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1급 초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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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미 주갑판 포대가 하나뿐인 비개조 사양의 소련제 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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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제 등산곶 경비정 개조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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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북한제 선체의 옛 개조전 모습
1. 제원
2. 개요
1955년에 구 소련에서 건조된 중형 구잠초계정으로, 사용한 국가는 구 소련과 북한으로, 제2연평해전과 제1연평해전에 참전한 조선인민군 해군의 주역으로, 증오하는 정도가 북한의 소형 잠수정들과 맞먹을 정도로 우리와 악연이 가장 짙은 배이다. 연평해전을 언급할 때 흔히 말하는 '등산곶 경비정' 이나 '등산곶 684호정' 이 바로 이 함급에 속한다.
3. 북한의 도입과 생산
제인연감에 따르면 1960년대 초반에 구 소련으로부터 북한이 8척을 도입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총 19척 중에서 13척은 대잠전을 위한 소나와 25mm 2연장 기관포, RBU-1200 대잠로켓, 대잠폭뢰를 장비하고 있고, 나머지 6척은 단순한 건보트로 운용된다고 하는데, 반대로『Guide to Combat Fleets of the World』에 따르면 1957~1961년 사이에 구 소련으로부터 6척을 대잠전용으로 도입하고, 나머지는 1968년부터 북한에서 직접 건조한 것으로 단순한 초계용으로 운용된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다른 군사잡지『Conway's All the World's Fighting Ship』에서는 같은 주제를 다룬 북한편과 소련편에서 원본과 다소 다른 설명을 하고 있다. 이 책 북한 해군 항목에 따르면 1957~1961년 사이에 소련으로부터 8척을 도입했으며, 북한에서 1968년 이후로 11척을 자체 건조했다고 한다. 같은 책 소련 해군 항목에 따르면 57~61년 사이에 소련으로부터 북한으로 6척이 이전되고, 북한에서 최소 12척 이상을 자체 라이센스 건조했다고 한다. 제1연평해전 당시, 그렇게나 많은 680번대 함번을 해전에 출항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마 2번째 기록처럼 건보트 사양 함선의 보유수량이 많아서일 가망성이 높다.출처 무엇보다 북한의 SO-1급은 경비정임에도 불구하고 구 소련제 원본 초계정 사항과는 다소 포대 구성이 틀린데, 제1차 연평해전에서 제2연평해전 당시 근접전술이 주이던 한국 해군의 참수리급 고속정에게 화력집중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구 소련제의 사양과는 달리 북한의 면허생산 사양에는 함교 뒷편 포좌에 고사총을 달기가 쉬웠으며, 2층식 포좌용 구조물 뒷편 주갑판에 25mm 쌍열포 장착용의 포좌가 구 소련제와 달리 2개가 있었기에 37mm 2연장포를 장착하기가 쉬웠다. 결국 본래 운용목적은 화력증강을 위해서는 아니었다지만 구 소련제에 비해 함포 장착용 구조물 하나가 추가로 더 있었기에 근접화력형으로 개조하기가 쉬웠던 것이다.
