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버스키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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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신기술의 결정체?
3. 발주는 따냈지만
4. 엔진 강화
5. 수출의 물꼬
6. 전쟁에서
7. 파생형
8. 기본 제원(P-35A)
9. 대중메체


1. 개요


리퍼블릭 사의 전신에 해당되는 세버스키(Seversky) 사가 전간기에 개발, 생산하여 미 육군에 납품한 단발 전투기.

2. 신기술의 결정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일반화되지 않은 전금속제 구조에다 인입식 랜딩기어, 단엽 날개와 밀폐식 조종석을 갖춘 이 단좌 전투기는 미 육군항공대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장 많이 가진 기종이었다. 1935년, 육군은 보잉 P-26의 후계 기종으로 차기 추격기에 관한 요구 제안을 각 항공기 제작사에 타진했다.
육군의 차세대 추격기라는 엄청난 호재인 이 프로젝트에는 커티스시콜스키, 콘솔리데이티드 사가 도전했지만, 그 틈바구니에는 1931년에 설립된 신흥 업체인 세버스키 사도 끼어 있었다.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귀화한 비행사이자 엔지니어 알렉산더 세버스키가 설립한 이 회사에는 역시 러시아 출신이지만 뛰어난 공학자인 알렉산더 카트벨리가 수석 설계기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3. 발주는 따냈지만


카트벨리가 처음 보여준 사내 명칭 SEV-2XP는 고정식 착륙장치에 복좌기여서 세버스키는 이런건 추격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단좌형으로 바꾸고 당시 막 도입되던 신기술들을 적극 채용하여 신선해보이는 설계안으로 바꿔나갔다. 그렇게 다듬어진 설계안 SEV-1XP는 시제기가 완성되었으나 엔진 파워가 딸려 원래 예상했던 성능에서 크게 미치지 못했다. 엔진을 850마력짜리 라이트 R-1820-G5 사이클론에서 트윈 와스프로 교체하고 안정성을 보강하기 위해 수직 미익을 넓히며 형태도 수정했다. 이것이 SEV-7이었는데, 육군의 눈에 들어와 1936년 6월 16일자로 제식 채용되었다. P-35로 명명된 이 추격기는 일단 초기 물량으로 77대의 주문을 받았지만, 너무나 적은 기대에 못미치는 물량이었다.

4. 엔진 강화


이 때, 커티스의 경쟁 후보였던 P-36 호크도 P-35와 마찬가지로 라이트 엔진의 결함으로 고생했는데, 이런 상황을 지켜 본 세버스키 개발진들은 P-35를 개량할 때 트윈 와스프 엔진으로 교체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렇게 파워업된 P-35는 1937년 7월부터 육군항공대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이 추격기의 무장은 기관총 2정과 중기관총 2정으로 모두 기수에 설치되었는데 그 때문에 기총 4정 전부가 동조기어가 필요했다. 파일런은 1개로, 최대 300 lb(136.5 kg) 폭탄을 매달 수 있었다. 이 추격기의 랜딩기어는 제대로 된 인입식은 아니어서, 뒤에 접어넣되 타이어와 착륙장치 일부가 날개 아래로 드러나는 반매입식이었다. 캐노피의 형상도 몹시 투박해 방풍창 뒤로 여러 장의 유리를 끼운 새장형이어서 조잡해 보이고 구식기의 형태나 특징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말하자면 P-35야말로 미 육군 추격기 진화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해준 기종이었다.
경쟁기인 P-36은 나중에 액랭식 엔진을 장착하여 P-40으로 발전해 갔지만, P-35 계열은 일관되게 공랭식 엔진을 고집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1차 대전에서 전투기를 몰아본 경험이 있는 알렉산더 세버스키의 철학이 스며든 결과였다.

5. 수출의 물꼬


P-35는 미 육군항공대 외에도 스웨덴에 EP-1-6(EP는 수출 전투기 Export Pursuit)이란 명칭으로 수출되었다. 스웨덴 구매단 앞에서 회사의 대표 세버스키가 직접 P-35의 조종간을 잡고 데모 비행을 펼쳐 보였는데, 그 비행이 좋은 인상을 보였던 것이다. 세버스키는 스웨덴에 전투기 120대나 팔 수 있었다. P-35는 스웨덴 공군에서 운용될 때는 J9으로 불렸다. 하지만 1940년 6월부로 의회의 결의에 따라 영국 외에 국가에는 비단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항공기의 수출을 금지하는 법률이 발동했던 탓에 나머지 물량은 육군에서 구입하게 된다. 이 국내형이 P-35A인데, J9과 P-35A는 원형기인 P-35 보다 성능이 향상되었고 엔진도 이륙 출력 1050마력으로 파워업했다. 기수에 너저분하게 몰린 기총도 2정을 빼서 날개로 옮겼다.

