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3 랜서
[image]
'''Republic P-43 Lancer'''
P-43 랜서(Republic P-43 Lancer)는 미국의 리퍼블릭(Republic Aviation) 사에서 개발하고 생산한 단발 전투기로, 훗날 유럽 전선에서 전폭기로 대단한 활약을 펼친 P-47 썬더볼트의 원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기종이다.
P-43의 원형인 '''리퍼블릭 AP-4'''는 미 육군이 1937년부터 쓰고 있던 세버스키 P-35의 발전형으로 개발이 시작되긴 했으나, 덩치가 한층 더 커지고 터보 차저까지 추가된 고공 전투기로 다시 태어난 까닭에 원래의 형태와 성능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신형기였다. AP-4는 1939년 5월부터 미 육군으로부터 도입을 위한 평가를 받았지만, 커티스 사가 제출한 후보인 XP-40에게 밀려나 채택은 불발되었다.
그렇지만, 이 시제기가 일부 성능은 커티스 후보기보다 더 좋았던 데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육군 심사단에서 공랭식 엔진을 선호하던 장교들도 있었던 탓에 AP-4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다. 육군은 재평가하기 위해 YP-43 랜서(Lancer)라는 명칭으로 13대를 더 주문했다. YP-43은 이륙 출력 1200마력을 내는 프랫&휘트니 R-1830-35 트윈 와스프 엔진을 장비한데다, 동체 아래쪽에는 수퍼 차저도 달려 있었다. 무장은 기수에 12.7 mm 중기관총 2정과 날개 좌우에 각각 7.62 mm 기관총을 1정씩 장비하고 있었다.
리퍼블릭 사는 1941년 4월까지 모든 기체를 육군에 납품하였다. 이어진 비행 시험에서는 25,000피트 고도에서 최고 속도 565 km/h를 기록하고 분당 780 m를 상승하는 성능을 보여 더욱 육군 심사단의 구미를 돋우게 되었고, 그 덕분에 P-40을 보조할 양산형으로 P-43을 54대 발주하게 된다. 그러나, 이즈음 벌어진 영국 본토 항공전을 지켜보며 새 시대의 공중전에서 P-43 정도의 무장과 성능으로는 턱없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미 육군은 이 전투기의 성능을 더욱 보완해주기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개발주임 알렉산더 카트벨리(Alexander Kartveli)를 중심으로 다시 뭉쳐 AP-4를 기반으로 하는 후계 기종 2가지 설계안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AP-4J는 P-44로 주문을 받았지만 양산 체제를 구축하기 전에 취소되었고, 그 대신 AP-4L에 주목한 육군은 이 기체를 후보로 삼아 P-47 썬더볼트의 원형기로 변해 간다.
P-44의 제작에 필요한 공장을 추가 매입하고 생산 라인을 만드느라 거액을 투자한 리퍼블릭 사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지게 되었지만, 미 육군은 개발 능력을 갖춘 업체가 도산하는 것을 막고 다음 차기 전투기인 P-47의 생산 라인을 확보하기 위해, 성능면에서 모자란 P-43이지만 생산을 계속하게끔 해주는 관대한 조치를 취했다. 이렇게 하여 P-43의 초기 생산은 1차 발주분 54대에서 완료되고, P-44의 생산 순서를 대체할 형태로 P-43A를 80대 만들게 된다. 이 첫 번째 개량형은 기본적으로 P-43과 같았지만, 엔진은 P&W R-1830-49로 교체되었다.
리퍼블릭의 파밍데일 공장에서 생산된 P-43와 P-43A는 1941년부터 육군항공대에 인도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B-17 같은 폭격기 용도로 개발되어 기술적으로 덜 익은 터보 차저는 조종사 혼자서 고도에 맞춰 다루기가 까다로운데다 정비 소요도 크게 늘어나 나중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는 상황에 빠졌다. 육군은 랜서가 전투기로는 부적합하다고 판단을 내리고 대부분의 기체를 정찰기로 활용했다. P-43A의 생산 개시와 때를 함께 통과된 렌드리스 법안에 근거한 중화민국 지원용 전투기로 주문한 것이 P-43A-1이다. 이 전투기는 엔진이 P&W R-1830-57으로 바뀌고 날개 무장도 12.7 mm 기관총으로 강화했으며, 방탄 장갑을 덧붙이고 자동방루식 연료 탱크로 바꾸는 등 몇 가지 개선이 있었다.