총 척수가 90년대 중엽까지 발표되거나 알려진 자료에는 19척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자료에서는 18척으로 감소(함번 681, 682, 683...)[8] 한 것으로 보아 90년대 후반에 1척이 퇴역한 것 같다. 허나 폐쇄적인 북한 사회 특성상 이런 점들은 알기가 쉽지 않고, 또 제원표가 있으나 실루엣 수준이기 때문에 다소 식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1999년과 2002년 6월 발발한 제1연평해전과 제2연평해전 당시 200톤급 혹은 215톤급으로 보도된 경비정들은 대부분 흔히 아는 '등산곶 경비정' 사양의 북한제 S·O-1급 건보트 사양 680번대 함선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한 해군의 보유 함정 중에 미사일 고속정을 제외하면 200~250톤급 함정으론 SO-1급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 뉴스 내용에서도 여러차례 SO-1급이 보도 영상과 사진에서 식별되었다.출처
4. 제2연평해전에서의 참전, 그 후
제1연평해전 당시 다량이 출현한 북한의 S·O-1급 경비정들 중에서 684호정은 불명의 주포와 37mm 2연장 기관포로 선제공격을 가해 왔다는 점에서 북한에서 건조된 건보트 사양들도 완전히 포나 탄약 문제에선 자유롭지 못했기에, 김정일은 당시 해전에 출항한 684의 주포를 85mm 전차포로 개조하고 중장갑화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에서 육도 388호정을 필두로 서로 7NM 가량 거리를 띄우고 연평도 동남쪽으로 고속으로 편대기동을 하며 NLL을 침범, 지속 남하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교전수칙에 따라 등산곶 684호정에 대한 차단기동과 경고방송을 실시하던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 357호정에 T-34-85 중형전차에서 적출한 85mm ZiS-S-53 전차포로 선제 기습포격과 동시에 거의 모든 함포와 각종 소총과 중화기로 공격을 가해 참수리 357호정이 예인 도중 침몰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정작 북한 해군 684호정 승조원들은 50명의 승조원 중 우리보다 2배 가까이 많은 정장 김영식 대위를 포함한 13명의 사망자와 35명의 중상자를 태우고 선체의 반이 침몰한 채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388호정에 묶인 채 북으로 예인되며 퇴각했고, 되려 자신들이 우리보다 더 큰 피해를 입게 된 꼴이 된 것이다. 물론 우리는 우리대로 배 1척을 잃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그 쪽에도 어느 정도 많은 피해를 준 것이다. 그런데 반이 침몰한 수준으로 배가 대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파괴된 선체 장갑을 보강하고 선체를 수리하여, '''김영식 영웅호'''로 함명을 교체하여 또다시 2004년 서해 NLL을 침범했다가 참수리급의 경고사격을 받고 북으로 퇴각함으로서, 2함대 장병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국군 장병들에게 요주의 배이자, 증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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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2013년 위의 훈련사진과 영상을 공개한 이후 무장을 기존 14.5㎜ 4연장 고사총을 떼어내고 같은 구경의 6연장 개틀링 포신으로 교체하여 아직도 서해에서 운용중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다만, 기존 684가 퇴역하고 동급함을 함번을 교체해 쓰고 있을 수는 있다. 허나 장기간 정비를 통해 2004년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제2연평해전 전후로 당시부터 현재까지 88식 보총을 사용하고 있으며, 9K111 파곳 대전차미사일과 솜 재질 파편 방호복 을 지급받은 것이 확인되었다. 구명조끼와 달리 솜 재질 플레이트가 삽입되어 있는 것이 부각되어 보이는 것이 특징.
5. 관련 문서
[1] 총 보유대수가 19대였으나, 1999년 제1연평해전 기준으로 1척이 퇴역하였다.[2] 제2연평해전 이후 10월경에 전량 퇴역하였다. [3] 수면아래 잠기는 부분[4] 기존 운용인원이 5명인데 반해, 14.5mm 개틀링은 사수 1명이 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저절로 운용인원이 줄어들게 되었다.[5] 북한제 한정으로 함교 우측 전방에 장착되어 있다. 당시 제3세계를 통해 밀수입 내지 밀반입한 것으로 추정된다.[6] 대청해전 전후 시기에 서해함대사령부 예하 8전대 소속 고속정들에 추가로 장착되었다.[7] 제2연평해전 이후 기존 ZPU-4 14.5mm 4연장 고사총 1문을 대체했고, 운용인원이 5명인 기존 2연장 고사총과 달리 운용인원이 1명으로 줄었다.[8] 물론 이 함번들은 라이센스 건조한 건보트 사양 함정의 함번들로, 아마 대잠초계정 사양으로 소련에서 직도입 한 것이 퇴역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완전침몰 직전까지 박살났던 등산곶 684호도 아직 북한이 서해에서 운용중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