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국민승리21

 

''창당''

'''건설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
민중당
(개별 합류)
1. 개요
2. 상세
3. 여담
4. 당가
5. 역대 선거 결과
6. 둘러보기


1. 개요


1997년 창당, 1999년까지 존속한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으로, 약칭인 '''국민승리21'''로 잘 알려져있다. 사무실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도화동 173번지 삼창플라자 1515호에 소재했다.
유사한 당명을 가진 국민통합21과 이념은 다르지만 똑같이 울산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2. 상세


1996년1997년의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이후,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주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정치영역에서 노동을 대표하는 세력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1997년 3월 27일의 대의원대회에서 정당건설을 결의하고 NLPDR 성향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PD 성향의 진보정치연합과 진보정당 건설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된다.
1997년 8월 18일 '국민승리21 추진위원회'를 발족하였다. 추진위원회에서는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창복 전국연합 상임의장을 대표로 추대하여 10월 26일 국민승리 21을 결성하고 권영길을 대선후보로 결정했다.
[image]
국민승리21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선 포스터
그러나 '''국민'''승리21이라는 정당명과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NL냄새 물씬 나는 선거구호를 사용하는 바람에 PD 계열로부터는 비판받고, 김대중을 비판적 지지해오던 NL 계열 전국연합은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데다[1],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 중 대다수가 사표 방지 차원에서 김대중 지지로 쏠리는 바람에 결국 15대 대선 결과 1.2%를 득표하는데 그쳤다.
이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49명의 후보를 내어[2] 22명을 당선시켰으며, 1999년 11월 해산한 뒤 민주노동당으로 재창당된다.

3. 여담


정식 당명이 '''건설'''국민승리21이 된 이유는, 기호 배정에서 앞 번호를 받기 위해서였다... 국회 의석이 없는 정당 소속 후보자는 정당명의 가나다순으로 기호를 배정받기 때문.
15대 대선 당시 허경영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하였으므로, 그냥 국민승리21이라고만 할 경우 허경영 다음 기호를 받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앞에 '''건설'''이라는 글자를 붙인 것인데, 당시 나왔던 아이디어 중에는 '''가자!'''국민승리21 등도 있었다(...) 박용진의 증언에 따르면 '''가가호호''' 국민승리21도 검토되었던 당명이라고 한다. 기사

4. 당가




5. 역대 선거 결과


연도
선거 종류
후보
득표율
결과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권영길
306,026표 (1.19%)
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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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국연합 상임의장 이창복은 그 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여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2] 정확히는 국민승리21의 지원을 받는 무소속 후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