연합국 동맹군을 지원할 렌드리스 무기로 선정된 P-43A-1은 1942년 3월까지 125대가 만들어져 그중에서 108대가 장개석 정부가 이끄는 중국 공군에 넘겨졌다. 선편으로 인도의 카라치까지 실어온 이 전투기들을 인수한 중국 조종사들은 쿤밍까지 페리 비행하여 옮겼으나, 그 과정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40대가 넘는 기체가 추락하거나 파손되었다... 남아있던 69대의 P-43은 중국 본토를 지키기 위해 일본군 전투기들을 맞아 싸웠다.
나머지 17대의 랜서는 카메라를 탑재한 정찰기로 개조되고 미 육군에서 사용되었다. 일부의 사진 정찰형 랜서들은 1942년에서 1943년까지 짧은 기간이지만 전투기가 태부족하던 호주 공군에서 사용되었다.
훗날 랜서라는 이름은 X-27 실험기와 B-1 폭격기에 계승된다.
전장 : 8.69 m / 전폭 : 10.97 m / 전고 : 4.27 m / 익면적 : 20.72 m2 / 익면하중 : 163kg/m²
중량 : 2,173~3,850 kg
동력 : 프랫&휘트니 R-1830-57 공랭식 14기통 엔진 (1,200마력)
최대속도 : 573 km/h
실용상승한도 : 10,973 m
항속거리 : 1,046 km
상승률 : 780 m/min
무장 : 12.7mm 중기관총 4정 / 폭탄 200 lb
생산수 : 272대
'''Republic P-43 Lancer'''
P-43 랜서(Republic P-43 Lancer)는 미국의 리퍼블릭(Republic Aviation) 사에서 개발하고 생산한 단발 전투기로, 훗날 유럽 전선에서 전폭기로 대단한 활약을 펼친 P-47 썬더볼트의 원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기종이다.
1. 미 육군의 차기 전투기 후보
P-43의 원형인 '''리퍼블릭 AP-4'''는 미 육군이 1937년부터 쓰고 있던 세버스키 P-35의 발전형으로 개발이 시작되긴 했으나, 덩치가 한층 더 커지고 터보 차저까지 추가된 고공 전투기로 다시 태어난 까닭에 원래의 형태와 성능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신형기였다. AP-4는 1939년 5월부터 미 육군으로부터 도입을 위한 평가를 받았지만, 커티스 사가 제출한 후보인 XP-40에게 밀려나 채택은 불발되었다.
그렇지만, 이 시제기가 일부 성능은 커티스 후보기보다 더 좋았던 데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육군 심사단에서 공랭식 엔진을 선호하던 장교들도 있었던 탓에 AP-4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다. 육군은 재평가하기 위해 YP-43 랜서(Lancer)라는 명칭으로 13대를 더 주문했다. YP-43은 이륙 출력 1200마력을 내는 프랫&휘트니 R-1830-35 트윈 와스프 엔진을 장비한데다, 동체 아래쪽에는 수퍼 차저도 달려 있었다. 무장은 기수에 12.7 mm 중기관총 2정과 날개 좌우에 각각 7.62 mm 기관총을 1정씩 장비하고 있었다.
