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am
'''The Jam'''
1. 개요
1. 개요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활동했다.
브릿팝의 대부이자 모드족의 화신이라 불리우는 폴 웰러가 처음 음악 활동을 한 밴드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모드 리바이벌로 더 후와 킹크스로 비롯되는 60년대 영국 로큰롤을 재해석한 버즈콕스 풍의 펑크를 했으며 후기에는 파워 팝, 뉴 웨이브, 포스트 펑크 등의 느낌이 나는 음악도 보여줬다. 이후 영국 기타 중심 밴드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사실 더 잼은 폴 웰러의 원맨 밴드같은 면이 있었는데[1][2] , 그가 대부분의 곡을 썼고 또 프론트 맨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훗날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는 자기도 폴 웰러처럼 밴드 내의 메인 작곡가라면서 비슷한 처지라는 말을 한다. 특히 노엘 갤러거는 더 스미스와 스톤 로지스 그리고 바로 더 잼 등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폴 웰러와 노엘 갤러거는 서로 사이가 굉장히 좋다. 같이 투어도 다니고, 서로의 공연을 도와주기도 한다고. 게다가 집도 옆집이다! 이외 더 스미스나 리버틴즈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대표곡은 'Town Called Malice', 'That's Entertainment', 'Going Underground', 'Eton Rifles' 등이 있다. 'English Rose'라는 곡이 있는데 그들의 몇 안되는 어쿠스틱 곡이다. 하지만 웰러는 이 곡을 매우 쪽팔려 했다고... 'Town called malice'는 빌리 엘리어트에서 꽤 중요한 장면에 나온다.[3] 대표 앨범은 <Sound Affect>, <All Mod Cons>.
7-80년대를 다룬 모 영국 소설에서 음악에 관심없는 꼬맹이가 좋아한다고 할 정도로, 당대엔 국민 밴드라 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반대로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제로. 주로 명반선이나 오아시스를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더 클래시하고는 사이가 안좋았다고 한다. 정확히는 같은 무대에서 공연을 했다가 모종의 이유로 사이가 틀어졌다고. 더 클래시는 '(White Man) In Hammersmith Palais'라는 노래에서 펑크 록을 한다는 애들이 혁명을 갖다 버리고[4] 돈만 좇아 양복을 갖춘다고 디스했다. 음악 성향도 극과 극였기도 했고. 다만, 해체한 지 세월이 지나고 나선 화해를 한 것 같다.
[1] 심지어 더 잼 해산 후 만든 스타일 카운실도 비슷했고 90년대에 들어서면 아예 솔로 데뷔를 해버린다.[2] 브루스 폭스턴은 해체 당시에 '''더 잼에는 3명이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두 명은 폴 웰러가 아니었다'''고 발언했다.[3] 제이미 벨이 혼자 탭댄스를 추는 장면에서, 이 음악에 맞추어 춘다.[4] 실은 폴 웰러도 상당히 정치적인 가사를 많이 쓴 편이긴 하다. 후신인 스타일 카운실도 노동당을 지지하는 정치적인 활동을 하기도 했고. 다만 솔로 이후로는 그런 성향이 살짝 줄어드는데, 스타일 카운실때 열심히 해도 별로 효과가 없는거에 좌절해서라는 얘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