거두며 맹활약한 태평양 돌핀스의 박정현이 차지했다. 이듬해 이태일이 입단하며, 김성길 등과 함께 1990년대 초 삼성 선발진의 주역으로 활약했다.[1]
1992년부터 점점 성적이 하락해 갔는데, 때마침 1993년에 등장한 박충식 - 김태한 - 김상엽 - 성준으로 이어지는 삼성 선발진이 모두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그의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구원투수로 나와서 혼자 2패를 당해 당시 삼성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2] 특히 잠실에서 벌어진 6차전에서는 해태 김성한에게 역전 홈런을 맞았고, 이후 시리즈 전체의 판도가 해태에 기울어지면서 더욱 뼈아픈 장면이 되었다.
이후 부진을 면치 못하다 결국 1995년 5월 김현욱과 같이 쌍방울로 트레이드되었다.(류명선+김현욱↔최한림+윤혁) 쌍방울에서도 재기에 실패해 1996년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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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2004년 말 모교인 계명대 코치로 부임해, 2011년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참고로 류명선은 계명대 야구부 1기 출신.
3. 연도별 성적
4. 관련 문서
[1] 물론 이 시기에는 김상엽도 있었지만 1990년을 제외하면 기대 이하의 성적이었고, 입단 동기였던 정윤수 또한 1990년 선발과 중무리를 오가며 혹사 당한 탓에 이후로 큰 활약을 하지 못하였다.[2] 류명선에게는 불행 중 다행히도, 이들 2패는 광주와 잠실의 원정 경기에서 당한 것이었다. 만약 홈인 대구에서 패한 것이었다면, 더욱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