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S 스타크 피격 사건
'''USS ''Stark'' Inc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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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격 후 좌현으로 기울어진 스타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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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7년 5월 17일 페르시아만을 항해하던 미국 해군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31번함 스타크함이 이라크 공군 소속 다쏘 팔콘 50 비지니스 젯에서 발사한 엑조세 대함미사일에 피격당한 사건.
2. 배경
원래부터 사이가 좋지 않던 이란과 이라크는 이란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더욱 사이가 벌어졌다. 또한 둘 다 산유국인 만큼 전쟁지속능력을 파괴하기 위해 '''적국 유조선에다가 대함미사일을 서로 날려대는 통에''' 페르시아만을 통한 원유 수급로가 위협을 받게 되었다. 결국 보다못한 미국이 군함을 파견하여 동태를 주시하고 또 원유수급로를 안정시키기 위해 결국 FFG-31 스타크함을 파견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미국과 이라크는 이란 혁명 이후 호메이니를 서로 견제하기 위해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별일 없는 듯 싶었다.'''
그 전에 이라크 공군은 민간 항공기로 위장한 비지니스 젯을 써서, 이란측 영역을 정찰하는데 요긴하게 써먹어 보곤 거기서 영감을 얻어 비지니스 젯을 개조해서 대함임무에 투입하기로 결심했다.
VIP 수송용으로 굴리던 다쏘 팔콘 50 비지니스 젯은 프랑스에 건너가 마개조를 받는다. 오른쪽 콕핏을 미라주 F1Eq.5 콕핏으로 교체하고, 전방노즈 역시 미라주 F1Eq.5 노즈로 교체했다. 그 안에 시라노 레이더도 옮겨달았다. 마지막으로 양 날개 아래에 엑조세를 각 1발씩 달았다.
수잔나(마개조 팔콘 50에 붙인 이름)는 이제 미라주 F1Eq.5의 레이더와 사격통제 시스템을 써서 엑조세를 2발 배달할 수 있게 되었다.
3. 경과
그날도 똑같이 순항하던 스타크함의 레이더에 불명 항적이 잡혔다. 당시엔 스타크의 CIWS 등의 대공 방어 체계도 전원이 꺼져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방향으로 계속 날아오자 이에 놀란 스타크함에서는 바로 경고방송을 했고, 응답이 없었다. 조금 지나자 전투기에서 레이더를 쏘아 스타크 함을 겨냥했다. 지속적으로 경고 방송을 하고 이제 대공무장을 장전하려 하는데 바로 날아온 건 엑조세 미사일. 그렇게 엑조세 미사일은 스타크 함의 중앙에 직격했고 하필이면 맞은 곳이 동급함의 대공화망 사각지대인데다가 CIC가 위치한 곳이었다. 사각지대가 발생한 이유는 페리급 문서 참조. 두번째 엑조세가 날아왔지만 천만다행으로 불발. 이 피격으로 승조원 35명이 사망하였고 함선도 침몰 위기에 빠졌으나 함선은 살릴 수 있었다. CIC가 파괴되어서 지원 요청도 함선의 통신 기기가 아닌 휴대용 무전기로 해야 할 정도였다.
4. 여담
자국 해군의 배가 피격되었다는 사실에 미국 정부는 바로 이라크 정부에게 항의했다. 이에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이란 유조선인줄 알고 오인사격했다"'''고 발표한 뒤 배상금을 물어주고 미국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미국으로서도 당시 이라크가 친미 국가인데다 곧바로 사과하고 배상금까지 지급한 탓에 더 이상 항의하기도 곤란해서 이대로 사건을 마무리지어야 했다.
하지만 저 상황은 정말 오인사격이었는지 이후 정황을 보면 의심스럽다. 그 사건을 일으킨 파일럿은 '''후세인에 의해 1계급 특진에, 벤츠 승용차에다 고급주택까지 포상으로 받았다.'''
그리고 4년 뒤 미국은 이 사건에 대한 복수를 이라크에게 톡톡히 하게 된다.
또 이 사건이 긴장이 너무 풀려서 벌어졌다고 생각한 미국은 바로 사격을 때릴 수 있도록 교전수칙을 변경한 뒤 또 페르시아 만에서 원유수급로 안정 및 정찰 활동을 지속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너무 긴장해서 또 다른 사고를 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