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

 

'''이름'''
'''강용'''
(康勇 / Kang Yong)
'''생년월일'''
1979년 1월 14일 (45세)
'''국적'''
[image]대한민국
'''포지션'''
오른쪽 풀백
'''신체조건'''
177cm / 73kg
'''소속팀'''
포항 스틸러스 (2001~2004)
전남 드래곤즈 (2005~2009)
광주 상무 불사조 (2006~2007 / 군복무)
강원 FC (2009 / 임대)
대구 FC (2011~2012)
인천 유나이티드 (2013)
1. 개요
2.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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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로, 현역 시절 포지션은 사이드 풀백.

2. 경력



2.1. 포항 스틸러스


영등포공업고등학교 시절에는 공격 쪽에서 뛰었지만, 고려대학교 진학 이후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청소년 대표 소집 등으로 주목을 받은 강용은 2001년 포항에 입단하였다. 처음부터 주전으로 기용되지는 않았지만 최순호 감독이 부임하면서 포항의 굳건한 주전 풀백으로 올라섰고, 2003년과 2004년 모두 리그 30경기를 넘게 출전하는 데 성공했다. 2003년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상비군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2. 전남 드래곤즈, 군 입대, 그리고 강원 FC


[image]
강원 임대 시절, 윤준하에게 따봉을 선사하는 강용.
2005 시즌을 앞두고 풀백 김홍철과 트레이드되어서 전남으로 이적했다. 전남에 이적해서 로테이션으로 뛰었지만 본격적으로 부상의 악령이 그를 덮쳤다. 짧은 기간동안 연이어 근육 부상이 온 것. 시즌을 마친 뒤 한 해만에 광주 상무 입대를 선택했고 상무에서도 역시 주축 수비수로 활약, 심지어 주장으로 선임되기도 했지만 전역 직전 심각한 골절 부상을 당했다. 부상이 너무 심해서 전남에 복귀했지만 오랜 기간을 재활에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 왔으며 복귀한 뒤에도 박항서 감독에게 기회를 받지 못하였다. 2009년애는 신생 강원 FC에 임대되면서 재기를 꿈꿨다. 하지만 강원에서도 중간에 무릎 부상을 당하는 등 고생이 이어졌다.
시즌 종료 후 강용은 이적을 모색하며 해외 진출을 타진했으나 에이전트의 사기가 겹치며 무적 신분으로 전락했고, 설상가상으로 또 부상이 겹치며 한동안 팀을 찾지 못했다.

2.3. 대구 FC


[image]
오랜 기간 축구계를 떠나있던 강용은 2011년 7월 대구로 이적하면서 거의 1년 반만에 프로 무대로 돌아왔다. 몸 상태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강용은 나이와 공백 기간에도 불구하고 꽤 괜찮은 플레이를 선보였다. 이를 통해 재계약이 성사된 강용은 2012년 개막전에서부터 득점을 성공시켰지만 시즌 전체로는 다소 애매한 출장 기회를 받았고 시즌 종료 후 FA로 풀렸다.

2.4. 인천 유나이티드 FC


[image]
좌측의 선수가 강용. 우측은 이석현.
공식적인 영입 발표가 따로 있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 연맹에 등록되면서 인천에 공식적으로 합류함이 알려졌다. 나이가 워낙 많은 만큼 적당한 후보 수준으로 평가를 받았었고 한동안 기회가 오지 않았지만 김창훈의 부진으로 박태민이 좌측으로 이동하면서 우측에 공백이 생겼고 그 자리에 종종 실험되었다. 나쁘지 않은 플레이었으나 윙에서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한 최종환이 주전으로 올라서면서 강용은 다시 후보로 밀려났다. 결국 강용은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택했고, 이후 서울 강서구에 축구교실을 열게 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빠른 스피드와 좋은 체력을 지닌 풀백. 공격수 출신인 만큼 공격적인 감각도 있었고 한 때 국대에 이름이 언급될 정도의 클래스를 지닌 선수였다. 그러나 전남 시절부터 잦아진 부상으로 인해 제 기량을 온전히 펼치지 못한 것이 굉장히 아쉬운 선수. 그래도 무려 1년 6개월의 공백기를 가졌던 선수가 프로에 돌아와서도 곧잘 활약한 점은 굉장히 놀라운 사례로, 손대호 정도를 제외하면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1]

4. 여담


전남에서 방출되고 오랫동안 방황하던 시기에 헬스장과 조기축구회를 오가며 몸 감각을 유지시키려고 노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신 조기축구회의 공식 축구대회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1] 손대호는 공백 기간이 더 길었던 대신, 강용처럼 공백기에까지 부상을 당하는 비운은 없어서 누가 더 대단한 사례인가에 대한 논쟁은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