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매튜스 주니어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했던 외야수로, 2000년대 후반 화려한 먹튀행각을 자행하며 에인절스 팬들의 속을 썩인 선수다(...).[1] 한국 한정 별명은 매뚝이, 메뚝스(...). 또한 GMJ라는 약칭으로 많이 불린다.
2. 커리어
1999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시작으로 여러 팀을 돌아다니다 2004년부터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기 시작했고, 2004년 OPS .800을 넘기며 발전의 실마리를 잡는가 했지만 2005년엔 다시 부진하더니 '''2006년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율 3할을 기록, 올스타에 선정'''되며 역대 14번째 父子 올스타라는 기록을 세운다. 194안타와 44개의 2루타는 그가 일급 타자로 발전했다는 징표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사이클링 히트까지 달성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서비스타임을 채운 그는 FA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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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대박의 이정표가 된 수비.
문제는 이런 그가 FA가 되자[2] '''LA 에인절스가 5년 5000만달러의 대단한 계약을 안겨주며 영입'''했다는 것이다.[3]
'''그리고 재앙은 시작되었다.'''
2007년 .252의 타율과 18홈런에 그친 것부터 불안하더니 미첼 리포트에서 성장호르몬 복용자로 이름이 오르며 약쟁이로 낙인찍혔다.[4] 그 다음 완전히 무너져 2008년엔 8홈런(...) 2009년엔 4홈런(...)에 그치면서 버논 웰스 뺨치는 먹튀짓을 자행하였다. [5] 결국 2006시즌은 FA로이드임이 드러났다.
이에 분기탱천한 에인절스는 2010년을 앞두고 뉴욕 메츠로 그를 트레이드[6] 했...지만 2010년 메츠에서 그는 말 그대로 '''쫄딱 망했다.'''[7] 결국 시즌 중 방ㅋ출ㅋ당하며 신시내티 레즈와 계약하지만 메이저리그로의 복귀는 실패하였다.
그가 강렬한 활약 남기고 떠난 이후로 에인절스는 대형계약 외야수는 족족 폭망. 2011년 2월부터 2년간 버논 웰스가 보여준 맹활약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2013년, 간신히 버논 웰스를 처분하니 이번엔 5년 계약으로 텍사스에서 모셔온 조시 해밀턴이 그 못지 않은 활약으로 에인절스 팬들은 계약 1년차부터 해밀턴 이야기만 나오면 뒷목을 잡는 중. 이 정도면 가히 매튜스의 저주.[8] 에인절스 팬들은 거액의 FA 선수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 카더라.
3. 이모저모
- 매튜스 주니어의 아버지인 게리 매튜스 시니어는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했던 외야수로, 1973년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수상했으며 통산 2011개의 안타와 234홈런 978타점, .281 .364 .439의 성적을 기록한 타자다. 은퇴 이후엔 시카고 컵스에서 마이너리그 타격 코디네이터로 일했으며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타격코치로 일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라디오 해설자로 있다가 현재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방송 해설자로 일하고 있다. 방송 시작 때는 톰 맥카시와 크리스 윌러가 해설하다 4회부터 갑툭튀하여 특유의 목소리로 3~4이닝 동안 입담을 과시한다.
4. 관련 문서
[1] 에인절스는 매튜스 이후 외야수 대형계약은 줄줄히 말아 먹는다. 가히 저주 수준.[2] 텍사스 레인저스는 그의 2006년을 플루크로 판단하고 잡으려 하지 않았다.[3] 계약 당시에 이미 오버페이라는 소리가 많았다.[4] 이때 에인절스는 그의 5년 계약을 백지화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5] 2008년, 매튜스가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에인절스는 일찌감치 중견수 토리 헌터를 5년 9000만달러에 계약했다. 다행히 헌터는 받는 만큼은 해 줬다.[6] $23.4M의 잔여연봉 중 $22.3M을 에인절스가 보조.[7] 메츠도 무릎부상으로 시즌아웃된 카를로스 벨트란의 땜빵으로 데려온 거라 기대치는 별로 안 컸음에도 망했다는 평가.[8] 그나마 성공한 대형계약 외야수 토리 헌터와 계약할 때는 아직 매튜스가 팀에 남아 있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