6. 전쟁에서


P-35A 중에서 12대는 에콰도르에 팔려나갔고, 48대는 일본과 대치하고 있던 필리핀에 지원 물자로 보내졌다. 이때 필리핀에 보내진 48대의 전투기는 1941년에 일본군이 침공했을 때 거의 전부가 지상에 앉은 채로 파괴되었고, 실제로 요격에 나선 것은 극소수였다. 또한 8대는 중화민국 정부에 대한 지원 무기로 보내졌다.
태평양 전쟁이 터졌을 때, 이 전투기는 완전히 시대에 뒤처진 구식기가 되어 있었다.
그렇더라도, 스웨덴과 에콰도르에 팔려나간 기체들은 별다른 실전을 치르지 않은 채 1947년까지도 계속 운용되었다고 한다. 스웨덴 같은 경우는 47년 이후로는 무장을 제거하고 항공카메라를 탑재하여 정찰기로 개조된 다음 1953년까지 10대가 현역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7. 파생형


  • 세버스키 2PA : SEV-2XP로 돌아간 듯한 사양에 후방 총좌를 추가한 복좌형 전투기였다. 총좌에 달린 무장은 7.62 mm 기관총 또는 7.7 mm 기관총 1정이었다. 특이하게도 이 기체에 흥미를 느낀 일본 해군이 1937년에 2PA-B3 형식을 20대 수입하여 세버스키 육상 복좌전투기 A8V1이라는 명칭으로 일선 부대에 배치했는데, 나중에 이 기체들은 중일 전쟁에서 사용했다. 스웨덴도 B6라는 명칭으로 52대를 주문했으나, EP-1-06와 같은 이유로 2대 밖에 수령할 수 없었다. 나머지 50대는 육군에 돌려져 총좌를 제거한 다음 고등훈련기 AT-12 Guardsman으로 사용되었다.
  • XP-41 : P-35에 이륙 출력 1,200마력에 2단 과급기를 추가한 R-1830-19 엔진을 장비한 형식으로 1대만 제작되었다. 엔진을 강화하면서 캐노피도 저항을 줄이게끔 재설계되었으며, 랜딩기어도 완전히 수납되도록 개량되었다. 1939년 3월 첫 시험 비행에서 확연히 개선된 성능을 보여주어 최대 속도는 520 km/h까지 빨라졌다. 그러나 거의 같은 세버스키 개발진들이 육군의 차기 추격기 후보로 만들어낸 P-43 랜서 사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양산은 취소되었다. 이 시기에는 세버스키 사가 리퍼블릭 사로 재편되어서, 이 기체는 세버스키 이름을 지닌 마지막 기체가 되었다.
  • 세버스키 NF-1 : 미 해군의 함상 전투기 후보로 1대만 제작된 형식으로, 항공모함에 이착함할 때 시야 확보에 유리하도록 방풍창을 크게 부풀렸고 착함 훅을 갖추었으나 접이식 날개는 심사를 통과하면 생산 단계에서 채용할 예정이었다. 함께 경쟁한 후보들이 F2A, F4F여서 채용되지 못하고 탈락하게 된다.


8. 기본 제원(P-35A)


승무원 : 1명
전장 : 8.2 m / 전폭 : 11.0 m / 전고 : 3.0 m / 익면적 : 20.4m² / 익면하중 : 135.8kg/m²
공허중량 : 2,070 kg / 임무중량 : 2,770 kg / 최대이륙중량 : 3,490 kg
동력 : 프랫&휘트니 R-1830-45 트윈 와스프 공랭식 14기통 엔진 (1,050마력)
최대속도 : 467 km/h, 252 kn
순항속도 : 418 km/h, 226 kn
항속거리 : 1,530 km
실용 상승한도 : 9,570 m
상승률 : 585 m/min.
무장 : 12.7mm 중기관총 2정 / 7.62mm 기관총 2정 / 폭장 350파운드

9. 대중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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