2. 육군의 2선급 전투기로
리퍼블릭 사는 1941년 4월까지 모든 기체를 육군에 납품하였다. 이어진 비행 시험에서는 25,000피트 고도에서 최고 속도 565 km/h를 기록하고 분당 780 m를 상승하는 성능을 보여 더욱 육군 심사단의 구미를 돋우게 되었고, 그 덕분에 P-40을 보조할 양산형으로 P-43을 54대 발주하게 된다. 그러나, 이즈음 벌어진 영국 본토 항공전을 지켜보며 새 시대의 공중전에서 P-43 정도의 무장과 성능으로는 턱없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미 육군은 이 전투기의 성능을 더욱 보완해주기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개발주임 알렉산더 카트벨리(Alexander Kartveli)를 중심으로 다시 뭉쳐 AP-4를 기반으로 하는 후계 기종 2가지 설계안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AP-4J는 P-44로 주문을 받았지만 양산 체제를 구축하기 전에 취소되었고, 그 대신 AP-4L에 주목한 육군은 이 기체를 후보로 삼아 P-47 썬더볼트의 원형기로 변해 간다.
3. 육군이 구제해주다
P-44의 제작에 필요한 공장을 추가 매입하고 생산 라인을 만드느라 거액을 투자한 리퍼블릭 사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지게 되었지만, 미 육군은 개발 능력을 갖춘 업체가 도산하는 것을 막고 다음 차기 전투기인 P-47의 생산 라인을 확보하기 위해, 성능면에서 모자란 P-43이지만 생산을 계속하게끔 해주는 관대한 조치를 취했다. 이렇게 하여 P-43의 초기 생산은 1차 발주분 54대에서 완료되고, P-44의 생산 순서를 대체할 형태로 P-43A를 80대 만들게 된다. 이 첫 번째 개량형은 기본적으로 P-43과 같았지만, 엔진은 P&W R-1830-49로 교체되었다.
리퍼블릭의 파밍데일 공장에서 생산된 P-43와 P-43A는 1941년부터 육군항공대에 인도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B-17 같은 폭격기 용도로 개발되어 기술적으로 덜 익은 터보 차저는 조종사 혼자서 고도에 맞춰 다루기가 까다로운데다 정비 소요도 크게 늘어나 나중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는 상황에 빠졌다. 육군은 랜서가 전투기로는 부적합하다고 판단을 내리고 대부분의 기체를 정찰기로 활용했다. P-43A의 생산 개시와 때를 함께 통과된 렌드리스 법안에 근거한 중화민국 지원용 전투기로 주문한 것이 P-43A-1이다. 이 전투기는 엔진이 P&W R-1830-57으로 바뀌고 날개 무장도 12.7 mm 기관총으로 강화했으며, 방탄 장갑을 덧붙이고 자동방루식 연료 탱크로 바꾸는 등 몇 가지 개선이 있었다.
4. 렌드리스 무기로
연합국 동맹군을 지원할 렌드리스 무기로 선정된 P-43A-1은 1942년 3월까지 125대가 만들어져 그중에서 108대가 장개석 정부가 이끄는 중국 공군에 넘겨졌다. 선편으로 인도의 카라치까지 실어온 이 전투기들을 인수한 중국 조종사들은 쿤밍까지 페리 비행하여 옮겼으나, 그 과정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40대가 넘는 기체가 추락하거나 파손되었다... 남아있던 69대의 P-43은 중국 본토를 지키기 위해 일본군 전투기들을 맞아 싸웠다.
나머지 17대의 랜서는 카메라를 탑재한 정찰기로 개조되고 미 육군에서 사용되었다. 일부의 사진 정찰형 랜서들은 1942년에서 1943년까지 짧은 기간이지만 전투기가 태부족하던 호주 공군에서 사용되었다.
훗날 랜서라는 이름은 X-27 실험기와 B-1 폭격기에 계승된다.
5. 제원
- P-43A-1
전장 : 8.69 m / 전폭 : 10.97 m / 전고 : 4.27 m / 익면적 : 20.72 m2 / 익면하중 : 163kg/m²
중량 : 2,173~3,850 kg
동력 : 프랫&휘트니 R-1830-57 공랭식 14기통 엔진 (1,200마력)
최대속도 : 573 km/h
실용상승한도 : 10,973 m
항속거리 : 1,046 km
상승률 : 780 m/min
무장 : 12.7mm 중기관총 4정 / 폭탄 200 lb
생산수 : 272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