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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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範九
1924년 7월 15일~
한국의 영화 감독. 국민대 재학 당시 연극부 활동을 하다, 같이 연극을 하던 박상호 감독이 신상옥 감독의 '젊은 그들'에 조감독으로 참여하자 함께 영화계에 입문 하였다. 이후 박상호 감독의 1956년작 '해정', 유현목 감독의 1956년작 '유전의 애수', 유현목 감독의 1957년작 '잃어버린 청춘' 에서 촬영 조수를 하다가, 1958년 신상옥 감독의 '어느 여대생의 고백' , '지옥화' 두 영화로 촬영감독 데뷔를 하게 된다. 그렇지만 신상옥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직접 카메라를 잡았었기 때문에 '어느 여대생의 고백', '지옥화'에서는 그는 크레딧에 촬영감독으로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사실상 조수나 마찬가지였다.
촬영감독으로 공식적인 첫 작품은 박상호 감독의 1958년작 '장미는 슬프다' 다. 여담이지만 촬영감독이던 당시 정진우감독이 그의 조수였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정진우 감독은 강범구 감독을 큰형님 모시듯 한다.
1962년, '검은 꽃잎이 질때' 라는 영화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전직하였고, 1980년대까지 수많은 영화를 연출하게 되는데,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홍콩 영화 아류같은 B급 영화 및 사망탑같은 홍콩과 합작인 영화를 주로 연출했다.
1988년, 홍콩과 합작영화인 칠소여복성 공동 연출을 끝으로 더이상의 영화 연출을 하지 않고 있는데, 1990년대엔 영화 수입 중개업을 하였다. 1924년생으로 이미 90세를 넘긴 고령이지만, 2016년 12월 현재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영화 연출에 대한 욕심이 있을 정도로 의욕이 넘친다고 한다.
홍콩의 이한상, 진지화, 오사원 등과 친하게 지냈고, 1974년에 "황혼의 만하탄"의 각본을 그와 절친하게 지냈던 고 김기영 감독이 손수 집필해줘 미국으로 보내줘서 촬영하였다. 그 외에도 신상옥 감독이 납북되기 하루 전에도 같이 식사를 나눌 정도로 친하게 지내기도 했다. 액션 영화에 부각을 잘 나타내는 감독이기도 한데 그가 60년대에 만든 "지평선", "검은 꽃잎이 질때", "안개 낀 거리", "창살없는 감옥", "소만국경", "대검객", "칼맑스의 제자들" 같은 경우 작품성이 뛰어난것으로 알려졌으나 해외에 거의 수출이 되는 바람에 필름이 안남아 있는 작품이 다수이다. 그 때문에 굉장히 저평가 된 감독이 아닌가 싶다.
"안개 낀 거리"는 대만에 수출되어 당시 흥행 1위를 한 작품이기도 한데 "할리우드 영화 못지 않을 정도로 작품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 그 덕에 "탈출명령"이라는 대만,한국과의 최초 합작이 만들어졌다.
1968년, 여자 베트콩 18호 촬영 중 폭탄이 잘못 터지는 바람에 한쪽 눈을 잃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더불어 호러팬들에게 좀 알려진 이름이기도 한데 바로 한국 최초 좀비 영화괴시(1980)를 감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시스페인이탈리아 합작 좀비영화 Non si deve profanare il sonno dei morti /영어제목 Let Sleeping Corpses Lie(1974)를 베낀 영화라서 평이 안 좋다. 그래도 결말이나 여러 부분은 독창적으로 간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그는 2011년 6월 3일자 스폰지에서 괴시를 다루면서 이 영화가 조금 알려지며 강범구도 잠깐이나마(?) 알려졌다.
2016년 인터뷰. 여기서 괴시에 대해 갖다 쓴 게 맞다고 깔끔히 인정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