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재매정지 출토 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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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문화재청의 주도하에 고대 삼국통일전쟁의 주역이었던 김유신 장군의 고택인 사적 제246호 ‘경주 재매정지’ 유적을 발굴조사하던 중 출토된 신라말~통일신라 시대의 찰갑.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14년에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에 위치한 과거 신라의 명장 김유신(595~673)이 살던 집터인 재매정(財買井)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찰갑으로, 발견 당시 김유신 장군이 쓰던 실제 갑옷이 발견되었다고 대서특필되면서 대중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후 학계의 연구 결과 7세기~10세기 사이에 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이 확인되었다.
이렇게 이 비늘갑옷 유물은 발굴 직후 '김유신의 갑옷'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으나 이 갑옷이 김유신 장군의 갑옷이라는 증거는 사실상 없다.중앙일보 : [굿모닝 내셔널]과학기술로 부활한 1400년 전 '김유신 갑옷' 하지만 연대적으로 볼 때 김유신이 활동하던 7세기 무렵부터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는데다, 실제로 김유신이 살던 집터에서 발굴됐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김유신의 갑옷일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일단 학계에서는 적어도 김유신의 직계 후손이 전장터에서 사용하던 것임은 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재매정 발굴조사는 유적 정비계획수립을 위해 2013년∼2014년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이 비늘갑옷은 13호 구덩이에서 토기와 기와, 다른 금속유물과 함께 발견되었다. 길이 5~10cm, 너비 2~3cm 내외의 철판 700여 매로, 몸통 부분 전체와 기타 부속구가 온전히 출토되었으나 투구만은 출토되지 않았다.
위의 사진은 2018년 4월에 복원 작업 및 보존 처리를 거쳐 대중에게 공개된 것인데, 일단 몸통 부분만 복원이 완료되었고 나머지 부속구들은 아직 복원 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이 부분들은 공개되지 않았다. 당시 최양식 경주시장과 신라문화유산연구원(원장 박방룡)은 나머지 부속구들도 빠른 시일 내에 보존처리하고 사진, 엑스레이 및 CT 촬영, 모식도 작업을 끝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발견된 한국의 찰갑 대부분이 일부 부속구 파편만 몇 점씩 출토된 것과는 달리, 경주 재매정지 출토 찰갑은 (투구를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이 온전한 상태로 출토된 것이라 문화재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 현재 한국에서 완전 복원이 가능할 정도로 완벽한 실물 풀세트로 찰갑이 발견된 경우는 2009년 발견된 경주 쪽샘지구 C10호분 신라 찰갑과 2011년 발견된 경기도 연천 고구려 찰갑, 그리고 2014년 발견된 이 경주 재매정지 출토 찰갑 3종 뿐이다. 다만 굳이 깊게 따지고 들어간다면 경기도 연천 고구려 찰갑의 경우 목가리개, 투구, 굉갑 등의 부속구가 하나도 없이 오직 몸통 부분만이 온전히 발견된 상태고, 경주 재매정지 출토 찰갑 역시 투구는 없기 때문에 정말 완벽하게 풀세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경주 쪽샘지구 C10호분 신라 찰갑 하나뿐이긴 하다.
설령 김유신의 갑옷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갑옷의 사료적 가치는 높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출토된 대부분의 갑옷들은 삼국시대의 것이 대부분으로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의 갑옷은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청동 갑옷을 제외하면 실물 자료로선 재매정에서 나온 갑옷이 최초다. 이 비늘갑옷의 구조 분석을 통해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군사 복식 문화를 연구하는 데 보탬이 될 전망이다.
1. 개요
2014년, 문화재청의 주도하에 고대 삼국통일전쟁의 주역이었던 김유신 장군의 고택인 사적 제246호 ‘경주 재매정지’ 유적을 발굴조사하던 중 출토된 신라말~통일신라 시대의 찰갑.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2014년에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에 위치한 과거 신라의 명장 김유신(595~673)이 살던 집터인 재매정(財買井)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찰갑으로, 발견 당시 김유신 장군이 쓰던 실제 갑옷이 발견되었다고 대서특필되면서 대중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후 학계의 연구 결과 7세기~10세기 사이에 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이 확인되었다.
이렇게 이 비늘갑옷 유물은 발굴 직후 '김유신의 갑옷'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으나 이 갑옷이 김유신 장군의 갑옷이라는 증거는 사실상 없다.중앙일보 : [굿모닝 내셔널]과학기술로 부활한 1400년 전 '김유신 갑옷' 하지만 연대적으로 볼 때 김유신이 활동하던 7세기 무렵부터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는데다, 실제로 김유신이 살던 집터에서 발굴됐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김유신의 갑옷일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일단 학계에서는 적어도 김유신의 직계 후손이 전장터에서 사용하던 것임은 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재매정 발굴조사는 유적 정비계획수립을 위해 2013년∼2014년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이 비늘갑옷은 13호 구덩이에서 토기와 기와, 다른 금속유물과 함께 발견되었다. 길이 5~10cm, 너비 2~3cm 내외의 철판 700여 매로, 몸통 부분 전체와 기타 부속구가 온전히 출토되었으나 투구만은 출토되지 않았다.
위의 사진은 2018년 4월에 복원 작업 및 보존 처리를 거쳐 대중에게 공개된 것인데, 일단 몸통 부분만 복원이 완료되었고 나머지 부속구들은 아직 복원 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이 부분들은 공개되지 않았다. 당시 최양식 경주시장과 신라문화유산연구원(원장 박방룡)은 나머지 부속구들도 빠른 시일 내에 보존처리하고 사진, 엑스레이 및 CT 촬영, 모식도 작업을 끝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발견된 한국의 찰갑 대부분이 일부 부속구 파편만 몇 점씩 출토된 것과는 달리, 경주 재매정지 출토 찰갑은 (투구를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이 온전한 상태로 출토된 것이라 문화재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 현재 한국에서 완전 복원이 가능할 정도로 완벽한 실물 풀세트로 찰갑이 발견된 경우는 2009년 발견된 경주 쪽샘지구 C10호분 신라 찰갑과 2011년 발견된 경기도 연천 고구려 찰갑, 그리고 2014년 발견된 이 경주 재매정지 출토 찰갑 3종 뿐이다. 다만 굳이 깊게 따지고 들어간다면 경기도 연천 고구려 찰갑의 경우 목가리개, 투구, 굉갑 등의 부속구가 하나도 없이 오직 몸통 부분만이 온전히 발견된 상태고, 경주 재매정지 출토 찰갑 역시 투구는 없기 때문에 정말 완벽하게 풀세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경주 쪽샘지구 C10호분 신라 찰갑 하나뿐이긴 하다.
설령 김유신의 갑옷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갑옷의 사료적 가치는 높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출토된 대부분의 갑옷들은 삼국시대의 것이 대부분으로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의 갑옷은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청동 갑옷을 제외하면 실물 자료로선 재매정에서 나온 갑옷이 최초다. 이 비늘갑옷의 구조 분석을 통해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군사 복식 문화를 연구하는 데 보탬이 될 전망이다.