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복
李昌馥
1938년 8월 29일 ~
1. 개요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 정치인이다. 본관은 한산(韓山)[1]#, 종교는 가톨릭으로 세례명은 요한 보스코이다.
2. 생애
1938년 강원도 원주군(현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2]#에서 태어났다. 원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다니다 중퇴하였다.
고향 원주시로 낙향해 지학순 신부와 함께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으며, 재야민주화운동세력의 연합조직이었던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에서 활동하면서 인천 5.3 운동과 6월항쟁을 주도하였다. 19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는 민통련 부의장으로 당시 재야세력이 김대중 후보에 대한 비판적지지를 선언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운동가들이 순차적으로 제도정치권에 입문하는 와중에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활동을 이어가면서 꿋꿋히 재야를 지켜서 한때 "마지막 재야"라는 별칭으로 불리웠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연합 상임의장으로 민주노총, 노회찬의 진보정치연합 등과 손잡고 진보대통령후보 권영길의 건설국민승리21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15대 대선 이후에는 국민승리21과 관계를 단절하고 진보정당운동에서 손을 떼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 전국연합 상임의장을 사퇴하고 민주개혁국민연합을 창립하여 대표를 맡았다. 이곳은 재야운동가들 중에서 오랜기간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론을 주장하던 인사들이 대거 결집한 단체로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이창복 대표와 상당수 간부들이 김대중이 이끄는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였다. 마지막 재야라고 불리던 이창복까지 결국은 제도정치권에 입문한 것이다.
1998년에는 우리영화지키기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아 스크린 쿼터제 축소 저지운동을 이끌기도 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강원도 원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함종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2003년 분당사태 때는 민주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였으나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불출마하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강원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현직 도지사인 한나라당 김진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로는 제도권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통일운동에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