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image] '''대한민국 국보 제39호'''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慶州 羅原里 五層石塔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라원리 676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수량/면적'''
1기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제작시기'''
통일신라시대 초기
[image]
1. 개요
2. 내용
3. 바깥고리
4. 국보 제39호


1. 개요


慶州 羅原里 五層石塔.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은 경주시 북부의 나원리에 위치한 절터에 있는 전체 높이 9.7m의 화강암제 오층석탑이다. 본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인 약 8세기 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부근에 남아있는 오층석탑은 본 석탑 이외에는 경주 장항리 서 오층석탑이 유일하다.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이 서 있는 절터에 관해서는 현재 정확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고 본 오층석탑 외에는 딱히 현전하는 다른 유구도 없어 현재로썬 절의 본래 이름조차 알 수 없다. 대신 본 석탑은 위치한 지명을 따와서 나원리 오층석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나원리 오층석탑은 익히 경주 지역의 명물로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경주의 삼기팔괴 중 하나인 나원백탑으로 꼽혀왔다.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은 국보 제39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이 세워져 있는 절터가 언제 건립되었으며 언제 폐사가 되었는지, 심지어 절의 이름조차도 제대로 된 기록이 없어 현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전해지는 바로는 신라 헌덕왕 시기에 만들어진 절이었다고도 한다.
나원리 오층석탑에 안치된 사리장엄구를 노린 도굴 시도가 여러 번 있었다고 하나, 천만다행으로 이를 피할 수 있었다. 더 다행스럽게도 1995년 11월부터 1996년 7월까지 9개월간 진행된 탑의 해체 및 수리 과정에서 탑에 모셔진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가 발견되기도 하였다.한국 미의 재발견 - 금속공예 : 경주 나원리오층석탑 사리장엄구[1]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은 (경주 인근의 석탑 가운데서)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에 다음 가는 거대한 크기의 석탑으로, 전체적인 구조는 2층으로 된 기단 위에 5층의 몸체로 이루어져 있다. 1층의 몸체는 다른 층들과는 다르게 거대하지만 전체적인 비례는 조화로운 편으로, 이로 인해 안정감이 느껴진다. 나원리 오층석탑은 현존하는 절대 다수의 탑들과 마찬가지로 탑의 머리장식은 사라지고 없지만, 머리장식의 받침과 머리장식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찰주는 부러진 상태이긴 하나 다행히도 남아있다. 각 지붕돌의 끄트머리에는 풍경#s-2을 달아놨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구멍들이 나 있다.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이 흥미로운 점은 탑의 기단과 1층의 몸체, 1·2층의 지붕돌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처럼 7~8세기에 들어서 변화하고 있는 신라의 석탑 조성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나원리 지역 인근에서는 지질학적인 연유로 탑을 만들 만한 화강암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본 탑은 화강암제라는 점에서 다른 곳에서 탑의 재료들을 옮겨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흥미로운 것은 재료들이 바로 탑을 쌓을 수 있게 다듬어진 채로 절까지 온 것이 아니라, 굳이 원석 상태로 절에 옮겨 온 뒤에 여기서 쌓으면서 다듬어지고 조각 되었다는 점이다.[2] 당시 교통이 발달하지도 않았던 시절에 어째서 탑을 만들면서 이렇게까지 수고를 들였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한편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에 사용된 화강암은 유달리 깔끔한 순백색을 잘 보존하고 있어서 예로부터 경주의 삼기팔괴 중 하나로 꼽혔다.[3]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 등이 현재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으며, 경주 인근의 석탑 중에서는 경주 장항리 서 오층석탑 외에는 유일한 오층석탑이라는 점, 석탑 연구에 있어서 특수하며 독특한 개성을 유지하고 있는 등의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이 인정 받아 일찍이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9호로 지정되었다.

3. 바깥고리



4. 국보 제39호


나원리마을의 절터에 남아 있는 석탑으로, 경주에 있는 석탑 가운데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8호)과 비교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순백의 빛깔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나원 백탑(白塔)’이라 부르기도 한다.

2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기단과 1층 탑신의 몸돌, 1·2층의 지붕돌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각 면마다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는데, 가운데 조각을 아래층은 3개씩, 위층은 2개씩 두었다. 탑신부는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경사면의 네 모서리가 예리하고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고,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부서진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과 잘려나간 찰주(擦柱:머리장식의 무게중심을 지탱하는 쇠꼬챙이)가 남아있다.

짜임새있는 구조와 아름다운 비례를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부근에서는 보기 드문 5층석탑으로, 탑이 지니고 있는 듬직한 위엄에 순백의 화강암이 가져다주는 맑은 기품이 잘 어우러져 있다. 높은 산골짜기에 우뚝 솟은 거대한 모습에서 주위를 압도하는 당당함이 묻어난다.


[1] 특이하게도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의 사리장엄구는 다른 탑들과는 다르게 3층 지붕돌에 만들어진 사리공에서 발견되었다. 일반적인 경우는 탑신이나 탑의 주춧돌인 심초석에 사리장엄구를 안치한다.[2] 이는 탑의 해체 수리 과정에서 확인 되었다. 해체 수리 시에 탑의 기단부에서 조그만 돌조각들이 다수 발견되었는데, 이는 탑을 올리면서 재료인 화강암을 조각했다는 것을 시사한다.[3]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끼도 잘 끼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