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SA 508편 추락 사고

 


스페인어 : El vuelo 508 de LANSA, Vuelo 508 de Lansa (Perú)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
1971년 12월 24일
'''유형'''
번개로 인한 기체 파괴
'''발생 위치'''
페루 뿌에르또 잉카 상공
'''탑승인원'''
승객 : 86명
승무원 : 6명
'''사망자'''
'''91명 사망, 1명 생존'''[1]
'''기종'''
록히드 L-188A 일렉트라
'''항공사'''
LANSA
'''테일넘버'''
OB-R-941
'''출발지'''
페루 리마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
'''도착지'''
페루 이키토스 이키토스 공항
1. 개요
2. 사고
3. 줄리안 코엡케의 기적적인 생환
4. 사건 이후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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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1년 크리스마스 이브 발생한 항공 사고로, 팬암 214편 추락 사고와 마찬가지로 항공기번개를 맞아 추락한 사고다. 사고 자체는 비극이었지만, 단 한명의 생존자, 당시 17세 소녀였던 줄리안 코엡케가 정글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한 이야기로 더 유명하다.

2. 사고


사고 항공기는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에서 출발, 이키토스를 향해 비행했는데, 비행 중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와 마주쳤다. 비행기는 난기류때문에 심하게 흔들렸는데, 기장은 무작정 뚫고 가기로 무모한 결정을 내렸다. 이때가 크리스마스 이브였기에 무리해서라도 할러데이 스케줄에 맞추려고 했던 것. 그리고 기장의 안전불감증은 대형 사고로 이어지고 만다.
12시 36분경, 번개가 오른쪽 날개 연료통에 직격하면서 사고가 터진다. 원래 일반적인 여객기는 번개를 맞아도 버틸 수 있게 디자인되었지만, 사고 기종인 L-188은 날개 설계상 난기류에 취약한 기종이었다. 결국 번개를 맞은 날개는 찢겨 버리고, 비행기는 그대로 공중에서 스핀하다 '''대폭발'''하여 산산조각난 채 추락했다. 결국 단 한명의 생존자, 줄리안 코엡케를 제외하고 전원 사망한다.
줄리안 코엡케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비행기 밖은 구름때문에 코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고, 오른쪽 날개에 섬광이 내리 꽂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날개는 폭발하지 않았고 그냥 쭈욱 찢어졌다고 한다.

3. 줄리안 코엡케의 기적적인 생환


줄리안 마가렛 코엡케[2]는 1954년 10월 10일생[3] 독일계 페루인으로, 당시 17세 여고생이었다. 줄리안은 어머니[4]와 함께 이 항공편으로 아버지[5]를 만나러 갈 계획이었으나,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추락 중 줄리안은 시트 째로 기체에서 튕겨났으며, 시트가 나무 사이에 걸리면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줄리안은 쇄골이 부러지고 오른팔에 찰과상을 입었으며 오른쪽 눈에 멍이 부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줄리안은 정신을 차린 후 먼저 바로 옆에 앉아있던 어머니를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6] 줄리안은 잔해에서 사탕을 몇 개 주웠는데 그녀가 구조되기까지 먹은 유일한 식량이 된다.
기막힌 우연으로 그녀의 부모 둘 다 생물 쪽 학자였으며, 줄리안 본인도 동물학자를 꿈꾸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서바이벌 관련 지식을 많이 전수받았는데, 이 지식은 그녀가 생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줄리안은 이동 중 무릎 깊이의 시냇물을 발견하고, 강을 따라 내려가면 언젠가 인가가 나온다는 아버지의 충고에 따라 무작정 시내를 따라 내려간다. 줄리안은 수 일을 시내를 따라 내려갔는데, 시내 덕분에 탈수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문제는 쇠파리였다. 시도 때도 없이 쇠파리가 들러붙는 바람에 줄리안은 잠을 잘 수 없었으며, 몸 곳곳에 쇠파리 유충이 기생하였다. 먹을 것은 사탕밖에 없던 줄리안은 수면 부족과 기생충 때문에 점점 쇠약해졌다.
시냇물을 따라 걷던 9일째, 줄리안은 물가에 정박된 모터 보트를 발견한다. 보트에는 연료통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쇠파리 유충이 들끓는 개를 치료하기 위해 몸에 휘발유를 부었던 것을 본 적 있던 줄리안은 기름을 자기 팔에 부었고, 한쪽 팔에서만 유충 35마리가 나왔다고 한다. 줄리안은 보트에서 기다렸고[7], 일을 끝내고 보트로 돌아온 벌목업자들에게 구조되어 상처를 치료받았다. 그 다음 날, 10일째에, 7시간 동안 카누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간 뒤 비행기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되어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4. 사건 이후


LANSA(Líneas Aéreas Nacionales S. A.)는 1963년에 설립된 페루의 민간 항공사로 1966년 LANSA 501편 추락사고, 1970년 LANSA 502편 추락사고[8], 그리고 1971년 이 사고로 인해 결국 부도처리되면서 1972년 1월 4일 폐업했다.
줄리안 코엡케의 생환기는 이후 영화 '더 스토리 오브 줄리안 코엡케(Miracles still happen, 1974)'로도 나왔다. 이후 2000년에 '희망의 날개'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나왔는데, 이 영화의 감독은 바로 아귀레, 신의 분노의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다. 베르너가 이 영화를 만든 까닭은 그가 '''하마터면 이 비행기를 탈 뻔 했기 때문.'''

5. 관련 문서



[1] 사고 당일에는 어머니인 마리아 코엡케가 생존했기에 '''90명 사망, 2명 생존'''이 조금 더 정확하나, 중상을 입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 사실이 확인되어 사망자 수가 91명으로 늘어난 것이다.[2] 지금은 결혼 후 '줄리안 딜러'로 성이 바뀌었다.[3] 현재 한국 나이로 66세.[4] 마리아 코엡케, 조류학자[5] 한스 빌헬름 코엡케, '''생물학자'''[6] 이후 조사 결과 그녀의 어머니 마리아는 추락 당시 생존했으나, 며칠 후 부상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한다.[7] 배를 타고 갈 수도 있었으나, 도둑질 하긴 싫었다고 한다.[8] 502편 추락사고도 기종이 동일했으며, 생존자도 1명이었다. 이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는 부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